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는 처음이었다 #2 – 대만, 타이베이

언니들은 늘 못 됐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 가격이 저렴한데다 깨끗하고 수건도 매일 준다. 숙소 옆에는 유명한 카메라 거리가 있었다

 

두 번째 날은 일요일이었다. 보통 여행 중이더라도 큰일이 없으면 교회를 간다. 동생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다음 일정과 가까운 곳의 한인 교회를 찾았다.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외국에서 생활한다면 한인 교회는 한 번 가보라고 하고 싶다. 해외에서 한국인을 그렇게 많이 볼 기회가 흔치 않다. 그 정도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게다가 김치와 밥을 먹을 기회이기도 하다. 사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인데, 아무튼 나는 동생과 지하철을 타고 나섰다. 교회는 역에서 멀지 않았다. 날씨는 쾌청했다.

 

파란 하늘과 텅 빈 도로. 그리고 저놈의 자전거

 

길을 걷는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외국인을 보았다. 신호대기에 멈춰있는 외국인에게 ‘짧은’ 영어로 자전거는 어디서 타냐고 물어보니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킨다. 욕심났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한산하기까지 한 도로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마침 예배 전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동생에게 자전거를 타자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한국처럼 간단하게 외국인도 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블로그도 찾아보고 대만 홈페이지도 들어가면서 이리저리 찾아봤지만, 이용 방법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답답해진 나는 동생을 한참동안 볶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대만 사람이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파킹하고 우리 앞을 지나갔다.

‘익스큐즈미’

 

늘 누군가를 부르는 건 나, 그다음 일은 동생 몫이었다

 

동생은 어떻게 해야 자전거를 탈 수 있는지 물었다.

 

‘이건 타이베이 사람들의 교통수단이기에 본인 확인이 되는 교통카드가 있어야 해’

 

그러니까 관광객은 못 탄다는 말이다. 아니 지금까지 우린 무엇을 했단 말인가?

난 심통이 났다. ‘홈페이지도 봤으면서 그걸 못 찾아?!’ 사실 난 이런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편이라 티가 났다. 동생도 그걸 알아채고는 택시 타고 가자며 짧게만 얘기했다. 길을 건너서 교회까지 택시를 탔다.

교회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자전거를 타겠다고 땡볕에 오래 서 있었더니 목이 말랐다. 마침 교회 1층에는 편의점이 있었는데, 안에는 예배를 온 한국인들이 많았다. 잠깐 동안 여기가 한국인 줄 알았다. 우린 조용히 물과 음료를 사고 예배 시간 돼서 안내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건물은 오래됐지만 깨끗했다.

 

겉은 허름해 보여도 내부는 깔끔한 편이다

 

사실 대만에 도착한 뒤에 도심으로 들어오면서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뜻밖에 오래된 건물이 대부분이었다. 겉에서 볼 땐 상당히 낡았지만 내부는 겉과 전혀 달랐다. 그걸 보면서 관리를 참 잘하는구나 싶었는데, 나중에 가이드를 통해 들으니 리모델링에 많은 공을 들이기 때문이었다. 가이드도 집을 구할 때 겉을 보고 너무 실망했는데 내부에 들어가니 너무 깨끗해서 놀랐다고 한다. 대만에서는 건물이나 사람이나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구한 숙소도 겉은 낡았는데 속은 일본의 비즈니스호텔만큼 깨끗하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내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대만 사람들의 성향이 묻어나는 부분이지 않나 싶다. 대만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 사람들을 ‘겉은 화려하지만 성격이나 하는 행동은 걸맞지 않은 사람들’ 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좀 억지 같지만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재벌은 대부분 안 좋은 캐릭터로 나오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행천궁행 노란 버스

 

예배를 마치고는 샤오미 매장을 가기로 했다. 원래는 갈 계획이 없었는데, 동생 핸드폰 배터리가 너무 빨리 줄어서 충전기가 필요했다. 구글 지도를 보니 행천궁(行天宮)역 인근이었다. 일단 우리는 ‘행천궁’이란 글자가 적혀 있는 버스를 탔다. 행천궁이라, 우리나라 경복궁 같은 건가? 행천궁의 정체가 궁금했다.

