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은 내 마음 속에… – 일본, 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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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행 열차. 이코카 하루카 패스(ICOCA HARUKA Pass)를 구입했다. 

 

교토 일정을 계획하면서 가장 먼저 수첩에 쓴 질문은 ‘첫 음식으로는 무엇을 먹을까?’였다. 그것도 진지하게, 궁서체로… 네이버에 ‘교토 맛집’을 검색하면 결과물이 수두룩하게 나오는데, 그 내용이 장난 아니다. 식당에 대한 맛 평가는 물론이고, 식당 근처에 어떤 역이 있고, 몇 시에 가야 하는지, 또 웨이팅은 얼마나 되는지까지 세세하게 알려준다. 일본 사람들도 이 정도는 모르지 않나 싶다.

3일 정도는 맛집만 검색했던 것 같다. 조용한 일본 정원에서 녹음을 만끽하겠다는 처음 계획과는 취지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스테이크 덮밥으로 유명한 백 식당에 가려면 오픈 시간인 11시 전부터 줄을 서서 예약을 기다려야 한다. 시간에 맞춰 가려면 당연히 그보다 훨씬 전에 일어나야 한다. 이런 스케줄을 떠올려보니 정말 무리일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여행을 해야 하나’라며 고민이 시작됐지만, 결국 맛집 탐방을 하기로 했다.

수많은 블로그를 검색하면서 나는 어떤 음식점을 가야 할지 기준을 세웠다. 가장 큰 기준은 교토에만 있는 곳이었다. 이 기준을 적용하니 후보지가 몇 군데로 추려졌다. 그중 한 곳이 장어 덮밥집이었던 ‘카네쇼(かね正)’다.

블로그를 검색하면 이곳에 대한 많은 리뷰를 볼 수 있다. 오랜 시간 웨이팅은 기본이고 한국 사람이 예약하면 받아주지 않아 불친절하다는 등, 맛에 대한 이야기보다 다른 이야기가 더 많은 집이었다. 하지만 사진으로 본 가게는 생각보다 느낌이 좋았다. 할아버지가 장어를 직접 구워주는 아주 작은 가게이면서, 또 교토에만 있는 곳이었다. 내가 그리던 조건과 거의 일치하는 곳이었다. 동생과 일정을 맞추면서 이곳을 교토 여행의 첫 식당으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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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마이센 카츠 샌드(まい泉 かつサンド). 간사이 공항 3층에서 판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리저리 찾고, 물어도 봤지만 공항직원이나 판매직원은 KYK만 알려줬다. 어쩔 수 없이 KYK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돌아서는데, 이게 웬걸. KYK 매장 바로 뒤에서 아주 작은 규모로 팔고 있었다. 결국 마이센 카츠 샌드도 샀다. 그 맛이 아쉬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사려고 했지만, 품절이었다. 굉장히 아쉬웠다.

 

비 오는 기온의 밤거리는 낭만적이었다

 

일본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오는 기온의 밤거리는 참 낭만적이었지만 우리는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역시 여행은 아날로그가 묘미라는 생각에 게스트하우스에서 교토 지도를 한 장 받고, 지도 위에 카네쇼의 위치를 표시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카네쇼가 있는 ‘야마토 토오리(大和通り)’를 찾아야 했다.

카네쇼의 저녁 식사 예약은 워낙 일찍 끝난다고 해서, 나는 간사이 공항 도착하자마자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카네쇼에 전화를 걸었더니 블로그의 설명대로 아들이 받았다. 내가 처음에 요청한 7시는 어렵고 8시는 괜찮다고 했다.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말에 관광객임을 밝혔고 게스트하우스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그는 예약시간 15분 전까지 꼭 와달라고 강조했다. 다행히 예약은 성공적이었다. 이제 시간만 정확히 맞춰서 가면 됐다. 카네쇼에서 우리가 한국 사람인 걸 안 이상, 약속한 시각은 꼭 지키고 싶었다.

