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녹색의 땅 – 카파도키아, 으흘랄라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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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카파도키아는 각종 액티비티와 다양한 투어 코스로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그린 투어는 열기구와 함께 손꼽히는 인기 투어다.  그린 투어의 주요 스폿은 지하도시인 데린쿠유(Derinkuyu)와 으흘랄라 계곡(Ihlara Valley), 셀리메 성당(Selime Katedralı)이다. 이 세 곳은 카파도키아의 주요 숙박지인 괴레메(Göreme )에서는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투어는 보통 반나절 이상 걸리는데, 일정이 짧은 사람들은 그린 투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일몰을 감상하는 로즈밸리 투어와 묶어서 신청하기도 한다.

 

로즈밸리 투어(Rose Valley 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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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투어의 메인 코스는 단연 으흘라라 계곡이다. 투어의 타이틀인 ‘그린’ 도 바로 으흘라라 계곡을 빽빽하게 채운 녹색 풍경에서 따왔다.  이 코스는 100여 미터 아래 있는 계곡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 일종의 하이킹이라고 할 수 있다. 투어 중 가장 넓고 길면서, 환한 코스이다.

외계의 어느 혹성을 연상시키는 특이한 암석지대로 유명한 카파도키아지만, 으흘랄라 계곡의 바위들은 모양새가 좀 다른 편이다.  선이 굵은 커다란 암석 덩어리의 모습에서 단단한 남성미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혹자는 그 모양새를 보면서 터키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랜드’가 붙을 만큼 스케일이 큰 편은 아니다.

암석의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계곡을 따라 작은 냇물이 흐르고 있어 계곡 주변으로 다양하고 풍성한 식생 또한 특별하다. 다소 메마른 느낌을 주는 카파도키아의 풍경에서는 좀체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트레킹을 하는 동안 수분기 가득한 숲 속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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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묘한 모양을 한 바위들을 보며 같은 특정 동물을 떠올리는 건 어느 나라나 비슷한가 보다. 가이드는 중간중간 몇몇 바위를 가리키며 ‘호랑이 바위’니 ‘코끼리 바위’ 라고 설명한다. 사실 이 계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한다면, 동굴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으흘라라 계곡은 총길이가 16km 정도 되는데, 계곡을 따라 수 백개의 교회가  이어져 있다. 동굴 교회의 벽면에는 정교한 프레스코화들이 그려져 있었으나 아쉽게도 종교 분쟁으로 인해 대부분 훼손돼 있다.

카파도키아는 종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지역이다. 지역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관광지가 종교인(그리스도교)들의 흔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린투어의 코스 중 하나인 데린쿠유 역시 탄압과 박해를 피해 도망쳤던 그들이 만들어 놓은 대표적인 지하도시다. 무른 성질의 응회암은 쉽게 부서져 파내기가 용이했는데, 사람들이 바위를 파내고 그곳에서 생활했던 것이다. 바위를 파냈다고 하니 단순한 형태를 떠올릴 수 있지만 ‘도시’라고 불릴 만큼 그 규모는 방대하고 정교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평생을 지하도시에서 보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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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은 상당히 긴 편이지만, 투어에서는 일정을 고려해 모든 코스를 걷지 않는다. 길은 평탄한 길과 험한 길이 고루 존재한다. 만약 트레킹을 좋아한다면 전체 코스를 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땀이 날 때면 시원한 냇물에 발도 담그면서, 여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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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기 때문에 일정상 으흘랄라 계곡에서 점심을 맞게 된다. 투어에는 식사가 포함돼 있는데  계곡 중간 정도에 자리한 식당에서 제공된다. 제법 걷고난 뒤였기 때문에 맛있는 식사를 기대했지만, 음식은 그다지 맛있는 편이 아니었다. 실망스럽기까지 했는데, 내 입맛이 까다로워서가 아니다. 계곡 식당의 음식이 맛없다는 증언은 여러 블로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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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 주위로 다양한 식생이 서식하고 있다. 사방이 녹색으로 둘러싸여 있어 눈이 편안해진다.  식사는 다소 아쉬웠지만 계곡의 멋진 풍경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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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살이 제법 빠른 곳에서 한 터키인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낚시 도구로는 통발 비스무리한 것을 사용했는데, 시골 냇가에서 보던 익숙한 광경이었다. 내가 관심을 가지자 그는 잡았던 물고기 한 마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자랑했다. 재밌게도 그는 낚시를 할 만한 복장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진짜 낚시꾼처럼 손놀림이 굉장히 능숙했다. 청바지와 흰 셔츠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의 정체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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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투어를 하기 전에 나는 이미 숙소에서 같이 묵었던 사람들끼리 괴레메에서 우치히사르( Uçhisar)까지 걸어서 갔던 경험이 있었다. 가는 길은 제법 험했고 목적지까지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일종의 트레킹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카파도키아의 특별했던 풍경도 어느새 익숙해진 상태였다. 이미 봤던 풍경의 반복이 될 것 같아서 으흘라라 계곡에 대한 기대감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데린쿠유에 더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가이드를 따라 걸어 들어간 계곡은 그전에 걸었던 길의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길을 따라가면 갈수록 녹색은 풍성해졌고 눈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마음도 여유로워졌다.

여행기간이 한 달 이상 되는 장기여행은 처음이었다. 그전까지는 늘 시간에 쫓기는 여행이 전부였다.  시간이 아까워서 부지런히 돌아다녔지만 늘 아쉬움이 남았다. 이런 습성은 터키 여행까지 이어졌다.  하나라도 더 많은 걸 보기 위해 부지런히, 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였다. 온몸이 뻐근해질 때까지 돌아다니는 게 멋진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해서 남았고, 매일 이어지는 강행군 속에 몸은 지쳐갔다. 가끔은 ‘내가 왜 여행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한가롭게 쉰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늘 마음 한켠에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짓누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느긋하게 여행하는 법을 몰랐던 게다.

그런데 으흘랄라 계곡에서 전혀 기대치 않았던 여유를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숨 가쁘게 둘러보지 않아도  만족스러웠고 즐거웠다. 스스로에게 ‘터키의 모든 것을 보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이야기했는지 모른다.  그때부터 먼저 세웠던 여행 계획에서 자유로워졌다. 뻔한 여행 스폿을 답습하기보다, 여행을 다니며 만났던 다른 여행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생생한 그들의 소감을 들으며 마음이 가는 곳을 향했다. 온전한 여행의 주체자로서, 여행을 즐기는 법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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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자의 운영자. 얼마 전 육아의 늪에 빠져든 이후 당분간 여행은 포기했다. 해묵은 여행 사진을 뒤적이거나 남의 여행기를 탐하고 있다. 기고는 언제나 대환영! contents@travelwri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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