소소한 파리를 만나는 시간 – 파리, 생마르탱 운하

나는 왜 그렇게 파리에 가고 싶어 했을까

20대 초반, 10여 년 전에 방문했던 그곳은 처음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어딘지 서울을 닮아있었다. 아마도 이탈리아를 다녀온 직후라 그랬을까. 유머러스하고 장난기 가득한 사람들에게서 막 벗어나 시크한 파리지앵을 마주하니 냉랭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면서 경험적으로 깨달은 사실은, 그 나라의 분위기는 그곳 사람들의 정서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더 쉽게 친구들을 만나고, 따뜻한 마음과 뜨거운 열정을 자연스럽게 품게 된다.

파리는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도시의 느낌이 달랐다. 다시 갔던 20대 중반에도, 30대가 된 뒤에 다녀왔을 때도 그랬다. 사실 파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대로였다. 결국 변한 건 나였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내 삶의 모든 감각이 분명히 20대 때와는 달라졌다. 앞으로도 파리는 계속 새로울 것 같다.

파리 북부에 위치한 생마르탱 운하(Canal Saint Martin). 바쁘고 화려한 파리는 조금 뒤로 넣어두고 싶다. 지금의 나는 이곳이 제일 좋다.

 

고요한 아침의 생마르탱 운하

 

내가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깨달은 게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20대 어느 날 즈음인 것 같다. 그 이후로 10여 년을 홀로 다니고 있다. 화려하고 풍족한 여행보다는, 조금 모자란 것 같아도 로컬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걸어 다니다가 즉흥적으로 계획이 바뀌는 순간들도 좋다.

생마르탱 운하는 이런 나와 잘 맞았다. 세 번째 여행하는 파리였지만 ‘왜 이제 왔을까’ 싶을 정도였다. 운하는 유명 관광 포인트들과 붙어있지 않다. ‘소소한 산책’. 이곳의 느낌을 표현한다면 이만큼 어울리는 말도 없다.  내가 운하를 좋아하는 이유다.

사실 파리에서 소소함을 누리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에펠탑(Eiffel Tower),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 쁘렝땅 백화점(Printemps Department), 바토무슈 유람선(Bateaux-Mouches), 미슐랭 식당 등 화려한 볼거리가 너무 많은 도시 아닌가. 여행도 균형이 필요하다. 풀 메이크업으로 충만한 날이 있으면 기초 로션에 립밤만 바르는 날이 있듯이. 생마르탱 운하는 화려한 파리를 덜어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다.

 

대부분의 가게는 영업 준비 중이었다. 천천히 산책하다 보면 어느샌가 활기를 띠는 거리를 만나게 된다

 

이곳은 아침나절 4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기에 딱 좋다. 아침 식사 후 커피를 마시지 않고, 조금 졸린 채로 나온다면 금상첨화다. 걷다 보면 파리의 아침 기운이 깨워준다. 그렇게 깨어나는 아침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곳의 기운으로 가득 찬 하루를 가질 수 있는 기회이다.

생마르탱 운하에서 파리의 가을 아침을 맘껏 들이켠 뒤 마음에 드는 카페에 갔다. 커피를 마시고 그날 할 일을 계획해 본다. 점심은 어디서 먹을지, 어딜 가서 무엇을 볼지. 무엇을 느끼게 될지. 길게 늘어선 잎이 넓은 가로수 나무들이 운하에 비쳐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이곳은 가을이 딱이겠구나, 싶었다.

 

운하 위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

 

가로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이 오늘 하루를 밝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아침 햇살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게 우리네 일상이다 보니, 여행지에서 겪는 평범하고 소소한 순간들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운하 위의 유람선

 

운 좋게 걷다가 운하를 건너는 유람선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이런 걸 보면 신기하다. 유람선에는 관광객들이 꽤 타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걸 타면 센(Seine) 강까지 넘어가지 싶다. 어른들이랑 같이 파리에 온다면 이 유람선으로 하루를 시작해도 좋겠다. 시내 쪽으로 내려가면서 도시 전체를 둘러보는 코스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심현희님께 있습니다. 텍스트와 이미지 등 콘텐츠의 무단 사용 또는 도용 시 저작권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콘텐츠 사용은 해당 작가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