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세계여행 #3, 해안도로를 따라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길 – 미국, 로스앤젤레스

 장거리 운전의 즐거움

 

아내와 결혼하고 새로 생긴 즐거움이 있다. 전주까지의 장거리 운전이다. 친지들이 모두 수도권에 살고 있어서 나는 명절이라고 지방에 간 적이 없다. 귀경길의 교통체증이나 장거리 운전의 고충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전주 출신. 본인은 지방 소도시 출신이라고 하는데 전주가 소도시는 아닌 것 같다. 4년 전 처음 전주에 갔을 때 ‘전주도 LTE가 터지네!’라는 농담을 했다가 아내의 싸늘한 시선을 받은 적이 있다.

여하튼 결혼하게 되면서 명절이 아니라도 전주에 갈 일이 많아졌다. 물론 전주만 간 것은 아니었다. 처형이 대전에서 살고 있어 대전도 종종 내려갔다. 장거리 운전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무엇보다 아내와 좁은 공간에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너무 좋았다. 오로지 나와 그녀만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운전하는 그 길이 너무 행복했다. 평소에도 얼굴만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도, 차 안에서는 무슨 이야깃거리가 그렇게 솟아나는지 신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전주고, 대전이다.

 

물론 가는 내내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광활했다. 전주 2~3시간 가는 게 일이 아니었다. 아내와 나는 자동차를 렌트하여 많이 다녔다. 그리고 이제 LA를 떠나 죽기 전에 꼭 드라이브해봐야 할 도로라는 태평양 연안 고속도로(Pacific Coast Highway)를 운전하여 샌프란시스코에 가려 한다. 일정은 1박 2일.

 

 생각보다 한산했던 LA 공항의 알라모 렌터카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아내는 숙소에서 남은 짐을 정리하고 나는 렌터카를 빌려오기로 했다. 알라모 렌터카는 빌려주는 곳이 많이 없다. LA 국제공항까지 가야 한다. 가는 길만 해도 1시간이 넘게 걸렸다. 며칠 전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LA를 내려다보며 아내는 ‘LA가 이렇게 넓은데 우리가 가는 데는 왜 이렇게 한정적이지? 저 넓은데 가면 남들이 안 가는 더 좋은 데가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렌터카를 빌려오며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그런 생각은 안 해도 될 거 같아. 내가 가봤는데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LA의 알라모는 라스베가스의 직원들과 달리 영업이 심하지 않다. 보험 가입하지 않겠다고 하니 알아서 하란다. 그렇게 쉐보레 크루즈를 빌려 출발한다. 출발지는 산타모니카. 출발하려는데 1주일 내내 거의 매일 햇살이 내리비치던 LA가 온데간데없다. 구름이 가득 끼었다. 하필 태평양을 보러 가는 날이 이렇게 흐리다니.

 

마음에 드는 곳에 차를 세우고 경치를 즐기면 끝

 

태평양 연안 고속도로(Pacific Coast Highway)를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달리다가 마음에 드는 포인트가 있다면 차를 멈춰 세우면 된다. 시간이 얼마가 걸려도 좋다. 그 주변을 걸어도 좋고, 바닷가에 발을 담가도 좋다. 재촉하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으니 온전히 우리만의 시간을 즐기면 된다. 물론 속도제한은 잘 지켜야 한다.

날이 흐려서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이 도로를 그냥 떠날 수는 없는 일.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곳에 차를 세우고는 바닷바람을 즐겼다. 흐린 날씨가 을씨년스러운 기운을 풍기면서 ‘아, 이제는 정말 햇살 가득한 LA를 떠나는구나’를 실감하게 한다.

 

여보, 여기 해안 도로라며?

 

도로를 따라 달리는데 이상하게도 자꾸 내륙으로 들어간다. 내가 알기론 태평양으로 가려면 캘리포니아 1호 도로를 타야 한다. 해안도로다. 그런데 그 도로가 초반에만 해안에 붙어 있고 내륙으로 간다. 내비게이션도 한몫했다. 최단 경로 알려준다고 자꾸 내륙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아로요 그란데 숙소. 싸고 좋은 숙소에 신기했다

 

잠시 멈춰 지도를 살펴보니 원래 코스가 그랬다. 첫날 숙소인 아로요 그란데(Arroyo Grande)까지는 내륙을 달려야 했고, 내일부터 달릴 길이 진짜 해안도로였다. 처음 들어보는 도시 아로요 그란데. 이곳에서도 에어비앤비를 한다니 뭔가 신기했는데, 가격이 싸면서도 시설이 좋았다는 건 더 신기했다.

호스트의 어머니와 짧은 대화. 대한민국은 처음 듣는다는 할머니.

 

“저희 세계 여행 중이에요, 한국에서 왔죠”
“한국?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겠지만 너희 정말 대단하구나.”
“다음 달에는 멕시코로 넘어갑니다”
“멕시코! 우리 딸도 예전에 멕시코에 갔었는데, 동네가 너무 무서워서 자동차 타고 숙소로 도망쳐온 적이 있어”

“오빠, 이 집 따님이 멕시코에서 탈출한 이민자나 난민 같은 거래”
“응???”

 

야시장 분위기

 

피스모 해변은 아름다웠다. 다행히 구름이 조금은 걷혀, 태평양의 석양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었다

 

호스트에게 추천을 받아 아로요 그란데 주변의 Pismo 해변에 들렀다가 샌루이스오비스포(San Luis Obispo)의 야시장에서 밥을 먹기로 한다. 그날 운전만 한다고 온종일 제대로 먹지 못했던 터라 야시장은 말 그대로 파라다이스.

밥도 배불리 먹었으니, 잠을 자야 하는데 이상하게 잠이 안 온다. 새벽까지 뒤척이다 창밖을 보니 달빛이 참 밝다. 뭐지, 이 알 수 없는 불안감은. 그래도 내일의 여행을 준비하자. 이제 자야지.