 

우체국 옆에 있는 카네쇼의 정문.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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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는 멋졌고, 외국인 직원은 일본어를 너무 잘했다. 하지만 사진들은 알듯 모를 듯…

 

약속 시각에 늦지 않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후 블로그에서 본 익숙한 우체국이 나왔고, 이어서 카네쇼가 나타났다. 가까이 가보니 간판도 있었는데, 문 앞에는 ‘오늘 저녁은 예약이 모두 완료돼 더 는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글귀가 붙어있었다. 아싸! 다행이었다. 공항에서 예약한 게 참 잘했다 싶어서 뿌듯했다. 늦지 않기 위해 서둘렀더니 15분 전보다도 일찍 도착해서, 맞은편의 사진 갤러리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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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쇼의 오랜 손님처럼 보이던 노신사들

 

예약한 시간이 돼 이동하려는데, 가는 길이 이상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나 있는 좁은 길로 들어간 것도 모자라, 첫 번째 집을 지나쳐 두 번째 집까지 가야 했다. 도대체 이런 곳에 있는 가게를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참 대단했다. 가게에 들어가서 이름을 이야기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쉽게도 주인과 마주할 수 있는 카운터 자리는 아니었지만, 가게의 모습은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작고 아담해서, 테이블도 몇 개 없었다. 정말 단골만 알 것 같은 가게였다. 실제로 카운터 자리에는 카네쇼의 오랜 손님처럼 보이는 노신사 두 분이 앉아서 주인과 함께 이야기도 하고 술도 따라주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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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전 맥주는 사랑이다

 

우리는 우나동(うな丼)과 카네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키시동(きし丼)을 시켰다. 우나쥬(うな重, 장어가 두 마리 들어감)를 먹고 싶었지만 이미 오차즈케(お茶漬け)를 먹은 뒤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무리였다. 키 시동은 노란색의 지단을 채 쳐서 장어 덮밥 위에 올려준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빠질 수 없는 맥주 타임. 딱 마음에 드는 크기의 맥주 컵에 에비스(えびす)를 따랐다. 그렇게 한잔 들이켜니, 이게 바로 일본이구나 싶었다.

음식이 나오니 마음이 급했다. 사진도 이렇게 밖에 못 찍었다

 

주인 할아버지가 연기를 피우며 직접 장어를 굽기 시작했다. 아들은 노란 지단을 채 썰면서 음식을 준비했다. 잠시 후, 우리보다 앞서 들어온, 조금 이상해 보이던 커플의 음식이 나왔다. ‘이제 곧 우리 음식도 나오겠지’ 하면서 맥주를 한 잔 더 시켜서 마셨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드디어 우리가 주문한 덮밥이 나왔다. 일단 뚜껑을 열기 전에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뚜껑을 여니 ‘오호라’ 향부터 근사했다. 나는 장어 덮밥을 많이 먹어보진 않았지만, 장어를 구울 때 껍질이 질기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키시동의 장어는 정말 부드러웠다. 소스도 짜거나 달지 않아서 딱 좋았고, 장어 양도 많은 편이라 밥을 먹을 때까지 부족하지 않았다.

여행도 오랜만이고 약간의 술기운도 돌고, 비까지 좀 맞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맛에 대한 평가가 너그러워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카네쇼에서의 식사는 참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생맥주를 마시고 나오면서 ‘고치소사마데시타’(ごちそうさまでした, 잘 먹었습니다)라며 인사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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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먹었던 오차즈케

 

카네쇼를 나오면서 거창한 맛집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하면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하는 실수는 ‘반드시 맛집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그 맛이란 게 내 입에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건데도 말이다. 차라리 맛과 색,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가게만으로 충분하지 않나 싶다. 백번 양보해 진짜 맛집 선택에 ‘실패’했더라도 그것 또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그럴 땐 ‘뭐든 술술 풀리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론을 떠올리자.

교토 일정을 마치고 오사카로 넘어 가면서 일본 친구에게 카네쇼 이야기를 해주니, 그 친구는 그런 곳이 있냐며 관심을 보였다. 교토에 가게 되면 가보겠다고 알려 달란다. 역시 한국 블로거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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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원

서혜원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읽고 라오스의 블루라군과 아이슬란드의 블루라군에 무척 가고 싶어졌습니다.
서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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