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동생의 초대로 #호찌민 시를 다녀왔다. 일단 옛 이름인 사이공은 식민시대의 이름이긴 하지만, 지금도 여기저기 보이는 걸 보면 딱히 시민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고,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이름이므로 일부러 병기한다. ‘호찌민시’라는 이름이 입에 잘 붙진 않지만, 베트남의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국가 주석이었던 호치민(응우옌신꿍)을 기리기 위해, 통일 베트남의 경제 중심지에 이름을 붙인 건 존중해야지. 호치민, 호찌민…
관광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호치민시 도시 관광은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을 것 같기도 하다. 호찌민시는 몇 개의 지구(district)로 나뉘어 있는데, 대부분의 유명한 도심 관광지, 그러니까 호텔과 유적지, 맛집, 쇼핑, 기타 등등은 1군에 몰려 있다. 호기롭게 밖으로 멀리 나가봐야 허름한 주택가만 나올 뿐이고, 관광객에게 다소 위험할 수도 있어서 여행사나 현지인들도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고. 대신 호찌민시 여행자 거리에 가면, 도시 주변으로 하루 만에 왕복이 가능한 현지 여행상품이 있다. 나는 굳이 좁은 버스 타고 하루 종일 다닐 생각이 없어서 하지 않았지만, 관광을 좋아한다면 좀 더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
이륜차
공항에 내리면 일단 택시를 잡는다. 호찌민시의 1구역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택시로 이동하게 된다. 공항에서 호텔이 있는 1구역까지는 대충 2~30분 거리. 베트남 택시는 오로지 거리로만 금액이 올라간다. 미터기에 약 20만 동(VND)이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찍히지만, 사실 우리 돈으로 1만 원 정도다. 베트남 동은 1/10으로 자릿수를 줄인 다음, 반으로 나누면 대충 비슷하다고.
베트남 여행자들에게는 이제 상식이 되었는데, 베트남에서는 여행자를 속이지 않는 택시 브랜드 두 개를 기억해야 한다. 흰색 비나선(Viansun)과 초록색 마일린(Mailinh)이다. 공항에서 나와서 왼쪽을 보면 비나선 택시를 에스코트해주는 곳이 있다. 목적지 호텔을 이야기하면 택시를 잡아줌. 첫 택시 뒷좌석에서 보는 이륜차의 물결, 장관이다. 어지간하면 현지에서 렌터카로 여행하는 편이지만, 베트남만큼은 택시를 이용하기로. 도저히 운전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순간이 꽤 있다. 첫날 놀랐던 건 수많은 이륜차 행렬의 무질서함이 아니라, 정작 이 도로에 정상적으로 차선이 그려져 있고 멀쩡하게 신호등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곳에도 엄연히 통용되는 도로교통법이 있을 텐데, 꽤 많은 이륜차가 이를 지키지 않는다. 특히 이륜차가 인도에 아무렇게나 올라오고,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기다려주지 않는 모습은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가뜩이나 보행도로가 엉망이어서 걷기가 힘든데, 바로 옆으로 이륜차가 휙휙 지나다니면 신경이 곤두서기 마련.
예를 들어, 위의 사진은 단순히 이륜차가 보도 위로 올라온 걸 찍은 게 아니다. 오른쪽에 기다리는 두 대의 이륜차는 심지어 왼쪽 건물에서 나온 것. 건물 내부 층계까지 들어오는 모습은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건 우리네 시각이고. 현지인들에게 이륜차는 발이고 자유다. 베트남 공산정부의 정책으로 임금 상승이 제한되어 있어서, 고가의 자동차보다는 접근이 좋은 이륜차를 중심으로 한 모터리제이션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혼다 소이치로 같은 사람의 꿈이 가장 잘 실현된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륜차의 특성인 가볍고 빠른 장점이 이들의 도로에 처음부터 녹아들면서 이런 도로 문화가 생겼다고 생각하면, 영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어쨌든 이곳 사람들은 소중한 아이를, 가족을, 사랑하는 연인을, 작은 이륜차 하나에 붙들어 매고 매일 도로를 다녀야 한다. 그저 며칠 도시를 경험해보고 떠나는 우리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이들도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니고 있고, 그 안에서 소중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 예를 들어, 생각보다 승용차들의 외관이 깨끗하다는 사실은 어떤 시사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틈바구니로 수많은 이륜차들이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니지만, 그 어떤 차량에도 가로로 긁힌 자국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호치민시는 가벼운 경적소리로 시끌벅적하다. 끊임없이 자기 위치를 알려야 하기 때문. 첫날 탄 택시는 한낮에 에어컨을 틀고 창문을 살짝 열어뒀던데, 아마도 경적소리를 듣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한다. 물어본 건 아니고, 나도 모르게 쓱 닫아버렸는데, 한참 뒤에 생각해 본 것. 문제는 보행이 너무 어렵다는 건데. 대부분 신호가 바뀌어도 잘 멈추지 않는다. 근데 하루 정도 지나면 다 적응됨. 우리도 그냥 걸어 다니면 된다. 그러면 알아서 피해 감. 하지만 앞만 보고 그냥 걸어가라는 뜻은 아니고, 보행자도 이륜차를 인지하고 걸어 다녀야 한다. 이게 되게 이상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된다.
덕분에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은데, 1)이륜차 택시가 있다. 탠덤하고 똑같이 달린다고 한다. 현지인들은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모양, 나는 무서워서 못 탔다. 2)고속화도로에도 이륜차 주행로가 분리벽으로 나뉘어 있다. 인터섹션이 문제인데, 우리가 보기에는 사람 죽기 딱 좋게 생겼다. 차량이 이륜차 주행로에 합류했다가 들어오고 나간다. 3)한낮에도 몸을 꽁꽁 싸매고 다니는 여성 운전자들이 많이 눈에 띈다. 여기서도 하얀 피부가 미의 상징이라고 함. 4)이륜차들이 보행도로를 가로질러 건물로 쑥 들어가기도 한다. 이륜차 주차장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