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이 마주치고, 신과 소통하는 곳 – 인도여행기 #2

인도를 실감했다

그렇게 잊지 못할 인도에서의 첫 사기를 뒤로하고 호텔로 들어갔다. 우리가 예약한 방은 갠지스강이 보였다. 그런 이유로 이름도 River View 룸. 침대에 누워서 갠지스강(Ganges River)을 바라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 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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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학습한 대로 햇빛은 잘 들어오는지, 침대에 ‘Bed bug’(빈대)가 없는지 살폈다. 인도에서 호텔을 예약할 때 유용한 한 가지 팁은 ‘호텔이름+Bed bug’로 검색해 후기를 읽어보는 것이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화장실도 깨끗한 편이었고 온수까지 나왔다. 이 정도면 감사했다.

물론 사소한 문제는 있었다. 우리는 분명히 트윈베드 방을 예약했는데 호텔은 더블베드 방을 내주었다는 거다. 하지만 남자끼리 한 침대에서 자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한국인이니까… 다만 방에서 WIFI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는 건 문제였다.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호텔 로비까지 가야 했다. 이럴 수가…

방을 꼼꼼히 살펴본 후 이 방의 자랑이라는 발코니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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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 방이었다. 델리 공항에서 밤을 꼬박 새우고, 호텔까지 길 안내비로 100루피를 뜯겼던 게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발코니에 서서 한참 동안 갠지스강의 석양을 감상했다. 그제야 이곳이 인도라는 게 실감 났다. 내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질 않았고,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마음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마냥 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바라나시에 오자마자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짐을 챙겨서 나갈 준비를 했다.

 

선재와의 만남

나는 이번 여행 준비를 하면서 유심칩(USIM)만 교체하면 인도 내에서 전화도 할 수 있고 문자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카카오톡 같은 앱도 한국에서처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정을 생각했을 때, 유심칩을 사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일단 델리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이 밤 11시였기 때문에 그 시간에 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고, 무엇보다 가격이 비쌌다. 아무래도 유심칩은 바라나시에서 사야 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인도 여행 카페에 올라온 어떤 글을 보게 되었다. 한 여행자가 곧 인도에서 귀국하는데, 본인이 구입했던 유심의 사용기간이 남는다며 무료로 나눠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유심칩 만료일이 내가 여행을 마치는 날까지였고, 그 글의 조회수는 0이었다. 나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쪽지를 보냈다. 태어나서 경품 추첨이나 복권에 당첨됐던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잠시 후 당첨(?)을 알리는 답장이 왔다.

유심칩을 받기 위해 가까운 잠실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나는 만나면 저녁을 사드리고 싶었다. 유심칩을 받는 것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분은 선약이 있다고 해서 그럴 순 없었다. 아무튼 고마운 마음에 나는 작은 선물을 준비해 마음을 대신했는데, 그분이 내게 한 가지 부탁을 청했다. 바라나시에 있는 ‘선재’에게 선물을 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흔쾌히 부탁을 수락했고 나중에 인증샷을 찍어 보내주기로 했다.

그렇게 난 선재를 만나러 갔다. 선재는 앞서 소개했던,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인도 청년이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바라나시에서 ‘선재네 멍카페’라는 카페를 운영 중이다. 나는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그의 카페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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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아기자기했다. 여러 테이블과 벽에는 이미 다녀간 사람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여행 올 때 여권사진을 여러 장 챙겨 왔다가 남는 걸 붙인 것 같다. 들어오는 문 위에는 시바신이 있었고 멋진 벽화도 있었다. 선재는 카페에 없었다. 대신 그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선재는 잠시 외출 중이라고 했다. 우린 너무 배가 고파서 일단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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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므라이스를, 친구는 탈리(Thali)를 시켰다. 바라나시에서 먹는 첫 끼. 우리는 나온 음식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입맛에도 잘 맞았다. 선재의 여동생 정말 요리를 잘했다. 음식을 거의 다 먹으니 때마침 선재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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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재에게 한국에서 온 선물을 건넸다. 선물을 보낸 그분의 사진을 보여주자 선재는 단번에 누구인지 알았다. 나는 약속대로 인증샷을 찍어서 보냈다. 왠지 뿌듯했다.

