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난 길 – 일본, 야쿠시마 여행기#3

 

 

마지막 날은 세이부린도(西部林道)에서 시작했습니다. 섬의 북서쪽, 깎아지른 해안 절벽으로 난 길에는 원숭이와 사슴들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창밖으로 본 시크한 원숭이들과 하트 모양의 하얀 털로 뒤덮인 귀여운 엉덩이의 사슴들은 평화롭기만 했습니다.

보통 차를 세우고 길을 걸으며 동물들을 만난다는데, 저희는 차가 큰 탓에 세우지는 못하고 천천히 지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로 대부분이 경차 두 대가 간신히 교차할 정도고, 종종 외길도 나오거든요.

 

 

한참을 달려 야쿠시마 등대에 도착했습니다. 짧은 곶의 끝에 세워진 등대는 동중국해와 태평양을 오가는 수많은 배들에게 길을 안내했을 겁니다. 지금은 상시 운영하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섬의 북쪽으로 접어들어 나가타이나카해변(永田いなか浜)으로 향했습니다. 바다거북의 산란지인 이 해변은 5월부터 새끼거북들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낮에 간 탓에 거북이는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태풍이 몰아칠 것 같던 바다와 어느 연인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저런 표현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조금씩 비를 흩뿌리는 하늘을 보며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가이드북에서 발견한 스파게티집은 일본 특유의 재미있는 음식들을 팔고 있었습니다. ‘직접 기른 재료로 만든 한정판 무엇’ 같은 식으로 말이죠. 아주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잠깐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가게 앞의,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멍뭉이에게 인사하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 시라타니운스이쿄(白谷雲水峡)로 향했습니다.

 

 

흔히 야쿠시마를 원령공주의 땅이라 하지만, 정확하게는 시라타니운스이쿄가 원령공주의 숲입니다. 애니의 무대가 된 숲을 만나러 깎아지른 절벽 길을 한참 달렸습니다.

 

 

시라타니운스이쿄는 흔히 야쿠시마의 숲으로 소개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느긋한 걸음으로 3시간 정도를 걷게 되는데, 많은 사람이 가이드를 대동하고 함께 숲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어를 하는 가이드는 없습니다.

그 무리에 섞여 숲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상대적으로 편하다고는 하지만, 길이 평지이거나 잘 닦인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숲을 걷는 아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아빠의 목마를 타고 있었는데, 무척 신이나 보였습니다. 아이와 함께 원령공주의 숲을 걷는 건 꽤 근사한 일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원령공주의 어느 장면에선가 만났을 풍경들이었습니다. 숲과 계곡, 나무와 개울이 흐르는 소리, 숲의 향기까지 어쩐지 익숙한 기분이었습니다. 늑장을 부린 탓에 협곡의 정상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3시간 코스를 1시간 반 만에 돌아와야 했거든요.

 

 

일행 중 일부는 저보다 조금 더 올라갔다고 하는데, 제가 돌아온 곳 바로 위에 ‘원령공주의 숲’으로 조성된 공간이 있었다는 걸 나중에 전해 들었습니다. 조금 더 무리해볼 걸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숲을 나와 꾸불꾸불한 도로를 내려왔습니다. 날이 개어서, 올라갈 때 보지 못한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멀리 바다와 계곡을 보며 잠시 걸었습니다. 그리고 공항을 구경하러 가던 길 태평양을 볼 수 있는 바닷가에 들렀습니다. 마치 태풍처럼 강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이게 태평양의 바람인가, 잠시 생각하며 바닷가의 저수조를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야쿠시마 공항입니다. 후쿠오카, 가고시마에서 오는 프로펠러기가 전부인 작은 공항입니다. 하루 두 번 비행기가 뜨던 네팔의 룸비니 공항도 이보다는 컸습니다. 아마도 제가 가본 가장 작은 공항일 것 같습니다. 기념품을 구경하고 나와 보니 활주로의 비행기는 이미 떠나고 없었습니다.

 

 

 

렌터카를 반납하고, 바다로 난 길을 걸어 숙소로 향했습니다. 어스름이 지는 풍경도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다시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숙소 인근의 이자카야를 찾아갔습니다. 거친 젊은 시절을 보냈을 것 같은 마스터는 맛있는 술을 내주었습니다. 적당히 취해 돌아오며 야쿠시마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억했습니다.

 

 

머피의 법칙일까요, 항상 떠나오는 날은 말쑥한 풍경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숙소 앞을 흐르는 안보강의 아침입니다. 숙소 안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할아버지의 그림과 친필 서명이 올려진 풍금을 발견했습니다. 과연 풍금연주도 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어젯밤 돌아온 – 바다로 난 길을 걸어 안보항으로 향했습니다. 페리를 타고 떠나온 야쿠시마의 마지막 얼굴은 아름다웠습니다. 마음속으로 조몬스기 할아버지께 다시 인사했습니다.

 

 

저 가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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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 기획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30년 쯤 하면 좋은 사진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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