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그때 그 마을 – 스페인, 올베라

‘저기는 도대체 어떤 마을일까’

 

세테닐을 떠나는 길에 잠시 차를 세우고 경치를 감상했다. 하얀 집들과 줄 맞춰 서 있는 올리브 나무들이 보인다

 

세테닐을 떠나 사하라로 향하는 길이었는데, 저 멀리서 멋진 마을 하나를 발견했다. 마을 꼭대기에 우뚝 선 옛 성채, 두 개의 종탑이 지키고 있는 성당 그리고 그 아래 언덕을 가득 채운 새하얀 집들. 2년 전에도 이 길을 지나치면서 ‘저기는 도대체 어떤 마을일까’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도에서 찾아보니 올베라(Olvera)라는 마을로, 처음 듣는 생소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멀리서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마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우리는 갑작스럽게 목적지를 변경해 올베라로 향했다.

 

마을 꼭대기에 가기 위해 올라가야 하는 오르막길. 마을은 굉장히 한적했다. 어느새 저 멀리서만 바라보던 성당이 눈앞에 가까워졌다

 

드디어 도착한 올베라. 마을로 들어섰는데 눈앞에 오르막이 펼쳐져서 놀랐다. 여기도 제대로 구경하려면 올라가야 하는 구나 싶었다. 먼저 주차를 한 뒤, 성채와 성당을 향해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본 마을 풍경은 굉장히 한적했다. 골목길은 먼저 들렀던 론다나 세테닐처럼 아기자기했다. 특히 벽에 붙여놓은 화분은 언제 봐도 신기하고 예쁘다. 쉬엄쉬엄 주변을 구경하면서 올라가니 어느새 성당이 코앞에 있다.

 

 

올베라 특급 전망대

 

멀리서도 높아 보이던 종탑은 가까이서 보니 훨씬 더 높았다

 

고난이 예상되었던 오르막길. 그 길을 오르고 올라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맑은 하늘과 함께 멀리서만 보던 성당이 나타나자 감탄이 먼저 나왔다. 마침 성당이 높은 곳에 있다 보니, 성당을 둘러싼 광장 전체가 마치 전망대 같았다. 마을을 내려다보기에 딱 좋았다. 성당 앞에는 결혼식을 막 끝낸 신랑 신부와 하객들이 눈에 띄었다. 스페인의 결혼식은 하객들 모두 화려하게 꾸미고 참석하는데, 결혼식을 축제처럼 즐기고 있었다.

 

성당 앞에는 방금 결혼식을 마쳤는지, 잘 빼입은 하객들이 모여있다. 바닥에 흩뿌려진 쌀과 장미꽃잎들이 눈에 띄었다

 

마을 아이들은 성당 앞마당에 흩뿌려진 쌀알과 장미잎을 가지고 놀기 바빴다. 스페인에서는 결혼식을 마친 신랑, 신부에게 쌀을 던진다. 축복과 건강 그리고 다산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말이 ‘뿌린다’는 거지 실제로 보면 ‘던져서 맞춘다’는 느낌에 가깝다. 어찌나 세게 던지는지 모른다.

 

성당 앞마당의 전망대. 옆으로 멀리서 보이던 성채가 눈에 띈다. 이런 장면을 보면 늘 궁금하다. 대체 어떻게 저 위에 지었을까… 세계 올리브 생산 1위 국가답게 저 멀리로는 올리브나무들이 빼곡하게 심어져 있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포도밭 규모도 장난이 아니다. 수확은 다 할 수 있는 걸까? 괜한 걱정이 들기도 한다

 

올베라를 좀 더 본격적으로 보기 위해 성당 입구 쪽으로 향했다. 우리처럼 올베라의 모습을 감상하려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마을 아이들은 쌀알과 장미잎을 가지고 열심히 놀고, 우리는 한편에서 풍경을 감상하며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그날도 역시나 맑은 하늘과 뜨거운 태양이 있었다. 밭들 사이에 있는 집은 더위를 막기 위해 모두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다. 저 나무들은 사이프러스 나무일까? 유난히 흙빛이 눈에 띄는 가을인데, 우뚝 서 있는 나무들만 푸르름을 자랑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름다워 한참 동안 사진을 찍었다. 이제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갈 시간이 됐다. 아까 올라올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새삼 인생도 그렇겠지, 싶다. 올라갈 때도 멋졌지만, 내려갈 때의 풍경도 아주 좋았다. 올라가는 길에 틈틈이 뒤돌아보며 보던 풍경이 내려가면서 눈앞에 펼쳐지니 다른 느낌이었다. 풍경을 즐기며 내려오는 건 금방이었다.

 

골목 사이로 하얀 집들이 보이고, 그 뒤로는 드넓은 올리브밭이 펼쳐져 있다.  저 아치 모양 통로로 들어가면 시청이 있는데, 시청도 소박하다

 

사진 찍고 풍경을 즐기는 동안, 우리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올베라에서 지체했었다. 시간을 확인한 뒤, 원래 목적지였던 사하라(Zahara)로 가기 위해 발길을 재촉했다. 이미 해는 기울고 있었다. 사하라 호수가 가장 예쁠 시간은 지났다는 뜻이다. 그래도 호수의 빛깔은 꼭 보고 싶었다. 서둘러 마을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큰 도로에 접어드려 할 때쯤, 올베라의 전경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안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르게 매력적이다. 갈 길이 바쁜데도 또다시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얀 집들과 그 위에 우뚝 선 성당. 장관이었다. 여유가 있다면 저 성채에 가도 좋았을 것 같다. 더 높아서 성채에서 보는 전망도 더 좋지 않을까…

 

 

사하라의 노을, 그리고 암흑호수..

 

석양이 골목길의 하얀 벽에 아름답게 물들었다

 

올베라와 사하라는 굉장히 가까운 편이다. 하지만 가는 길이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일찌감치 사하라에 도착해서 사하라의 상징인 아름다운 호수를 봤어야 했는데, 도착하니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서서히 지고 있는 태양 빛에 하얀 집들도 주황빛,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식사 후 보러 간 호수는 그냥 까맸다. 낮에 본 사하라 호수의 모습은 이렇다. 아무래도 사하라는 호수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낮에 가는 게 좋다

 

시간이 늦어서 사하라의 명물인 호수를 보러 갔어야 했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우리는 배가 고픈 나머지 호수는 뒤로하고 식사부터 했다. 저녁이라 한산할 거라고 예상했던 사하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있었다. 덕분에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호수에 찾아가니 검디검은 풍경뿐이었다. 사실 호수의 유명세 때문에 조명이라도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명은 그저 호수 앞 건물들만 밝히고 있을 뿐… 결국 이번 사하라 호수는 암흑으로 기억되었다. 사하라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사하라 호수는 해가 쨍하게 뜨는 시간에 가야 한다.

 

의외로 사하라는 밤에도 관광객이 많았다. 항상 호수만 신경 쓰다 보니 뒤에 있던 성당과 절벽을 잘 못 봤는데, 이번에 제대로 감상하게 됐다. 호수만큼 멋진 장면이다

 

론다에서부터 시작해 세테닐과 올베라 그리고 사하라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바쁘고 고된 일정이었지만, 충분히 돌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 스페인의 매력 중 하나는 제아무리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도시라도 각각의 매력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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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대리

투대리

같은 회사 6년 차 대리였던 부부. 과장 안 하는 길을 선택하고, 과장 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비야에서 살고 있어요.

* 블로그 : 2daeri.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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