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는 처음이었다 #5 – 대만, 타이베이

먹방,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버스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벌써 마지막 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잘 수는 없었다. 잠은 내일 집에 가서도 잘 수 있으니. 동생과 함께 밤거리를 나가기로 했다. 대만은 발 마사지가 저렴하기로 유명하다. 블로그와 각종 채널을 통해 알아놓은 유명한 마사지 숍들이 보였지만, 우리의 주머니 사정은 마사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내일 면세점에서 고량주를 사야했다.

 

난다. 맛있는 냄새가. 고수의 냄새가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풍겨서 따라갔다. 그곳에는 꼬치구이가 있는 게 아닌가? 밤 10시 30분에 가장 맛있다는 그것이었다. 손님이 원하는 고기를 선택하면 아저씨가 구워주는데, 이 아저씨는 딱 봐도 정말 잘 구울 것 같이 생겼다. 간판을 보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였다.

‘이건 분명 맛있다’라는 확신이 머리에서 스쳐 갔다. 이미 동생은 아저씨의 꼬치구이에 빠져들어 눈을 떼지 못했다. 강한 믿음 앞에 우리는 내일 쓸 돈만 빼고 모든 돈을 탈탈 털어 꼬치 5개를 샀다. 편의점에 들러 이지카드에 충전해둔 돈으로 맥주도 두 캔 샀다.

 

맥주와 꼬치의 조합. 말 그대로 순.삭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로비에서 먹었다. 꼬치는 5개 모두 다른 종류였는데, 식감도 제각각이었다. 우리는 ‘맛있다’를 연발했다. 5개는 금방이었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희한하게 대만에서 먹는 음식은 금세 사라진다.

 

대만여행 두번째 우육면 가게 융캉우육면(永康牛肉麵). 내 기준에서 양밥과 우육면 모두 별로였다. 다행히 우육면은 동생 입맛에 잘 맞는 편이었다. 충격적인 맛 때문에 맥주만 들이켰다

 

꼬치 5개를 순식간에 해치운 우리는 너무 아쉬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만 원어치 정도가 아쉬웠다. 그때 한 청년이 내려와 로비 테이블에 앉았다. 한국 사람이었다.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의 계좌로 한국 돈을 보내주고 대만 돈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는 우리 제안을 받아줬다. 혼자 여행 중이라는데 내일부터는 아래지방으로 떠난다고 했다. 혹시나 우리 때문에 경비가 부족해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그가 지갑을 열었을 때 쓸데없는 걱정이란 것을 알았다.

 

우리의 간절함은 그렇게 하늘에 닿았다. 다시 만난 꼬치들

 

우리는 다시 ‘정말 맛있는 꼬치집’으로 향했다. 혹시나 닫으면 어쩌나 싶어 걸음이 빨라졌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아주머니가 하나둘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지만, 완전히 닫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잽싸게 꼬치를 골랐다. 로비에서 2차가 꼬치 먹방이 열렸다.

동생과 함께 이번 여행 소감을 얘기했다. 안 가본 곳도 많고 천등 날렸던 게 참 좋아서 가족과 또 오기로 했다. 그렇게 대만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났다.

 

마지막까지 계속된 먹부림

 

다음날, 눈이 또 일찍 떠졌다. 이렇게 피곤하지 않다니 신기했다. 오늘은 돌아가는 날이니 멀리 다니기보다는 숙소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길 건너 은행 앞을 지나서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을 들어가게 되었다.

 

남대문 인근의 먹자골목을 연상시키는 분위기

 

눈이 커졌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과일 가게와 음식점이 많았다. 꼭 남대문의 생선 골목 같은 분위기였다. 가게들이 분주하게 식기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니 좀 전까지 아침 식사 장사가 한창이었던 거 같다.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다시 돌아서 나오는데 익숙한 한자가 눈에 들어왔다. 숙소 근처 맛집 중 별점이 높았던 우육면 식당이었다. ‘그래, 오늘 점심은 여기다!’ 나는 서둘러 숙소로 돌아갔다.

