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 해 일주 #5, 그레잇! 그란 세노테! – 멕시코, 툴룸

모네가 이 장면을 보았더라면…

 

세차가 불어오는 맞바람 때문에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야 했다

 

아침으로 설탕과 달걀을 듬뿍 넣은 한국 스타일의 토스트를 거하게 차려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그란 세노테(Gran Cenote). 어제 미리 빌려놓은 자전거를 준비하고는 반만 믿어야 하는 구글 맵을 켰다. Great Cenote라고 표시돼있는 지점에 점을 콕 찍고는 천천히, 여유 있게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달릴 수록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점점 거세졌다. 심지어 나중에는 페달을 계속 밟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우리는 얼굴에 송골송골 땀방울을 가득 달고 나서야 그랑 세노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싼 입장료가 야속했지만 충분히 멋진 곳임에는 틀림없다

 

지금까지 총 7개의 세노테를 방문했는데 그란 세노테 입장료가 가장 비쌌다. 한 사람당 150페소씩 총 300페소를 내는데 손이 벌벌 떨렸다. 300페소면 우리 부부의 하루 또는 이틀 치 방값에 가깝다. 그란 세노테(Gran = Great)라는 이름값 때문인가, 도대체 얼마나 멋지길래 입장료부터 이렇게 비싼 거냐며 우리는 씩씩거렸다.

잘 정돈된 입구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우리는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입장료도 다른 세노테들에 비해 2~3배 비쌌는데, 구명조끼 같은 스노클링 장비와 라커의 대여료도 비쌌다. 가격 때문에 연달아 두 번이나 놀랐다. 다행히 셀하(Xelha)에서 스노클링에 빠져버린 나는 남편에게 졸라 대형마트에서 200페소에 간단한 스노클링 장비를 마련해 놓은 상황. 이것도 없었으면 일 인당 80페소씩 더 냈어야 했다. 이참에 내일은 입으로 바람 불어 넣는 구명조끼도 하나 사야겠다. 지금까지 구명조끼 빌리느라 쓴 돈을 합치면 제대로 된 것 하나 샀을 텐데, 너무 아깝다.

 

모네가 이 풍경을 봤더라면…

 

‘죽기 전 꼭 봐야 할 진짜 세노테’라고 불리는 바야돌리드(Valladolid)의 세노테 사물라(Samula)를 입장할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세노테 사물라가 푸른 지하 세계 동굴 샘이라면 여기 그란 세노테는 뚜껑이 활짝 열려 있는 초록빛 연못이다. 인상파 거장 모네가 살아서 이 풍경을 봤더라면 대작 하나는 더 남겼을 거다. 투명한 물과 바위틈에 있는 이끼 그리고 물에 떠 있는 잎사귀들이 햇빛에 부딪히며 흰색, 노란색, 초록색 빛으로 반짝인다. 우리는 감탄을 쏟아냈다.

 

거북이와 물고기떼가 함께 수영 중이다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위아래로 온통 두꺼운 검은색 수트를 차려입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커다란 오리발을 신고 뒤뚱뒤뚱 모이더니 하나, 둘 순서대로 세노테에 몸을 던진다. 이곳 그란 세노테는 전 세계의 다이버들이 찾아오는 다이빙 포인트로 유명하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다이버들이 이곳을 찾는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물속에 들어가는 초짜 다이버부터 무거운 산소통 두 개를 등에 메고 또 두 손으로는 몸통만 한 카메라를 드는 다이버, 도무지 보이지 않는 깊은 수중 동굴 속으로 거북이마냥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전문 다이버까지 우리가 노니는 두어 시간 동안만 해도 열 명 이상은 다녀갔을 것이다.

나는 어제 산 만 오천 원짜리 스노클링 장비로 웬만한 다이버들보다 더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자연과 함께라면 늘 ‘자연인’이 되는 남편은 일회용 호스마저 집어 던지고는 물개처럼 요리조리 헤엄쳐 다닌다.

 

 

맑고 투명한 물속을 만끽하다

 

그란 세노테의 물은 맑고 투명하다. 심지어 동굴 안에서도 꽤 멀리까지 또렷하게 보인다

 

그랑 세노테는 다른 세노테에 비해서 수심이 낮은 편이다(그래도 2~3미터는 된다). 공간이 꽤나 넓어 동굴 터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스노클링 하기에 딱 좋았다. 물도 굉장히 맑았는데, 동굴 안 물속에서 방수 팩을 씌운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어도 저 멀리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제법 선명하게 찍힌다. 송사리 같은 작은 물고기도, 동굴 천장에서 떨어져 바닥까지 내려온 종유석의 결까지도 모두 선명하게 보인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도전 슈퍼모델 수중 미션’에 도전한 부부. 내일모레면 둘 다 서른인데 정말 재미있게 논다. 괜찮다. 창피하지 않다. 외국 할아버지들은 우리보다 더 재미있게 놀더라.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란 세노테를 만끽하는 사람들

 

어떤 할아버지는 수경 하나만 달랑 끼고는 내 눈앞에 둥둥 떠 있었는데,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는 수중 동굴의 지하 바닥으로 사라졌다. 몇 초, 아니 거의 일분 이상 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걸 안전요원에게 신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즈음, 5m 정도 떨어진 종유석 틈새로 ‘푸하’하는 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그란 세노테의 자연인

 

할아버지는 ‘아이고, 살았다’는 표정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가 싶었다. 그런데 우리의 걱정과는 다르게 할아버지는 다시 커다란 공기 방울 몇 개만 남기고 물속으로 사라졌고, 이후로도 몇 번이나 프리 다이빙을 즐겼다. 정말 남자들은 애나 어른이나 할아버지나 다 비슷한 것 같다.

 

옆에서 나와 함께 신랑을 지켜보던 이구아나

 

오늘도 역시 마누라는 계곡에서 처음 놀아 본 일곱 살 소년처럼 입술이 시퍼레졌다. 한 번만 더 물에 들어가면 저체온증으로 실려 갈 것 같았다. 싱크홀 위에 있던 간이 의자에서 휴식을 취했다. 내 옆으로는 쉼터를 빼앗긴 이구아나가 있었는데, 이 녀석과 함께 신랑의 ‘자연인’ 퍼포먼스를 지켜보았다.

 

모든 동물의 주인, 아니 정글에 놓으면 타잔 같고 물에 높으면 자라 같은 우리 남편. 이런 모습을 정말 사랑한다. 얼굴도 좀 타잔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동물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하하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편했다. 아까와는 반대로 바람이 등을 밀어주니 페달질이 훨씬 수월했다. 갈 때보다 시간이 반은 단축된 것 같았다. 덕분에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두시가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린 짐을 꾸려서 빨리 이동해야 했다. 오늘이 툴룸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기 때문에 우린 그 밤을 툴룸의 아름다운 해변에서 보내기로 했다. 아주 잠시라도 시간을 아껴서 툴룸의 바다를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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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수와 신애

찬수와 신애

비싼 웨딩드레스, 메이크업, 오글거리는 스튜디오 웨딩사진 촬영과 맞바꾸며 6개월간 중남미로 떠났던 배낭 신혼여행.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동행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앞으로의 60년을 어떻게 함께 해야할 지를 나누었습니다.

* 블로그 : pinkcham.blog.me
찬수와 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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