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가 오늘을 살아가는 곳 – 이탈리아, 볼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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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볼로냐

 

볼로냐, 아마도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볼로냐 스파게티를 떠올릴 것이다. 기억을 좀 더 짜낸다면 희미하게 이탈리아의 어느 도시였다는 걸 떠올리겠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다. 피렌체나 밀라노 같은 도시에 비하면 우리는 볼로냐에 대해 거의 모른다고 해야겠다. 이러한 무지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볼로냐라는 도시를 알고는 있지만 대부분 당일치기에 적합한 ‘소도시’ 정도로만 여긴다. 심지어 어떤 여행 가이드북에서는 아예 볼로냐를 다루지 않을 정도로 낯선 곳이다. 볼로냐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통탄할 일이다. 볼로냐는 작지만 거대한 도시이다. ‘학문의 도시’, ‘미식의 도시’, ‘탑의 도시’처럼 볼로냐를 설명하는 수식어만 해도 다양하다. 그만큼 매력이 넘치는 곳이라는 뜻이다.

 

볼로냐의 일상

 

볼로냐가 다양한 수식을 갖게 된 배경에는 피렌체와 밀라노, 토리노 등과 함께 중세 이탈리아 시대 때 가장 부강한 도시 중 하나였다는 것에 있다. 풍족한 재정을 바탕으로 학문과 예술의 중심이 된 것이다. 특히 볼로냐는 세계 최초로 대학이 설립된 것으로 유명한데, ‘학문의 도시’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볼로냐 대학의 교훈인 ‘Alma Mater Studiorum’는 ‘모든 학문이 퍼져나간 곳’이란 뜻으로,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 시작되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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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을 가득 메운 붉은 지붕의 가옥과 수십 개의 높은 탑은 볼로냐의 상징이기도 하다. 12세기 당시, 볼로냐에는 100~180개의 탑이 있었다. 세력이 큰 집안들은 자신의 부를 과시하려 저마다 탑을 높게 쌓았고, 이제는 그 일부만이 남아 찬란했던 과거를 증명한다.”

 

최초의 대학이 생기면서 도시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다. 볼로냐의 거의 모든 건축물에는 회랑이 존재하는데, 이 회랑이 가장 대표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회랑은 기둥과 지붕으로 이뤄진 복도 공간을 뜻하며 포티코(Portico)라고 불린다. 총 길이가 37km에 달하는 볼로냐의 거대한 회랑은 일정한 단계를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회랑은 볼로냐 사람들이 문화를 공유하는 공공의 공간이다. 도시를 사랑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건물과 인도가 하나되는 회랑에서 일상을 공유한다.”  

 

대학이 설립되면서 볼로냐에는 학문을 닦기 위해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도시는 이들을 감당하기 위해 집의 크기를 늘려야만 했는데, 1층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위에 층을 늘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때 하중을 버텨내기 위해 확장한 부분에는 받침대를 세웠는데, 이 받침대가 점차 견고해지면서 거대한 기둥으로 발전했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포르티치 호텔에서 바라본 중심가 풍경. 낯선 곳이지만 정겹움과 따스함이 느껴진다.”  

 

이 회랑 덕분에 볼로냐의 생활은 더욱 풍성해졌다. 회랑의 공간은 노천카페로 사용되기도 하고, 잡화상들이 물건을 팔기도 한다. 박람회 기간에는 훌륭한 야외 전시 공간이 되기도 하지만, 꼭 어느 때가 아니더라도 회랑에는 볼거리가 가득하다. 건물과 인도가 하나 되어, 볼로냐 사람들이 문화를 공유하는 훌륭한 공공의 공간이 된다. 커다란 처마 역할을 하는 회랑 덕분에 비가 오더라도 우산이 필요 없다는 건 덤이다. 이 회랑만으로도 이탈리아 여행에서 볼로냐는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고흐의 그림 <밤의 카페 테라스>가 연상되는 볼로냐의 밤. 이래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갈색과 파란색의 완벽한 조화를 연출해내는가 보다.”

 

회랑은 수백 여 년의 시간을 넘어 볼로냐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사실 회랑만 그런 것이 아니다. 볼로냐의 곳곳에 있는 오랜 과거의 흔적 역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오래된 것의 가치를 알고 소중히 보존하려는 이탈리아 특유의 철학 때문이기도 하지만, 볼로냐는 여느 도시보다 더욱 적극적이었고,  결국 이러한 노력은 볼로냐를 ‘도시 재생’의 성공적인 사례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서울시를 비롯한 세계 여러 지자체의 관계자들이 볼로냐를 방문해 그 과정을 배운 바 있다.

