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안장을 닮은 섬 #1 – 대한민국,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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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도()는 영광군의 계마항에서 배를 타고 송이도를 거쳐 약 2시간 30분을 들어가야 닿게 되는 전남 영광군 낙월면의 섬이다. 워낙 외지에 있다 보니 온라인에서도 ‘안마도 민어 루어낚시’나 ‘안마도 지네’ 정도 말고는 별다른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해수욕을 할 수 있는 모래사장이나 특별한 관광지가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나를 사로잡았던 게 하나 있었으니 바로 해수욕을 하는 한우였다. 세상에 바닷물에 들어간 소라니? 그것도 주인이 물에다 밀어 넣은 게 아니라 스스로 바닷물에 들어가 해수욕을 한단다. 이것만으로도 안마도를 가 볼 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내 반드시 한우와 함께 미역을 몸에 감고 사진을 찍으리라’는 다짐과 함께 출장길에 올랐다.

 

 

계마항에서 하루에 딱 한 척, 차를 도선할  수 있는 ‘신해 9호’가 유일하다. 계마항은 서해에서 물때에 따라 수심이 급변하는 곳이라 하루건너 배가 뜨는 시간이 달라진다. 게다가 차를 많이 싣는 날에는 순서가 밀려서 꼼짝없이 하루를 기다려야 들어갈 수도 있으므로, 최소 도선 1시간 전에는 차를 주차해 줄을 세워 놓아야 한다.

그날은 7시 30분 배였다. 우리는 그보다 앞선 5시 30분에 미리 도착해 줄을 섰는데도, 들어간 순서는 다섯 번째였다. 처음에는 사진 속의 배가 섬에 들어가는 줄 알았다. 아무리 못해도 자동차 3대분의 자리를 차지할 만큼 큰 트럭이었다. 트럭을 보면서 오늘 들어가기는 글렀구나 싶었다. 그렇게 좌절감에 휩싸일 뻔했으나, 도선 할 때 트럭 기사가 운전대에 두발을 올리고 자는 걸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계마항 여객선 대기소다. 깔끔하게 지어진 건물이지만, 상주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혹시나 배 시간을 알고 싶다고 해도 네이버 지도에서 계마항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전화번호로는 연락하지 않는 게 좋다.  전화를 걸면 ‘너 같은 놈 하루에 수십 명도 더 된다’는 말투의 농협인지, 수협 공무원인지가 한숨을 쉬며 전화를 받는다. 그 노고는 알겠지만 배 시간 정도는 알려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대기소 문에는 여객선 출항시간이라고 쓰여 있는데, ‘조금, 무심’ 뭐 이런 암호 같은 거로 표시돼 있다. 낚시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런 ‘물 때 표’만으로는 대체 오늘 몇 시에 배가 뜨는지 알 길이 없다. 그나마 우리 배 시간과 비교했을 때 오전 7시 30분이 ’12물’ 정도라는 것까진 알 수 있었다. 여객선 출항시간을 가장 확실하게 확인하는 방법은 아래 보이는 사무장에게 전화 걸어서 물어보거나 가서 묶게 될 안마도의 민박집 주인아주머니께 전화해서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다. 가장 신속하고 정확한 방법이다. (자세한 물때는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곱 시가 넘자 슬슬 사람들이 몰려든다. 작고 한산했던 여객선 대기소는 맛집 마냥 붐비기 시작한다. 이때 순서가 굉장히 중요한데, 방법은 아래와 같다.

 

안마도 배편 이용방법

 

평일이면 크게 문제 될 게 없지만, 주말일 경우 기다리는 시간 때문에 은근히 피 말릴 수 있다. 우리는 주 중에 방문했는데, 공교롭게 이날 안마도에 상을 당한 주민이 있어 사람이 꽤 많았다. 위의 순서대로 준비하고 있지 않다가 하루를 날릴 뻔했다. 아무쪼록 주말에 들어가는 방문객은 차가 배에 실릴 때까지 긴장의 끈을 절대 놓으면 안 된다. 차는 되도록 바다 가까이 세워야 하는데, 약간의 틈이라도 있으면 이를 잘 아는 사람들이 그 사이로 들어가 줄을 서버리기 때문이다.