 

행천궁, 관우를 모시는 신사.  붉은 색으로 가득하다

 

역에 도착해서 내리니 중국 전통 문양과 화려한 색을 띤 문이 보였다.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행천궁의 정체를 알게 됐다. 관우를 모시는 사원이었다. 손을 씻는 곳을 지나 안쪽 문으로 다시 들어가니 이곳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서 절을 하거나 경전을 읽고, 반달 모양으로 윷같이 생긴 무언가를 던지기도 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오지 못한 사람들을 대신해서 그 사람의 옷에 향을 쏘이는 장면이다. 저렇게 하면 병이 나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나는 신기해서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다. 한참을 찍는데 동생이 와서 나를 말린다. 저 사람들은 심각한데 언닌 너무 관광객이라며,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데 누가 그렇게 사진을 찍으면 어떻겠냐고 타박이다. ‘그래, 니 말이 맞다.’ 하고 우리는 그 길로 나왔다. 의외의 장소에서 대만의 모습을 본 것 같아 재밌었다.

 

대만을 또 가게 됐을 때, 과연 나는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행천궁에서 나와 원래 목적지였던 샤오미 매장으로 향했다. 대만의 건물은 대부분 아케이드 형태이다. 대만은 해양성기후라 비가 자주, 짧게 내리기 때문에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이런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케이드를 따라 상점가 앞을 지나던 중 범상치 않은 카페를 발견했다. 아메리카노를 사 마시고 드립 백 커피도 몇 개 사 왔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통에 귀찮았을 텐데도 친절하게 잘 대해줬다. 돌아와서 마신 드립백도 맛이 훌륭했다. 다음에 또 사러 가고 싶었다. 찾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이때 심통나서 사진도 찍지 않았다

 

기분 좋게 카페에서 나와서 길을 걷는데, 아무리 가도 샤오미는 보이지 않고 웬 지하철역이 나온다. 뭔가 이상해서 지도를 확인하니 매장 반대편으로 무려 한 정거장이나 걸어왔다. 아… 결국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행천궁 역에서 찾아갔다. 매장은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동생은 여러 개의 충전기를 이리저리 비교하느라 제법 시간이 걸렸다.

사실 그때 나는 미리 알아보지 않아서 나를 기다리게 한 동생에게 화가 나 있었다. 아침부터 하는 일마다 꼬여서 마음이 심란했는데, 계획에도 없던 매장까지 와서 시간을 버리는 것 같아 심기가 불편해졌다. 물론, 이게 말도 안 되는 심통이란 걸 아는데, 그땐 그랬다. 그래서 중정기념관을 가는 지하철 안에서 동생과 말도 안 했다. 동생은 화가 나면 그 화에 우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지하철에서 울었다고 하더라. 자매들이란 참… 동생은 어제도 그 이야기를 했는데, 언니들은 다 못됐단다.

 

중정기념관의 낮과 밤은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넓은 공간의 탁 트인 느낌, 광장이었다. 어른인 나에게도 엄청나게 큰데 이 아이에게는 얼마나 클까… 바닥의 블록이 장개석 동상까지 정확히 줄을 맞춰 깔려 있다

 

중정기념관에 도착하니 세 시 정도였다. 이런 기분으론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서 동생에게 내가 미안하다고 ‘해 줬다.’ 그러면서 ‘네가 잘못한 거다’라는 말도 아주 작게 덧붙였다. 그렇다. 나는 쿨 하지 못했다. 이상한 사과와 함께 서로 어색하게 사진을 찍어준다면서 분위기는 풀어졌고, 그제야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넓은 광장과 파란 하늘, 무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았다

 

낮의 중정기념관은 밤에 보는 것과 또 달랐다. 넓은 광장과 파란 하늘을 보며 앉아 있으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즐거웠다. 기념관 주변에는 우리 같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졸업하고 기념사진 찍으러 온 학생들과 동네 산책 나온 가족들로 가득했다. 모두가 그날의 하늘만큼 맑은 표정이었다. 화만 내고 있었다면 우리만 손해였으리라… 한껏 들뜬 마음으로 사진을 찍다가 발견한 사실이 있다. 자유광장 문에서부터 국기 게양대 그리고 장개석 동상까지 정확하게 일렬로 세워져 있는 걸 발견하고는 소름이 돋았다. 무서운 사람들이다.

