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ana Blues #9 – 쿠바, 트리니다드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카미욘은 대형 트럭을 개조한 차량이다. 안전보다는 최대한 많은 인원이 탑승할 수 있도록 개조됐기 때문에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위험천만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이다

 

‘아니 그러니까, 오늘 트리니다드로 가는 카미욘(Camion)이 없다는 거예요?’
‘그야 모르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고~’

 

정말 무책임한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터미널직원은 분명 3시간 전만 해도 틀림없이 트리니다드(Trinidad)로 향하는 카미욘이 있다고 했다. 도착을 했어도 2시간 전에는 진작 왔어야 할 카미욘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의 비아냥대는 것 같은 대답에 나는 노발대발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나의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내 어눌한 스페인어 발음을 흉내 내면서 나를 터미널의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렸다. 평소의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가만있지 않았겠지만, 시엔푸에고스의 미친 듯한 땡볕에 탈진하기 직전의 상태였기에, 대꾸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분했지만 그 자리를 피했다. 무엇보다 트리니다드로 이동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다시 거리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택시 호객꾼들이 나를 에워싸더니 어디로 가느냐고 필사적으로 물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택시 탈 의사가 전혀 없었기에, ‘Trinidad. 5CUC. No mas’(트리니다드행, 6쿡 이상일 경우 관심 없음)라고 말하며 무덤덤하게 나아갔다. 거짓말처럼 내 앞을 가로막던 호객꾼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다시 걸음을 옮기는 찰나,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6CUC 트리니다드!’

 

푸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의 택시기사는 택시를 가리키며 타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택시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 올드카 ‘프라이드 베타’. 순간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6CUC이면 외국인 버스 가격이랑 똑같고, 속도도 버스보다 2배는 빠르겠지?’라는 계산이 나왔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타자!’

먼저 남산만 한 가방을 택시에 구겨 넣고 땀에 전 몸을 자동차 시트에 뉘었다. 생각지도 못한 횡재에 기분이 좋아져서 나는 호탕하게 ‘Hermano, Vamos!’ (형님 갑시다!) 라고 외쳤다. 택시기사 형님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가는 길에 마시자며, 무려 택시비의 1/3에 해당하는 2CUC 짜리 음료수를 2개 사와 내게 건넸다.

 

호탕한 택시기사를 만나 기분 좋게 트리니다드에 도착했다

 

택시기사 형님은 트리니다드에서 출발해 시엔푸에고스에 승객을 내려주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런데 웬 낯선 동양인이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외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여서 나를 태워줬다고 한다. (가끔은 나의 무모함이 쿠바에서는 가끔 먹힌다는 사실이 꽤 기뻤다) 택시기사는 호탕한 성격만큼이나 호탕한 운전 솜씨로 금방 트리니다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트리니다드에서 묵을 숙소는 미리 알아봐 두었다. 레오 카사였다. 이곳을 방문한 한국 여행자들이 쿠바여행 팁을 몇 권의 노트에 담아놓은 게 유명해져서, 트리니다드를 여행하는 한국 여행자라면 레오 카사로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다. 택시기사와는 숙소 앞에서 작별인사를 나눴다.

 

‘계세요?’
‘어? 잠깐만요. 한국분이세요? 제가 열어드릴게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익숙한 언어가 들려온 옥상을 올려다보니 놀랍게도 한국분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레오 카사에서 내려다본 트리니다드 전경

 

카사의 주인인 레오 부부는 잠시 부재중이었고 옥상에서 빨래를 말리고 있던 한국 여행자가 문이 잠겨 당황하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와… 정말 반갑습니다. 아바나에서 말고 한국 사람은 처음 만나네요!’
‘아 정말요? 지금 레오 카사에 묵는 한국 여행자가 저 포함 3명이나 돼요.’

 

나는 그 말이 어찌나 반가웠던지, 그게 정말이냐고 재차 물었다. 아바나를 떠나와 트리니다드까지 12일 동안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온갖 설움과 고독에 시달리던 상황이었다. 한국말을 쓸 수 있다는 안도감은 긴장감에 굉장히 예민해져 있던 나를 완전히 무장해제 시켰다.

