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의 집 – 터키, 산르우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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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bzon

 

길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케밥 트럭, 우리는 케밥을 보며 보통 터키를 떠올린다. 물론 케밥이 터키에만 있는 음식은 아니다. 다른 중동지역에도 비슷한 형태의 수많은 케밥이 존재한다. 그리스의 유명한 수블라끼(Souvlaki) 역시 거의 케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케밥을 파는 사람 중에는 터키 사람이 많고, 또 트럭에도 곧잘 터키 국기를 그려놓지 않는가. 케밥과 터키를 함께 묶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 역시 이 케밥 트럭을 볼 때마다 터키가 떠오른다. 조금 오래된 터키 여행의 기억.

내 기억 속 터키인들은 참 따뜻했다. 특히 동부 지역의 사람들은 서부 지역 보다 더 살뜰했다. 두 지역의 성격은 상당히 다르다. 일단 서부 지역은 지중해를 끼고 있어 휴양지 성격이 강하다. 해양 스포츠를 비롯한 다양한 액티비티가 가능해 유럽인을 비롯한 다른 외국인들의 유입이 많은 편이다. 손님맞이가 중요한 만큼 각종 편의시설이나 안내 등이 잘 마련돼 있다. 덕분에 여행이 편해지긴 하지만 그만큼 터키 본래의 색은 옅어질 수밖에 없다. 이 지역 터키인들도 분명 친절하기는 하다. 다만 비즈니스를 염두 한, 계산된 친절이라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다. 뭔가 개운치 않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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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tafa 아저씨의 가족. 두리번거리던 여행자에게 공원에 가서 차이를 한잔 하자고 손 내밀어 줬다. 일본과 무역을 한다는 아저씨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헤어질 때는 작은 쪽지에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주며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 달라고 했다. @Erzurum

 

동부 지역은 서부에 비한다면 훨씬 정적이고 대중적이지도 않다. 유명 관광지들은 대부분 유적지 성격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따분한 곳이 될 수도 있다. 수멜라(Sumela) 수도원이나, 아니(Ani) 유적, 넴룻(Nemrut) 산처럼 특별한 자연환경이나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하는 유적지도 있긴 하지만  바닷가에서 즐기는 휴양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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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행자에게 기꺼이 멋진 노래를 선물해줬던 청년들@Trabzon

 

이런 지역적 특성 때문에 동부 지역은 여행자가 많은 편이 아니다. 그래서 어딜 가나 타국의 여행자는 이방인으로 분명하게 구분된다. 이방인이라고 해서 터키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거나 배척받는 일은 없다. 오히려 그들은 타국의 여행자를 신기해하면서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길 한복판에서 가이드북을 들고 두리번거리면 어느새 주위로 온갖 사람들이 다가와 어딜 가냐고 묻는다. 차이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칠 때면 어김없이 불러 세워 차이를 권한다. 차이는 한 잔에서 끝나는 법이 없다. 두 잔, 석 잔을 연거푸 마시고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다. 계산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주 기분 좋은 친절이다. 여행자들을 자기의 삶에 찾아온 손님처럼 여기며 기꺼이 친절을 베푼다.

 

1)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반가워하면서 커피를 선물해 줬던 아저씨 @Erzurum
2) Van 중심가에 있던 옷가게를 지날 때 나에게 말을 걸었던 청년. 외국인과의 대화, 특히 영어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대화는 쉽지 않았지만 그의 순수함에 반해 머무는 동안 두 번이나 들러서 함께 차이를 나눴다.  @Van
3) ‘악다마르섬(Akdamar)’과 ‘반 고양이 집(Van kedesi evi)’에 갈 때 만났던 어린 버스 차장. 반 고양이 집을 갈 때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만났던 사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사람들이 믿지 않아서 억울해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 사진을 보여줬고, 소년 차장은 ‘거 봐’라는 표정으로 금방 의기양양해졌다. @Van 

 

