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령공주의 땅 – 일본, 야쿠시마 여행기 #1

 

978120194_2y1bl4sx_00

 

야쿠시마(屋久島, Yakushima)는 일본 남서쪽 80km 해상, 태평양과 동중국해가 교차하는 곳에 있는 섬입니다. 제주도의 1/4 정도의 작은 크기지만 1,936m의 미야노우라다케(宮之浦岳)를 품고 있고, 7,200년을 살아온 조몬스기(縄文杉)가 인간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는 곳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もののけ姫)의 실제 무대이기도 한 야쿠시마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편은 조몬스기를 뵈러 떠난 하루의 기록입니다.

 

978120194_tjpiv9gx_20150502-_dsc82401

 

조몬스기를 뵈러(7,200살의 할아버지께는 뵙는다는 표현이 맞겠지요.) 가는 루트는 보통 3가지입니다.

가장 많은 분들이 선택하는 아라카와(荒川) 코스는 왕복 22km로 약 10시간 소요, 원령공주의 숲으로 알려진 시라타니운스이쿄(白谷雲水峡) 코스는 25km로 12시간이 소요됩니다. 제가 선택한 요도카와(淀川) 코스도 전체 25km 정도이지만 대부분이 등산로인 루트입니다. 요도카와 산장을 지나 미야노우라야마(宮之浦山)의 여러 계곡과 능선을 거쳐 최정상까지 올라갔다가 조몬스기를 거쳐 아라카와로 나오는 코스입니다. 이 코스로 다녀온 한국인들은 많지 않은 것 같은데, 그중 한 분인, 존경하는 벗 정연순 변호사의 추천에 따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새벽 3시에 기상해서 4시에 숙소를 출발했습니다. 야쿠시마 자연관에서 아침 도시락을 먹고, 아라카와 코스로 올라가는 일행을 내려주고 요도가와로 향했습니다. 휴대폰 신호도 GPS도 안 들어오는 산길을 달려 요도가와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벌써 6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소박한 등산로를 따라 숲으로 들어섰습니다.

 

 

숲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처음 만난 것은 이끼로 덮인 키 큰 나무들의 풍경이었습니다. 야쿠시마는 섬 전체가 화강암 덩어리입니다. 보통의 화산섬들과 달리 지각 융기에 의해 생긴 섬이지요. 흙이 매우 귀하다 보니 이렇게 뿌리가 드러난 나무들이 많습니다.

어디선가 ‘태고의 숲’이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는데, 숲에서 받은 인상이 바로 그랬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았을 것 같지 않은 오래된 숲속으로 계속 걸어 들어갔습니다.

 

978120194_mh2crtqu_20150502-_dsc83271

 

와이프의 뒷모습인데, 나무들의 크기도 가늠하실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제대로 산을 타본 적 없는 사람인데, 숲으로 산으로 잘 걸어 다녀서 놀랐습니다. 14시간 반의 트레킹 후 넉다운 된 건 어쩔 수 없었지만요. (사실 요도가와 코스는 당일치기라기보다 1박 2일이나 2박 3일 코스라는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신령한 숲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어디선가 숲의 정령이 나타나도 조금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풍경, 숲은 온전히 그런 신비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숲을 빠져나가는 일행들의 뒷모습입니다. 아직은 상태가 좋아 보이는군요.

 

978120194_7d248mi3_20150502-_dsc85201

 

하나고에고(花之江河)라는 곳입니다. 고원에 있는 습지인데, 6월 중순 이후로는 이름 그대로 꽃이 만발한다고 합니다. 꽃을 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978120194_i16n5rzd_20150502-_dsc85202

 

고사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야쿠시마는 일본 전역의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급격히 높아지는 고도에 따라 층층이 다른 생태계를 보여주는데, 맨 아래 계곡의 고사리군부터 그 위의 삼나무 숲, 그 위의 고사목들이 있는 너른 평원, 가장 높은 곳의 조리대 평원까지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978120194_zuxvlnnz_20150502-_dsc85451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공중에 띄워놓은 데크 위를 걸었습니다. 발을 헛디디면 무릎까지 푹 빠집니다.

 

 

드디어 나게시다이라(投石平)에 도착했습니다. 원령공주의 늑대 – 모로가 뛰어다니던 그곳입니다. 말 그대로 바위를 던져놓은 것 같은 평원이었습니다.