 

레오 카사의 저녁 식사(식사비는 별도). 메인 요리를 새우, 바닷가재, 닭, 돼지 등으로 선택할 수 있다

 

저녁이 되자 식탁 앞으로 여행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모두 ‘한국인’들이었다. 나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묻지도 않은 내 여정들을 숨넘어갈 듯 다 뱉어내며 식사 내내 신나게 떠들었다. 한국말을 할 수 있다는 게 이렇게까지 행복할 줄이야…

카사 주인인 레오도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며 즉석에서 망고를 갈아 유리잔에 가득 따라주었다. 오랜만에 맞는 편안함이었다. 밥알 한 톨 안 남기고 싹싹 긁어먹는 내 모습을 보고 레오는 접시에 다시 밥을 가득 담아 주었다.

 

트리니다드는 영화 세트장처럼 세월의 흔적이 멋스럽게 남아 있었다

 

트리니다드의 사람들

 

다음 날, 나는 이 사랑스러운 도시를 좀 더 자세히 살피고자 길을 나섰다. 트리니다드는 마치 영화 세트장 같았다. 1500년대에 스페인에 의해 계획도시로 세워진 이후 당시의 건물양식과 도로들이 훼손되지 않고 원형의 그대로  잘 보존돼 있었다.  ‘Casa de la musica’를 비롯한 도시 곳곳에서는 멋진 음악이 흘러넘치고, 색색으로 칠해진 건물들 앞에서는 사람들이 흥겹게 살사를 춘다. 트리니다드는 역사와 흥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쿠바’였다.

 

트리니다드의 명물인 ‘Casa de la musica’. 노천카페 겸 술집이지만 쿠바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다양한 음악들을 듣기 위한 예술 공간으로도 유명하다. 밤낮없이 울리는 다양한 라이브 공연은 트리니다드의 어떤 장면과도 잘 어울린다

 

트리니다드의 길 위에서는 아름다운 음악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숙소에 돌아오니 같은 방을 사용하는 석진이가 라 보카(La boca) 해변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동갑내기 친구인 혜연이도 간다고 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해변으로 출발하기 위해 덜컹거리는 트럭에 몸을 실었다. 해변에 도착하니 눈앞에서 에메랄드와 코발트색의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우리는 그 광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바다에 풍덩 몸을 내 던졌다.

 

자기 키보다 큰 배낭 두 개를 메고 혼자서 씩씩하게 중남미를 여행하던 혜연이(왼쪽 아래) 멕시코에 거주하며 방학기간 동안 홀로 쿠바를 찾은 불꽃남자 석진이(오른쪽 아래) 그리고 사진을 찍는 순간까지도 맥주를 내려놓지 않았던 나. 잊을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한창 수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수영하던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지금 막 들어오는 트럭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같이 수영을 하고 있던 쿠바 친구에게 물어보니 트리니다드 명물인 ‘맥주 트럭’이라고 했다.

 

‘빈 페트병을 가져가서 10모네다(500원)만 내면 맥주를 한가득 채워줘’

 

맥주 트럭 앞은 몰려든 사람들로 난리도 아니었다

 

맥주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는 당장 저 대열에 합류하기로 했다. 트럭의 좁은 창문 안에서 분주히 맥주를 채워 밖으로 넘기는 모습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쿠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맥주가 나오기가 무섭게 돈을 내고 순식간에 페트병을 채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얼마나 맥주가 맛있길래 전쟁 통 같은 쟁탈전이 일어날까, 더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리쬐는 땡볕을 온몸으로 버텨내고 나서야 비로소 이 명물 트럭에서 맥주를 쟁취할 수 있었다. 단돈 500원에 차가운 맥주를 마실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혜연아! 석진아! 맥주 사 왔어. 마셔봐, 겁나게 차가워!’

 

우리는 ‘건배’를 외치며 차가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했다. 분명 시원하긴 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맥주를 마시며 석진이와 혜연이의 눈치를 보니 그들도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엄청난 맥주일 거라는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맛, 우리는 이내 웃음이 터져버렸다.

 

‘미안해 애들아…’

 

 

트리니다드의 아름다운 사람들

 

길을 가다 만난 쿠바 국기

 

트리니다드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레오네 숙소를 기준으로 남쪽 마을이 상대적으로 사는 환경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나는 카메라를 준비해 남쪽 마을로 걷기 시작했다. 한 20분쯤을 걸어 들어가니 안타까운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너지기 직전의 집은 시멘트 가루가 먼지와 뒤섞여 흩날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어디서 났는지 다 부서진 기계의 부품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트리니다드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과 강하게 대비되면서 이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트리니다드 남쪽의 빈민가 아이들. 그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지쳐있던 나를 웃게 했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몇 장의 사진을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러 집 중 가장 누추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인기척을 했다.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석진이의 도움으로 단어 몇 개를 받아 적어둔 터라 ‘내가 당신들에게 사진 선물을 주고 싶다’ 정도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에요. 여러분들의 사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하하하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넉넉한 마음씨와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파비오 아저씨의 가족. 아저씨는 마차를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데(오른쪽에서 두 번째) 옆에 있던 마차를 가리키면서 자신이 만든 마차라고 자랑스러워했다

 

파비오 아저씨의 가족은 프레임 안에 간신히 들어올 정도로 많았다. 또 한 장의 아름다운 사진이 탄생했다.

