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ana Blues #10 – 쿠바, 산타클라라

라 보카의 마술사 로나르도

 

트리니다드에 머무른 지도 어느새 1주일이 지났다. 매일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나누고 한국어를 마음껏 쓰니, 편안함에 취해 있었다. 점점 더 편한 것을 찾았고 멋대로 ‘쿠바는 이런 곳이야’ 라며 단정 짓고 있었다. 내가 바랬던 쿠바 여행이 아니었다. 하루빨리 다시금 쿠바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했다.

 

‘당장 내일 Trinidad를 떠나야겠어.’

 

이곳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바닷가 마을인 ‘라 보카’에 가기로 했다. 그곳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카메라 스트랩을 팔목에 단단히 감고, 선크림도 평소보다 듬뿍 바른 뒤 집 밖으로 나섰다.

 

쿠바에서 지낸 시간이 1달쯤 되었을 때 내 발 상황. 운동화를 가져갔지만 신을 일이 없었다

 

라 보카까지는 개조된 트럭을 타고 이동했는데, 간신히 앉을 만한 좁은 자리에서 20여 동안 흙먼지를 들이켜야 했다.

 

라 보카 해수욕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가로운 주말 오후, 불볕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로 라 보카의 해변은 인산인해였다. 대부분 가족끼리 나와 있었다. 단란한 가정의 평화로운 오후를 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손이 갔다.

 

가족 단위로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만 좋다고 해서 무작정 카메라만 들이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앞에서 쭈뼛거리고 있으니, 그런 나를 본 쿠바 사람들은 이리 가까이 와서 찍으라며 나에게 손짓했다. ‘아 여기 쿠바였지’, 사람들의 따뜻한 호의에 감동해 나는 더욱 가까이 다가갔고, 행복한 한때를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이 작은 마을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쿠바의 아이들은 굉장히 조숙해서 나이를 가늠하기가 참 어렵다. 보통 내가 생각한 나이의 4살 아래 정도면 비슷한 것 같다

 

마을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발길을 옮겼다. 동네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맞아준다. 쿠바 어디를 가도 마을 길목에는 늘 그 구역을 지키는 개구쟁이 아이들이 있었다. 그 중 한 무리의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도망가는데, 나는 그 아이들을 불러 사진 한 장을 남겼다.

 

미소가 따뜻했던 라 보카의 사람들

 

라 보카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참 많았다. 아니, 내가 마주친 모든 사람이 다 아름다웠다. 이 마을에는 거친 감성을 매만지는 마법 같은 게 있는 것 같았다. 늘 미소 짓는 사람들 때문이리라,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라 보카에서 만난 특별한 인연 로나르도 가족

 

파란색으로 시원하게 칠해진 집 앞을 지날 때였다. 테라스에 나와 도미노게임을 하는 한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나는 무작정 테라스 안으로 들어갔다.

 

“저 혹시, 제가 사진을 선물해도 될까요? 저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입니다.”
“와! 한국 사람이다! 정말 한국 사람인가요?”

 

나는 당황했다. 그저 나를 소개하기 위해 한국에서 왔다고 말했을 뿐인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격한 반응이었다.

 

“제가 마술사가 되는 게 꿈인데, 가장 존경하는 마술사가 한국 사람이거든요!”

 

이제야 아이가 나를 그토록 반겼던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나는 ‘라 보카’ 최고의 마술사인 로나르도 가족에게 몇 장의 사진을 선물했다. 로나르도의 할아버지는 나만 괜찮다면 잠시 있다가 가도 좋다고 했다. 때마침 소나기가 쏟아지기도 했고,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들과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싶은 마음에 더 있다가 가기로 했다. 할아버지는 직접 만드신 치즈와 과야바 잼을 내오셨다.

 

한국의 마술사 ‘Lim’ 같은 훌륭한 마술사가 꿈이라던 로나르도. 물론 아직도 그 Lim님이 누군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내 핸드폰에 마술사 이은결 씨의 짤막한 마술 영상이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로나르도와 친구들에게 그 영상을 보여주자 아이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핸드폰에 이 영상이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짤막한 영상 한편 때문에 모두가 행복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슬슬 숙소로 향할 준비를 했다.

