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경험과 훈련으로 완성되는 인내의 예술 – 터키 이스탄불 문화원, 에브루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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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루 체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번 페북에서 맛보기로 소개했던 에브루(Ebru) 체험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에브루는 터키쉬 마블링(Turkish Marbling, 또는 Traditional Turkish Painting Art)으로도 불립니다. 마블링은 물 위에 유성물감을 떨어뜨려 특별한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종이를 덮어서 그림을 묻어나게 하는 미술 기법인데요. 물감을 떨어뜨릴 때 힘의 강약을 조절해 특정한 패턴을 만들거나 뾰족한 도구를 사용해 물 위에 뜬 물감에 그림을 그려 넣으며 아름다움을 추구하죠.

에브루도 우리가 아는 마블링과 거의 유사한 방식인데요.  일반적인 마블링은 추상적인 형태를 표현하는 수준이라면, 에브루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고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블링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에브루의 가장 큰 특징이죠. 자세한 내용은 에브루 기법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알아보겠습니다.

 

벽면에 걸려 있던 에브루 작품들. 사진보다 실제로 보는 게 훨씬 멋집니다

 

본격적인 체험에 앞서 에브루의 기본 도구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키트레(Kitre)

 

사각 틀안에 담긴 키트레와 홍조 가루

 

일종의 캔버스 역할을 하는 키트레는 콩과 나무의 줄기에서 채취한 점성이 있는 수액을 물과 섞어서 만듭니다. 보통 가루 형태를 띈다고 합니다. 문화원에서는 키트레를 우리말로 ‘홍조 가루’라고 설명합니다.

 

 

 

물감

 

액상으로 만들기 전의 염료입니다. 여기에 물과 소기름을 섞으면, 에브루 전용 물감이 탄생!

 

물감은 대부분 자연에서 채취해서 사용합니다. 풀이나, 돌, 흙 등에서 해당하는 색상을 뽑아내는 식이죠. 그러나 색상에 따라 인공적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연에서 채취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죠. 노란색이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물감은 12가지를 기본 색상으로 하지만, 12가지를 적절히 섞어서 원하는 색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한편, 에브루에 사용하기 위해선 가루 형태의 염료를 물과 섞어 액상화시킨 뒤, 다시 소의 기름을 섞어줘야 합니다. 앞서 마블링에 대한 설명에서처럼 물과 기름의 밀도차로 인해 물감이 물에 섞이지 않고 떠 있게 되는 거죠.

물감은 신선도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물감을 만들고 하루나 이틀만 지나도 키트레에 떨어뜨렸을 때 느낌이 달라진다고 할 정도로 민감한 편입니다. 발색 역시 달라질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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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은 상당히 투박하게 생겼습니다

 

에브루용 붓은 투박한 편입니다. 붓대는 물에 닿아도 잘 썩지 않는 장미 나무를, 붓털은 말총을 사용해 만들었습니다. 사실 투박하게 생긴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서예용 붓처럼 붓털로 그리는 용도가 아니라 물감을 묻혀서 ‘터는’ 용도이기 때문입니다. 물감을 많이 머금을 뿐만 아니라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양의 물감을 떨어뜨리기 쉬운 모양으로 디자인됐다고 볼 수 있겠죠. 뒤에도 설명하겠지만, 사실 이 붓을 터는 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에브루의 기본기를 배웁시다

 

강사님의 시범. ‘에브루 참 쉽죠?’

 

체험은 세 단계로 진행됐는데요. 처음에는 붓을 이용한 가장 기초적인 방법을 배웠습니다. 붓을 손가락에 튕기듯 털면서 키트레 위에 고루 물감을 뿌리는 게 목적입니다. 설명과 함께 강사님께서 시범을 보이는데 손가락에 대고 붓을 ‘툭, 툭’ 치니 단번에 키트레 위로 물감이 고르게 뿌려져서, 상당히 쉬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직접 해보니 키트레 위로 물감이 왈칵 쏟아지거나, 키트레뿐만 아니라 주변과 다른 참가자의 키트레까지 튀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그제야 앞서 봤던 강사님의 ‘툭, 툭’이 범상치 않았다는 걸 깨닫습니다.

