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 가기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이게 웬걸, 고등학생들이 정말 많았다. 해외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무리다. 새삼 시대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핸드폰이 귀하던 우리 때는 수학여행 하면 단연 경주였다. 수학여행을 떠난 2박 3일 동안 불국사니, 석굴암이니, 첨성대 같은 경주의 명소들을 두루 다녔지만, 내 기억에는 수학여행 마지막 날 밤의 장기자랑 시간이 가장 또렷하다. 사실 나는 그때도 넥스트의 팬이었기 때문에 HOT나, 젝키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마지막 날의 설렘과 흥분만큼은 동일했다. 무대에 직접 나가서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불렀던 건 아니었지만, 장기자랑에 우리 반 친구들이 나갈 때면 친구들과 함께 제법 열정적으로 응원했던 게 기억난다.
교토는 우리나라의 경주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유명하다. 내가 갔을 때는 골든위크가 끝난 다음 주라 일반 관광객은 적었다. 대신 일본 여러 지역에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가득했다. 우리나라처럼 대형 버스를 대절해 반별로 선생님의 지휘 아래 움직이거나 3학년 선배가 후배들과 함께 소그룹을 만들어서 다니기도 한다. 인상적이었던 건 4명 정도의 학생들이 택시를 대절해 교토 시내를 관광하는 장면이었다. 택시운전사가 학생들을 인솔하면서 관광지의 역사 등을 가이드해주는 거다. 지역 택시 운전사들을 활용하다니, 뭔가 신선했다.
그러고 보면 택시운전사만큼 지역을 잘 아는 사람들도 없다. 운전사들이 가이드에 대한 역량을 갖추는 게 관건이겠지만, 디테일에 강한 일본인들의 특성을 떠올리면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 같다. 만족도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관광객이나 해당 지역이 함께 Win-Win 할 수 있는 괜찮은 아이디어다. 나중에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 함께 묵었던 일본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 학교는 분명 돈이 많은 사립학교일 거라고 했다. ‘역시나’ 싶었지만, 돈은 좀 들더라도 한 번쯤 이용해 보고 싶어진다.
교토에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학생 사진이 많았다. 누가 보면 변태라고 생각할지 모를 정도로 많다. ‘왜 그랬을까’ 하며 다시 사진 속 학생들을 본다. 제 몸보다 큰 교복을 입은 어색한 모습부터, 까만 단발머리,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챙겨 입은 교복 재킷, 수첩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모습들까지,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들이다. 그래서 눈길이 자꾸 갔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시선이 후시미 이나리에서 여우 열쇠고리를 진지하게 고르는 학생의 얼굴에 머물면서, 20년 전의 내가 떠오른다.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새 옷을 사고 자동카메라와 필름을 열심히 준비하던 그때. 나도 부모님께 선물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첨성대 열쇠고리를 사 왔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여행 때 편히 입을 옷을 사고, 자동카메라와 필름을 챙긴다. 그리고 이제는 쓸 일도 없고 줄 사람도 없는 여우 열쇠고리를 살까 말까 망설인다. 이번엔 사지 않았지만,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교토는 처음이었는데, 도쿄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150년 된 주택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는 길에서부터 ‘여기가 진짜 일본이야’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골목과 집들, 풍경에 매료되어 사진도 많이 찍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교토로 여행을 가고 싶다. 되도록 학생들이 수학여행 오는 기간에. 이번에는 멀리서 사진만 찍었지만 그때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야겠다. ‘교토에서 뭐가 가장 재밌었냐’고 물으면서. 만약 그 친구가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아나타(あなた, 너)’라고 대답해야지. 그럼 그 친구가 훗날 수학여행을 추억할 때 이상한 대답을 하던 한국인을 기억해주지 않을까? 다음 여행이 벌써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