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시장,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을까 – 해방촌 탐방기 #2

희망을 염원하는 두 글자, 신흥

 

36년에 걸친 식민시대가 끝나면서 1945년의 8월은 기쁨의 열기로 뜨거웠다. 억압과 핍박, 수탈 등은 물론이고 ‘민족말살’을 목표로 자행된 온갖 만행들로부터의 해방. 그만큼 새로운 희망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일본의 점령을 무장해제 하기 위해 들어온 소련과 미국은 각각의 이념으로 남과 북에 영향을 끼치면서 분열과 혼란의 싹을 틔워나갔다. 특히 2,0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여수-순천 반란 사건은 이념 대립의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다.

혼란과 대립은 점차 고조됐고 결국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그 갈등은 정점을 찍게 된다. 이 전쟁은 3년 동안 계속되면서 전 국토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해방의 기쁨과 희망을 꿈꾸기도 전에 그 기반이 될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200만 명 이상의 사망자, 20만 명의 미망인, 10만 명이 넘는 고아, 1,000만 명의 이산가족을 만들어 낸 참혹한 전쟁. 전쟁으로 인해 남한과 북한의 주요시설 대부분이 파괴되면서 사회, 경제적 기능도 마비됐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킨 것도 사람이고 그것을 회복하는 것도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가난과 배고픔을 참아내며 부지런히 맨땅을 다시 일구기 시작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기 위한 시간은 고됐지만 끝내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해방촌은 그 시간의 중심에 있었다.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역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해방촌 사람들은 절망의 굴레를 끊어내려는 의지와 염원을 글자에 담았는데, 바로 ‘신흥(新興)’이다. 신흥길, 신흥상회, 신흥여관 등 이 신흥이란 글자는 아직도 해방촌 곳곳에 흔적이 남아있다.

 

신흥, 그 이름의 아이러니

 

신흥시장의 ‘흥’이 떨어져 있다. 쇠퇴에 접어든 현재의 모습을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그중에서도 지금 소개할 신흥시장은 더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시장의 기본적인 역할은 물물교환이지만, 삶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콩나물 하나에 인심 좀 더 쓰라며 목청을 높여 실랑이를 벌이는 아낙들부터, 허구헌날 싸우기만 하는 언덕배기 김 씨네 흉을 보거나, 딸만 넷을 나면서 그렇게 구박받던 구 씨네 며느리가 끝내는 아들을 보게 됐다는 소식과 덩달아 어깨가 으쓱해진 시어미의 이야기까지. 신흥시장에서는 해방촌의 희노애락이 펼쳐졌을 것이다.

신흥시장에 대한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그 이름처럼 흥과 활이 아닌 쇠와 퇴였다. 재래시장의 쇠퇴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기, 현재의 신흥시장의 모습이 꼭 이해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성공을 향해 고군분투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해방촌을 떠남으로써 해피엔딩을 맞았지만, 신흥시장은 그들과 함께 떠날 수 없었다. 이제는 몇 개의 점포만이 남아 그 생명력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었다.

신흥시장으로 가는 입구는 두 군데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해방촌 오거리에서 해방교회와 보성여고로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중간에 작게 입구가 나 있다. 머리 위의 간판을 보지 못한다면 좁고 어두운 계단으로 이어지는 길이 신흥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걸 쉽게 알아채기 어렵다.

 

썰렁한 시장통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수조에는 꽤 많은 물고기가 있었다

 

떨어진 간판 아래로 발걸음을 옮기면 계단이 보이고, 오른쪽에 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이어진다. 초입에는 신흥시장의 화장실이 가장 먼저 보인다. 낡고 어두운 시장의 분위기처럼 예스러운 화장실을 생각했는데, 벽돌로 깔끔하게 마감된 신식 화장실이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어떻게든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으려 했던 누군가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싶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입구에 있는 횟집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신흥시장이 이어진다.

 

이가 빠진 듯이 듬성듬성하게 반투명한 플라스틱 슬레이트로 메꿔진 곳으로 햇빛이 비친다

 

신흥시장을 방문했을 때가 늦은 오후였다. 온통 슬레이트 지붕으로 뒤덮여 있는 신흥시장은 어둑했다. 시장 구석은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시장 안에는 몇 개의 가로등이 설치돼 있었는데, 아마도 시장에 지붕이 생기기 전부터 있던 게 아닐까 싶다.

 

횟집을 지나 들어간 시장 안은 부산스러웠다. 시장 중앙에서 유일하게 불을 켜고 영업 중이던 ‘농수산품 판매 시범 점포’

 

횟집을 제외하면 시장 안에서 장사하는 집은 몇 군데가 되지 않았다.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였다. 문 닫은 가게들 안팎으로는 박스와 비닐봉지가 널브러져 있어 부산스러웠다. 시장 중앙에서 유일하게 영업 중이던 가게는 환하게 전구를 밝히고 있었지만 쓸쓸한 기운을 이겨내기엔 부족해보였다.

매대에는 각종 기름이 담긴 플라스틱 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주변으론 각종 곡물들이 흐트러짐 없이 정돈돼 있었다. 가게 벽에 붙어있는 ‘농수산물 판매 시범점포’라는 푯말이 눈에 띈다. 한때는 이 가게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던 자랑이자, 썰렁해진 시장통을 끝까지 지키게 한 자존심이 아닐까.

 

충남 정육점

 

‘농수산품 판매 시범 점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정육점을 만날 수 있다. 정육점의 붉은 등에서 약간의 생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코트 깃을 여미듯 흰 섀시의 출입문은 단단하게 닫혀 있었다. 움츠러든 시장의 분위기와 닮아 보였다.