 

“보존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 볼로냐 시내에 있는 포르티치(Portici Hotel)이다.  오래된 건물의 터를 그대로 살려 와인 저장소를 만들었다.”

 

사실 볼로냐가 처음부터 이러한 행보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볼로냐 역시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환경의 변화 속에서 적잖은 진통을 겪었다. 그 진통은 1970년대 성곽 밖으로 도시 주민들의 생활권이 팽창하면서 시작됐다. 오랫동안 성곽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볼로냐였지만, 이제는 성곽 밖에 주거지가 생겨났고 다시 그 주거지 주변으로 공장지대가 형성됐다.

 

볼로냐의 골목 풍경 

 

자연스럽게 도시의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외곽으로 빠져나갔고, 생활의 중심지였던 도심지에는 황량한 골목이 늘어났다. 이러한 현상이 점차 심해지자 볼로냐의 주민들은 활력 잃은 텅 빈 도시를 살려야 한다는 의식이 커졌고, 그 방법으로 골목에 있는 작은 공방들이 되살아나야 도시 전체를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것이 바로 ‘볼로냐 2000 프로젝트’의 시작점이다.

 

마조레 광장(Maggiore Square)은 지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볼로냐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광장 주위로 포데스타 궁전(Podestà Palace), 성 페트로니오 성당(S. Petronio Church), 시청사, 시립 도서관 등 주요 건물들이 모여 있다. 광장 중심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넵튠의 분수’가 있는데, 볼로냐 시민들에겐 약속 장소로 유명하다.  

 

‘볼로냐 2000 프로젝트’는 볼로냐를 창조적인 문화 도시로 만들기 위해 계획했다. 도심에 자리한 커다란 역사적 건축물을 복원하고 활용하는 방안을 세세하게 수립했는데,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과거의 낡은 건물을 허물지 않으면서 현재의 생활 환경에 맞게 현대적으로 바꿔나가는 것이었다. 그 결과 90년 된 빵 공장은 미술관이 되었고, 옛 주식거래소는 도서관으로, 귀족들의 저택은 대규모 이벤트가 열리거나 회의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역사적 건물들은 도시의 새로운 요구에 따라 현대의 삶에 맞게 변화되었다. 이렇게 재탄생한 공간들은 도시 전체의 활력을 되찾는 발판이 되었고, 결국 세계적인 ‘도시 재생’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볼로냐를 만들었다.

 

“마조레 광장 중심에 위치한 볼로냐의 시립 도서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이곳은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예전에는 주식거래소였던 이 역사적인 건물은 시민 모두가 이용하는 편안한 휴식처이자 근사한 도서관으로 거듭났다.” 

 

이 과정에서 주축이 된 것은 시민이었다. 장인 공동체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동조합을 결성해 재생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작게는 건물의 간판을 고치는 일에서 도로를 넓히는 것, 지하철을 놓는 것까지 도시의 모든 디자인을 결정할 때마다 오랜 논의를 거쳐 결정했다. 그들에게 도시 발전이란, 단순히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 줄 새로운 유산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는 과정이다.

 

유명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마리오 벨리니(Mario Belini) 가 새롭게 디자인한 볼로냐 역사박물관(Museum of the history of Bologna). 이 공간에 들어서면 신비로운 음악이 감돌며 벽면 가득 볼로냐의 역사를 알려주는 영상이 나온다. 바닥에서는 비 오는 날 웅덩이에 고인 물처럼 한 발짝 옮길 때마다 첨벙첨벙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더 자극한다. 마리오 벨리니는 앞뒤의 벽면에 거울을 설치하여 볼로냐의 상징인 회랑이 길게 이어져 있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공간을 디자인하였다.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보존과 혁신, 신구의 조화를 꾀하며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 ‘문화 선진국’의 면모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책 표지

본 콘텐츠는 ‘이탈리아 디자인 산책(나무[수] 출판사)’의 저자인 임종애 작가님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콘텐츠의 본문은 ‘이탈리아 디자인 산책 – 오래된 것의 가치’ 꼭지를 참고했으며, 모든 이미지는 작가님께서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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