그들은 내가 외국인인 걸 알면서도 아주 당연하게 터키어로 쉴 새 없이 말했다.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에 따르라’처럼 처음엔 다소 거만하게 느껴졌지만, 정성껏 나를 대해주는 그들의 마음을 안 뒤에는 전혀 대수롭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는 동안 터키 말이 귀에 익어 여행이 끝나갈 무렵엔 몇 개의 단어만으로 대화 아닌 대화도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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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야르바크르(Diyarbakır)에는 아르메니아 정교회에서 운영 중인 교회가 있다. 교회의 터를 둘러보는 데 어느새 세 명의 꼬마가 나타나더니 나에게 가이드를 해줬다. 특히 가운데 있는 꼬마는 몇 개의 영어 단어를 섞어가며 센스 있게 설명해줬다. 고마운 마음에 나는 꼬마에게 악수를 청했다. @Diyarbakır

 

나는 여행하는 내내 어느 나라의 여행자보다 큰 대접을 받았다. 얼굴이 잘생겨서도 아니고, 돈을 많이 써서도 아니다. 그저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이었다. ‘어디서 왔냐’라는 질문은 늘 대화의 시작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면 으레 북이냐, 남이냐를 묻는다. 익숙하게 ‘규네이 코레(Güney Kore, 남한)’라고 대답하면 그들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두 손으로 검지를 맞대어 비빈다. 처음엔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이내 그 행동이 한국과 터키는 친구 또는 형제라는 의미를 설명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의 내가 받은 친절은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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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시선으로 여행자를 맞아줬던 빵집 사람들 @Diyarbakır  

 

시골의 촌부(실제로 그렇진 않지만 분위기가)조차 한국을 알아듣고 형제라 부르며 각별하게 대해줬다. 동부 지역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그들의 반응도, 친절도 늘 같았다. 그에 비해 나는 터키라는 나라에 상당히 무지했다. 나에게 터키는 그저 ‘케밥의 나라’였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친절과 환대를 마주할 때면 고마웠고 또 부끄러웠다. 내가 터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된 건, 어쩌면 그들의 친절에 빚진 마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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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파 성(Urfa Kalesi) @Şanlıurfa  

 

터키 동남부 지역에 있는 산르우르파(Şanlıurfa)에서는 꽤 특별한 경험을 했다. 나에게 다가와 준 터키사람들 덕분이다. 트라브존(Trabzon)에서 시작해 다섯 번째로 들렀던 산르우르파는 외국인(관광객)을 유난히 보기 힘든 도시였다. 아브라함에 얽힌 동굴처럼 유명한 스팟들이 있긴 했지만 주로 내국인들이 많이 찾는 분위기였다. 일종의 성지순례 같은 성격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덕분에 나는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존재였다. 그들은 나를 볼 때마다 그냥 두질 않았다. 길을 지나가다 갑자기 눈앞에 카메라가 나타나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들은 함께 셀카를 찍자고 하면서 길가에 있던 다른 사람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우르파 성에서 만난 어린 친구들.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Şanlıurfa  

 

숙소에서 나와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중심가 정도에 이르렀을 때였다. 어느 가게 앞에 꽤 불량한 자세로 앉아 있던 5-6명의 청년이 나를 보며 아는 척 했다.  여행 초기였지만 그들의 질문은 늘 같았기 때문에 나는 익숙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사진을 함께 찍자는데, 사실 나는 그때 그들의 껄렁한 분위기를 내심 경계하고 있었다. 사진 찍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 빨리 찍고 이동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나에게 뭔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자신감 넘치게 설명했지만, 그들의 터키어를 내가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한참을 설명해도 내가 못 알아들으니 나중엔 따라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의 행색은 그리 좋진 않았지만 분명한 여행자였다. 여행자만큼 돈을 들고 있다는 확실한 보증이 또 있겠는가. 게다가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고, 가방엔 또 다른 카메라가 있었다. 그들의 첫인상 때문이었는지, 그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기엔 뭔가 께름칙하였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연신 빨리 따라오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채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음 한쪽에서는 호기심이 스멀스멀 일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뛰어서 도망가면 되지 않겠냐’는 이상한 용기와 함께.

