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요르카에서의 첫날은 두 곳의 해변을 찾았다. 하나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플라야 산타 폰사(Playa Santa Ponsa)라는 곳인데, 유명한 해변답게 주변에는 많은 대형리조트가 있고, 식당, 카페, 기념품점 등 관광객을 위한 시설도 잘 갖추고 있다. 리조트가 많다 보니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많았다. 이곳에서는 넓게 탁 트인 바다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플라야 산타 폰사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물이 굉장히 맑고 깨끗했다. 여기에 스페인의 눈부신 햇빛까지 내리쬐면서 푸른색으로 반짝였다. 아니, 가장 쉽게 갈 수 있다는 바다가 이 정도면, 숨어있는 해변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플라야 산타 폰사를 보면 볼수록 마요르카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었다.
해발 1,445m, 너를 만나러 가는 길
아름다웠던 플라야 산타 폰사를 뒤로하고 우리는 새로운 해변을 찾아 떠났다. 구글 지도 검색을 통해 몇 군데의 해변을 미리 체크해놨는데, 북쪽에 있는 해변 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토렌트 데 파레이스(Torrent de Pareis). 왠지 이름에서부터 예쁠 것 같은 기대감이 생겼다. 그런데 막상 내비게이션에 입력해보니 예상 소요시간이 1시간 30분이나 나왔다. 길어봐야 1시간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는데…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가 싶었는데 팔마 시내를 나와서 보니 그 이유를 알았다.
토렌트 데 파레이스에 가기 위해선 1445m 높이의 푸이그 마요르(Puig Mayor) 산을 넘어야 했다. 이 푸이그 마요르 산은 마요르카는 물론이고 발레아레스 제도에서도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마요르카에 이렇게 높은 산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운전하다 갑자기 나타난 높은 산에 우리는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냥 갈 수 있는 해변이 아니라 큰 산을 하나 넘어야 갈 수 있는 곳이라니… 원래 계획은 쉬엄쉬엄 해변 구경을 하기로 했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일정이 빡빡해졌다. 게다가 산길이어서 도로는 우리나라의 대관령처럼 좁고 구불거렸다. 속도를 낼 수도 없었고 안전을 위해선 운전하는 내내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다행히 가는 길에 펼쳐진 풍경들은 신기하고 예뻐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구불구불 올라가는 길을 지나면서 만든 사람들도 참 대단하고, 이 길을 지나는 운전자들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고가 자주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들 조심스레 운전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바(Bar)가 나타났다. 바에선 간단한 요기 거리와 음료를 팔고 있었다
동굴을 지나 숨어 있던 해변을 만나다
토렌트 데 파레이스는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관리가 잘되고 있었다. 대신, 주차비가 약간 비싼 편이었다. 우리는 좀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2시간 정도 머물렀는데 주차비가 5유로 정도 나왔다. 주차비 외에는 기타 입장료 등은 없었다.
주차하고 5분정도 걸어가니 해변과 레스토랑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먹고 마시는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해변까지 가기 위해서는 좀 더 걸어 들어가야 했다. 레스토랑을 지나오니 예쁜 해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닷가 주변에는 화장실과 샤워실 같은 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었다. 유료이긴 해도 비싼 편은 아니었고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어서 물놀이 하는 사람들이 이용하기 좋을 것 같다.
해변으로 가는 길도 산책로처럼 예쁘게 잘 관리되고 있었다. 꼭 해변까지 가지 않더라도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길이라고 해야 할까. 어린아이들과 같이 온 가족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해변까지 가기 위해서는 동굴을 지나야 했다. 동굴 안에는 조명이 있었는데 환하게 밝은 조명이 아니어서 뭔가 놀이동산에 입장하는 느낌이었다.
두 개의 터널을 지나 드디어 해변에 도착했다. 바다를 둘러싼 암벽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바다가 가장 아름다웠을 시간은 이미 지난 뒤였다. 제때 왔다면 더 좋으련만…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힘들게 왔으니 잘 감상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해변을 돌아볼수록 좀 더 일찍 도착했으면 어땠을까, 미련이 남는다. 예쁘기도 예뻤을 테고, 시간적으로도 훨씬 여유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오늘은 둘러보기만 하기로 했으니 아름다움은 내일로 기약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해변에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는데도 주위로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부러워진다.
아르따(Artà)의 추억, 물따(Multa, 벌금)!
우리는 아르타(Artà)라는 마을에 숙박했다. 위치상으로 여러 곳의 해변을 찾아 움직이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마을 분위기도 좋은 편이었다. 두 곳의 해변을 다녀온 뒤 저녁 늦게 마을에 도착해서 간단하게 둘러보는데, 마을 곳곳이 잘 꾸며져 있어서 첫인상이 아주 좋았다. 마을 한 귀퉁이에 차를 잠시 세우고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마요르카에는 독일이나 영국 사람들이 많이 산다더니 음식도 스페인 같지 않고 두 나라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순찰하는 경찰을 발견하고는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 식사가 먼저였다. 그런데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차로 돌아가니 마요르카 시에서 선물한 ‘벌금 딱지’가 놓여 있었다. 우리가 주차한 곳을 다시 살펴보니 노란색 선이 있었다. 밤이라서 못 봤던 건데… 스페인에서는 파란색 또는 하얀색 선이 있는 곳에서만 주차할 수 있다. 노란색은 ‘주차금지’라는 의미다. 슬프지만 우리는 벌금을 내고 말았다. 주변에는 우리 말고도 딱지를 뗀 차들이 몇몇 있었는데, 괜히 안쓰러워 보였다.
마요르카에서의 첫날, 별일이 다 있었다. 일정이 예상보다 힘들었는지 우리는 모두 떡 실신했다. 힘든 여행이 더 기억에 남고 재밌는 법이지만, 너무 힘들면 그것도 문제다. 앞으로는 좀 더 쉬엄쉬엄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