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세계여행 #4, 부부 그리고 각자의 취향 – 미국, 샌프란시스코

 

이제 여행을 끝내기로 했다

 

이제는 여행이 아니라 생활이다

 

LA를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가면서 생각한 게 있다. ‘여행’을 끝내는 거다.

문득 너무 잘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장기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보면 굶은 이야기, 엉성하게 먹은 이야기가 많던데 우리는 너무 잘 먹고 다닌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미국 음식이 내 체질인가 보군, 여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식비를 계산해 보니 하루에 5~6만 원 정도를 쓰고 있었다.

이동을 너무 편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남미를 안 가봐서 이동하는 게 얼마나 더 열악해질지 모르겠지만, 첫날 라스베가스 야간버스에서 인류의 질병 – 욕창 편 을 찍을뻔한 이후에는 렌트해서 다니거나 대중교통 정기권 등을 끊고 다녀서 이동에 큰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고속도로에서 차를 타고 달리다 바다 보이면 멈춰 서 놀고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 이동도 너무 사치스럽게 하고 있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하루에 두 세 군데씩 구경을 다녔다. 그러다 사진 정리도 안 되고 글도 못 쓰고 잠도 제대로 못 잘 지경이 되고 나서야 하루에 한 군데 정도만 천천히 돌아보는 스케줄을 짜게 되었다. 처음엔 정말 힘들었고 그래서 아내와 많이 다투기도 한 것 같다.

나는 마치 휴가를 온 여행객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제는 여행이 아닌 생활을 해야 한다. 항상 외식할 수 없고, 언제나 차를 타고 다닐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여행객처럼 하루에 3,4곳을 돌아다닐 수도 없고 매일 밤 번화가로 놀러 나갈 수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여행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시간 동안 다닐 수 있으며 내가 생각하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천천히, 하고 싶은 걸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가자고 생각했다. 물론 마음먹은 대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 속 0순위 도시,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의 풍경

 

태평양 연안 고속도로를 1박 2일에 걸쳐 도착한 샌프란시스코. 렌터카 반납 시간을 맞추지 못해 차를 하루 더 빌려야 했다. 시내와 시외를 한 바퀴 차로 돌았다.

샌프란시스코는 내가 미국을 생각할 때 0순위로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맑고 화창했던 LA와 비교했을 때 샌프란시스코는 좀 더 진득한 색감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그리고 있었는데, 춥고 비 내리는 풍경이 내 생각 속 그대로였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도시의 색감, 느낌 모든 것이 내 취향이었다.

 

집마다 개성과 멋이 넘치는 샌프란시스코. 가끔 그렇지 않은 집도 멋있다

 

짧게 샌프란시스코를 돌아본 느낌은 LA와는 완전 다른 도시라는 것이다. 특히 운전 스타일을 더욱 그렇다. LA가 느긋한 편이라면 샌프란시스코는 서울 같다. 시내에 나갔다가 케이블카(트램) 라인 때문에 좌회전, 유턴도 제대로 못 했다. 아마 경찰이 있었다면 딱지 몇 개는 받았을 운전이었다. 도로 역시 경사도 많고 LA처럼 자로 잰 듯한 맛이 없다.

 

월마트에서 산 거 티 나냐? 내가 볼 땐 괜찮아!

 

구두야 잘 지내니?

 

그리고는 월마트에 갔다. 당장 여행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식비였다. 앞으로 음식을 사 먹기보다는 만들어 먹기로 해서 식료품도 사고 구경도 할 겸 들렀다.

물론 갔다가 부츠를 하나 샀다. 사실 한국에서도 부츠 하나 가져오려 했었는데 부피 문제로 못 가져왔었다. 대신 구두를 한 켤레 가져왔었는데 발도 아프고 해서 라스베가스에서 버리고 왔었지…

 

소시지를 굽고, 계란 프라이도 부쳤다. 그리고 예쁘게 플레이팅

 

월마트에서 사 온 재료로 밥을 해먹었다. 우리가 묶은 숙소는 중국인 이민자 가정의 집이었는데, 주방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마침 그 집의 아주머니가 밥을 해놨으니 먹고 싶으면 먹으라고 했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쌀밥인가.

메뉴는 밥에 월마트 소시지, 그리고 간장을 비벼 먹었다. 간장 밥이 이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다. 주인아줌마가 잠깐 방에 들어간 사이 한 그릇 더 퍼 와서 간장에 비벼 먹었다. 한국인은 어쩔 수 없이 밥인가 보다. 이 이후에도 밥을 찾기 위한 나의 노력은 계속되었으니 지켜봐 주시길.

 

간장 투척. 샘x 간장이었으면 진짜 만세 부를뻔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비오는 일요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건 금요일 저녁. 토요일은 날이 흐려서 하루를 집에서 보냈다. 호스트는 우리에게 어디 안 나가냐고 물어본다. 아마 주말에 와서 집에만 있는 게스트가 흔하지는 않으리라. 우리는 피곤해서 오늘 하루는 쉰다고 했다.

