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인연을 만나다 – 인도여행 #4

누군가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렇게 고생 끝에 비행기를 타고 델리 공항에 도착했다. 경비행기를 타고 와서 그런지 우리는 출구까지는 버스로 이동해야 했다. 좌석은 없고 모두 서서 가야 하는 빨간색 버스였는데, 다들 얼굴에 설렘이 가득했다. 나도 역시 설레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긴장감이 몰려왔다.

사실 생각해보면 제대로 된 델리를 겪는 건 처음이었다. 인도 땅을 처음 밟았던 곳은 델리가 맞지만, 그때는 공항에서만 있다가 바로 바라나시로 향했을 뿐이다. 과연 공항에서 나갈 때 몰려드는 택시기사들을 잘 대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들의 다채로운 사기행각은 이미 공부를 하긴 했지만, 막상 부딪혔을 때 잘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일단 친구와 난 공항 문을 나서자마자 가장 먼저 프리페이드(Pre-Paid) 택시를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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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항 문을 나서니 역시나 여러 명의 택시기사가 몰려들며 자기 택시를 이용하라고 연신 호객행위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귀머거리인 냥 앞만 보고 걸었다. 다행히 프리페이드 택시를 타는 곳이 눈에 들어왔고, 우리는 별일 없이 숙소가 있는 뉴델리역까지 티켓을 끊고 이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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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가는 동안 시내를 둘러보는데 바라나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지나가는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아서 활기차 보였다.

역에 도착한 우리는 숙소를 찾아갔다. 델리의 숙소는 바로 피오르코라는 호텔이었다. 여행 전 숙소를 예약하면서 ‘길어야 일주일인데, 숙소만큼은 좋은 곳으로 잡자’ 해서 온 곳이다. 나름 호텔도어맨까지 있다. 프론트에서 키와 함께 절 때 빼놓을 수 없는 와이파이 비번도 받아 예약한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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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 깨끗했지만 햇빛이 들지 않아서 약간 습했다. 짐을 풀자마자 난 바게지트에게 문자를 보냈다. 바게지트는 내 인도 친구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얼굴도 못 본 사이였다. 그저 문자로만 몇 번 이야기해본 게 다였다.

며칠 전 델리공항에 도착해서 바라나시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SNS로 메시지 하나가 왔다. “안녕! 친구! 내 이름은 바게지트야. 인도에 온 걸 환영해! 난 뉴델리에 살고 있어.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알려줘!” 라는 메시지와 인도 전화번호가 남겨져 있었다.

‘뭐지?’ 분명 모르는 사람이었다.

 

 

뜻밖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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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친구 켄리

 

대학교를 다닐 때 즈음, MSN이라는 메신저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어떻게 친구추가 됐는지는 모르지만, 한 인도인 소녀와 친구가 됐다. 사진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우린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동안 잊고 있다가, 페이스북이 유행할 무렵 또 어떻게 우리는 소식이 닿았다. 아마 페이스북을 한다면 어떤 일이지 알 거다.

그런 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간혹 어떻게 친구 추가됐는지도 모르는 친구들이 있다. 바게지트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아무튼, 바게지트와 친구가 된 이후로 타임라인에 가끔 인도 사진이 뜨긴 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메시지의 정체를 궁금하다가 보니, 인도에 도착해서 ‘나 여기 인도 왔어요’라는 사진을 올린 게 기억났다. 나는 신기하기도 하고 의심도 들었지만, 이 머나먼 나라에서 온 첫 메시지라 반가운 마음에 답장을 보냈다. 난 그에게 우리는 지금 바라나시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바라나시를 돌아본 후 뒤에는 다시 델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내 인도 번호를 남겼다.

정말 기분이 이상하면서 흐뭇했다. 난 자랑스럽게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친구를 바라보았다. 열심히 졸고 있다. ‘대단한 놈’. 피곤하긴 피곤했나 보다. 당시 우리는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그때까지 26시간 정도 깨어있었다. 피곤할 만했다.

바라나시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델리로 돌아오니 바게지트가 생각난 것이다.

‘과연 만나자고 하면 정말 나올까?’
‘만약 바게지트가 만나자고 하면 나는 만나러 가야할까?’

호기심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두렵기도 했다. 타지에서, 그것도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은 정말 많은 고민을 하게 했다. 하지만 내 손은 어느새 바게지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곧 바게지트의 답장이 왔고, 우린 오후 3시쯤 만디 하우스(Mandi House)라는 곳에서 보기로 했다

 

 

우리는 마치 오랜 친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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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둘러 약속장소로 미리 나갔는데, 시간이 좀 남아 인디아 게이트(India Gate)를 구경하기로 했다. 인도가 영국 식민지 시절, 독립의 약속을 믿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인도 군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위령탑이다. 사람이 엄청 많은 걸 보니 꽤 유명한 관광지인 것 같았다.