 

 닫힌 문 앞으로 덩그러니 놓여있던 평상

 

정육점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옆에서 ‘쉬이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육점 건너편에 있던 가게에서 나는 소리였다. 안에는 전등이 켜져 있었지만 밖으로는 아무런 표시가 없어서 무엇을 파는지, 아니면 팔았는지 알 길이 없다. 창문에 붙어있는 반투명 시트지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과 그것으로부터 생겨난 그림자가 적막한 시장의 분위기를 더했다. 아까부터 소리를 내며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흰 증기만이 시장통의 차가운 공기를 잠시나마 데울 뿐이다.

 

텅 비어버린 가게

 

그 옆 가게 창문에는 청색 테이프로 ‘X’가 쳐져 있었고 가게 안은 텅 비어있었다. 급전을 빌려준다는 일수꾼들의 명함과 전단 몇 장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창문의 ‘X’는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였을까. 텅 빈 가게는 알루미늄 섀시로 사방이 둘러쳐져 있다. 가게들이 좌판을 꺼내놓고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자리에서 시작해 섀시를 올려 공간을 따로 만든 것 같다. 특히 모서리를 맞댄 두 면에는 큰 유리창이 있었다. 사잇길로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창으로 휑하니 비어버린 바닥만 보인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가게에서는 일감을 바삐 만지는 손길이 있었다

 

재래시장들은 가운데에 길을 두고 양옆으로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의 형태가 많다. 손님들은 길을 오가며 좌판에 진열된 상품을 보고 주인을 불러 물건을 사가는 식이다. 신흥시장은 골목이 아닌 ‘ㅁ’ 형태다. 양옆이나 앞뒤로 가게들이 이어져 있다. 그 위로 지붕이 얹히고 출입구가 생기면서 신흥시장만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시장을 다시 한 바퀴 돌았지만 시간은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아마 모든 가게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면 신흥시장을 둘러보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을 테다. 하지만 텅 빈 시장에서 영업하고 있는 가게가 손을 꼽을 정도인 지금은, 전체를 살피는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모서리를 지나고 있었다. 혹시나 놓친 건 없을까 해서 아까 지나쳤던 반찬가게와 수선집을 다시 지난다. 약간은 억지스럽게 카메라를 들고 이것저것 담아보지만 오래걸리지 않았다.

 

신흥시장의 또 다른 입구. 입구와 맞닿은 길은 후암동으로 이어진다

 

모서리 끝에는 또 다른 출입구가 있었다. 출입구를 따라 어둑했던 시장통에서 나오니 눈이 부셨다. 출입구에서 이어지는 골목길은 제법 넓었다. 후암동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 출입구에도 횟집이 하나 있었는데, 빈 수조에 가림막까지 쳐져 있는 모양새가 가게 문을 닫은 지 오래된 것 같았다.

 

 

삶의 끝자락에 다다른 것처럼…

 

신흥시장을 둘러보면서 가끔 들렀던 삼선교의 시장통이 생각났다(고은지님의 블로그, 재개발 전의 삼선시장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삼선교 시장은 전형적인 골목형 재래시장이었다. 색색의 갑바천(타포린) 위로 햇빛이 쨍하고 비치면, 중앙의 길을 따라 늘어선 채소와 과일 위로 붉고 푸른빛이 쏟아졌다. 그 한쪽에는 고무 양동이에 나물들이 한가득 쌓여있고, 마분지에는 삐뚤빼뚤 한 글씨로 이름이 적혀있다. 새빨간 고춧가루가 잘 버무려진 김치와 파랗고 노란 각종 반찬이 반찬가게의 유리 진열장을 그득하게 채웠다. 시장의 중간 정도에는 주전부리 가게가 있어서 노릇한 파전과 튀김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통을 시원하게 비우는 어르신들의 일상이 흘러갔다.

차가운 얼음을 깔고 드러누워 그 눈깔을 희번덕이는 생선 좌판에는 투박한 나무 도마와 살벌하게 꽂혀있던 칼날이 있었다. 빨간 고무장갑과 푸르게 반짝이는 생선들의 대비는 노란 백열전구의 빛이 더해지면서 극대화된다. 눈이, 카메라가 바빠지는 순간이다. 손에 카메라가 없을 때면 그 장면을 눈에 담기 위해 몇 번이나 왔던 길을 거꾸로 걷기도 했다.

삼선교 시장 역시 환경개선과 정비를 목적으로 다른 재래시장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삼선교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던 상권 덕분에, 어깨를 맞대고 있던 오밀조밀한 모습은 없어졌지만, 현재도 시장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신흥시장을 비롯한 해방촌의 운명은 후암동부터 해방촌을 포함한 용산공원(현 미군 부대 위치, 용산공원 건립 예정)까지를 잇는 ‘남산 그린웨이’ 프로젝트로 그 역사가 마무리될 뻔 했다. 현재 해방촌(용산동2가) 거주자들을 후암동으로 이주시키고, 해방촌의 구릉을 녹지대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해방촌 사람들의 반대와 오 시장의 퇴임으로 성사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해방촌의 현재는 계속될 것 같다.

 

신흥시장

 

그러나 지난 50여 년 동안 해방촌의 웃음부터 눈물까지 수많은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던 신흥시장. 어쩌면 신흥시장의 쇠락은 개발 같은 이슈와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마치 누군가 정해놓은 삶의 기한 중 끝자락에 다다른 느낌이랄까. 마지막 이야기가 될 것 같은 예감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아직도 밖은 환했지만 신흥시장을 둘러본 마음이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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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자의 운영자. 얼마 전 육아의 늪에 빠져든 이후 당분간 여행은 포기했다. 해묵은 여행 사진을 뒤적이거나 남의 여행기를 탐하고 있다. 기고는 언제나 대환영! contents@travelwri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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