 

‘준. 우리 집이 워낙 누추해서 대접할 게 없어요. 그래도 맥주 한잔 정도는 있으니 마시고 가도록 해요.’
‘괜찮습니다. 뭘 바라고 한 일도 아닌데요, 하하하.’
‘그냥 가면 내 맘이 좋지 않을 것 같아요. 맥주는 꼭 마시고 가요’

 

맥주를 꼭 마시고 가라는 파비오 아저씨를 더는 뿌리칠 수 없었다. 아저씨가 직접 따라주는 시원한 맥주 한잔을 쭉 들이켰다. 파비오 아저씨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하셨다.

 

‘이 길을 지날 때면 언제든 맥주를 마시러 오도록 해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니까.’

 

나는 얼굴이 화끈화끈했다.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내 진심이 이들에게 어느 정도 통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뿌듯했다. 나는 파비오 아저씨에게 이 최고의 맥주를 꼭 다시 마시러 오겠노라고 약속했고, 다시 길을 떠났다.

 

사진처럼 정교하게 그려진 벽화

 

길을 얼마간 걷자 파비오의 집만큼이나 낡은 집이 나타났다. 안을 들여다보니 마당에서는 아버지가 어린 아들과 놀고 있었다. 아들이 천진난만하게 아버지를 놀리며 도망가면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봤다.

 

‘안넝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입니다. 사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하긴 한데, 왜 사진을 찍어주려고 하는 거죠?’

 

그는 유창한 영어로 내게 물었다.

 

‘단지 친구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쿠바를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사진을 선물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아.. 그렇군요. 정말 고마운 일이네요. 제 아내도 불러오도록 할게요.’

 

그렇게 말한 미구엘 아저씨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개구쟁이 아들 둘을 데려와 사진 찍을 준비를 마쳤다.

 

트리니다드 병원에 간호사로 근무하는 엘리트인 미구엘 아저씨와 그의 사랑스러운 아들

 

‘정말 고마워요. 생각지도 못한 큰 선물을 받았네요. 나의 아내 커피 솜씨가 아주 좋으니 한 잔 들고 가요.’

 

나는 그의 호의에 다시 한번 가슴이 뭉클해졌다. 쿠바사람들은 호의를 받기만 하는 법이 없었다. 늘 받은 것의 배로 돌려주려고 했다. 신뢰와 거짓 없는 웃음, 그거면 충분했다. 어떤 계산도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준 거라고는 고작 사진 한 장이었지만, 그들은 나를 친구로 받아주었고 더 멋진 추억을 선사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들로부터 큰 선물을 받으며 여행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미구엘 아저씨의 아내가 정성껏 내려준 커피. 비싸고 맛있다는 세상 어떤 커피도 이 커피보다 따뜻하고 향기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한 가지 궁금하게 생겼다. 어려운 환경에서 사는 이들의 마음이었다. 최근 쿠바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통의 쿠바사람들에겐 여전히 같았다. 능력이 있어도 대접받지 못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바뀌는 것은 거의 없었다.

 

‘쿠바에서 사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음.. 우리 부부는 간호사예요. 돈도 많지 않고 자유롭지도 않죠. 하지만 매 순간이 행복해요.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쿠바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건 큰 축복이에요.’

 

그의 대답은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올 거라는 나의 기대를 훨씬 벗어났다. 월 3만 원이 안 되는 임금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질과 행복을 같은 자리에 놓고 ‘진짜 행복’을 잊은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얼마간의 대화가 이어졌다.

커피를 다 마신 뒤 인사를 하고는 다시 배낭을 메었다. 미구엘 가족은 집 앞까지 나와서 떠나는 나를 배웅했다. 그들은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숙소로 향하는 내내 향긋한 커피 향과 미구엘의 말이 맴돌았다.

 

‘나도 저들처럼 진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까?

 

사진 프로젝트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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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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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하는 모든 곳에서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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