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길
치앙마이는 인도와 도로가 제대로 구분돼 있지 않다. 신호등도 많은 편이 아니라서, 길을 건널 때면 도로가 한적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럴 때면 늘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곤 한다.
이곳에는 스쿠터가 아주 많다. 교복을 입은 앳되어 보이는 아이들도 스쿠터에 앉아 등교를 한다. 조금 더 있다 보면 차 문이 없는 빨간 썽태우가 흔들거리며 지나가고, 탑승감이 제법 좋아 보이는 툭툭도 그 뒤를 따라 지나간다.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는 개들이 반쯤 눈을 감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동그란 눈을 뜬 작은 고양이들은 내가 다가가도 멀뚱멀뚱 쳐다볼 뿐, 도망가지 않는다.
눈에 띄는 색의 옷을 입은 어린 승려들은 옹기종기 모여 사원 마당을 청소하고 있고, 배구 경기가 한창인 학교에서는 까르륵대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5분이 지나도 길을 건너지 않았다. 멀뚱히 서서 이 모든 순간을 느껴본다. 기분 좋은 게으름, 혼자 즐기는 간만의 여유. 한참을 서서 게으름을 만끽한 뒤 슬슬 발걸음을 떼어본다. 또 어떤 거리가 날 기다리고 있을까?
06 만남
오후 다섯 시, 날씨가 조금씩 선선해지기 시작할 시간이다. 별다른 목적지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걸어 다니기만 하니 배가 고팠다. 마침 근처에 적당한 식당이 보여서 들어갔는데,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다들 일행이 있어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혼자 들어가서 주문해도 되는 걸까, 괜한 생각이 들어 머뭇거렸다.
우스웠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러 치앙마이까지 온 건데, 밥 한 끼도 제대로 못 먹고 음식점 주변만 뱅글뱅글 도는 꼴이라니. 사실 한국과 다른 것도 없었다. 나는 왜 그렇게 머뭇거렸던 걸까.
한껏 소심해진 나는 가까운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탄산음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작정 여행을 저질렀던 용기에 취해 있던 나였다. 그런데 너무 쉽게 자신감을 잃었다. 음료수를 들고 호스텔 로비로 향했다. 창밖을 보며 멍이나 실컷 때리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창가와 붙어있는 높은 테이블 자리는 이미 누군가 자리를 차지했다. 어쩔 수 없이 그 뒤에 있는 낮고 넓은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음료수를 마시며 내 자리를 빼앗은(?) 그를 몰래 쳐다봤다.
‘검은 머리를 가진 저 동양인 남자는 한국 사람일까?
나처럼 혼자 온 것 같은데, 저녁은 먹었냐고 한 번 물어볼까?
그렇게 하면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을까?’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렇게 망설이던 사이에 그는 옆에 있던 작은 가방을 챙기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연이 닿을 수도 있었던 사람을 그냥 보내는 것 같아서 괜히 아쉽고 초조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소심함 때문에 태연한 척, 낙서 가득한 벽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속은 애가 탔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던지는 간단한 질문 하나.
“Where are you from?”
07 Ride
스쿠터 뒷자리에 앉아있으면 달려오는 바람과 나의 코끝이 부딪힌다. 스쳐 가는 치앙마이의 숨결이 살갑다. 그보다는 느리게 지나가는 풍경들과 눈을 맞춘다. 내가 이곳을 떠나더라도 나를 기억해줄까?
잠시 스쿠터가 멈춘다. 거리의 포장마차 주인과 인사를 나눈다. 그저 미소 만이지만 우리는 이미 서로가 반가웠다. 스쿠터가 다시 움직인다. 나는 손을 커다랗게 흔들며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두 손바닥이 점점 멀어진다. 내가 이 거리로 다시 돌아올 때는 우리 악수라도 하는 게 어때요?
자유롭게 치앙마이 거리를 누비는 스쿠터, 그 위에 앉아있는 우리들. 이런 게 여행의 묘미가 아니겠냐는 말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바람이 코끝으로 스친다. 치앙마이가 느껴졌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도 더 선명하고 또렷했고 기분 좋은 촉감이다. 분명 지금 이 모든 순간이 꿈처럼 기억될 거라는 말에 나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을 지금 보다 더 완벽하게 떠올릴 수는 없을 테니까.
치앙마이 도로 위에 소중한 기억 한 조각을 숨겨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