 

절경 빅 서를 지나 샌프란시스코로…

 

오늘은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에 들어가는 날이다. 늦잠 잘 수 없었다. 지도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오늘 달릴 길이 본격적인 해안 도로. 조금이라도 더 태평양을 느껴보고 싶었다.

일어나서 대충 세수를 하고 짐을 쌌다. 호스트는 마침 그날 벼룩시장(Garage Sale)을 열고 있었다. 집에서 쓸모없는 물건을 마당에 내놓고 판매하는 것이다.

 

“사람 많네요! 잘 팔리나요?”
“잘 팔리고 있어요. 오늘 오후부터 샌프란시스코 쪽에는 비가 온다네요”
“비 오기 전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도록 서둘러야겠네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내가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는 스코틀랜드인데 가본 적은 없지만 스코틀랜드가 이런 분위기가 아닐까 싶은 느낌의 바다였다

 

역시나 오전부터 구름이 많이 낀다. 차라리 어제가 더 화창했을 정도로 우중충하다. 그래도 나름의 매력이 있으니 그러려니 한다.

 

죽은 게 아니다. 단지 쉬고 있을 뿐

 

태평양 연안 고속도로에는 여러 뷰포인트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코끼리물범(Elephant Seal)이 모이는 장소로 유명한 포인트가 있다. 바로 샌 시메온(San Simeon). 샌 시메온에 도착하면 코끼리물범들이 단체로 쉬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죽었나 싶을 정도로 가만히 누워있다가도 격렬하게 움직이기도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달려와 당신을 물어버릴 것이다

 

코끼리물범이라고 해서 절대 귀여운 해달이나 수달을 생각하면 안 된다. 일단 굉장히 크다. 똥 냄새가 나고 더럽다. 이번 포인트는 오래 있기 힘들어서 바로 다음 도로로 이동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날이 흐릿하더니 결국 비가 온다.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태평양인데 비가 오다니. 달리다 비가 오면 쉬었다가 다시 달린다. 그래도 비 오는 바다가 나쁘지만은 않다.

달릴수록 주변 풍경이 사막에서 숲으로 바뀌어 간다. 샌프란시스코에 점점 가까워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지역에 따라 기후와 환경이 달라지는 미국의 거대한 땅덩어리를 실감했다.

 

성난 파도를 보며 눈을 반짝이는 서퍼들.  오늘 서핑을 기대하는 그들의 마음이 표정에서부터 느껴진다

 

이 정도의 파도가 몰아치는데도 신나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서퍼들이다. 한, 두 명이 아니라 곳곳에 서핑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드를 손질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지금 이 날씨에 저기서 파도를 타겠다는 거야?’ 아내와 나는 신기한 듯이 그들을 바라봤다. 파도를 보고 있는 그들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지금 내 표정은 어떨까. ‘회사 가기 싫다’를 입에 달고 ‘언제 퇴근하지’만 생각하던 삶을 벗어나 하고 싶은 여행을 하고 사진도 영상도 실컷 찍고 있는 지금의 내 표정. 나도 그들과 같은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갑자기 나타난 멋진 풍경에 놀라 차를 세웠던 곳이 바로 빅 서였다

 

서퍼들을 뒤로하고 시간이 없어서 한 군데만 더 보고 가기로 했다. 바로 빅 서(Big Sur)다. 태평양 연안 고속도로를 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서게 된다는 포인트이다. 실제로 나도 그랬다. ‘빅 서 표지판을 못 보고 지나쳤나’ 하고 가다가 너무 멋진 풍경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는데, 그곳이 바로 빅 서였다. 심지어 잠자던 아내를 두고 혼자 내려갔다.

날이 흐려서 아쉬웠지만 빅서의 풍경은 그런 아쉬움 정도는 날려버릴 정도로 좋았다. 시간이 더 걸리고 돈도 더 들었지만 ‘그래도 태평양 연안 고속도로 타길 잘했어’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사진으로 이 감동을 온전히 전할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빅 서를 지나니 그동안 많이 기다려줬다는 듯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샌프란시스코로 바로 달려야 한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니 비는 그쳤다. 확실히 LA보다 밤공기가 쌀쌀하다. 우리는 숙소에 짐을 놓고 렌터카를 반납하러 시내로 갔다.

샌프란시스코는 LA와는 운전 여건이 완전히 달랐다. 일방통행 도로가 많고 트램 또는 전차 때문에 좌회전이나 유턴할 수 없는 곳도 많았다. 한 번은 내비게이션에서 유턴하라는데 유턴을 어디서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낯선 도시에서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결국 아내에게 짜증을 내버렸다. 앞에서는 아내와의 장거리 운전의 즐거움을 이야기해놓고는…

미국에서 장거리 운전을 상당히 많이 했지만 재미는 없었던 것 같다. 라스베가스에서 그랜드 캐니언을 갈 때도, 그리고 이번 태평양 연안 고속도로도 그렇고. 낯선 환경, 낯선 규칙에서 운전하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것 같다. 평소처럼 아내에게 웃긴 얘기도 별로 못하고 오히려 짜증을 많이 냈던 것 같다.

이런 식이라면 이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서로 웃음이 없고 이야기고, 서로에게 의미가 되지 못한다면, 이 여행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마음을 먹지만 여전히 우리는 다툰다. ‘조금만 더 참아야지’ 싶다가도 결국 모진 말을 하게 된다.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다. 이 여행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둘의 삶을 찾는 시간이기도 하다. 항상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늘 미안하고 고마운 아내에게 조금 더 잘해야겠다. 아마 이 뒤에도 몇 번 더 사과하는 글이 올라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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