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는 처음이었다 #3 – 대만, 타이베이

 

나 홀로 펑다 카페

 

출근길의 오토바이떼. 자동차보다 많은 숫자다. 이른 시간이라 등교하는 아이들도 많이 보였다. 특이한 모양의 공원 겸 카페. 전에는 영화촬영소였다고 한다

 

이상했다. 여행지를 오면 알람을 켜지 않아도 일찍 눈이 떠진다. 전날 많이 걷고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7시 정도면 정신이 든다. 신기한 일이다. 오늘은 예스지(예류(野柳), 스펀(十分), 지우펀(九份)) 투어가 있는 날이다. 투어는 오후 시간이어서 아침은 느지막이 일어나 타이베이 스테이션 근처를 구경하려고 했는데, 너무 일찍 깨버렸다. 동생은 일어날 기미가 없다. 멀뚱멀뚱 눈뜨고 있기엔 아쉬웠다. 그러다 번뜩 머릿속에서 떠오른 아이디어. ‘펑다 카페에 가자, 가서 모닝세트를 먹고 오자’. 나는 벌떡 일어나 채비를 했다. 출근시간 보다 약간 이를 때였다. 다행히 숙소에서 펑다 카페까지 멀지 않아 지하철을 타지 않고 걸어가기로 했다.

펑다 카페(蜂大咖啡)는 1956년에 생긴 60년 된 카페이다. 나는 커피와 카페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바리스타 친구의 어깨너머로 보며 드립도 내려 보고 원두와 로스팅에 대해 주워들은 이야기도 제법 있다. 도쿄에서 지냈을 때는 유명한 카페들을 다니며 자주 커피를 접하곤 했다.

대만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대만은 커피와 차 문화가 발달한 곳이라는 거다. 대만에서 생산되는 커피도 있다고 한다. 대만 커피가 궁금해져서 좀 더 알아보니 가보고 싶은 카페만 대여섯 군데가 넘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마침 이렇게 혼자만의 아침 시간이 생겼다.

가는 길에 대만의 출근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주로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는 것 같았다. 지하철로만 이동했다면 볼 수 없었겠지. 걷기를 잘했구나 싶었다. 숙소인 타이베이 스테이션에서 초등학교와 동사무소 같은 곳을 지나니 블로그에서 사진으로만 봤던 시먼에 도착했다. 아침의 번화가는 밤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60년된 펑다 카페. 이른 시간이어서 카페는 닫혀 있었다. 안에서는 로스팅이 한창이었다

 

서둘러 펑다 카페를 찾았는데, 입구의 셔터가 반만 올라가 있었다. 안에서는 직원이 로스팅 중이었다. 시계를 보니 7시 30분. 카페는 8시에 오픈하니 너무 일찍 도착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30분 정도 시먼을 배회했다.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시먼(西門町)의 아침은 명동 그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원,  올, 원 모어’ 손가락 하나와 짧은 영어만으로도 주문하기엔 충분했다

 

돌아다니다가 재밌는 장면을 봤다. 시먼의 ‘만남의 장소’라고 할 수 있는 편의점 앞에 출근족들을 위한 리어카들이 늘어서 있던 거다. 아침으로 해결할 만한 간단한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나도 관심이 생겨 이리저리 살펴보다 눈에 띄는 총좌빙(蔥㧓餠)을 파는 리어카 앞에 멈췄다. 손가락을 들어 주문하니 아저씨는 능숙하고 빠르게 총좌빙을 만들어 줬다. 아침부터 한바탕 걷고 난 뒤라 맛있었다. 동생 것도 하나 샀다.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겠지만, 뭐 그래도 맛이라도 봐야 할 것 같았다.

 

별거 없어 보이는 모닝 세트여지만 아침 산책 후에 먹으니 꿀맛이다. 카페에는 아침부터 사람이 많았다

 

총좌빙을 맛있게 먹고 시계를 보니 카페 오픈 시간을 지났다. 커피 향을 따라 들어가니 이미 손님들이 꽤 있었고 나도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메뉴는 고를 것도 없었다. 모닝세트를 주문했다. 블로그를 보니 펑다 카페가 불친절하다는 말이 있었는데, 바쁜 아침 시간에 사진 찍으러 오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니,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일본이라면 좀 다를 수도 있었겠지만… 주문을 마치고 주위를 둘러봤다.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들이 많았는데, 카페의 오랜 단골손님처럼 보였다.

내 맞은편으로 다른 손님이 앉았다. 좌석이 없어서 합석한 거다. 물론 문제없었다. 웃으며 인사하는데, 뭔가 일본 사람의 분위기가 나서 말을 걸어보니 내 짐작이 맞았다. 아오모리에서 온 그녀는 대만 여행 4일째라고 했다. 나처럼 모닝세트를 주문하고는 이곳저곳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내 모닝세트가 나왔다. 마침 총좌빙을 먹은 뒤라 커피가 당겼다. 커피를 마시고는 따뜻한 토스트에 버터를 발랐다. 식빵 위에 달걀과 햄을 넣고 다시 식빵을 올려서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었다. 맛있었다. 아, 오늘도 다섯 끼 정도는 클리어하겠구나, 느낌이 왔다. 그리고 이 느낌은 적중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지금도 커피를 드시나요?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카운터에 웬 할아버지가 계셨다. 펑다 카페의 주인 할아버지였다. 와, 정말 가게에 나오시는구나. 주인 할머니도 같이 계셨다. 도쿄 긴자에도 긴 역사를 자랑하는 람 부르라는 카페가 있다. 그곳도 주인 할아버지가 운영하는데, 연세가 무려 102세. 다행히 아직도 정정하시다. 요즘도 카페 한쪽에서 담배를 피우시며 로스팅하신다. 이런 분들이 덕분에 두 나라는 로컬 브랜드 카페가 많은 거 같다.