선재에게 카페 이름이 왜 ‘멍카페’냐고 물었더니 ‘여기 와서 멍 때리라’는 뜻이란다. 그렇게 깊은 뜻이… 선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에 선재네 보트를 타기로 예약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가트를 거닐며 마주친 풍경

오는 길에 우리는 시간이 남아 가트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햇살은 한없이 따사로웠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 갠지스강에 몸을 담고 목욕을 즐기는 인도인들은 평화 그 자체였다. 나도 이 평화로움 속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한 손에 카메라를 덜렁덜렁 거리며 가트 주변을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그때 한 인도인이 나에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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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안녕하세요! 보트?”

오늘도 한 건 올리기 위해 보트맨들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흥정을 했다. 나는 대답 대신 인사를 건넸다.

“나마스떼”

그가 빙그레 웃는 게 보였다. 나는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말했다.

“선재네 보트 방금 예약했어요. 미안하지만 다음에 이용할게요.”

그러자 그는 더 환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노 프라블럼! 선재는 같은 식구니깐 걱정할 것 없어~!”

프랜차이즈인가 보다. 그렇게 그들은 연결 또 연결되어 있었다.

행복해하는 그를 뒤로 한 채, 나는 좀 더 가트를 걸었다. 사진을 찍고 싶었다. 내가 사진을 취미로 삼았던 건 대학교 때부터였다. 우연히 아는 형의 DSLR을 만지게 됐는데, 렌즈에 따라 아웃포커싱 되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멋져 보였다. 그렇게 나도 카메라를 구입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이제 이 카메라로 무엇을 찍지?’

나는 주변에서 사진을 잘 찍는다는 사람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찍는지 관찰했다. 꽃을 찍는 사람들, 여자 모델을 찍는 사람들, 잘 알려진 촬영 포인트를 찍는 사람들 등 찍는 대상도, 방법도 너무 다양했다.

그들에게 항상 왜 이렇게 찍는지 물어보고 무엇을 찍고 싶은지 물어봤다. 여러 사람의 시선을 배우면 나의 시선도 그만큼 다양해지고, 또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진에 대해 알아가며 다짐했던 게 있었다. 바로 인도에 가서 꼭 사진을 찍어보는 것이었다. 그들의 일상과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을 담아내는 것, 오랜 나의 꿈이었다.

그때 나는 인도의 꽃이라 불리는 바라나시에 서 있었다. 일 분 일 초가 아까웠다. 그래서 기차로 이동해야 할 거리를 돈을 더 주고 비행기를 탔다. 덕분에 13시간 거리를 2시간 만에 이동할 수 있었다. 물갈이 때문에 아프면 혹시라도 사진을 못 찍을까 봐, 생수를 사다가 양치했다. 그 정도로 나에게 이 순간은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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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트 중에 메인가트라 불리는 다샤스와메드 가트(Dashaswamedh Ghat)를 거닐고 있을 때였다. 한 인도인이 갠지스강에 디아(Dia)를 띄우고 있었다. 디아는 작은 초인데, 인도인들은 소원을 빌 때 디아에 불을 붙여 강물 위로 띄운다. 저녁에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낮에도 몇몇 띄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 인도인은 무슨 소원을 빌고 있을까?’ 나도 옆에 앉아 한참 동안 흘러가는 디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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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보트를 타기로 한 약속시간이 다가왔다. 다들 바라나시에 오면 한 번씩 타본다는 보트. 우리도 타게 됐다. 배를 모는 건 선재가 아니라 인도 꼬마의 몫이었다. 대신 선재는 유창한 한국말로 인도의 역사를 소개했다. 그냥 한국인이었다. 어쩌면 한국 사람보다 더 언변이 좋은지도 모른다.

