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1 – 오키나와, 이에섬

 

2011년 9월, 추석을 맞아 오키나와행을 감행했다. 당시 추석 연휴와 앞뒤 주말을 포함하면 거의 일주일을 쉴 수 있었기 때문에 여행사들은 앞 다퉈 단기여행 상품을 쏟아내던 때였다. 물론 이미 대부분의 표는 매진 상태. 사실 돈보다는 시간이 중요했던 터라 표만 있다면 웃돈이라도 주고 갈 만큼 강한 의지가 있었다.

 

오키나와의 날씨는 사진처럼 화창하기 그지 없었다. 반값 여행에 걸맞는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그러던 중, 혹시나 싶어 눌러봤던 땡처리 항공권 사이트에서 오키나와 항공권이 반 토막 난 채로 날 기다리고 있던 걸 보고 말았다. 진짜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택스까지 30여만 원 정도 되는 파격적인 금액, 일정 또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로, 아주 완벽한 스케줄이었다. 오키나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민족 대명절도 마다하지 않은 불효자는 결국 그렇게 오키나와로 떠났다.

 

1) 뭉게구름과 파란하늘의 대비, 가슴 뛰지 않을 수 없는 장면
2) 날씨는 여름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햇볕이 쨍쨍했다.
3) 역시 여행은 백팩이 제 맛

 

2시간 정도의 비행 끝에 오키나와 공항에 도착했다. 날씨는 화창했다. 굉장히. 아니 화창하다 못해 땡볕에 가까울 정도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우리나라 9월도 여름의 연장선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그야말로 한여름이었다. 원래 선크림 따윈 모르고 지냈던 사람이라 첫날만 해도 내리쬐는 햇빛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둘째 날, 얼굴에 약한 화상을 입고 나서야 이 강렬한 태양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만일 9월 오키나와를 여행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면 강렬한 태양빛을 충분히 대비하기를 권한다.

사실 오키나와 여행 중 몇 가지 멍청한 짓을 했었는데, 그중에서도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던 게 워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 멍청함은 아주 사소한 게으름에서부터 시작됐다. 렌트를 하기 ‘국제면허증’이 필요했는데, 이 면허증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인근 운전면허시험장이나 경찰서에 가서 신청해야 했다. 문제는 이 신청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추석이 시작되기 전날에서야 찾아간 것이다.  하지만 연휴 때문이었는지 운전면허시험장은 휴무였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굳게 닫힌 철문 앞에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오키나와는 섬 자체가 큰 편이 아니고 도로체계가 단순하다. 남북으로 뻗어 있는 고속도로는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는 국도다. 내비게이션도 한글이 지원될 뿐만 아니라 조작도 간편하다. 모든 관광 스폿들은 숫자로 된 코드로 구분돼 있어 내비게이션에 목적지의 코드를 입력하기만 하면 된다.  단지 우리와는 반대편으로 달리는 교통체계만 낯설 뿐이다. 방향만 익숙해진다면 렌터카 운전에 대한 부담은 덜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렌트를 할 수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복잡한 스케줄을 포기하는 편이 좋다. 주요 도시인 나고, 나하 시를 제외한다면  하루에 3-4편 정도만 운행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가는 길, 오는 길 모두 운행시간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겠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원하는 스폿을 여유 있게 둘러보고 싶다면 반드시 렌트하길 권한다.

 

이에섬까지 가기 위해선 거의 반나절을 대중교통으로 이동해야 했다.

공항에서 나하 시내까지 가는 방법은 택시나 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다. 나는 렌트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행 동선을 신중하게 짜야했다. 고민 끝에 전체적인 동선은 북에서 남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한 지역을 거점 삼아 돌아다니기에는 교통편이 따라주질 않기 때문이다.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키나와의 섬 중 하나인 이에 섬(伊江島)을 첫 번째 목적지로 정했다. 공항에서 나고 터미널까지 이동 후 모토부항(本部港)에서 배를 타고 들어간다. 111번 버스를 타면 나고 터미널까지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1) 아날로그 내음을 한껏 풍기는 종이 승차권. 하지만 이 승차권은 버스카드로 태그하는 것 이상으로 신박한 처리과정을 거친다
2) 버스 요금은 이동 거리에 따라서 요금이 점차 올라간다. 현재 1번 승차권의 가격은 220엔

 

먼저 버스를 타면 승차권을 받는다. 이 승차권에는 번호가 쓰여 있는데, 일종의 정류장 번호로도 볼 수 있겠다. 아래 사진처럼 버스 앞쪽에는 전광판이 있고 각 번호마다 요금이 표시된다. 운행거리가 늘어나면서 요금도 함께 늘어나는, 거리에 비례해 요금이 부과되는 시스템인 것이다. 따라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전광판에 표시된 금액을 지불하면 된다. 다소 귀찮은 건 일일이 이 승차권과 돈을 넣는 일이다.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우물쭈물하기 십상이다. 정액권과 같은 카드도 있는 것 같았는데, 구매는 못해봤다.