붓을 털 때는 붓대의 탄성을 이용해 튕기듯이 터는 게 중요하며, 붓이 머금는 물감의 양도 적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붓을 물감에 담그고 나서 붓털의 끝부분만 살짝 짜주는 게 중요합니다. 붓털 중간에 염료가 충분히 남아 있도록 말이죠.

 

평화로운 테이블은 잠시 후 전쟁터로 변합니다

 

적절한 힘으로 붓을 털고 물감의 양을 적당히 조절할 수 있기 위해선, 연습밖에 없겠죠.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양의 물감을 떨어뜨리기 위해선 보통 200장 정도 그려봐야 한다고 합니다. 물감은 보통 3~5가지 정도의 색을 사용하는데, 너무 많은 색을 섞으면 키트레가 온통 기름투성이가 되기 때문에 결과물이 예쁘지도 않고, 종이에 옮겼을 때 건조하기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과유불급인 거죠.

 

키트레에서 종이를 슬며시 꺼내 뒤집으면, 이렇게 뙇!

 

그림이 완성되면 그 위로 흰 종이를 올려줍니다. 각 모서리를 잡고 한쪽으로 흔들림 없이 슬쩍 얹어야 합니다. 특히 모서리 부분은 손가락으로 슬쩍 눌러줘야 종이의 끝까지 염료가 잘 묻어납니다. 종이의 양 모서리를 살짝 눌러서 잡은 뒤 키트레 틀에 긁으며 들어주는 것이 포인트인데요. 종이가 키트레를 너무 많이 머금으면 쉽게 마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체험 당일에는 못 가져갈 수도 있다고 하네요.

 

 

도구를 활용한 패턴 만들기

 

비즈를 사용하기 전 배경을 만들어 줍니다

 

두 번째 단계는 도구를 사용해 일정한 패턴을 만들어내는 테크닉을 배웁니다. 도구로는 송곳처럼 생긴 비즈(Biz)와 나무틀에 여러 개의 비즈가 나무 판에 꽂혀있는 타락(Tarak)이 있습니다. 타락은 터키어로 빗(comb)을 의미하는데, 생김새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즈는 굵기가 다양한데, 굵기에 따라 패턴의 느낌도 달라집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굵은 비즈는 그림을 그리기 보다는 잉크가 떨어졌을 때 지우는 용도로 사용하는데요. 키트레 위에 떨어진 물방울을 굵은 비즈로 눌러줘서 아래서 가라앉히는 것이죠.

 

스윽 스윽 비즈를 왔다 갔다 했더니, 멋진 패턴이 뙇!

 

비즈를 사용하는 순서는 키트레에 염료를 뿌린 다음입니다. 먼저 키트레의 각 모서리를 한 번 훑어서 염료를 정리해준 다음, 구획을 나눠 ‘S’자 등을 일정하게 그립니다. 그러면 비즈의 움직임에 따라 키트레 위에 있던 염료들이 묘한 패턴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안에서 밖으로, 또는 밖에서 안으로 움직일 때마다 염료의 퍼짐이 달라지는데, 이를 활용해 다양한 형태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비즈를 사용할 때는 한 획을 긋고 다음 획을 긋기 전, 비즈에 묻은 염료를 잘 닦아주는 게 중요합니다. 자칫 색이 섞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빗질… 아니 타락을 사용한 에브루 작품을 보여주시는 강사님

 

비즈가 엇갈려 박혀 있는 타락을 이용해 좌우로 움직여 만든 우아한 모양(패턴)

 

타락은 비즈가 나란히 박히기도 하고, ‘W’처럼 특정한 형태로 박히기도 합니다. 박혀 있는 형태에 따라 그릴 수 있는 패턴도 달라지죠. 키트레 판에 끼우는 식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고, 패턴도 일정하죠. 아름다운 배경을 상당히 효율적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특히 비즈의 간격을 이용하면 특별한 모양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에브루의 꽃, 그림 그리기

 

파란색 물감 통에 2번이라고 표시된 게 보이시나요? 농도가 다른 두 물감이 만들어내는 패턴을 확인하세요

 

마지막은 앞선 내용을 모두 응용하는 단계로, 그림을 그려넣는 과정이었습니다. 숙련도에 따라 굉장히 정교하게 표현할 수도 있지만, 체험 수준이었기 때문에 하트와 나뭇잎 같은 간단한 형태를 시도했습니다.