 

로나르도의 가족은 식구가 많았다

 

“준, 가지 않으면 안 돼? 우리 같이 수영도 하고 재밌게 놀자”
“미안해. 나는 내일 산타클라라(Santa Clara)로 떠나야 해”
“그럼 약속해줘. 라 보카에 돌아오면 꼭 우리 집에서 머무르기로!”
“그래, 꼭 약속할게. 그때 꼭 같이 수영하자!”

 

그저 잠깐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아이들은 가지 말라며 어리광을 부린다. 그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내가 간다는 말에 모든 식구가 문 앞까지 나와 배웅했다. 나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사를 표하며 한 명씩 안았다. 정이 유독 많으셨던 할아버지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마당에서 잘 익은 바나나와, 레몬 몇 개를 따서 주셨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트리니다드로 향하는 트럭에 올랐다.

 


1주일간 나를 품어주었던 카사의 주인인 레오와 함께! 쿠바 여행 중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묵었던 레오네 카사. 잊지 못할 거다

 

“레오 그동안 고마웠어요!”
“준, 만나서 반가웠어. 산타클라라도 트리니다드만큼 매력 있는 도시야. 그곳에서도 즐겁게 보내기를 바라!”

 

미리 가격을 협상했던 택시가 카사 문 앞에 서 있었다. 산타클라라까지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물론 혼자 빌린 것은 아니다. 나와 산타클라라까지 동행하기로 했던 혜연이, 그리고 일본인 두 명까지, 총 4명이 택시비를 나누기로 했다. 덕분에 산타클라라까지 정말 싸고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영웅 ‘체 게바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산타클라라로 향했다.

혁명의 도시, 산타클라라

 

산타클라라 시내 풍경. 곳곳에 국기와 체 게바라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산타클라라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숙소를 먼저 찾았다. 혜연이는 숙소 협상에 뛰어났다. 25CUC의 방이 18CUC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나는 ‘노숙은 면하게 됐구나’라며 안도했다.

우리는 숙소에 짐을 풀고 나왔다. 어디를 가볼까 고민하다가 쿠바의 영웅인 ‘체 게바라 기념관’에 가기로 했다. 사실 난 체 게바라를 잘 알지 못했다. 피델 카스트로는 그를 가리켜 ‘가장 고귀한 인간적 가치’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아마도 그를 기념하는 곳이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가장 고귀한 인간적 가치’, 체 게바라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체 게바라 기념관

 

기념관 앞에는 커다란 체 게바라가 쿠바를 굽이 살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뭔가 찌릿했다. 옆에는 체의 영원한 혁명 동지인 피델 카스트로가 보낸 편지가 새겨져 있었다.

 

‘영원한 승리의 그 날까지, 뜨거운 혁명의 열기로 얼싸안으며’

 

‘체 게바라’의 영원한 혁명 동지인 ‘피델 카스트로’가 체에게 보낸 편지를 인상 깊게 읽고 있는 순례자. 이곳에서는 모두가 뜨거운 혁명가가 된다

 

기념관 안쪽으로는 체의 유품과 혁명의 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는데, 그의 삶에 끝없는 존경을 표하며 세계각지에서 모여든 순례자들이다. 그들은 체의 흔적을 되짚어 가며 감격을 표했다. 나도 그들처럼 체의 흔적을 살폈다. 체가 무엇을 지키고자 투쟁했는지 알게 되면서 ‘가장 고귀한 인간적 가치’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표를 검수 중인 버스 기사 아저씨

 

다음날 아침. 아바나로 돌아가는 혜연이를 배웅하기 위해 외국인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나는 산타클라라에 하루 더 묵기로 했다. 사실 혜연이와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 동행자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사실 숙소에 대한 걱정이 컸다. 산타클라라는 전체 일정의 중간 정도였는데, 지금까지 총 여행경비의 절반을 쓴 상태였다. 지금까지는 좋은 사람들 덕분에 말도 안 되는 돈으로 버텨왔다지만, 보통 카사는 방을 렌트하는 개념이라서 나 같은 여행자에겐 최악의 시스템이다. 당장 혼자 숙소를 구한다는 건 엄청난 출혈일 게 뻔했다.