인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한다. 이때 가난한 사람은 종이를 태우고, 그보다 나은 사람은 나무를 태워서 화장시킨다고 한다. 가트의 양옆에는 화장터가 2개 있었다. 시체를 화장 중인지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화장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뱀에게 물려서 죽거나, 어린아이 일 경우 또는 아이를 뱃속에 가진 채로 죽은 임산부일 때는 화장을 하지 않고 몸에 돌을 묶어 수장시킨다고 한다. 갠지스강을 신으로 여기기 때문에 수장은 곧 ‘신이 거두어 간다’는 걸 의미한다. 실제로 보트를 타고 다니다 보면 강을 떠다니는 시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갠지스강에 목욕을 하러 오는 산자와 화장을 하는 화장터의 죽은 자. 산 자와 죽은 자, 모두가 공존하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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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를 타고 가트 건너편으로 넘어갔는데, 그곳에도 목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공간이 한정되다 보니 강 건너까지 가서 목욕을 한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간이 탈의실까지 마련돼 있다. 주로 여성들이 목욕을 마친 뒤 옷을 갈아입는 용도로 사용된다. 장마기간에는 물이 잠기면서 모든 게 다 떠내려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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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뱃사공에게 배를 맡긴 채, 선재에게 인도의 신화와 역사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 가트 너머의 석양을 바라보았는데,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왜 이제야 인도에 왔나 싶었다.

 

뿌자, 신과 소통하는 자리

해가 떨어져도 보트는 멈추지 않았다. 아까 멀리서 봤던 화장터가 눈에 들어왔다. 화장터의 불꽃도 꺼질 줄 몰랐다. 화장터는 여자의 출입은 제한된다. 사람이 죽으면 신에게 다가가기 때문에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감정조절에 약한 여자들은 이별의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울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화장터에서 봤던 사람들의 표정은 무심했지만,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보트를 타고 화장터가 관광 코스인 양 지나가는 나는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선재가 사주는 짜이 한 잔을 마시며 보트에서 보낸 시간은 마무리되었다. 바라나시를 들른다면 보트는 한 번쯤 타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재가 사준 짜이 맛은 일품이었다. 그전까지는 물갈이를 예방하기 위해 짜이를 사 먹지 않고 있었다. 분위기에 취해 한번 맛을 본 후에는 이미 빈 컵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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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려서 메인 가트 쪽으로 갔다. 아니 갈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었다. 그중에는 관광객도 있었지만 인도 사람들도 많았다. 바라나시는 갠지스강에 목욕을 하기 위해 인도 각지에서도 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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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자(Arti Pooja)는 갠지스강가에서 매일 밤 열리는 힌두교의 제사 의식을 말한다. 신과 소통하는 자리인 만큼 매우 경건하고 진실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나는 좀 더 좋은, 가까운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멀리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나는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온전히 촬영에 집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때 한 인도인이 내게 말했다.

“친구여. 내 자리를 양보할게. 이쪽으로 더 들어와서 찍어. 나는 괜찮아.”

서투른 영어였지만 그의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나를 배려하는 그를 바라보며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왜인지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내가 머뭇거리자 말을 못 알아듣는 줄 알았는지 나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가 앞사람에게 힌두어로 뭐라고 말하자 사람들은 조금씩 자리를 양보해 내가 앉을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나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그에게 감사의 눈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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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 중 명당이었다. 나는 계속 촬영을 이어나갔다. 혹시나 뒤에 앉은 사람에게 피해가 갈까 봐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촬영을 했다. 의식이 치러지는 동안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은 진지하게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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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자는 생각보다 화려했다. 멋진 의식이었다. 의식이 끝나자 사람들은 하나, 둘씩 갠지스강에 디아를 띄우고 돌아갔다. 시끌벅적했던 그곳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졌다. 뛰놀던 개도, 소도 의식을 마치자 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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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진

김창진

어디서든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한명. 주제가 있는 사진을 찍고 싶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오늘도 기억에 남는 하루 되세요.

* 블로그 : blog.naver.com/urga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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