 

근위병 교대식은 유명했지만 나의 취향은 아니었다

 

얼추 교대식 시간에 맞춰서 중정기념관을 올라갔다. ‘중정’은 장개석의 본명으로, 중정기념관은 그를 위한 기념관이다. 올라가는 계단은 멀리서 볼 때와 달리 높았다. 장개석 동상은 보고 있어도 보고 있지 않은 것같이 현실감 없게 너무 컸다.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보다 큰 것 같다.

우리가 보러 간 건 근위병 교대식이다. 장개석의 동상을 지키는 근위병들은 매시간 교대하는데, 이때 총검술 같은 화려한 퍼포먼스를 곁들이는 걸로 유명하다. 그래서 교대식에는 늘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정숙하라는 안내원의 손짓에 따라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안전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한쪽에서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각을 잡고 나왔다. 구령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현란한 총검술을 선보인다. 15분 정도의 교대식이 진행되는 동안 군인 두 명이 세 번의 실수를 했는데, 그들은 의연하게 대처했다. 내 감상은 이렇다. 유명하다고 해서 보긴 했지만, 그 두 명의 실수가 없었다면 ‘왜 보고 있었나?’ 싶었을 거다.

대만에는 중국과 대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손문의 ‘국부기념관’도 있다. 그곳에서도 중정기념관과 마찬가지로 근위병 교대식을 하는데, 왜 우리는 중정기념관으로 왔을까? 바로 이번 먹방 여행의 목적지 중 하나인 ‘샤오롱바오’ 맛집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의 맛집이라고 해 기대가 컸다.

중정기념관을 나오니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우리는 갑자기 방향 감각을 잃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도통 감을 못 잡았다. 배고픔을 참으면서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갔다. 사진에서 봤던 가게가 나왔다.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워서 이미 가게 안에는 대만 사람들로 북적였다. 뭔가 설렜다.

 

 

샤오롱바오, 본격 먹방의 신호탄을 쏘다

 

항주소룡포. 다음날 택시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가격대비 최고의 맛 집이라고 하셔서 우리를 뿌듯하게 했다. 역시 음식 사진은 늘 한 장뿐. 먹방 블로거는 못 될 거 같다

 

대기 손님으로 번호를 받고 기다렸다가 자리를 안내받아 들어갔다. 대만에서 먹는 첫 샤오롱바오였다. 둥그런 테이블에 다른 손님들과 함께 앉았다. 영화에서 보던 그런 테이블이었다. 동네 주민들은 무엇을 시켜 먹나 유심히 살펴봤다. 나의 시선을 느낀 사람들은 미소를 보여 주었다. 나도 ‘저는 외국인이에요’하는 표정으로 웃었다.

동생이 주문했다. 유명한 타이베이 맥주도 함께. 잠시 후 주문한 샤오롱바오가 나왔다. 뚜껑을 들어 올리니 복주머니가 육즙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샤오롱바오를 스푼에 올려서 젓가락으로 옆구리를 살짝 찢었다. 그 위에 소스를 찍은 생강 채를 올려서 한입에 슥, 정말 행복한 맛이다. 우리는 말 없이 한판씩 해치웠다. 아삭한 오이와 함께 먹으니 약간은 느끼했던 샤오롱바오가 잘 넘어갔다. 동생은 이 오이를 진짜 오이가 아니라고 계속 그랬다. 아무튼, 첫 샤오롱바오였기에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마친 후 줄 서 있는 사람들을 지나 조금 걸어 옆을 보니 웬 사람들의 무리가 가게 앞에 서 있었다.

 

두 번째 샤오롱바오. 이 집 오이가 아주 맛있다. 다시 대만에 가면 이곳을 꼭 첫 집으로 가야겠다

 

빨간 간판의 음식점. 사람들이 메뉴판을 보며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여기도 샤오롱바오와 여러 음식을 파는 가게였다. 가게 앞에는 크게 일본 잡지에 소개된 집이라고 붙어있었다. 오, 정말 그렇단 말인가? 우린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옆집에서 샤오롱바오를 먹은 지 3분 만에 말이다. 배는 불렀지만, 언제 다시 이곳에 오겠는가. 우리는 꼭 먹어야 했다.

첫 번째 가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우리는 둥근 테이블에 다른 팀들과 같이 앉았다. 이곳에서 유명한 버섯 샤오롱바오를 주문했는데, 이번에는 한 판만 주문했다. 물론 오이도 함께 주문했다. 오이만 있으면 샤오롱바오는 몇 판이든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샤오롱바오가 나오고 아까와는 또 다른 맛에 깜짝 놀라며 동생과 나눠 먹었다.

