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안장을 닮은 섬 #2 – 대한민국, 영광

… 1편에 이어서

 

 

섬에서 보내는 첫 날이 흘러가는 게 아쉬워,  밤에 다시 소들이 놀던 해변을 찾아가 보았다. 고요한 곳에서 삼각대를 세우고 야경을 촬영하는데 정말, 아무도 없는 절벽이기에 사실 겁이 좀 나긴 했다.

방파제 아래쪽으로 푸르스름한 빛이 촬영되었는데 뭔지는 모르겠다. 육안으로는 관찰되지 않았던 것인데?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마도 야광충(Noctiluca)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야광충은 주로 서해안에 분포하는데 물리적인 자극을 받으면 발광한다. 파도가 칠 때 바위에 부딪히는 식으로 충격을 받아 빛을 남긴 것 같다. 저 때 알았다면 좀 더 가까이 가봤을 텐데, 아쉽다. 서칭을 해보니 몰디브의 해안이 이런 현상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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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초소 쪽의 풍경. 사실 초소 사진은, LCD 상으로는 까맣게 나와 실패한 사진이었는데 라이트룸으로 최대한 살려냈다. B 셔터에 필요한 리모콘이 없어 30초밖에 노출을 주지 못한 게 너무 아쉽지만, 거친 느낌과 오묘한 빛의 조화가 마음에 든다. 소들도 30초 동안 가만히 나를 응시하였다. 사실 당시에는 소들의 소리만 들리고 아무것도 안 보였던 상황. 옆으로는 절벽이 있었고, 앞으로는 서서히 다가오는 듯한 소의 숨소리, 그리고 버려진 초소…  촬영하고 돌아와서 혹시 초소 안에 누군가 있지 않을까 했지만.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초소 아래에는 안마항이 있었는데,  긴 노출 때문에 작은 빛들도 굉장히 밝게 보인다.  섬과 섬을 이어주는 방파제와 함께 죽도로 이어지는 전봇대도 보인다. 마치 별빛을 밝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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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지나고 다시 찾은 해변, 썰물 때라 물이 굉장히 많이 빠져있었다. 소들은 뭘 하는지 바위들이 드러난 곳까지 나가 있어서 모래사장에서 제법 멀리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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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쨍쨍하면 어김없이 흰점박이꽃무지들이 날아다닌다. 개중에 한 녀석의 딱지날개에는 진드기가 무임승차 중. 어떻게 옮겨붙었는지 모르겠지만 비행체를 타고 날아다니는 벌레라니, 뭔가 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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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쪽에서 마을로 돌아오는 중간지점에 왼쪽으로 오래된 길 같은 게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섬을 가로질러 10분 정도만 걸어 올라가면 금세 섬의 능선에 다다른다.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던 섬 북쪽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실제로 보면 숨이 탁 트이는 멋진 광경이다. 바람이 잦아 키 작은 나무들이 많다.

 

 

신기리 마을의 중간 즈음, 여러 개의 논 사이로 커다란 당산나무 세 그루가 보인다. 수령이 꽤 많아 보이는 팽나무인데 이곳에는 나무에 달아 만든 해먹이 있었다. 해먹은 어망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굉장히 질긴 편이었다. 해먹에 올라가려고 손을 짚었더니 손이 제법 아팠다. 날카로운 느낌이라고 할까? 언젠가 자연다큐에서 그물에 걸린 상어와 가오리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 고통이 어땠을까 싶었다.

출장으로 지친 몸을 해먹에 뉘이자 천국이 펼쳐졌다. 몸무게를 고르게 분산시킨 그물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멋졌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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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의 크기, 어마어마하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팽나무들과 달리 낮게 자라있다. 해풍이 심한 탓일 거다.

 

 

이쪽은 어제 왔던 저수지 근처의 초지. 사람이 많지 않아 이런 곳들은 금세 풀이 자라나 버린다. 그나마 소들의 방목으로 계속해서 초지가 유지된다.

섬 곳곳의 작은 길들까지 포장되어 있다. 차로 다니기엔 나쁘지 않지만, 왠지 흙 내음 짙은 오솔길이 아닌 것은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평온하고 따듯했던 안마도의 풍경.

 

 

구획을 나누어 소들을 방목하기 때문에 이렇게 철장으로 길을 중간중간 막아 놓았다. 들어가고 나가는 것은 상관없지만 문단속을 잘해야 소들이 마을로 나가지 못한다. 능선 아래쪽의 방목지. 콘크리트길 위에 조그마하게 보이는 것들이 다 소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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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해군기지가 있는 월촌리의 방목지. 길 끝에 보면 전기차가 보인다. 마을 주민들은 이 전기차로 소떼나 방목지를 확인하러 다니거나 마을 볼일을 본다. 아무래도 주유소 하나 없는 섬에서는 가장 유용한 교통수단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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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해군기지가 보인다. 섬 가장 높은 곳에 기지 같은 게 보이는데 아래에서 위로는 크레인으로 보급품을 끌어올 리는 것을 보았다. 강원도 산골도 아닌데 케이블카가 있다니 재미있다. 그나저나 좀 더 들어가 보려다 좁은 길에 막혀 결국 차를 후진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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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은 섬의 남동쪽으로 가보았다. 안마도에서 쉽게 발견할 수있는 도둑게, 크기도 제법 크고 색깔도 아름답다. 게다가 이 녀석들은 바닷물 없이 잘 살기 때문에 애완용으로도 키울 수 있다.

