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의 섬, 여서도 #3 – 대한민국, 완도

저물어 가는 여서도에서의 시간

 

이제는 더이상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여서초등학교. 운동장에는 풀이 무성했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마지막에 다다른 곳은 여서초등학교였다. 여서초등학교는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데, 다음이나 네이버의 지도에서 학교는 엉뚱하게도 마을 한가운데에 표기돼 있다. 여서도에 도착해서부터 마을 끝으로 보이는 커다란 녹색 지붕은 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이곳에 올라와서야 그게 초등학교였음을 알게 됐다.  지난 2011년 폐교되면서 비교적 시설이 잘 보존된 편이었지만, 서서히 여서도의 풍경에 흡수되고 있었다. 운동장 위로는 풀들이 제법 무성하게 자란 상태였다. 그 위로 검은 염소 한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는데, 해가 지고 있던 때여서 폐교는 더 스산해 보였다.

 

사진으로 담아두고 싶었지만 하필 디지털카메라와 핸드폰 배터리가 모두 바닥을 드러냈다. 어쩔 수 없이 감도 50의 필름이 들어간 필름카메라가 유일한 기록수단이었다. 일단 촬영은 했는데, 나중에 필름을 현상해서 살펴보니 노출은 꽤 어둑했다

 

과학실 유리창에는 얼마 전까지 사용했던 것처럼 각종 작물의 구분법 따위에 대한 도판 같은 게 붙어 있다. 하지만 이미 벽은 노화가 제법 진행된 상태이다. 교실 문이 열려 있어서 출입할 수 있었다.

 

내일이면 여서도를 떠나게 된다

 

다시 여서항으로 돌아오니 내일 떠날 배가 정박해 있다. 배는 여서도에서 하루를 지내고 오전에 청산도로 출항한다.

 

여서도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전우들과 함께 축배를 나눴다

 

우리가 묵었던 민박집의 사진이다. 이런 외딴섬에서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깔끔한 원룸을 쓸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정말 편하게 묵고 갈 수 있었다. 여서도의 마지막 밤이었다. 같이 동행한 후배들과 미리 준비해간 맥주와 소시지로 간단하게 축배를 올렸다.

 

고요한 여서도의 밤. 벌써부터 이곳이 그리워질 것 같다

 

섬을 나서는 것이 아쉬워 항구 주변을 돌아보았다. 방파제 안으로 들어온 바다는 잔잔하고 고요했다. 여서도엔 언제쯤 다시 올 수 있을까?

 

 

섬을 나올 때면 감정이 복잡해진다

 

나흘 전 그때처럼 우리는 다시 페리를 타고 여서도를 떠난다

 

이렇게 훌륭한 식당을 두고 우리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래도 라면 맛은 좋았다

 

아침이 밝았다. 여서도 하늘에는 비행운이 끊이질 않는다. 제주행 여객기가 너무 많아서 세계적으로도 번잡한 항로로 손꼽힌다는 풍문을 전해 들은 기억이 난다. 혹시나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갈 때 창문 밖으로 바다 한 가운데 있는 외딴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면 바로 그곳이 여서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드디어 승선이다. 우리는 갑자기 배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컵라면을 먹는 호사가 누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라면을 미리 준비해두고 배가 떠나기 직전에 재빨리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 허겁지겁 배로 뛰었다. 여행의 마지막에 이런 낭만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모든 게 쓸데 없는 짓이었다. 팔팔 끓는 물 정도는 배에 딸린 주방에서도 손쉽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식당 구경이나 해보자는 셈으로 들어가 봤는데 없는 게 없어서 꽤 놀랐다. 아무튼 배에서 바다를 보면서 먹는 라면은 정말이지 끝내줬다.

 

처음 여서도를 봤을 때처럼, 섬은 해무 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여서도가 멀어져 간다. 보물섬이나 ‘15소년 표류기’ 같은 탐험 소설류에서 나올 법하게 안개 속에서 등장했던 여서도는 다시 해무 속으로 서서히 그 모습을 감추어 갔다. 바다 위로 반짝이는 햇빛 때문에 떠나는 이 순간이 꿈결처럼 느껴진다.

 

청산도 시장에는 싱싱한 해산물이 널려 있었다

 

우리는 청산도에 내렸다. 여기서 다시 완도여객선터미널로 가는 배를 타야한다. 청산도는 여서도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여서도에서 4일 동안 한적함에 빠져 있던 우리에게는 번잡한 서울처럼 느껴졌다. 이 섬에 사람들이 이렇게 붐비는 이유는 몇 년 전부터 지방도시에 불어 닥친 둘레길이니 슬로우시티 운동 따위 때문이리라.

시장에는 전복, 소라, 해삼들이 고무대야 마다 그득하다. 우리는 나흘 동안 고생 좀 했으니, 피로를 좀 풀어보자는 의미에서 해삼을 한 마리 샀다. 다시 청산도를 출항한다. 여서도로 갈 때 탔던 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거대한 페리다.

 

라면에 이어서 해삼까지 해상 시식이 이어졌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신선한 해삼을 즐길 준비를 했다. 실한 해삼이었다. 짭조름한 점액질이 혀끝을 감싼다. 그리고는 동강 난 해삼의 몸체가 우두둑 하고 씹힌다. 괜히 몸이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여서도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어느새 완도연안여객선 터미널이 보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육지와 제주도, 정확히 한가운데 외로이 떠있는 여서도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섬을 나올 때면 늘 감정이 복잡해진다. 샷을 추가한 아메리카노 한잔 들이키고, 패스트푸드로 배를 채우고 나서야 안도감이 든다. 마치 도시 생활로 전환하기 위한 의식처럼…

 

다음에는 어떤 섬을 그리워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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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인

박상인

케묵은 니콘 레인지파인더 카메라와 방구석에 놓여 있는 더플백을 번갈아 쳐다보며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시대착오자 / goliathus

* 블로그 : sangin1122.tistory.com
박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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