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 가는 길 – 인도여행 #1

인도에 다녀온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아직도 바라나시의 석양 아래에서 가트 주변을 거닐며 흐르는 갠지스강을 바라보던 장면이 생생하다. 아마 인도로 여행을 다녀온 온 사람이라면 어떤 느낌인지 알 것이다.

내가 인도라는 나라에 관심 갖기 시작한 것은 류시화 시인의 책을 읽으면서부터 였다. 아마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이란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고 나선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런 신세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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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류 시인은 인도로 떠난 여행에서 온갖 고생을 다했다. 심지어 사기까지 당했는데,  류 시인은 마법처럼 그런 고달픔을 행복의 일부로 바꿔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그의 이야기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그가 쓴 시집이나 수필은 거의 다 사서 읽다시피 했는데, 심지어 그가 번역한 달라이라마의 책까지도  읽었다. 그의 여러 책들을 접하면서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 생각들은 내가 힘들어 지칠 때마다 나를 위로해 주었다. 또 그의 책에서 언급되었던 ‘세 가지 만트라’ 는 나의 좌우명이 되었다. 물론 지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

 

세 가지 만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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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가고 싶냐’고 물으면 난 항상 ‘인도’ 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심지어 내가 외국에 있을 때도 대답은 한결 같았다. 하지만 꿈으로만 간직한 채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면서 인도에 대한 마음은 서서히 희미해졌다. 간신히 버킷리스트의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정도였다.

 

 

꿈이 현실로!

 

어느 날 지방에서 친구가 서울로 놀러왔다. 너무 오랜만에 봐서 반갑게 이야기하던 중 친구가 이야기를 꺼냈다.

“인도로 여행 한번 가보고 싶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저 깊이 쌓아두었던 인도에 대한 욕망이 한순간에 튀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럼 비행기는 어떻게 예약하지?’, ‘지금 인도 날씨는 여행하기에 어떨까?’, ‘카메라와 렌즈는 무엇을 챙겨야 하지?’, ‘휴가는 얼마나 쓰지?’ 등등. 모든 생각이 1초 만에 떠오른 것 같다. 그렇다. 내 마음은 이미 인도에 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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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인도행에 찬성했다. 그리고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먼저 인도여행 카페를 가입하고 글들을 꼼꼼히 읽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충격을 받았다. 카페에서 류시화 시인이 속된 말로 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인도에 대해 너무 미화를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를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대부분 어린 친구들이었지만…)

물론 그런 반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연령대도 다를뿐더러, 각자 기호도 다를 테니. 하지만 내 멘토가 무시당하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대체 인도 여행이 얼마나 위험하고 실망스러웠길래 그렇게 비난했을까. 조금 흔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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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카페에 올라온 많은 글들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인도를 추억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도 인도에 가게 되면, 류시화 시인처럼 많은 추억거리를 가지고 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날로 직장에는 일주일 휴가를 내고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여행을 할 때 유적지를 잘 안가는 편이다. 그런 곳들은 인터넷이나 TV에서 많이 볼 수 있기도 했고, 별 다른 감흥도 없었다. 무엇보다 남들과 다른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나로서는, 유명한 건물 앞에서의 인증샷은 마치 증명사진을 찍는 것 같아서 싫었다. 그래서 꼭 가야할 명소를 찾기보다는 이미 다녀온 분들이 찍은 사진 속의 배경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저기라면 내가 원하는 느낌의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 싶은 곳을 찾다보니 바라나시(Varanasi)라는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는 바라나시를 집중 탐구하면서 점차 그곳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느 블로거는 ‘제대로 된 인도를 느끼려면 바라나시를 가라’고 했을 정도로 바라나시는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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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정도의 여행 준비를 마치고 난 드디어 인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바라나시를 향해서!

 

우리는 인천을 떠나 태국을 경유해 저녁쯤 인도 델리 공항에 도착했다. 바라나시를 가기 위해서는 다시 국내선을 타야했다. 입국수속을 마친 뒤에는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했는데, 공항에만 있다 보니 이곳이 인도라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인도에 있다니?!’

바라나시행 비행기의 출발시간은 다음날 새벽이었는데, 우리는 델리 시내로 나가지 않고 공항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시내로 나간다면 강도나 사기를 당할 위험이 컸다. 오히려 공항에 있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았다.  게다가 숙박비와 기타 교통비를 아낄 수도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인도를 느끼기 위해서 그 정도 각오는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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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침 첫 비행기! 우리는 Spicejet이라는 저가항공을 이용했는데, 생각보다 작은 비행기였다. 날개에 프로펠러가 달려 있다니! 약간 무섭기도 했지만 뭐 어떠랴. 내가 가진 건 용기뿐이니! 탑승객의 대부분 인도인이었다. 중간 중간 서양인이 몇몇 보였지만 한국인은 오로지 우리 둘 뿐이었다. 인도 사람들은 우리가 신기했는지 힐끔힐끔 쳐다봤다.

인도인들이 사진 찍는 걸 엄청 좋아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누구 할 것 없이 비행기 앞에서 셀카를 찍었다. 한바탕 포토타임이 지나고 나서야 탑승이 끝났다.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한 비행기에 탄 이상 뭔가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2시간 정도의 비행을 마치고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드디어 인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인도에서의 첫 경험

 

관광객을 상대로 한 택시 사기가 워낙 많다고 하여 정부에서 운영 중인 Pre-paid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행선지까지의 택시 요금을 미리 지불하는 방식으로, 택시기사에게 바우쳐만 주면 더 이상의 요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바우쳐를 들고 공항 문을 나서는 순간, 수 십 명은 돼 보이는 택시기사들이 다가왔다.

