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도시의 하드웨어는 상당히 흥미로운데, 꽤 오랜 시간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특징. 사진은 쉐라톤 사이공 호텔에서 내려다 본 모습. 멀리 현대식 빌딩이 보이고, 시내 블록은 예쁘게 치장한 새 건물들이 두르고 있지만, 블록 안쪽에는 거의 판자촌에 가까운 구옥들이 있다. 1지구가 이 정도이니, 전체 건물의 개선은 아직 2~3세대 정도 더 지나야 할 것 같다.
베트남은 아직 젊은 국가이고, 도시도 한창 성장기다. 한 8~90년대 서울 즈음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 날 저녁에 1구역을 벗어나 사이공 강변 고속화 도로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컨테이너 차량 행렬이 어마어마했다. 10년 뒤, 또 10년 뒤에는 어떻게 변할지가 매우 기대되는 도시다.
호텔 주변 중심가의 건물들은 꽤 깔끔해 보인다. 식민시대 양식의 익스테리어를 허물지 않고 그대로 재단장해서, 고풍스러운 느낌이 배어 나온다. 인도차이나의 파리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가 짐작이 가기도. 사실 겨울에 가면 습하지 않아서 어느 정도 다닐만하긴 한데, 그래도 한낮에는 30도를 웃도는 날씨여서 금세 옷이 흠뻑 젖는다. 게다가 보행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장애물도 많아서 쉽게 걸어 다닐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참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도시인 것은 분명하다.
전반적으로 허름함이 묻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단연 보행자에게 최악의 도시 중 하나일 듯. 하지만 이런 부분이 호치민시의 풍경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는 건 분명하다. 그 중에서도 건물들이 통일되지 않고 자유분방한 다양성을 보여주는 모습이 참 좋다. 저 멋진 테라스들을 보라. 페인트도 수성을 사용하는지, 색깔들이 서로 너무 잘 어울린다. 경제적으로야 어쩔 수 없다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서울보다 훨씬 나은 미감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식민시대 건물은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사이공 노트르담 성당과 그 옆에 있는 우체국은 관광객으로 북적거림. 크게 흥미는 없어서 대충 둘러보긴 했지만, 현대인의 미감으로는 흉내 내기 어려운 멋짐이 가득한 건 사실이다. 특히 저 우체국은 실제로 운영되는 우체국이라고 함. 다만 그 가운데에서 허접한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어서 실소가 터져 나오긴 한다.
여러모로 정감이 가는 도시 풍경. 하지만 차마 길거리 음식을 사 먹을 순 없었다.
호찌민시의 풍경을 더욱 멋지게 만드는 건, 거대한 열대의 식생들. 저런 거목이 시내 곳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다. 높다란 나무가 거리에 그늘을 드리우면서, 햇빛을 아름답게 갈라주고, 많은 장면에 생동감 있는 콘트라스트를 만들어 준다. 물론 도시를 식혀주는 역할도 할 테지만.
…호치민시의 인상은 여기까지. 이 도시의 진가는 식도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