 

 

곧 도선하게 될 신해 9호. 배는 약간 떨어진 곳에 정박해 있다가 도선 하러 이동해 온다. 까맣게 그을리신 선장님의 포스가 넘치는 자세와 표정이 인상적이다. 자신이 움직이는 배가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두 시간 동안 기다린 끝에 드디어 도선을 하니, 그제야 긴장이 풀린다. 밤새 달려오면서도 섬에 들어가나 못 들어가나 했는데,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똥줄 태웠다. 차량도선이 끝나면 탑승객들이 들어온다. 이제 두 시간 반의 기나긴 항해가 시작된다. 한 시간 반쯤 가면 송이도에 먼저 하선하고 또다시 한 시간을 가야 안마도가 나온다. 도선 한 차들 사이로 섬으로 들어가는 꽃상여가 보인다.

 

 

안마도에 접근하기 전 보이는 안마군도의 여러 작은 섬들을 지나친다. 횡도, 오도, 선만도, 소석만도, 죽도 등을 묶어 안마군도라 부른다. 이리저리 바다 위를 살피는데, 뭔가 장풍을 맞은 듯한 저 나무들이 있는 풍경이 보인다. 대체 무슨 연유일까. 생김새를 보니 대나무 같기는 한데… 시간이 흘러서, 드디어 안마도와 방파제로 연결된 죽도가 등장한다. 200mm 렌즈를 동원해 소가 어디 있나 살펴보지만, 아직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설마 없는 건가?!

 

 

두 등대 사이를 지나서 안마도로 진입했다. 죽도 방파제 옆 모래사장이 나오고 드디어 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 같은데 좀 더 큰, 누런 것들이 바닷가에 널브러져 있다. 그렇다. 그렇기 바라마지않던 소였다. 이런 팔자 좋은 것들, 햐! 진짜 소들이 바닷가에 누워있다. 이것들은 바다사자도 아닌데…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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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까지 차로 다섯 시간, 안마도 까지 두 시간 반, 총 7시간 반 만에 드디어 안마도에 발을 들였다.

 

 

특별히 민박을 예약하지 않은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민박에서 묵기로 했다. 첫눈에 봐도 깔끔해 보이는데 주변의 민박집들도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다. 요즘은 아무리 낙도라 해도 순간온수기나 보일러 덕에 집보다도 뜨거운 물이 잘 나오는 것 같다. 굉장히 깔끔한 2층, 1층은 편히 쉴 수 있는 소파와 TV, 주방과 식사 공간이 있고 2층에는 보는 것처럼 객실들이 있다. 총 5개의 객실이 있고 뜨거운 물이 콸콸 잘 나오고 수건도 가져다주신다. 도서 지역의 민박치고 굉장히 깔끔해서 2박 3일 동안 너무 편하게 지내다 왔다. 냉장고는 사진에 보이는 공용 냉장고를 이용하면 된다.

 

 

짐을 대충 풀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신기리 마을의 한우 방목지. 푸른 초지 위에 한우들이 자유롭게 방목되고 있다. 에덴동산이 따로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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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수로에서 발견한 베치레잠자리 수컷. 왕잠자리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잠자리가 논과 밭 위로 어마무시하게 날아다닌다

 

 

안마도 선착장에서 해변 길을 따라 왼쪽으로 계속 이동하면 죽도 방향으로 콘크리트 도로가 나오는데, 산 옆의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다. 섬과 바다의 온도 차가 큰지 한낮에도 해무가 눈 앞을 가리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마치 한계령 같은 느낌이었다.

길 위의 소똥이 늘어가는 걸 보니 소들과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길에는 소들의 출입을 관리하는 빗장이 설치되어 있는데, 열고 들어가는 것은 상관없지만, 소들이 나가지 않도록 잘 닫아두어야 한다. 방파제에 거의 다다를 무렵 또 한 차례 해무가 밀려왔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밤에는 에어컨처럼 시원했던 저 바람이 한없이 그립다. 다시 길을 나선 뒤, 드디어 안마도의 서북쪽 끝 해안에 다다랐다. 방파제를 넘으면 죽도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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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의 한우가 풀을 뜯고 있다. 안마도의 소는 방목으로 키운다. 사료가 아닌 풀을 뜯어 먹기 때문에 고기의 향이 무척 향긋해 인기가 높다고 한다. 따로 소를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진짜 한 마리 납치해도 모를 정도다.

장난삼아 한 녀석을 골라 공수도로 이마 정중앙을 때려 실신시킨 후 바베큐를 굽자고 했다. 무리를 돌보는 듯한 수소가 우리에게 한발자국씩 다가오는데, 묵직하고 둔탁한 소의 발소리가 생각지도 못한 두려움을 줬다. 마치 작은 초식공룡이 다가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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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반대편에서 생각지 않았던 절경이 펼쳐졌다. 절경 앞에서 크게 심호흡을 해본다. 그런 중에 뜬금없이 생각난 따듯한 드립 커피. 이래서들 캠핑을 하는구나… 아래는 까마득한 절벽이다. 대략 20m 정도 돼 보였다. 해금강이나 소금강을 무색게 하는 깎아지는 벼랑과 그 아래로 바다를 숨겨버린 해무가 어우러져 장관을 만든다.