 

 

송로버섯으로 호사 누리기

 

숙소 앞까지 나를 데려다준 버스.  (당연한 말이지만) 버스가 도착했을 때 당황하지 말고 버스에 적힌 정류장 이름을 차분하게 확인하자. 대만 버스, 누구나 다 탈 수 있다

 

배가 부르니 당연히 온 길을 걸어가야 했지만, 시간은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혹시나 동생이 걱정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마음에 버스를 탔다. 길 가운데 있는 정거장에 가서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 역이라고 적혀있는 버스를 탔다. 어려울 게 없다. 버스는 큰길을 한 바퀴 휙 돌더니 세 정거장 만에 숙소 앞에 도착했다. 이렇게 가깝다니. 조금 익숙해지면 버스를 이용해야겠다.

숙소에 도착하니 동생이 일어났다. 내 아이패드 알람이 울려서 깼단다. 2층 침대에서 알람을 끄러 내려오는 건 쉽지 않지. 동생에게 아까 산 아침을 줬다. 기왕 이렇게 둘 다 일어난 거, 우리는 동먼으로 가기로 했다. 정확히는 동먼에 있는 딘타이펑.

사실 딘타이펑은 명동에도 있고 도쿄에도 있다. 하지만 본점 맛은 어떤지 궁금했다. 이번에는 택시를 타고 갔다. 지상으로 다녀보니 동먼도 그리 멀지 않았다. 택시 기사에게 동먼(東門) 딘타이펑이라고 얘기를 하니 단번에 알아듣는다.

가는 동안 나는 또 질문이 폭발했다. 물론 직접 물어본 건 동생이다. 아저씨의 말로는 동먼 딘타이펑은 맛있지만 가격은 좀 비싼 편이라고 했다. 딘타이펑 말고도 저렴하면서 맛있는 가게도 많단다. 슬쩍 어제 우리가 다녀온 곳을 얘기했더니 아저씨도 알고 있었다. 역시 로컬 맛집이었다.

 

동먼의 딘타이펑 본점. 대기시간 20분은 짧은 편이라고 한다

 

뭔가 기분 좋은 스타트였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딘타이펑에 내렸다. 이미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직원에게 번호표를 받으면서 미리 메뉴를 주문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우리는 무난한 돼지고기와 송로버섯 샤오롱바오를 주문했다. 청와대에서 먹었다던 비싼 송로버섯을 여기 아니면 언제 먹어보겠나 싶었다. 당연히 내 사랑 오이도 주문했다. 주문 접수를 하던 직원이 한국어를 너무 잘해서 깜작 놀랐는데, 한국어만 잘하는 게 아니었다. 영어, 중국어까지 할 수 있는 능력자였다. 멋져 보였다.

 

단밤.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맛이다. 꼭 드셔보시라

 

번호를 보니 한 20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리어카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정확하게는 리어카에서 팔고 있던 음식이었다. 다름 아닌 단밤이었다. 중국 유학 중이었던 동생을 버티게 해줬던 그 단밤. 나 역시 중국 출장길에 배낭 가득 사 왔던 단밤이었다. 단밤을 본 동생은 뭐에 홀린 듯 리어카로 향했다. 단밤 장수 아줌마와 하하 호호하며 이야기를 잠시 나누더니 봉투를 들고 온다. 동생의 얼굴은 행복 그 자체였다. 여행하는 동안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단밤을 꺼내 맛을 봤다. 오 역시 그때 그 맛이었다. 동생은 몇 개를 까먹더니 아껴 먹어야 한다면서 가방에 넣었지만, 나는 ‘또 사면 된다’며 다시 꺼냈다.

 

위, 아래로 송로버섯과 돼지고기 샤오롱바오. 없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번호가 띵똥 하고 바뀌었다. 우리 번호였다. 직원 안내에 따라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테이블에 앉으니 따뜻한 차와 한국어로 샤오롱바오 먹는 방법이 쓰인 안내서를 세팅해줬다. 미리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송로버섯 샤오롱바오를 입에 넣으니 정말 그 향이 어마어마했다. 이래서 트러플, 트러플 하는구나, 했다.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 다음은 돼지고기 샤오롱바오. 맛을 말해 뭐 하겠는가. 맛있었다. 하지만 전날 먹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차피 다 맛있는 거, 다음 샤오롱바오는 오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에서 먹어야겠다.

기다렸던 시간만큼 먹고 나왔다. 우리는 투어버스에서 먹을 동면의 연어초밥을 사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삼미식당. 이 식당은 모 예능프로에서 이연복 셰프가 소개한 뒤 유명해졌다.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아침에 한 번 경험했던 버스여서 자신 있었다. 정류장에서 노선을 확인하는데 누군가 ‘저기요’라고 부른다. 한국 관광객이었다. MRT를 가려는데 이 정류장이 맞냐고 물어서 확인한 뒤 알려줬다. 같은 한국 관광객이라니 혹시나 해 삼미식당 얘기를 꺼냈는데 깜짝 놀랄 사실을 알려준다. 오늘이 휴일이라는 것. 안 물어봤으면 헛걸음할 뻔했다. 우리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MRT로 돌아왔다. 투어를 기다리는 동안 삼미식당은 아니었지만,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연어초밥을 사 먹었다. 우리는 계획한 걸 꼭 먹어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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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원

서혜원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읽고 라오스의 블루라군과 아이슬란드의 블루라군에 무척 가고 싶어졌습니다.
서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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