 

그야말로 반찬의 향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체크아웃한 뒤 짐을 프론트에 맡겼다. 우리는 ‘아점’을 해결하기 위해 아까 그 시장으로 갔다. 조용하던 골목이 점심 준비로 북적였다. 계획대로 우육면 식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한 식당에서 이제 막 반찬을 만들어 그릇에 담는 장면이 보였다. 제법 맛있어 보였다. 아니 꽤, 많이. 우육면을 먹으려면 지나쳐야 했지만 우리는 뭐에 홀린 듯 식당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 여행지에서 현지인들의 식사를 맛본다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물론 맛도 있었다

 

밥집이었다. 아주 평범했다. 손가락으로 먹고 싶은 반찬을 가리키면 아줌마가 적당히 담아준다. 무게로 가격을 매긴다. 몇 가지 반찬과 잘 구워진 생선도 한 마리 추가했다. 대만식 백반이라고 할까. 여행을 가면 으레 유명한 음식만 먹느라 정작 현지인들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지나칠 때가 태반이다. 우리만 해도 3일 동안 우육면과 샤오롱바오만 먹었다. 밥 먹을 기회가 좀처럼 없었는데 여기서 먹은 ‘평범한 밥’은 정말 맛있었다. 우리는 빨리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서 손님이 많아지기 시작하니, 이쯤에서 관광객은 떠나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후식을 챙기면서 우리의 식사도 여기서 일단락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밥을 먹고 옆에 늘어서 있는 과일가게들을 둘러봤다. 처음 보는 과일도 있고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과일도 있고. 그중에 먹고 싶은 과일을 고르니 할머니가 먹기 좋게 잘라서 팩에 넣어 주신다.

시장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우육면 식당 앞에서 다시 걸음을 멈췄다. 이미 식사는 해결했고 배는 불렀다. 하지만 우리의 먹부림은 유종의 미를 거둬야 했기에 식당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자리에 앉으니 직원이 너무 당연하게 일본어 메뉴판을 줬다.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오나 싶었는데, 정말이었다. 주위 테이블이 일본어 가이드북을 쥐고 들어오는 일본 사람들로 채워졌다. 메뉴판을 보는데 식당 직원이 익숙한 투로 ‘짜장면 하나 우육면 하나?‘라고 먼저 물어봤다. 우리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메뉴판을 들여다보던 동생이 반색하면서 오이를 추가했다. ‘언니, 이게 진짜 오이야. 황구어라고.’

 

 진짜 오이라고 알려준 ‘오이’는 지금까지 반듯하게 잘린 모습과 달랐다. 거칠게 뜯어낸 느낌이랄까. 한 조각을 입에 넣었는데 ‘아삭!’ 이게 뭔가. 어쩜 이렇게 아삭한가?! 동생이 말한 ‘진짜 오이’였다

 

짜장면과 우육면이 나왔다. 대만에 와서 우육면을 2번 먹었는데,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맛이었다.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는 뜻. 그런데 말입니다. 이곳의 우육면은 달랐다. 정말 맛있었다. 진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 특히 부드러운 고기가 일품이었다. 게다가 얼떨결에 시킨 짜장면도 훌륭했다. 배가 부른데도 계속 들어간다. 위에 여유가 있었다면 분명 고기 메뉴도 시켰을 태세였다.

놀라운 식사를 마치고 아주 만족스럽게 가게를 나왔다. 이번 여행에서 들린 우육탕 맛집 세 곳 중 으뜸이었다. 동생은 첫날 먹은 곳이 가장 입에 맞았단다. 역시 사람 입맛은 다른가 보다. 골목을 나오니 풍경은 금방 다른 곳이 됐다.

 

 

대만, 다시 만나자

 

여행 내내 화창했던 날씨는 우리가 떠나는 날 비를 쏟아냈다

 

공항으로 가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숙소 로비에 앉아서 시장에서 사 온 과일을 후식으로 먹었다. 이젠 중국어가 귀찮아진 동생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시장을 돌면서 가져온 가게 명함 읽는 법을 로비 직원에게 물어봤다. 내가 아주 짧은 영어로 물으면 직원은 긴 영어로 답해줬다. 나는 더 말하고 싶었으나 그의 말에 웃음으로만 답할 뿐이었다. 답답했다. ‘영어…네 이놈’ 이번 여행을 통해 영어의 필요성을 뼈아프게 느꼈다. 결심했다. 5년 뒤엔 영어로 말하기로.

국광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어젯밤 펑리수를 산 가게에 들렀다. 어제 그 직원이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혹시나 우리가 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단다. 친절하게도 어제 산 펑리수를 유통기한이 더 긴 것으로 바꿔줬다. 가는 길에 먹으라고 서비스로 펑리수도 몇 개 챙겨주면서, 다시 대만에 꼭 놀러 오라고 당부했다.

 

뜻하지 않게 수요미식회가 된 대만 여행. 다음 여행을 기대하며 마무리했다. 다음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럼 또 재미난 일들이 일어나겠지. 동생 입에선 단내가 나겠지만. 나는 그동안 영어공부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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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원

서혜원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읽고 라오스의 블루라군과 아이슬란드의 블루라군에 무척 가고 싶어졌습니다.
서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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