함께 테이블에 앉았던 팀 중에서 가족이 있었는데, 나중에 동생이 하는 얘기가 아빠인 듯한 사람이 우리에게 음식을 나눠주려고 했단다. 아쉽게도 부인에게 차단당해 우리에게 오진 못했지만… 친절한 아저씨, 고맙습니다. 그렇게 한꺼번에 샤오롱바오 두 집을 클리어했다. 대만에 있는 동안 샤오롱바오는 더 이상 안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우리는 망고 빙수를 먹어야만 했다

 

배도 부르고 밤바람도 좋으니 길을 걸었다. 주변에는 높은 건물이 없었다. 비슷비슷한 높이의 작은 건물들만 있어서 하늘이 더 넓은 느낌이었다. 거리에 있던 가로등 불빛도 은은한 게 낭만적이었다. 커피 한 잔을 후식으로 먹은 뒤 다음 행선지를 고민했는데, 우리는 융캉제(永康街)를 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대만의 명물인 망고 빙수를 먹어야 했고, 남은 이틀 동안 융캉제를 갈만한 여유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택시 타고 출발!

융캉제는 대만의 가로수길 같은 곳이라고 하는데,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죄다 한국 사람들이다. 우리도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빙숫집이 나타났다. 대기하는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줄 서기를 머뭇거리는데 한쪽에 걸려 있던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온다. 200미터 거리에 2호점이 있다는 안내였다. 2호점이라도 맛은 똑같겠지 싶어서 찾아갔더니 마감시간이란다. 우리는 다시 돌아가야 했다. 줄이 길게 뻔했으므로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천천히 융캉제를 둘러보며 걸었다.

 

망고가 제철일 때 가서 다시 먹고 싶다. 아쉬운 망고 빙수

 

빙수집에 가보니 여전히 사람은 많았다. 주문하고 눈치껏 자리에 앉았다. 기다리면서 가게 안에서 만드는 모습을 보는데 청결함에 감동을 받았다. 잠시 후 그 유명한 망고 빙수를 받았다. 정말 망고가 듬뿍 들어 있었다.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고 한 입 넣었다. 일단 시원했다. 그리고 망고가 씹혔는데, 내가 생각한 망고 맛은 아니었다. 3일 전에 먼저 대만에 다녀온 친구가 지금은 망고 철이 아니라고 하더니, 그 말이었구나. 우리는 빠르게 납득하며, 빠르게 망고 빙수를 비웠다.

 

나의 숨통을 터준 소다제당(小茶栽堂). 찻잔을 찻주전자 안에 다 넣고 보관할 수 있는 게 매력적이다. 차는 처음 우린 차와 두 번째 우린 차로 주는데, 처음 우린 게 더 맛있었다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블로그를 검색하다가 본 찻집을 갔다. 조금은 여유를 누리고 싶었다. 찾아간 곳은 소다제당(小茶栽堂). 고급스러운 찻집이었다. 점원이 친절하게 우리를 맞았는데, 동생은 더 이상은 말하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갑자기 점원이 우리 뒤에 있는 사람과 일본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도 한국 사람이었는데 영어보다는 일본어가 편했던 것 같다.

기뻤다. 나에게도 입을 뗄 기회가 왔다. 점원은 유창한 일본어로 우리를 위로 안내했다. 새삼 말이 통한다는 기쁨을 느꼈다. 차도 차였지만, 나는 이 직원과 말을 하고 싶었다. 생각보다 고급 찻집이라 가격은 꽤 비쌌지만, 대화의 기쁨 앞에선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점원은 특별히 차와 찻잔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줬고, 나도 신나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동생은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우리 둘에게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말문과 함께 숨통이 트인 나는 기분 전환이 됐고, 동생은 모처럼 안내자가 아닌 관광객으로 편히 쉴 수 있었다. 조금 들뜬 마음에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제과점에서 친구들에게 여행 선물로 줄 펑리수를 샀다. 충동구매에 가까웠다. 우리는 나중에 알았다. 이 펑리수가 대만 여행의 가장 초급 기념품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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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원

서혜원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읽고 라오스의 블루라군과 아이슬란드의 블루라군에 무척 가고 싶어졌습니다.
서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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