 

978120194_1nwomgk3_20150502-_dsc85911

 

이제부터는 능선길입니다. 높고 낮은 몇 개의 봉우리를 거쳐 미야노우라다케까지 이어지는 길을 걸었습니다. 산의 중턱에는 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잠시 멈춰선 와이프의 시선을 좇으니, 한 마리 사슴이 보입니다. 열심히 조리대를 씹는 사슴은, 사람을 피하지 않습니다. 이 땅이 자기의 것이라는 듯이요. (실제로 야쿠시마에는 주민의 수만큼 많은 사슴과 원숭이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능선을 따라 올라갑니다. 거대한 바위와 조리대숲의 풍경 속으로 계속 걸었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바다도 볼 수 있다는 얘기에 발길을 재촉합니다.

 

 

정상이 가까워졌습니다. 평평한 데크를 밟으며, 구름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길을 걷다보니 익숙한 장면이 보입니다.  일본에서도 발견하니 신기하더군요. 대부분의 일본인은 그냥 지나쳐가는 것 같았지만요.

 

978120194_bagqaipb_20150502-_dsc87406

 

 

드디어 정상입니다. 해발 600m에서 시작해 1,936m까지 올라왔으니 제법 올라온 셈입니다. 아쉽게도 구름 속에 들어와 버려서 먼 풍경을 볼 수 없었고, 예정보다 두 시간이 늦어서 마음이 급했습니다. 간단히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조몬스기가 계신 곳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굴곡은 있지만 이제부터는 내려가는 길이죠.

 

 

한참을 뛰는 둥 나는 둥 달려서 다시 삼나무 숲으로 들어섰습니다. 이쪽 길은 조몬스기를 뵈러 오는 다수의 관광객이 다니는 길이다 보니, 데크도 좀 더 잘 만들어져있고 길 폭도 넓었습니다.

 

 

야쿠시마에서는 삼나무가 1,000살이 넘어야 ‘야쿠스기(屋久杉)”라 부른다고 합니다. 그보다 어린(?) 삼나무는 쳐주지 않는 거죠. 조몬스기를 뵈러 가는 길에는 야쿠스기라 불러야 할지, 혹은 그렇게 부르면 안 될지 알 수 없는,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은 되었을 삼나무들이 숲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978120194_eazuwacj_20150502-_dsc89031

 

그리고 마침내 조몬스기를 뵈었습니다. 이미 늦은 시간, 사람들이 떠난 텅 빈 데크 위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알 수 없는 경외감에 휩싸여 수 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7,200년 – 인간의 역사만큼 오랜 시간을 살아온 조몬스기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해왔을까요? 찾아왔을 수많은 인간에게 무슨 얘기를 들려줬을까요?

시간은 이미 4시 30분 – 정상적으로 내려가면, 종착지까지 9시가 넘어야 도착입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저 가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그리고 산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윌슨그루터기에 도착했습니다. 3,000년을 살았고, 밑동이 잘린 지는 30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안에 들어가서 하늘을 보면, 이런 풍경을 보여줍니다. 하트 모양의 하늘과 숲을 보다가, 새순이 돋아나는 걸 발견했습니다. 윌슨그루터기는 여전히 살아있었습니다.

 

978120194_s79pyie1_20150502-_dsc89750

 

마지막 야쿠스기를 지나, 예정보다 3시간 늦게 철도 길에 도착했습니다.

 

 

이 철도는, 야쿠시마의 삼나무들을 베어서 운반하던 궤도라고 합니다. 야만의 흔적들은 이제 옛 시절의 기억으로만 남아있었습니다.

 

978120194_aujsxscm_20150502-img_56131

 

철도를 따라, 해가 진 숲을 걸어 – 어디에도 불빛은 없었습니다 – 종착지인 아라카와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긴 하루였습니다.

 

To be Continued…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Starless님께 있습니다. 텍스트와 이미지 등 콘텐츠의 무단 사용 또는 도용 시 저작권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콘텐츠 사용은 해당 작가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starless

starless

기업에서 기획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30년 쯤 하면 좋은 사진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페이스북 : www.facebook.com/stagereal
* 블로그 : youngbokim.com
starless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