 

교통 패스권. 사용할 날을 골라 복권처럼 긁으면 된다

 

그리고 다음 날인 일요일. 이제 좀 움직여보려는데 아침부터 비가 조금씩 온다. 아직은 본격적으로 내리진 않는 거 같아서 일단 나가본다. 오전에 찾은 곳은 피셔맨스 워프(Fisherman’s wharf). 항구 가까이 있는 상점가인데, 보통 길거리 음식이나 해산물 등을 먹으러 찾는 곳이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비가 내리치기 시작한다.

 

비오는 날 오픈 탑 버스 타신 분들. 열정 인정합니다

 

호스트에게 빌린 우산 하나를 두 명이 쓰려니 비를 안 맞을 수가 없다. 아내에게 말한다.

 

“비 오는데 그냥 어디 실내에 들어갔다가 집에 갈까?”

 

아내는 괜찮다고 한다. 계속 걷는데 아무래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한 번 물었다.

 

“오늘은 그냥 숙소에서 쉴까?”

 

아내는 또 괜찮다고 한다.

 

피셔맨스 워프. 실제로 어업이 이뤄지는 건가? 비가와도 관광지엔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결국 걷다 보니 피셔맨스 워프에 도착했다. 이미 옷은 만신창이가 됐다. 몸에서 건조한 부분은 어제 산 방수 부츠 안의 발뿐. 비가 오니 카메라도 제대로 꺼낼 수 없다.

어차피 앞으로도 필요할 우산, 그냥 사기로 했다. 그런데 아내는 3단 우산을 사고 싶어 했다. 여행 중에는 무조건 작은 게 편하다는 이유에서다. 나는 3단 우산은 내구성이 떨어질까 싶어 2단 우산을 사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짐 때문에 많이 싸운 터라 더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3단 우산을 구매했다.

 

 

맛집 회의주의자 vs 맛집 신뢰주의자

 

문제의 클램 차우더 맛집

 

피셔맨스 워프에 가면 관광객들이 전부 사 먹는 음식이 있다. 바로 클램 차우더(Clam Chowder)인데, 조개와 게살을 넣은 수프다. 수프를 일반 용기가 아니라 빵으로 된 그릇에 넣어주기도 한다.

날이 좋은 날엔 다들 길거리에 앉아서 먹는다는데, 오늘은 비가 오니 다들 상점 안에서 먹는다. 아내는 우리도 클램 차우더를 먹어야 한다며 사람이 많아 보이는 한 가게에 들어간다.

사실 나는 관광지 맛집 회의주의자이다. 어차피 그런 맛집은 다 그게 그거고, 어쩌다 뜬 집은 그냥 얻어걸린 마케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유명한 걸로 유명해져서 더 유명해져 버린 맛집들. 맛이라고 크게 다를 거 같지 않다. 한 골목에서 장사하려면 비슷한 맛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 무엇보다 진짜 맛집이 관광지 인근에 있을 리가 없다.

한 번은 아내와 부산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아내는 부산에서는 냉채족발을 꼭 먹어야 한다며 나를 족발 거리로 데려갔다. 역시나 블로그에서 유명한 집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 많은 것도 기다리기도 싫어하는 나는 아내에게 ‘어차피 이런 데는 다 마찬가지’라며 옆집으로 갔다. 아내는 그 집 냉채족발이 맛없다고 나를 비난했지만 나는 아직도 냉채족발 자체가 맛없는 음식이라 생각한다.

글을 쓰다가 냉채족발 이야기를 물어보니 아내는 아직도 원래 블로그에서 본 집에 갔으면 맛있었을 거란다. 맛집 블로그에 관한 논쟁은 아마 쉽사리 사그라지지들지 않을 것 같다.

 

클램 차우더… 결론은 나의 승리였다

 

다시 클램차우더 가게 안. 나는 북적이는 관광객들 사이에 서서 클램 차우더를 주문했다. 9달러를 내자 빵으로 만든 그릇에 수프 한 접시를 내주는 종업원. 그리고 그 음식을 기다리는 랑녀. 뚜껑을 개봉하고 한 스푼을 뜬다.

맛없다. 나의 승리다. 수프는 짜고 빵에선 신맛이 났다. 오래된 빵인가… 랑녀는 라스베가스 체인점에서 먹었던 5,000원짜리와 별다르지 않다고 혹평을 했다. 그러면서 ‘블로그에서 Chowder에 실패했다는 글을 많이 보았다’고 했다. 물론 그냥 관광지에서는 한 번씩 먹어보는 음식이라 말도 덧붙였다.

만약 나중에 누군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클램 차우더를 먹겠다면 그러지 마시라. 대신, 피셔맨스 워프 입구에 인앤아웃 버거를 추천한다. 그게 훨씬 맛있다.