어색했던 델리를 이리저리 구경하면서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바게지트와의 약속 시각이 다가와 우린 릭샤를 타고 약속장소인 만디 하우스로 출발하려고 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잠시 당황했다. ‘전화가 왜 울리지? 여긴 인도인데?!’ 바게지트였다.

“창진, 바게지트인데 지금 어디에요?”
“친구랑 인디아 게이트에 있어요. 지금 릭샤 타고 만디 하우스로 이동하려구요.”
“No Problem! 제가 지금 데리러 갈께요.”

그는 차로 5분 뒤에 도착한다며 직접 데리러 온다고 하였다. 잠시 후 바게지트한테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서로를 찾기 시작했다. 무슨 색 옷을 입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손은 흔들어보라고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찾다가 한 인도인과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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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서글한 인상에 인자한 눈웃음! 페이스북 프로필에서 봤던 그 눈빛! 한눈에 그가 바게지트라는 것을 알았다. 우린 서로 웃었고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친구에게 바게지트를 소개해줬고, 바게지트에게 친구를 소개해줬다.

흔히 사람은 눈을 바라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내가 그러했다. 나는 그에게 어떤 의구심도 들지 않았고 아무런 허물없이 대화하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는 몇 년 만에 만나는, 오래된 친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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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게지트는 인도에서 방송국 쪽에서 일하고 있었고, 나이는 나보다 한 살이 많았다. 결혼해서 와이프랑 둘이 사는데, 아직 아이는 없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바게지트의 와이프도 나랑 이미 페이스북 친구였다는 것. 바게지트의 와이프와 내 인도 친구인 켄리가 같은 대학을 나왔다더니, 그래서 연결이 됐나 보다.

그는 차에 우리를 태우고 델리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기 시작했다. 우린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인도에 오면 대부분 물갈이를 겪는다. 쉽게 말하면 장염 비슷한 건데, 두통에 계속 설사가 이어지는 증상이다. 여행 기간이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서, 우리는 물갈이만큼은 꼭 피하자고 다짐했다. 물갈이는 보통 물 때문에 오는 증상이라, 우리는 심지어 양치할 때도 생수를 사다가 했을 정도였다. 누가보면 인도까지 가서 현지 음식도 안 먹고 뭐하나 싶겠지만, 인도에 온 목적이 사진이었던 나에게는, 하루라도 아프면 큰 시간 낭비였다. 하지만 인도인 친구와 함께 인도 음식을 먹으러 왔는데 이마저 경계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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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게지트는 우리를 델리의 쇼핑중심지인 코넛 플레이스(Connaught Place) 근처 식당으로 우릴 안내했다. 현지인이 소개해준 식당이라는 점에서 내심 기대가 컸다. 식당은 겉으로 보기엔 좀 허름해 보였고, 간판 중간에 Chinese라는 단어가 보여 조금 당황스러웠다. 바게지트는 그런 내 눈빛을 읽었는지, 이곳이 유명한 맛집이라고 말하며 안심시켰다. 식당에는 굉장히 많은 메뉴가 있었지만,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우리는 바게지트가 골라주는 음식을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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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탈리와 탄두리 치킨을 비롯한 여러 음식이 나왔다. 생김새는 투박했고 단조로워 보여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식을 하는데,

‘하…!’

너무 맛있었다. 인도 음식이 이렇게 맛있는 건지 몰랐다. 물갈이라는 단어는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우리는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먹으면서 바게지트와 대화를 나눴지만, 솔직히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 미친 듯이 먹었다. 너무 맛있게 먹고 음식값을 계산하려는데 이미 바게지트가 계산을 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르는 내게 바게지트가 말했다.

“내일 우리 집에 놀러 와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요. 그리고 내일 쇼핑할 때는 가방이 무거우니까, 내 차에 넣어뒀다가 쇼핑 끝나면 우리 집으로 가요. 공항까지도 태워다 줄게요.”델리 일정을 마치고 내일 밤 비행기로 떠나기 전에, 쇼핑을 좀 할 거라고 말한 게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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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했다. 인도 현지인 집에 방문한다니, 특별하고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너무 큰 호의여서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했고, 만에 하나 집에 갔다가 일정이라도 틀어지면 귀국할 때 큰 차질이 생길 것 같았다. 속으로는 엄청 가보고 싶었지만, 일단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바게지트와는 내일 연락하자고 이야기한 뒤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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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진

김창진

어디서든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한명. 주제가 있는 사진을 찍고 싶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오늘도 기억에 남는 하루 되세요.

* 블로그 : blog.naver.com/urgaia
김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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