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세계여행 #2, 내 마음의 반창고, 그랜드 캐니언 – 미국, 애리조나

만족스러웠던 플래그스태프의 숙소

 

그랜드 캐니언에 가기 위해 들른 작고 조용한 도시 플래그스태프(Flagstaff City). 남편이 꼭 다시 한번 가고 싶다고 할 만큼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특히 에어비엔비(Airbnb) 호스트의 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고 게스트가 모든 걸 누릴 수 있도록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고양이가 이렇게 귀여운 동물인지 처음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큰 개는 아직 무섭다

 

(영상작업으로 바쁜 남편을 대신해 남편의 분량을 제가 작성해봅니다. Written by 랑녀)

 

 

쓰리고 아린 차별의 상처

 

문제의 Brandy’s Restaurant. 추천받은 식당이라 내심 기대하고 들어 갔지만…

 

호스트에게 맛있다는 브런치 집을 소개받아 상쾌한 기분으로 Brandy’s Restaurant로 향했다. 평일 오전이라 한산할 줄 알았던 기대와 달리 음식점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음, 역시 맛집인 건가. 많은 주민이 브런치를 즐기고 있었다. 관광객은 우리뿐인 거 같았다.

 

지난 이야기에서도 등장했던 그 사진. 자는 사이 백미러에 저런 그림을 그리고 갔다

 

우리도 메뉴를 받아 주문하려는데 한 백인 종업원의 느낌이 좀 이상했다. 계속 우리를 보고 괜히 비실비실 웃고 있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안 그래도 어제 어떤 X가 우리가 자는 사이 백미러에 그려놓은 그림 때문에 인종차별에 예민해져 있었다. 스타벅스 종이컵에 일직선으로 찢어진 눈을 그리는 종업원의 행위가 동양인을 비하하는 거라는 걸 기사로만 접했는데 내가 막상 당하니 정말 화가 나고 오싹했다. 무엇보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그렸다는 게 소름 돋았다.

우리는 애써 그 찝찝한 기분을 무시해보려고 했다. 일단 우리는 메뉴를 정했다. 주문하려고 그 종업원을 불렀는데, 또다시 우리를 빤히 처다만 보고 실실 웃고 있었다. 그 꼴을 보고 있으니 뭔가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미적거리며 온 종업원에게 오믈렛과 에그 브랜디, 두 메뉴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조금 있다 오믈렛이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수저와 포크가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손님들한테는 수저와 포크를 가져다줬는데 우리만 안 줬다. 손으로 집어 먹으라는 건가… 그래도 아직 메뉴가 하나 덜 나왔으니 그때 같이 주겠지 하고 한참 기다렸는데 수저도, 메뉴도 안 나온다. 결국 그 종업원을 불렀다.

 

우리가 포크와 스푼을 받았을 때는 이미 기분은 기분대로 나빠지고, 입맛도 떨어진 뒤였다

 

상황을 설명하니 또 실실 웃으며 기분 나쁘게 ‘어머 어머, 수저 갖다 주는 걸 잊었어~’ 라면서 뒤늦게 갖다 준다. 그런데 더 가관인 건 자기가 모르고 메뉴 하나를 빠뜨렸다는 것. ‘암 쏘리~~’ 이러면서 웃는데, 진짜 진심으로 열불 났다. 정녕 모르고 했겠다?! 아니, 아까 우리가 주문한 걸 받아 적기까지 했던 걸? 다른 사람들한텐 친절하고 아무한테도 그런 실수 안 하더니 우리한테만 수저를 까먹고, 우리 메뉴 주문만 까먹다니! 초면인 우리에게 이따위 대접을 하는 걸 우리는 인종차별로밖에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재수가 ‘드럽게 없어서’ 팁으로 30센트를 줬다(그것도 생각하니 아깝네) 그리고 구글에 이 식당에 대해 악평을 달기로 했다. 이미 다 떨어져 버린 입맛이었지만 우리는 뒤늦게 얻어낸 포크로 오믈렛을 꾸역꾸역 먹었다.

이런 일을 당하면 제일 안 좋은 것 중 하나가 앞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차별 하는 걸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뒤로 한동안 사고 회로가 이렇게 됐다.