승차권을 넣으면 요금통에서 자동으로 번호를 인식한다. 요금이랑 함께 넣어도 전부 인식해서 처리한다. 신박한 시스템이 아닐 수 없는데, 나이 많은 할머니들도 어색함 없이 척척 이용하신다. 가끔 동전을 찾느라 시간이 조금 걸리기도 하는데, 친절한 버스기사는 재촉하는 일 없이 태연하게 기다려준다.

 

드디어 도착한 나고 시 버스터미널. 이용객이 거의 없어서 꽤나 한산했다

 

드디어 도착한 나고 버스터미널. 이곳에서 다시 모토부항까지 가는 65번 버스를 타야 한다. 하늘은 맑디 맑았지만, 이때부터 뚜벅이의 비애가 시작됐다. 기다림의 연속. 공항 -> 버스터미널 -> 모토부항 -> 이에 섬. 지역을 이동할 때마다 계속 기다린다. 하염없이… 나고시는 나하시와 함께 남북의 주요 도시 중 하나다.  사실 주요 도시라고는 하지만 우리네 지방 소도시 정도로, 소박함이 묻어난다. 그나저나 터미널에는 정차 중인 버스들이 많았는데, 이 많은 버스들은 대체 언제 운행할까?

 

1) 4번 플랫폼에서 모토부항으로 가는 65번 버스를 탈 수 있다
2, 3) 줄 지어 서 있는 버스들. 아무도 없는 터미널에서 이 많은 버스는 누가 이용하는지?

 

같이 기다리던 사람들은 어느새 빠져나가고 혼자가 됐다. 넓은 터미널에 혼자 덩그러니 있으려니 적적했다. 반값 비행기 표를 시작으로 화창한 날씨까지 이어지면서 한껏 들떴던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혼자 하는 여행은 자유롭지만 그만큼 외롭기도 하다. 혼자 무턱대고 떠나온 걸 후회도 잠시, 그런 외로움도 여행의 일부이고 과정 아니겠는가 싶어 마음을 고쳐먹었다.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모토부항으로 가는 65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1) 다행히 버스 안에는 아주머니들이 타고 계셨다
2) 모토부항으로 가는 동안에도 날씨는 여전히 쨍했다
3) 일본 버스는 정갈한 느낌이 있다고 해야 하나, 꼭 점잖은 중년 신사를 보는 것처럼 단정한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4) 모토부항 입구. 규모는 크지 않고 아담하다. 역시나 한적했다.

 

기다림 끝에 모토부항에 도착했지만, 이곳에서도 역시 기다려야 했다. 이에 섬으로 가는 페리는 하루에 4번 운행한다. 이에 섬으로 데려다 줄 페리에는 이에지마라고 쓰여 있다. 차량도 싣고 움직일 만큼 크다. 섬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된다. 출발 전까지 시간이 남아 이곳저곳 둘러본다.

 

이에지마 페리에서 둘러 본 모토부항 풍경

 

모토부항에는 화물선으로 추정되는 큰 배도 들어온다. 주차장에는 제법 많은 차량이 주차돼 있다. 이에 섬이나 또 다른 어딘가를 가는 이들의 차량으로 생각된다. 한 바퀴 둘러보니 승선 시간이 다 됐다.

 

1) 나와 함께 섬으로 들어가던 일본인 가족
2) 페리 안에는 작은 매점이 있다. 섬까지 이동하는 시간은 은근히 지루하기 때문에 군것질을 하면서 시간을 떼우는 게 좋다

 

모토부항을 거쳐 드디어 이에 섬에 도착했다. 닻을 내리면 손님들과 차량들이 하선하기 시작한다. 이에 섬은 오키나와의 딸려 있는 작은 섬이지만 공항까지 갖추고 있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본토에서 국내선을 타고 이에 섬을 비롯한 오키나와의 여러 섬으로(다른 섬에도 공항이 마련돼 있다고 한다) 바로 이동한다고 한다. 제주도가 여러 개 있는 기분이랄까. 그밖에 버스, 렌터카, 자전거 등도 있다.

 

1) 드디어 이에섬에 도착했다
2) 이에섬에 도착했던 또 다른 페리

 

일단 숙소를 잡았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이에지마 게스트하우스. 에어컨이 딸린 1인실에 묵었다. 사실 그동안 거친(?) 여행을 즐겼던 터라, 에어컨이 없는 방을 시도해볼까 했지만 한여름과 같은 더위는 견딜 수가 없었다. 재밌던 건 주인아저씨가 영어를 거의 못하셨는데, 일본어 번역 어플을 가져가 간단한 의사소통을 해냈다는 것이다. 정확도는 좀 떨어졌지만 일본 어르신들에게 많은 칭찬을 받기도…

이에지마 게스트 하우스. 1박에 2,000엔 수준으로 상당히 저렴했지만, 에어컨이 있어 만족스러웠다. 백패커에겐 더할나위 없는 숙소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어느덧 늦은 오후가 되면서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부랴부랴 짐을 풀고 이에 섬 탐방에 나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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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자의 운영자. 얼마 전 육아의 늪에 빠져든 이후 당분간 여행은 포기했다. 해묵은 여행 사진을 뒤적이거나 남의 여행기를 탐하고 있다. 기고는 언제나 대환영! contents@travelwri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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