세밀한 그림을 그려넣기 위해서는 키트레와 염료의 농도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물과 기름의 비율에 따라 퍼짐이나 뭉친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인데요. 이를 테면 큼직한 패턴을 표현할 때는 사용하는 색에 따라 기름의 농도가 달라지는 거죠.

체험에는 4개의 키트레를 사용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는 배합 비율이 조정된 하나의 키트레만 사용했습니다. 염료 역시 미리 세팅해놓은 흰색,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을 사용했는데, 그중 파란색은 농도가 다른 두 종류를 사용했습니다.

 

커다란 무늬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배경을 만드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붓에 파란색 염료를 묻히고 붓을 털면서 염료를 고루 뿌려줍니다. 그 위로 다른 농도의 파란색을 뿌려주니, 매우 큰 무늬가 떠오릅니다.

 

멋진 튤립이 그려졌습니다

 

그런 다음 비즈를 이용해 초록색 염료를 찍어 키트레 위로 살짝 찍으니 동그란 원이 그려집니다. 색이 연하거나 좀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땐 이 동작을 2~3회 반복합니다. 몇 가지 색을 겹쳐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어서 빨간색과 흰색 원을 그려줍니다. 그런 다음 비즈를 사용해 원의 가운데를 그어주니 하트가 되고, 안에서 밖으로 그어주니 튤립의 꽃잎이 생깁니다. 초록색 염료를 떨어뜨리고 비즈를 움직이니 이파리를 만들어집니다. 색 조합이 꼭 수박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비즈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라테아트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라테아트 테크닉 중에는 시럽 등을 뿌린 뒤에 뾰족한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에칭(Etching)’ 기법이 있거든요. 그러고 보면 두 가지 이상의 다른 특성을 가진 액체를 섞어서 모양을 만든다는 개념도 비슷하군요.

 

또 다른 패턴을 그려봅시다

 

 

 

오랜 훈련과 경험으로 완성되는 인내의 예술

 

바로 이 영상입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은 클릭하세요!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공유했던 Garip Ay의 에브루 영상을 보셨나요? 그냥 봐도 신기한 영상이지만, 직접 에브루를 체험하고 나면 그 영상이 얼마나 대단한 작업의 결과인지 크게 와 닿을 거라 생각합니다. 키트레에 염료를 떨어뜨리거나, 비즈를 이용해 획을 긋는 일도 상당히 어렵지만, 사실 키트레와 염료의 배합 비율은 에브루의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에브루는 도제식으로 교육이 이뤄지는데, 오랜 시간 옆에서 스승의 작업을 도우며 이 배합 비율에 대한 노하우를 배운다고 합니다.

 

몇 년 만에 보는 차이 잔이던지, 상당히 반가웠습니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길 정도로 참가자 모두가 에브루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그림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면서 차이(Cay)와 다과도 나눴습니다. 터키에 대한 추억과 에브루에 대한 소감을 나누면서 즐겁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터키 이스탄불 문화원에서는 에브루를 정규과정으로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에브루의 기초부터 어느 정도 능숙하게 그림을 그려 넣는 수준까지를 목표로, 수업은 16주 정도로 예상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공지될 예정이라니, 관심 있으신 분은 눈여겨보시길 바랍니다.

 

긴 시간 수고해주신 두 분의 강사님께 박수를!(남자 강사님은 우리말을 엄청 잘하십니다)

 

 

 

터키 이스탄불 문화원 페이스북 페이지 : www.facebook.com/koreatul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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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자의 운영자. 얼마 전 육아의 늪에 빠져든 이후 당분간 여행은 포기했다. 해묵은 여행 사진을 뒤적이거나 남의 여행기를 탐하고 있다. 기고는 언제나 대환영! contents@travelwri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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