“어디가니?”
“택시 필요하니?”
“안녕하세요(한국어)”

나는 잠시 동안 수많은 질문세례를 받으며 톱스타처럼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중에는 한국어로 환심을 사려는 택시기사도 있었다.

나는 유유히 바우쳐를 흔들어보였다. 한 남자가 택시 차량번호를 물어 보길래 알려줬더니 환호를 지르며 다가오더니 내 바우쳐를 낚아챘다. 자기를 따라오라며 우리를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수만 대군을 이끄는 장군 같았다.

‘바우쳐를 들고 도망가면 어쩌지?’, ‘신종사기인가?’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바삐 따라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가 멈춰선 차량의 번호는 바우쳐에서 봤던 번호와 같았다. 그렇게 바라나시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고돌리아로 출발했다.

 

 

 

나는 인도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기유형을 공부하고 왔다. 내가 가려는 호텔이 문을 닫아 다른 호텔을 가야한다거나, 좋은 상품이 있는데 들렀다 가자는 식이다. 나는 그가 어떤 유형에 속할지 내심 궁금했는데, 그는 이런 내 생각을 꿰뚫고 있는 듯 말했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돈도 더 받지 않을 거야“

그러면서 이곳저곳을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린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가 결혼한지는 9년이 됐고, 슬하에 6살 아들과 2살 딸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가 참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한 가정의 따뜻한 아버지라는 것을 느꼈다.

그는 정말 친절했다. 내 질문에도 정성껏 답변해주었다. 그런 모습에 나는 뭐라도 베풀고 싶어졌다. 지갑에 있던 100루피짜리 지폐를 만지작거리면서 내릴 때 팁으로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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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과거 영국령이었기 때문에 모든 차량은 좌측통행을 기본으로 한다. 도로에는 차선이 있었지만 그 존재는 무색했다. 무슨 말이냐면 인도 사람들은 차선이고 뭐고, 그냥 막 달린다는 뜻이다. 오토바이를 피하거나, 다가오는 차를 피하기 위해 반대편 차선을 서슴없이 넘나들기 때문이다. 클랙슨도 자주 울린다.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지만 내 차의 존재를 알리는 일종의 신호라는 걸 알게 된 뒤에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윽고 고돌리아에 도착했다. 내가 지갑에서 100루피를 꺼내려고 하는데, 그가 말했다.

“내 친구가 당신들을 호텔까지 데려다 줄 거야. 그는 정말 착한 사람이야.”

그리고 날 몇 초간 응시했다. 나는 그 짧은 순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다시 100루피를 지갑 속에 넣었다. 졸지에 우린 필요하지도 않은 가이드를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에게 호텔까지 알아서 걸어갈 수 있다고 몇 번을 말했지만 그의 대답은 언제나 ‘No, Problem’, 자기만 따라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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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꾸 골목으로 우리를 안내했는데, 그곳에는 소똥이 가득했다. 내 친구는 바라나시 도로의 소똥에 대한 후기를 읽지 않았던 것 같다. 바퀴달린 캐리어를 들고 왔기 때문이다. 그는 소똥을 피하면서 힘들게 캐리어를 끌고가는 친구를 보며 자기가 짐을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친구는 한사고 거절했다. 혹시 짐을 들어주고 돈을 요구하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결국 친구는  소똥천지인 골목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캐리어를 들고 걸어갔다 .

그런데 골목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중간 중간 힐끔힐끔 쳐다보는 인도인들 때문에 덜컥 겁이 났다. 우리가 걱정스러워하는 걸 그도 느꼈는지 우리를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선재 친구야. 걱정 하지마. 그리고 멍재, 홍재도 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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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는 인도여행 카페에서 유명한 인도인이다. 류시화 시인이 인도에 왔을 때 한 인도 아이를 한국에 데려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왔는데,  그가 바로 선재다. 지금은 인도에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여행가이드를 하고 있는데, 유창한 한국어 실력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바라나시에서 그를 찾는다.

‘그런데 멍재, 홍재는 누구지?’ 나는 조금 의심이 들어 다시 물었다.

“호텔까지 나를 데려다주면 호텔에서 얼마를 받니?”
“….”

내 질문에 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앞서 가기 시작했다. 골목을 돌아 돌아서 드디어 우리가 예약한 ‘Palace on Steps’이라는 호텔이 보였다. 말은 호텔이었지만 아주 허름해보였다. 그리고 우릴 여기까지 안내해준 그가 말했다.

“너희들이 호텔까지 잘 도착해서 나는 너무 기뻐. 너희 행복은 나의 행복이야. 나에게도 행복을 좀 나눠줄래?”

나는 정말 빵 터졌다. 이거였구나! 나는 인도에서 처음 맞는 사기에 황당했지만, 내심 기대도 하고 있었던 터라 그에게 선뜻 100루피를 꺼내주었다. 아까 택시기사와 한 패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차피 주려했던 돈이니 나눠가지라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고돌리아에서부터 호텔까지 뺑뺑 돌아왔다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렇게 우리는 인도에서의 첫 신고식을 마치고 호텔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 큰 캐리어를 들고 힘들게 골목길을 다녔던 친구가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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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진

김창진

어디서든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한명. 주제가 있는 사진을 찍고 싶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오늘도 기억에 남는 하루 되세요.

* 블로그 : blog.naver.com/urgaia
김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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