 

 

역시 비는 스트레스다

 

돌아오는 길에도 비가 계속 왔다. 우산을 새로 샀지만, 비가 많이 와서인지 우산이 작아서인지 우산 밖으로는 계속 비를 맞는다. 급기야 바람까지 세게 불더니 내구성 0의 우산이 이내 뒤집어진다. 결국 짜증이 터졌다.

 

“이래서 그냥 2단 우산 사자고 했잖아!”

 

비는 계속 내렸지만 케이블카를 포기할 순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명한 케이블카. 비가 많이 와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한번 타보기로 한다. 어차피 이 여행에 ‘나중’이라는 건 없다. 그때그때 보이는 것들을 해야 한다.

 

열차의 명당 자리를 잡은 손뱅

 

케이블카는 3개 노선만 운용되는데, 거의 관광객용 같았다. 정류장에서 2~30분 정도 서 있었을까, 우리 차례가 왔다. 다행히 비가 그쳐서 의자가 아닌 기둥을 잡고 서서 가는 바깥쪽 자리를 잡았다. 참고로 이 자리는 관광객들에게 인기 자리다. 다들 열차에 매달려 서서 가는 꿈을 꾸지만 그 자리를 차지하는 자는 많지 않다. 아무래도 관광객이 많이 타는 케이블카라 그런지 운전기사들도 유머가 넘친다.

 

운전기사 : 오늘 날씨가 좋네요(비 옴)

관광객 : 제가 운전해 봐도 되나요

운전기사 : 그럼요. 오늘 저녁 CNN에서 봅시다

 

이게 지금 글로 전하려니 재미없는데 현장에서 들으면 재밌다.

 

열차에서 바라 본 샌프란시스코. 날씨는 우중충했지만 행복했다

 

신나게 케이블카에 매달려 가다 보니 샌프란시스코 시내가 훤히 보인다. 바로 이거야. 바로 이게 내가 생각한 샌프란시스코야. 너무 행복하다.

 

무려 ‘블랙’이다. 사실 밥은…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 밥 도둑

 

집으로 돌아와 젖은 옷을 갈아입고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라면. 전날부터 점 찍어뒀던 메뉴였다. 뜨끈한 국물에 밥까지 싹싹 말아서 맛나게 먹었다.

 

바로 이곳이다

 

오늘 밤에는 야경을 보러 집 근처에 있는 트윈 픽스(Twin Peaks)에 가기로 했다. 두 개의 언덕이 나란히 있어서 트윈픽스란다. 그곳에 올라가면 샌프란시스코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다. 나는 야경 마니아다. 항상 높은 곳에 올라가 야경을 보는 걸 좋아했다. 회사에서 야근할 때면 몰래 옥상으로 올라갔고, 고객사에서 야근할 때면 그 건물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 야경을 감상했다. 반면 랑녀는 야경 불감증이다. 야경은 다 똑같다고 한다. 그냥 거리에 불만 켜져 있으면 다 야경이지 않냐고 한다.

트윈 픽스 언덕 앞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집 앞에서 36번 버스를 탄다. 그런데 버스가 이상한 길로 간다. 구글에서 버스가 간다고 한 경로가 아니다.

 

손뱅 : 이 버스 woodside avenue로 가는 버스 아닌가요?

기사 : 어디요?

손뱅 : Woodside요

기사 : 아…쉣! 길을 잘못 들었네! 금방 데려다줄게!

 

우리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나요?

 

그렇게 버스는 원래 노선이 아닌 길을 달려서 우리를 Woodside에 내려주고 떠났다. 이제부터 트윈픽스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구글 지도를 보고 걷는데 가는 길이 산길이다. ‘길이 맞나?’ 싶었지만, 그래도 구글인데 하고 믿고 따라갔더니 그래도 나오긴 나온다. 올라가는 길은 바람이 많이 분다. 태평양에서 오는 추운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하더니 사실이네. 그래도 올라가 야경을 본다. 물론 랑녀는 야경 불감증이지만.

 

야경은 멋졌지만…

 

마지막으로 랑녀와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찰나. 비가 온다. 찬 바람이 사정없이 부는데다 비까지 오니 미칠 지경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 낮에 산 3단 우산은 펼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손뱅 : 우리 우버(Uber) 부를까

랑녀 : 아냐 돈 아껴야 해

손뱅 : 추울 거 같은데..

랑녀 : 괜찮아

 

그리고 300미터 전진. 비가 더 쏟아짐. 바람이 불어 몸도 가누기 힘들어진다.

 

“그냥 부르자고 했잖아!”

 

우버 덕에 렉서스도 타봤다.

 

이렇게 첫 샌프란시스코 나들이는 끝났다. 나는 비 오는 샌프란시스코를 보는 건 좋아하지만 비 맞는 샌프란시스코는 영 아니올시다.

 

이건 좀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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