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ana Blues #12(1) – 쿠바, 카마구웨이

 

Hey, Chino!

 

동이 채 트기도 전에 지친 몸을 일으키는 일이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머리는 감을 자신도 없었기에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고양이 세수를 하고 과하게 소박해진 짐을 주섬주섬 챙겨 문을 열고 나섰다.

 

“준! 일찍 일어났네요.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커피랑 빵을 좀 먹고 가요”

 

주인아주머니는 나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신 것 같았다. 테이블 위 찻잔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참! 먼 길을 가려면 물이 필요할 거예요. 냉장고에 시원한 물을 넣어놨으니 꼭 가져가요”

 

아주머니의 환한 웃음은 당장 떠나야 하는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정말이지 좋은 사람들과 이별하는 순간은 매번 어색하고 아쉬울 뿐이다.

 

선물로 드린 사진을 들고 환하게 웃으시는 카사의 주인아저씨

 

잠시 후 카사의 주인아저씨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이제 출발하자고 말했다.

 

“감사했습니다. 이틀 동안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반가웠어요. 우리도 아쉽네요. 항상 이 자리에 있을 테니 언제든 찾아와요.”

 

나는 아주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아저씨의 트럭에 올라탔다. 트럭은 잠든 시에고의 거리를 가로질러 카미욘 정류장에 도착했다.

 

“멋진 여행 하도록 해요. 굶지 말고!”
“감사합니다. 한국 가서도 잊지 않을게요.”

 

아저씨는 나를 가볍게 안으면서 격려해주시고는 다시 트럭에 올라탔다. 트럭은 굉음을 내며 시야에서 멀어졌다.

 

정류장에서 가장 돋보였던 카미욘. 고급스러웠다. 안타깝게도 카마구웨이 행이 아니었다

 

정류장 직원에 의하면 카마구웨이(Camagüey) 행 카미욘은 분명 6시에 도착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시간은 이미 8시를 지나고 있었다. 슬슬 짜증을 넘어서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러다간 시에고에 하루 더 머물러야 할 판이었다.

 

“Hey, Chino(이봐, 중국인)!”

 

나랑 목적지가 같았던 흑인 청년이 나에게 소리치면서 한쪽을 손으로 가리킨다. 그의 손끝에는 중국산 관광버스가 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던, 멀끔하고 심지어 세련된 버스였다. 그는 나에게 뛰어가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왜 뛰어야 하는지,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그의 말을 듣기로 했다. 아마도 몸이 먼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쿠바에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는 걸…

 

“아저씨(헉헉), 혹시 카마구웨이로 가는 버스인가요?”
“Si(응)”

 

무뚝뚝한 기사 아저씨는 짧게 대답했다. 요금은 카미욘과 같은 20모네, 천원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버스 안을 둘러봤다. 사방에서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냉기, 쿠션감이 살아있는 등받이, 쾌적한 공기…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전개였다. 고급스러운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미지의 땅 카마구웨이에 도착했다.

나는 아직도 왜 그때 카미욘이 도착하지 않았었는지, 또 그 호화스러운 버스는 대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아마도 그날의 진실은 내 옆자리에서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이던 흑인 친구만 알겠지…

 

인산인해였던 카마구웨이 버스터미널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더니 적잖이 피곤했다. 게다가 내 꼴은 추레한 여행객을 넘어 걸인 수준. 어서 씻고 누울 곳을 찾아야 했다. 바로 거리로 나섰다.

어디쯤 왔는지 감도 안 올 만큼 골목 구석구석을 헤매고 있었다. 어디선가 코를 자극하는 기름진 냄새가 포착됐다. 냄새의 진원지는 방금 열 걸음쯤 지나온 바로 그곳이었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 뒷걸음질 쳤다. 기름진 냄새를 풍기던 곳에는 식당이 있었다. 그 순간, 카사고 뭐고 일단 먹는 게 우선이었다.

테이블에 앉아서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나는 스페인어 무식자다. 하지만 쿠바에서 한 달 정도 지내다 보니 간단한 메뉴쯤은 알아보게 됐다. 그런 내가 너무 대견스러워 잠깐 감동에 빠졌다.

 

쿠바식 돼지 스테이크를 곁들인 볶음밥. 요리사 1명, 서버 1명인, 손님도 1명인 굉장히 아담한 식당이었다

 

잠시 후 주문한 돼지 스테이크가 나왔다.

 

“원래는 흰 쌀밥이 나오는데, 특별히 볶음밥으로 해줬어.”

 

정말 볶음밥이었다. 이번에도 나를 중국인으로 본 것이 틀림없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집 생각나네. 하하하… (그래, 지금은 중국인이라고 하자)

 

중국식 볶음밥과 스테이크는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마치고는 다시 카사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발품을 제법 팔았더니 다행히 괜찮은 카사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입실과 동시에 샤워실로 뛰어갔다. 말도 안 되게 피곤했지만 아무래도 먼저 씻어야 했다. 시원하게 샤워를 마치니 살 것 같았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긴장도 풀렸다.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자기 전에 맞춰뒀던 알람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별로 잔 것 같지도 않은데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이다. 더 늦기 전에 카마구웨이 시내를 둘러보려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카마구웨이

 

카마구웨이 중심가로 들어서니 중세 유럽의 아담한 마을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카마구웨이에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가로등이나 보도블럭 같은 작은 부분에서도 그때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아픈 역사이지만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만큼은 매력적이었다. 카마구웨이 사람들도 달라 보였다. 특유의 세련됨과 여유로움이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음악으로 가득했던 카마구웨이 광장

 

발걸음을 계속 옮기는데 저 멀리, 광장에 많은 사람이 모여든 게 보였다. 주변에 있는 계단마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었다. 광장 중앙에는 기타와 드럼 등 여러 악기를 세팅하며 공연 준비가 한창이었다.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여행하며 겪었던 쿠바의 길거리 음악은 늘 황홀했기 때문이다. 카마구웨이는 어떤 음악을 들려줄까? 이번 공연 역시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멋진 호흡을 자랑하는 뮤지션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공연 준비가 끝난 듯 팀의 리더 같은 남자가 무대에 섰다. 그는 마이크를 들고 간단하게 멤버 소개를 했다. 마지막 멤버의 소개를 마치자 신나는 음악이 광장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싱어들은 살사를 추며 노래했다. 한 순간 광장은 쿠바 그 자체였다

 

노래하고 연주하는 그들의 표정은 황홀해 보였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는 존중과 사랑이 느껴졌다. 나는 한참 동안 그들의 음악에 빠져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일어나 살사를 추고 있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며 이 순간을 즐긴다. 광장에는 쿠바만의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가족과 함께 음악을 즐기던 아이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름다운 음악을 즐기고 사랑을 고백하는 것. 이토록 황홀한 저녁이 또 있을까. 쿠바 사람들은 그런 ‘지금’에 충실했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행복은 지금 이곳에 있다.

 

#12-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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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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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하는 모든 곳에서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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