날씨가 맑았어도 좋았겠지만, 인터넷 검색으로는 알 수 없었던 안마도의 근사한 장면을 발견한 것 같았다. 잠시 풍경사진가로 빙의해보지만, 눈앞의 감동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 실력 탓을 할 수밖에… 이런 장면을 만나면 어떻게 찍지 고민하다 결국 달력 사진을 찍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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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절벽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잠깐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바로 저 아래로 추락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제법 강해서 벼랑 끝에 서서 멍하니 감상에 젖어있는 것은 정말 위험한 행동이다. 심지어 곳곳에 소똥들까지 있어 미끄러질 수도 있으니,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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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똥이 많은 만큼 안마도에는 소똥풍뎅이 종류의 유충들이 제법 보였다. 성충으로 발견된 것은 렌지소똥풍뎅이였는데, 이 시기의 우점종(優占種)으로 보인다

 

안마도에는 초지가 많다 보니 풀을 먹고 사는 곤충들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곤충이 바로 풀무치다. ‘네 집을 돌아가라’며 손을 흔드는 듯한 풀무치 약충(若蟲). 신기한 건 풀무치들의 몸 빛깔이 제각각이라는 거다. 녹색을 공통으로 띠고 있지만 그 밖의 다른 부분들은 적색이나 노란색이다. 아마도 사는 환경에 따라 다양한 색을 띠는 게 아닌가 싶다. 사진 속의 풀무치는 붉은색이 도드라졌다. 풀무치 뒤로 보이는 초소가 바로 이 해변의 상징물과도 같은 랜드마크이다

 

 

 

이제 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과연 소들이 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드디어 눈앞에 소들의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바닷물이 아직 차가 왔는지 물에 들어가 있는 소는 없었다. 햇볕 쬐기가 좋았는지 일광욕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몸에 붙은 기생충을 떨어내면서 풍경을 감상 중인 듯했다. 언젠가 고래 고기의 맛을 ‘수육을 바다에 담갔다 먹는 맛’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왠지 이 녀석들도 그런 맛이 아닐까 하는 기우가 들기도 했다. 설마, 아니겠지…

좀 더 가까이에서 소들을 보고 싶어 내려갔더니 수소 한 마리가 성큼 다가온다. 적당히 간격을 둘 줄 알았는데, 눈앞까지 오려고 해 일단 후퇴했다. 어릴 때 할머니 댁 외양간에 있던 소도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면 그렇게 싫어했는데, 이제 소랑 친하게 지내는 건 틀린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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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돌아가는 길에 소들에게 ‘길막’ 당했다. 차로 오가다 보면 소들이 가끔 가로막는 겨우는 있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다. 아무리 ‘빵빵’거리며 클랙슨을 울려도 소들은 모르쇠다. 그저 제 갈 길 가기 바쁘고 풀을 뜯느라 정신없다. 결국 손으로 ‘훠이~ 훠이~’ 휘저으며 길을 만들어 내려왔다.

한 번은 소가 차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데, 여차해서 이 녀석들이 차를 밀어버리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는 정말 벼랑으로 떨어지는 거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우리는 소님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최대한 공손히 지나왔다.

 

 

우리는 다시 신기리로 돌아 나왔다. 해무에 갇힌 신기리의 오후 풍경은 조용한 시골 농촌의 느낌이다. 왠지 밥 짓는 냄새가 날 것 같은 분위기랄까. 할머니 댁에 가면 아궁이에 불 지피던 기억이 떠오른다. 참 좋았는데…저수지 바로 아래 폐가가 있었다. 신기리에는 밭이나 논농사를 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지만, 안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월촌리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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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안마도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작은 고깃배들이 한데 뭉쳐 정박해있는 모습이 재밌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배의 조타실은 다마스를 잘라 만든 것 같았는데, 괜히 탐났다. 저런 배 하나쯤 있으면 진짜 신나게 탈 수 있을 텐데… 어느새 해무가 바다 한가운데로 몰려와 우리가 지나왔던 건너편의 산자락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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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인

박상인

케묵은 니콘 레인지파인더 카메라와 방구석에 놓여 있는 더플백을 번갈아 쳐다보며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시대착오자 / goliathus

* 블로그 : sangin1122.tistory.com
박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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