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세계여행 #7, 별 헤는 밤 –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반짝이는 요세미티를 걷다

요세미티의 아침이 밝았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보니 나는 아무래도 시골사람인가 보다 싶다. 앞선 다른 도시들은 너무 차가웠다. 어디를 가든 얼른 떠나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는데,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오니 너무 좋다. 풀 냄새, 나무 냄새, 하늘 냄새, 공기 냄새, 모든 게 다 좋다.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네 시골집의 이른 아침 냄새랑 비슷했다. 외할머니는 한 번 아프시고 난 뒤로는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는데, 그렇게 시골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셨다. 가끔 가던 나도 그 냄새가 한 번씩 그리운데 할머니는 얼마나 사무치셨을까. 이제 그 냄새는 다시 맡을 수 없고 할머니도 다시 볼 수 없다. 왈칵 눈물이 난다.

 

아침에 일어난 한 (못난) 남자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식비를 아껴보겠다고 베이글로 연명한 바 있다. 아침은 그때 남은 재료로 해결하기로 했다. 베이글과 칠면조 슬라이스 그리고 치즈. 마땅한 조리 기구가 없어서 생으로 그냥 먹었는데, 비린내 때문에 토할 것 같아서 먹다 말았다.

 

나와는 다르게 잘 먹는 손뱅. 진정한 아메리칸의 면모를 보이기 위해 억지로 먹는 건 아닌지

 

아침을 먹고 요세미티의 정기를 느끼기 위해 나섰다. 날씨가 정말 완벽했다.

이곳에 아이들이 엄청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저 ‘요세미티’ 하면 하이킹 코스가 많아서 어른들만의 세계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길이가 짧고 걷기 쉬운 하이킹 코스도 많다. 유모차나 휠체어를 끌고 오는 사람들도 있을 만큼 가족 단위로 많이 찾는다.

 

요세미티 풍경

 

유모차에 있는 아가들을 보니 이제 막 태어난 우리 조카 행복이가 생각났다. 부모님과 비슷한 연배의 어른들을 볼 때면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났다. 같이 여행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편과 나는 여행하는 동안 가족을 계속 생각했다. 다만 남편은 미국을 다니면서 ‘가족들이랑 여기 살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가족들이랑 다시 오면 좋겠다‘고 했다. 정반대였다. 여행은 하더라도 살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텐트 체크인할 때 받은 하이킹 코스 유인물을 살폈다. 하이킹 코스는 난이도에 따라 세 단계가 있었다. 내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아서 우리는 난이도가 가장 낮은 코스, 요세미티 폭포(Yosemite Falls)를 선택했다.

 

요세미티 폭포

 

폭포는 Lower와 Upper로 나뉘었는데 Upper는 시간이 오래 걸려 우리는 Lower 폭포를 보러 갔다. 다른 코스를 못 가봐서 아쉽기는 했지만, 어디를 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요세미티

암벽등반 하는 사람. 나는 무서워서 죽어도 못하겠다

 

요세미티를 걷다 보면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클라이밍 하는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요세미티는 클라이머들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로망 중 하나란다

 

 

누구에게나 위로는 필요하다

엄마가 여행 가면 성당 사진을 찍어서 보내 달라고 하셨다. 마침 요세미티에는 ‘Yosemite Valley Chapel’이 있었다. 성당인지 교회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아무튼 효녀 랑녀는 열심히 찾아갔다.

 

어머니와 엄마를 위한 한 컷. 그런데 특이하게 꼭대기에 십자가가 아니라 그냥 막대기 같은 게 놓여있다. (혹시 완전히 다른 종교는 아니겠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어머님과 신실한 천주교 신자인 우리 엄마를 뒤로하고 남편과 나는 둘 다 무교이다. 우리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열심히 다니던 교회와 성당을 거부했다. 16살,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가까웠던 친구의 까닭 모를 죽음을 아무 이유 없이 받아들이기에 남편은 아직 반항기 어린 여린 소년이었을 뿐이었다. 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기 충분했다.

