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교토는 벚꽃이 피는 봄이나 단풍이 지는 가을에 많이 찾는다. 그래서 나도 교토가 아니라 오키나와에 갈까 했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에서 보게 된 한 장의 사진이 나를 사로잡았다. 교토의 한 절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많은 나무와 수북한 잎사귀는 저마다 푸르른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눈이 시원했다. 계속 사진을 보고 있으니 ‘마루에 앉아서 저 나무들이나 실컷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여행지를 교토로 정하고 말았다.
신문물에 좀 둔감하다 보니 블로그 정보만으로는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블로그에는 그저 맛집 정보만 가득했다. 어디를 찾아다니는 건 고사하고 매일 열 끼의 음식을 먹어도 모자랄 것 같았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서점에 가서 가장 기본적인 여행책자를 한 권 집었다. 교토의 유래부터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는데, 정독하니 머릿속이 어느 정도 정리됐다.
이후 몇 번을 읽으면서 점점 여행 계획이 뚜렷해졌다. 교토의 지리가 어느 정도 파악됐고 여행 동선이나 이동 방법도 손에 잡혔다. 물론 그만큼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져서, 고민도 많아졌다. 특히 교토에는 멋진 분위기의 절들이 많았는데, 여행책자를 읽는 내내 마음을 뺏겼다. 동생은 ‘절 투어’를 떠나려는 나에게 ‘불교로 개종할 거냐’ 묻기도 했다. ‘아, 이건 아닌가?’ 싶어서 마음을 고쳐먹고, 교토를 찾은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절을 찾았다. 그렇게 나는 ‘쇼렌인(靑蓮院)’을 알게 됐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받은 지도를 보니 쇼렌인은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있었다. 숙소에서 걸으면 불과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괜히 횡재한 기분이었다. 여행객으로서는 조금 이른 시간인 오전 여덟시 반. 나갈 준비를 하려고 짐을 챙기는 중에 새벽 다섯 시쯤 들어왔던 내 침대 위층의 금발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너무 시끄럽게 했나 싶었는데, 그녀는 ‘하이’라고 쿨하게 인사한 뒤 씻으러 나갔다. 뭔가, 내가 진 기분이었다. 아무튼 게스트하우스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동네 뒤편으로 슬슬 걷기 시작했다. 아침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께 쇼렌인 가는 길을 물어보니, 이 길 끝에서 왼쪽으로 가면 보일 거라고 친절히 알려 주셨다. 아주머니의 안내대로 따라가니 쇼렌인 정문이 보였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택시를 타고 온 중국 부자 관광객들과 일본 노인 관광객들이 있었다.
쇼렌인은 794년부터 1185년 사이, 헤이안 시대에 건립된 절이다. 교토에는 천태종파의 몬제키(門跡, 황실 또는 고관 자제가 출가하여 머물던 사찰)가 5군데 있는데, 쇼렌인도 그중 하나이다.
쇼렌인은 일본 왕가의 절이어서 관리가 잘되고 있는 곳 중 하나이다. 교토 관광포스터에도 나온다. 지금의 일왕도 쇼렌인에 온 적이 있는지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나에게는 친숙한 그룹 아라시(あらし)의 니노미야가 출연한 사극 드라마에 나오기도 했다. 쇼렌인에는 예상보다 길게 머물렀는데, 그동안 많은 관광객이 찾았다.
꽤 오랫동안 앉아서 멍하니 푸른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사진으로 찍어보려고도 했는데, 그 아름다움이 제대로 담기지 않아 포기했다. 물 흐르는 소리가 잔잔하게 들리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름다운 소리를 감상하며 정원을 따라 산책로에 오르니 쇼렌인의 전경이 펼쳐졌다.
사진을 보고 한눈에 반한 곳은 에이칸도였지만, 못 갔다고 아쉬운 마음은 없다. 쇼렌인의 녹음만으로도 충분히 즐겼으니…
어제는 비가 무척 많이 내렸다. 지난번에 내렸던 비를 보면서 ‘아 이제 더위가 가시겠구나’ 했는데, 어제 내린 비를 봤을 땐 ‘아 이제 가을이구나’ 싶더라. 곧 사람들의 옷차림이 바뀌고, 여름에 만났던 푸르른 그곳도 곧 붉게 물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