결국 나는 그들을 따라나섰다. 그들은 시장통으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점점 깊숙이 들어갔다. 어느 정도 걸어 들어가니 시장에서 이어지는 2-3층 규모의 건물 앞에 다다랐다. 여긴 어딘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는데, 인적은 거의 없었고 햇빛도 잘 들지 않아 어둡기까지 했다. 나는 몸이 쭈뼛했다. 진짜 도망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까 봐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호기심도 만만치 않았고, 다시 발걸음을 돌리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왔다.

계단을 따라서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엔 오래된 다방처럼 보이는 공간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여기저기에서 지독한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고 한쪽에선 남자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차이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었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 결과 일단 위험한 곳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경계가 약간 수그러졌다. 그들 중 한 명은 주인과 꽤 친한 사이처럼 보였다. 한참을 떠들더니 차이를 주문했는데, 내 것까지 시켰다. 차이를 마시며 알 수 없는 그들의 터키어와 손짓 발짓으로 잠시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화는 쉽지 않았다. 차이를 다 마실 때 즈음,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카페 안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여전히 나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 계단은 옥상으로 이어졌다. 나가는 문 옆에서 큰 새 장이 있었는데, 안에서는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비둘기였다. 그런데 생김새가 달랐다. 비둘기는 마치 나팔바지를 입은 것처럼, 다리 끝까지 아주 풍성한 깃털이 자라 있었다. 옆에 있는 다른 비둘기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알던 수수한 비둘기는 한 마리도 없었다. 모두 색이나 깃털의 모양, 무늬가 제각각이었고, 색도 화려했다.

 

도시 곳곳에 비둘기들이 앉아 있었다  

 

내가 옥상으로 나갔더니 어디선가 ‘찰랑찰랑’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소리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니 한 친구가 허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라 설명했다. 하지만 내가 도통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어 하니, 다시 한 친구가 바닥에 모이를 뿌렸다. 잠시 후 먹이를 보고 비둘기들이 하나둘씩 모이는데, 그제야 소리의 정체를 알았다. 비둘기의 다리에 누군가 방울을 매단 것이었다. 그래서 비둘기들이 움직일 때마다 방울 소리가 들린 것이다. 비둘기들이 떼를 지어 하늘을 비행할 때면 영화 속 산타 썰매가 날아갈 때 들리던 꼭 그 소리 같았다. 그들의 비행에 따라 찰랑거리는 방울 소리는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비둘기들은 생김새가 제각각이다. 비둘기 다리에는 작은 방울이 달려 있었다

 

비둘기 떼가 비행을 시작하자 방울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아, 이걸 보여주고 싶었구나!’

그제야 이 불량 청년들의 저의를 깨달았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들은 비둘기의 비행을 보며 신기해하는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아까 그들처럼 엄지를 치켜들며 연달아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갔던 곳은 ‘비둘기의 집’이라 불리는 일종의 비둘기 카페였다. 터키 사람들은 애완 비둘기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모습의 비둘기일수록 그 가치가 높아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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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지만 이들은 모두 20대 초중반에 불과(?)하다. 한참 동생들이었다. 미안하게도 가운데 있는 친구의 이름만 기억난다. 미드에서 한 번 본 것 같은 얼굴의 Suleyman 

 

옥상에서 다시 한 번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더는 불량한 그들이 아니었다. 외국인에게 기꺼이 마을의 명물을 보여줄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씨를 가진, 건실한 청년들이었다. 그들의 환한 미소에 미안하고 고마워졌다. 차이값을 내려고 하니 단호하게 됐다고 한다. 아, 나는 다시 한 번 부끄러워졌다. 헤어지면서 그들은 나의 즐거운 여행을 기원했다.

이 만남은 여행 초기, 나의 긴장과 경계를 무너뜨린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물론 그 이후로 같은 터키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물건을 도둑맞으면서 얼굴 붉힐 일도 많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터키라는 나라가 내 마음에 성큼 다가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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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자의 운영자. 얼마 전 육아의 늪에 빠져든 이후 당분간 여행은 포기했다. 해묵은 여행 사진을 뒤적이거나 남의 여행기를 탐하고 있다. 기고는 언제나 대환영! contents@travelwri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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