 

주문한 밥이 늦게 나온다 → 인종차별인가
우리를 보고 웃는다 → 인종차별인가
눈이 마주친다 → 인종차별인가

 

인종차별을 직접 당하고 나니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깨달았다. 그저 내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열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 자체가 너무나도 불공정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면서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정말 순수했을까? 중국인들에게 가끔씩 짱깨라는 말을 쓰기도 했고 흑인들에게 흑형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겉으로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 어쩌면 나도 똑같은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앞으로 절대 인종차별적인 어떤 발언도, 행동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상한 마음을 어루만져준 그랜드 캐니언

 

심하게 상처받은 마음을 안고 점점 싫어지는 미국을 느끼며 그랜드 캐니언으로 향했다. 플래그스태프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가야 한다.

 


그랜드 캐니언으로 가는 길. 너무 예쁜 풍경이 계속 이어졌다

 

드디어 도착한 그랜드 캐니언. 자동차 입장료는 30달러였다. 그랜드 캐니언의 풍경을 마주하니 ‘우와’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내 생애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대자연. 엄청난 풍경을 보고 있으니 아침에 받은 상처가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거대하고 웅장하게 펼쳐진 협곡의 위엄

 

그랜드 캐니언 투어는 별 다른 게 없다. 그저 차를 타고 다니다가 중간마다 있는 뷰포인트에 들러 풍경을 감상하면 된다. 뷰포인트마다 미묘하게 다른 협곡의 모습이 펼쳐지는데 그 웅장한 아름다움은 어느 뷰에서 봐도 같다.

 

우리 아침의 일은 잊기로 해요. ‘살려줘요’ 평지에서 절벽인 척 코스프레도 해보고, 대자연 속에서 상념에 잠긴 한 남자가 되기도 한다. 그랜드 캐니언 곳곳에 있는 동물들과도 함께 한 컷!

 

사진에 보이는 전망대에 들어가 그랜드 캐니언을 내뎌라볼 수 있다. 수프와 소시지 그리고 스마트폰 중독자(사실 여기는 핸드폰이 안 터진다)

 

아침에 종업원의 메뉴 누락으로 배가 고파진 우리는 각종 식당과 기념품 숍이 있는 마지막 뷰포인트인 데저트 뷰에서 식사를 했다.

 

그랜드 캐니언으로 오는 길도,  숙소로 가는 길도 아름다웠다

 

황홀했던 그랜드 캐니언 투어를 마치고 해가 지기 직전에 숙소로 돌아왔다. 달리다 보니 점점 하늘에 노을이 드리운다. 저 멀리 달도 보인다.

 

새우 타코, 닭고기 어쩌고 음식. 진짜 너무너무너무 맛있어서 먹는 내내 맛있다를 외치며 먹었다. 우리가 먹었던 미국 음식 중 단연 최고였다

 

저녁이 되니 출출해져서 동네 음식점이 즐비한 작은 골목으로 맛집 투어를 해본다. 구글로 찾아보니 MartAnnes라는 멕시칸 음식점이 평이 좋다.

맛있게 먹고 있는데 우리 뒤에 어디서 본 여자애가 있다. 가만 보니 아침에 우리한테 무례하게 군 그 종업원이다. 재수도 없지, 이 마을에 음식점이 몇 갠데… 갑자기 욱해져 밥맛이 또 떨어지려는데 그녀가 남자 세 명과 같이 있는 걸 발견했다. 괜히 그 패거리가 시비 걸까 싶어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그쪽으론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

 

남편이 몇 시간 공들여 찍은 별 궤적 사진.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별이 이만큼이나 움직였다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사는 걸까

 

밤의 플래그스태프도 정말 정말 아름다웠다. 별이 내리쏟아진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노곤한 몸과 마음을 따뜻하고 포근한 숙소의 침대에 뉘었다. 그리고는 끝도 없이 까마득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우리의 잠자리를 준비해준 고양이 집사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녀와 손뱅님께 있습니다. 텍스트와 이미지 등 콘텐츠의 무단 사용 또는 도용 시 저작권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콘텐츠 사용은 해당 작가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