대책이 필요했다. 얼마를 고민한 끝에 끝내주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외국인 버스터미널에서 나와 같은 처지의 여행자를 포섭해 룸을 쉐어하는 것이었다. 나처럼 넉넉지 못한 여행자들에겐 혹할만한 제안임이 분명했다. 나의 남루한 행색은 이 제안에 더욱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때 적당한 여행자가 등장했다. 누가 봐도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 분명했다. 나는 그녀를 놓칠세라 당장 뛰어갔다.

 

“안녕하세요? 혹시 혼자 여행하는 중인가요?”
“네. 그런데 무슨 일이죠?”
“저는 한국에서 왔고, 이준형이라고 해요. 지금 숙소를 구하고 있는데 너무 비싸서 숙소를 쉐어 할 여행자를 찾고 있어요.”
“아! 그렇군요 하하하. 그러면 저랑 같이 나눠 쓰죠. 저도 넉넉한 여행자가 아니라서 참 반가운 제안이네요!”

 

체 게바라의 자취를 찾아온 아르헨티나 친구 ‘안토넬라’. 그녀의 쾌활한 성격 덕분에 산타클라라에서의 하루가 더 즐거울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이렇게 오늘도 살아남았다. 나의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들어준 그녀의 이름은 ‘안토넬라’. 아르헨티나에서 온 그녀는 체 게바라의 자취를 따라 순례여행 중이었다.

 

“숙소를 쉐어한다니, 대단한데! 어떻게 이런 방법을 생각한 거야?”
“난 사실 정말 돈이 별로 없거든, 이 돈으로 쿠바 왔다니까 다들 미쳤다고 하더라구. 살아남으려면 별수 없지, 하하하!”

 

우리는 본격적으로 숙소를 찾아 나섰다. 비둘기가 그려진 카사 눈에 띄었다. 뭔가 느낌이 좋았다.  비둘기가 괜히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고 해야할까. 카사의 초인종을 힘껏 누르니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숙소 주인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하룻밤 숙박비가 어떻게 되나요?”
“20CUC만 주세요. 하하하. 이 동네에서 이렇게 저렴하고 근사한 숙소는 우리뿐이예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정말 가격보다 시설이 파격적으로 좋았다. 방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을 토해내는 에어컨이 나를 반겼다. 낙원이었다. 안토넬라도 감동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에게 엄지를 추어올렸다.

 

산타클라라를 혁명의 도시로 이끌었던 결정적인 사건을 재현한 공원. 체 게바라는 불도저로 철로를 끊어 무기를 싣고가던 열차를 전복시키면서 승기를 잡았다

 

산타클라라의 사람들

 

우리는 일일 동행자가 돼 산타클라라에 있는 혁명 유적들을 부지런히 쏘다니기 시작했다. 체 게바라의 고국인 아르헨티나에서 온 안토넬라는 가는 곳마다 해박한 지식으로 그 유적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산타클라라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계획도 없었던 나는 안토넬라 덕분에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안토넬라와 조촐하게 축배를 들었다

 

밤이 되어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서로 여행의 건승을 빌며 축배를 들었다. TV에서는 올림픽 중계가 한창이었다.

 

“한국이었다면 치킨집에서 친구들과 올림픽을 보고 있었을 텐데.. 그래도 지금이 행복해!”
“나도 그래. 우리 쿠바에서 보내는 시간을 영원히 추억하자!”

 

그렇게 말하는 안토넬라는 눈을 찡긋하며 차가운 맥주를 순식간에 마셨다. 참 무모하고 만화 같은 하루가 이렇게 또 지나가고 있었다.

 

‘나, 내일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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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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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하는 모든 곳에서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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