나는 딱히 별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많은 무신론자의 뻔한 이유가 나에게도 찾아왔다. 그냥 세상이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신이 정말 있다면 세상이 이럴 수 있는 거냐고. 종교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상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어릴 땐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우리 아빠의 ‘나신교(나를 믿는 종교)’에 빠지게 되었다.

우리 아빠는 엄마가 식사 전에 기도하면 한 번씩 ‘돈은 내가 벌어왔는데 어디에 기도하는 거냐’며 껄껄껄 웃곤 했는데, 그런 아빠의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물론 아빠가 무사히 돈을 벌어 올 수 있게 한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한 거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말이다.)

 

이거 찍는데 손뱅이 비웃었다

 

결국 나는 고등학교 때 엄마에게 ‘종교의 자유’를 선언했다. 침묵하던 언니와 동생도 줄줄이 땅콩으로 나의 발언에 숟가락 얹어 급작스레 성당으로 가던 발길 끊었다. 그렇게 엄마의 마음을 후벼 판 불효녀가 되었다.

하지만 24살 무렵 삶에 너무 지치고 힘들었던 어느 날 혼자 성당에 찾아갔다. 세상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지던 때였다. 그저 불변의 절대적 존재가 간절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어릴 때부터 다니던 성당밖에 없었다. 그때 알게 됐다. 이래서 다들 종교를 가지는구나. 나는 여전히 냉담신자이지만 그날 이후 더 이상 종교에 대해 냉소하지 않는다.

 

 

별 헤는 밤

3주 여행하면서 달달한 커플 사진 한 장 제대로 못 찍었다(우리 관계가 달달하지 않았으므로). 오늘은 요세미티 숲 요정의 기운을 받아 달달한 커플 사진을 시도해보았다.

 

가짜 달달함이 끝나고 삼각대를 향해 열심히 뛴다

 

가짜 달달한 커플 사진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그 뒤로 계속 커플 사진만 찍어본다.

 

사실은 손뱅을 웃게 하려고 배를 간질렀다. 웃어! 웃어!

 

우리는 밤새도록 노닥거릴 만큼 대화가 많은 부부였다. 하지만 여행을 시작한 뒤로 온종일 붙어있음에도 이상하리만큼 대화가 줄었다. 요세미티는 가로등이 거의 없어 해가 떨어지면 그냥 캄캄한 밤이 된다. 자연이 준 강제 휴식. 우리 부부는 여행 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었다.

카메라를 부수고 의기소침해진 남편은 계속 자기 잘못을 고해성사했다. 나도 남편에게 고해성사하며 토닥토닥했다. 서로의 잘못에 대해 감싸주는 시간. 남편에게 서운했던 감정들이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이런 게 부부인가. 아직 결혼한 지 오래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란 걸 알았다.

 

 

해가 완전히 졌다. 카메라가 말썽이어서 어제 제대로 찍지 못한 별 사진을 찍으러 나섰다. 곰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너무 봐서 그런지 어디선가 곰이 나타날까 봐 덜덜거렸는데, 어린 애들이 플래시를 들고 마실 나가는 걸 보고는 용기를 얻었다.

별 헤는 밤. 책에서만 보던 칠흑 같은 어둠. 인공의 빛은 한 줄기도 없는 깜깜함. 빛이라고는 별과 달뿐인 이런 순간을 언제 맞이해봤는지. 아니, 살면서 경험해 본 적 없는 순간이다. 너무 낯선 오감이 나를 깨웠다.

 

 

하늘을 보는 데 비행기가 자주 지나간다. 분명 비행기는 대기권에서 날고 있을 테고, 별은 저 멀리 우주를 떠돌고 있을 텐데, 땅에서 올려다보니 꼭 그 둘이 충돌할 것만 같았다.

별을 보며 로맨틱한 생각을 할 줄 알았는데 정작 별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너무 추운데 어쩌지, 갑자기 곰이 튀어나오면 어쩌지, 내 디스크 어쩌지, 한국 돌아가야 하면 어쩌지, 저 비행기가 여기로 추락하면 어쩌지, 우리 남편이 카메라 망가져서 너무나 속상해하면 어쩌지…

별빛 가득한 밤이었지만, 잡념을 떨쳐내기엔 영 부족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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