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스 데 라 프론테라(Arcos de la frontera, 이하 아르코스). 세비야 근처의 작은 소도시로, 아직 유명하지 않지만 곧 유명해질 아름다운 마을이다. 예전에 책에서 보았던 도시였는데, 기억을 더듬어 지브롤터(Gibraltar)를 다녀오면서 함께 들렀다.
큰 도시도 좋지만, 규모가 작은 소도시들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안달루시아 지방에는 멋진 소도시들이 많이 있다. 구글 맵에서 안달루시아의 아무 도시나 찍어봐도 예쁜 도시들이 쏟아진다. 보통 론다 근처에 있는 사하라(Zahara), 세테닐(Setenil) 등이 꼽힌다.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을 자동차로 이동하다 보면 이 지방만의 전형적인 풍경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드넓은 대지에 가끔씩 보이는 풍력발전기, 빽빽하게 심겨 있는 올리브 나무들이다. 늦봄이라면 샛노랗게 펼쳐진 해바라기밭도 볼 수 있는데, 그 아름다운 풍경에 자꾸 가던 길을 멈추게 된다.
아르코스는 해발 185미터의 높게 솟은 절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하얀 집들이 아기자기 모여 있고, 날씨가 아주 덥지 않다면 주요 관광포인트는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아담하다. 높은 절벽에 자리잡고 있는 만큼 마을 곳곳에는 전망 포인트가 하나씩 있어, 낮이건 밤이건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 여기에 고풍스러운 성들은 빼놓을 수 없는 아르코스만의 명물이다.
고난의 운전 길
아르코스의 첫인상은 ‘작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마을 지도를 보니 생각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일방통행 길이 꽤 많았다. 운전이 좀 까다롭겠다 싶어서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주차장으로 가는 도중 아주 충격적인 길을 마주했다. 우리는 ‘진정 이 길뿐인가?’ 싶은 생각에 지도를 다시 한 번 둘러봤지만, 마땅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뒤로 후진하기도 힘든 골목길. 난감했지만 우리는 합심해서 이 길을 지나가기로 했다.
결국 힘겹게 좁은 골목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이럴 수가!, 남는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빈자리가 나오기를 기다려 봤지만 당최 자리가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있던 한 아저씨는 빈자리를 찾아 기웃거리는 우리에게 ‘주말 저녁이라 아마 빈자리 찾기가 어려울 거다’고 충고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듣고 다른 대안을 찾아서, 일단 호텔에 물어보기로 했다.
지브롤터를 들러 아르코스에 들려서 아르코스에 도착한 게 저녁 아홉 시였다. 보통은 주차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던데, 주말 저녁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다시 좁은 골목을 몇 번이나 지나서 호텔에서 소개해준 주차장에 차를 댔는데, 나오는 길에 다시 골목을 지나오니 진이 쭉 빠졌다. 안 그래도 카메라가 망가지면서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는데… 아무튼 저녁 일정은 주변만 간단히 둘러보고 얼른 쉬기로 했다.
아르코스, 동네 한 바퀴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만큼, 선선한 아침 시간을 이용해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아침은 호텔에서 먹을까 했지만, 호텔 바로 앞에 있던 식당이 떠올랐다. 식당에 가니 이미 많은 사람이 식사 중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보통 아침을 매우 가볍게 먹는데, 저녁을 늦은 시간까지 푸짐하게 먹기 때문이다.
아침이라 선선할 줄 알았는데 아침부터 날씨가 정말 더웠다. 마을은 정말 아기자기해서 이쁘고 좋았는데, 이 더위가 문제였다. 세비야에서는 더운 날씨 탓에 낮에는 돌아다니지 않는 게 당연해서, 체감상 세비야보다 훨씬 더운 느낌이었다. 역시 안달루시아 지방은 봄이나 가을이 제철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더위 때문에 사진을 많이 찍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르코스는 예뻤다.
구글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아르코스의 명소
아르코스를 관광하실 때 추천하는 방법은 귀찮더라도 관광안내소에 들러서 마을지도를 꼭 받는 거다. 지금 소개하려는 미라도르 데 아바데스(Mirador de Abades) 전망대는 구글 지도에는 나오지 않고, 관광안내소에서 배포하는 지도에만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몇 군데의 전망대를 가봤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했다. 아마 날씨만 좋았다면 우리는 몇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을 것 같다.
멀리서 보면 더욱 특별해지는 아르코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르코스는 절벽 위에 있는 마을이다. 골목골목을 보는 것도 아름답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올려다보는 모습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쿠엔카(Cuenca)도 그랬지만 어떻게 저런 절벽 위에 마을이 자리 잡았을지, 정말이지 신비로운 일이다.
넉넉한 시골 인심에 감동, 또 감동
아르코스를 떠나기 전, 돌아가는 길에 마땅히 밥 먹을 곳이 없을 것 같아서 동네 식당을 하나 들렀다. 모처럼 휴가를 왔으니 평소에는 잘 안 먹던 메누 델 디아를 시켰다. 가격은 인당 8.5유로. 자리에 앉아 메뉴를 보며 생각하는데 갑자기 샐러드와 빵이 나온다. 그냥 식사하면 기본으로 주는 거란다. 기본 반찬은 처음이었다. ‘이것이 바로 시골 인심인가…’ 우리는 감동하며 각자 먹고 싶은 걸 골라서 주문했다.
주문한 요리가 나오는데 뭔가 심상치 않았다. 보통 메누 델 디아는 애피타이저 역할을 하는 요리와 메인식사 그리고 후식과 음료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첫 번째 요리가 우리 집 프라이팬 만한 그릇에 담겨 나온다. ‘으응?’ 일단 먹기 시작하는데 벌써 배가 불러오는 것 같았다. 다음 요리는 고기였는데, 그것 역시 양이 상당했다.
두 번째 요리를 먹기 시작할 때는 이미 배가 불렀다. 결국 거의 다 먹긴 했지만… 식사를 마치고 다음은 후식을 먹을 차례. 나는 아이스크림을, 김 대리는 멜론을 시켰는데 크기가 어마무시 했다. 이 식당의 주방장이 아르코스의 ‘큰 손’이 아닐까 싶었다. 후하디 후한 시골인심을 진하게 느꼈던, 맛있는 식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