 

 

차를 끌고 조금 더 가자 이번에는 길이 끊겼다. 이 섬에서 유일하게 해안도로로 포장이 안 된 곳인데 지금 한창 포장이 진행 중이다. 몇 십 년에 걸쳐 다져진 정겨운 오솔길은 해안관광도로라는 미명하에 콘크리트로 다져지고 말아버린다.

섬 주민분의 말로는 안마도 앞바다에 펄이 밀려와 어획량이 많이 줄었고, 이제는 별다른 큰 수입원이 없다고 한다. 그나마 낚시 포인트가 많아 낚시꾼들이 방문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마저도 돈 많은 육지 사람들이 배를 사서 왔다 갔다 하는 통에 시원치 않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래서 여러 묘책 중 하나로 포장되지 않은 이 길을 해안관광도로로 포장하게 되었다는데, 그래도 섬이 가진 절경들과 함께 이곳을 좀 더 자연 친화적인 산책로로 꾸몄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솔길의 끝에는 이미 포장을 마친 도로가 있었다. 예전에는 소똥구리들이 바글바글해 길 위가 온통 새카맸다고 한다. 아마 이 오솔길은 소똥구리들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  이 길이 포장되기 시작하면 오솔길과 함께 소똥구리들도 사라질 운명이다.

 

 

멀리 절벽 옆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한우들, 해풍을 맞고 푸른 초원에서 방목된 이 소들은 고기가 담백하고 향긋하다 한다. 바다 건너 안마군도의 섬 중 하나인 오도와 황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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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돌아가는 길에 소들에게 다시 블록 당했다. 정말 가까이 갈 때까지 빤히 쳐다보기만 한다. 이 녀석들을 보면서 소들이 얼마나 산을 잘 타는지 처음 알았다. 좀 더 다가가자 순식간에 오른쪽 경사면으로 뛰어 올라갔다. 이렇게 돌아다니는 통에 소들이 살이 잘 안 쪄서 고민이란다.

 

 

배를 타러 돌아온 안마항. 이곳에서 나갈 때는 별다른 여객선 대기실이 필요 없이 그냥 나가는 배를 타면 된다. 물론 섬 내에 카드 기계가 일절 없으므로 현금으로 표를 끊고 승선하게 된다. 평일이고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우리나라 남해나 서해 등 섬 대부분을 돌아다니는 카페리, 철선은 이런 구조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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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도를 거쳐 2시간 30분 만에 계마항에 도착했지만 영광의 육지를 바로 앞에 두고 문제가 생겼다. 물때가 늦어져 항에 정박하지 못하고 방파제에 대기하게 된 것이다. 약 30-40분 정도 물이 차기를 기다렸다. 중국 쪽에서 밀려오는 펄 덕분에 이런 일이 잦아진다고 한다.

 

 

심심하던 차에 배를 기웃거리다 등갓 위에서 제비집을 발견했다. 아니 이 배가 육지에 계속 있는 것도 아니고, 섬에 계속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었다. 둥지에는 새끼들이 분명히 있는데…? 기다려 보니 역시나 어미 제비가 날아든다. 먹이까지 급여하는데 성공! 다시 날아 내려온 어미 제비는 잠깐 호버링을 하더니 다시 배 바깥으로 날아간다.

아니 그러면 이 배가 안마도로 떠날 때 이 어미 제비들은 배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머무르며 먹이활동을 하다가 다시 배가 떠날 때를 맞춰 둥지에 앉는다는 건가?? 아니면 배가 떠나는 걸 모르고 하루를 쩔쩔매다가 배가 들어오면 먹이를 물어오는 걸까? 배에 집을 지으려면 며칠은 걸렸을 텐데 대체 집은 어떻게 지은 거지? 그렇지 않아도 전세난에 허덕이고 있는 난, 이 제비들의 묘책이 자못 궁금해졌다. 아, 하루에 40km를 이동하는 배에 제비집이라니!

 

 

3일 동안 오직 섬 밥으로 끼니를 해결했던 우리는 고기가 너무 그리워서 고창에 있는 맛집을 검색했다. 삼겹살과 육회비빔밥, 그리고 막국수로 화룡점정을 찍으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언제나 섬 여행은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화창한 날씨였다면, 텐트 따위가 있었다면, 해수욕을 할 수 있었다면, 하고 말이다. 하지만 가는 길이 고된 만큼 안마도는 매력적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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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인

박상인

케묵은 니콘 레인지파인더 카메라와 방구석에 놓여 있는 더플백을 번갈아 쳐다보며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시대착오자 / goliathus

* 블로그 : sangin1122.tistory.com
박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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