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ana Blues #8 – 쿠바, 시엔푸에고스

쿠바 여행의 또다른 목적

 

평화롭게 보이는 시엔푸에고스의 풍경. 하지만 생전 처음 겪어보는 더위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버스 문이 열리고 낯선 시엔푸에고스(Cien Fuegos) 땅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이건 정말 아니지 싶었다. 살아생전 이런 더위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정말 가만히 있어도 뜨거운 모래를 한 움큼 집어 먹은듯한 이 미친 더위를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불볕더위 덕분에 나는 시엔푸에고스의 첫인상을 제대로 느낄 여유가 없었다. 살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카사를 찾아야 했다. 바라데로에서 예상치 못하게 큰돈을 아낀 터라 시엔푸에고스에서의 일정은 예상보다 훨씬 수월했다. 몇 군데의 카사를 전전해 흥정과 협상에 돌입했고, 그 결과 상상치도 못한 저렴한 가격에 킹사이즈 침대, 에어컨 심지어 개인 테라스가 딸린 숙소를 얻을 수 있었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밝은 미소가 인상적이었던 카사 주인 움베르토 아저씨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나와 보니 주인 아저씨가 나를 위해 웰컴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온몸이 땀범벅이었던 상태라 일단 씻어야 했다. 샤워를 하니 기분이 상쾌해져서 내친김에 빨래까지 끝냈다. 몸도 마음도 꽤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가방 깊숙한 곳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필름을 꺼냈다. 이번 여행의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다.

이 프로젝트는 쿠바 여행을 계획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쿠바에 대한 여러 정보를 수집하던 중에, 쿠바에서는 엘리트층에 속하는 의사조차도 한 달 월급이 한국 돈으로 불과 3만원이 채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소수의 상류층을 제외하고는 많은 사람이 정수된 물을 살 돈조차 없어 석회수를 헝겊에 걸러 마실 정도로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산단다. 이번 여행에서 그들을 위해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고민했다.

 

가족의 아름다운 미소. 내가 찾던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나름의 작은 프로젝트를 계획하게 되었다. 계획인즉슨, 쿠바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이용해서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었다. 거창한 프로젝트는 아니다. 누가 알아주라고 하는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다만, 평생 자기 사진 한 장 제대로 가져보지 못하는 그들에게 사진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 짧은 순간이라도 고단한 삶 속에 웃음이 피어났으면 했다.

 

시엔푸에고스에는 ‘쿠바스러움’이 넘쳤다

 

사실, 지금까지 몇 장의 사진을 찍고 건네긴 했지만, 시엔푸에고스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고자 마음먹었다. 조금은 조심스럽고 진지한 마음으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시엔푸에고스는 이전의 어떤 도시들보다 쿠바스러운 사람들이 가득했다. 모두가 여유로워 보였다. 사람과의 관계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 도시에 대해 알아갈수록 이곳이 점점 좋아지고 흥미진진해졌다.

 

 

쿠바의 넘버원 피자는 시엔푸에고스에 있었다

 

시엔푸에고스의 피자 맛집. 줄을 선 사람들을 보시라

 

그 아름다움에 끌려 동네를 돌고 돌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생각해보니 오늘 먹은 거라곤 고작 페드로가 준비해준 샌드위치 한 조각이 전부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저 멀리 피자집이 나타나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어느새 나는 피자를 사고 있었다.

 

‘하몽 피자 하나 주세요.’

 

땀을 뻘뻘 흘리며 화덕에 피자를 굽던 사내는 어눌한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동양인을 보고 흠칫 놀라더니 화덕에서 피자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갓 화덕에서 나온 피자는 안 그래도 뜨거운 용광로에 기름 한 사발을 붓는 것처럼 피자에서는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래도 배는 고팠다. 인내심을 가지고 한 입 베어 무는데, 그 순간 엄청난 전율이 온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단돈 500원짜리 피자가 이렇게 큰 감동을 선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이 말도 안 되게 기가 막힌 피자를 만들어낸 마이클에게 양손에 엄지를 치켜올렸다.

 

‘어때 맛있어?’
‘최고야. 이건 진짜 쿠바 넘버원 피자야!’

 

시엔푸에고스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를 만들어내는 마이클. 한 달에 하루만 쉴 정도로 굉장히 열심히 사는 청년이다. 진정한 땀의 가치를 예찬하던 마이클은 잊을 수 없는 친구였다

 

마이클은 조금은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의 피자를 치켜세우는 동양인이 마음에 들었는지 통 얼음을 즉석에서 갈아 레모네이드를 한 잔 권했다. 꿀맛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레몬에이드 마시는 꿈을 꾼다.

 

‘원한다면 우리 가게에서 놀다 가도 좋아, 난 바깥세상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거든.’

 

기본적인 영어를 구사하던 마이클에게 영어를 어떻게 배웠냐고 물으니 조금 부끄러운 듯, 독학으로 공부 중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한국에서 왔고, 쿠바를 횡단하고 있어. 만나서 반가워!’
‘와 한국이라고? 한국이라면 뉴스에서 많이 봤어. 내가 한국 사람을 보다니!’
‘뉴스? 무슨 뉴스를 본 거야? 하하하’
‘북한과의 관계가 복잡하다고 들었어. 한국은 어때? 살기 좋아? 거기 사람들은 일 열심히 해? 돈은 얼마나 벌어?’

 

마이클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대답에 쉴 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질문을 마친 그는 상기된 얼굴로 내일도 꼭 방문해달라고 몇 번을 더 이야기했다. 어느새 둘도 없이 가까워진 마이클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동네를 주름잡는 개구쟁이 친구들, 때 묻지 않은 그들의 순수함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민가가 밀집된 지역을 지나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계속 따라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었다. 뒤를 돌아보니 한 무리의 꼬맹이들이 숨죽이며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랑 눈이 마주친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각자의 방향으로 도망쳤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도망치는 아이들을 향해 큰 소리로 ‘Amigos!’라고 외쳤다. 그러자 귀여운 그 친구들은 쭈뼛거리며 다시 내 앞으로 모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엉터리 스페인어로 예쁜 바다가 주위에 있냐고 물어봤다. 그중 대장을 자처하는 아이가 자기 뒤를 따라오라며 무리를 이끌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고, 나는 졸지에 시엔푸에고스의 골목대장 뒤를 따라가게 됐다.

아이들은 내게 참 궁금한 게 많았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내 빈곤한 스페인어 실력 덕에 대화는 거의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이내 사진이나 찍어 달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얼마간을 걸어 대장을 자처하는 소년이 이곳이라며 손을 흔들었다.

소년이 인도한 곳에는 정말이지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바다위로 금빛 물결이 일렁이고, 이름 모를 나무들과 풀들이 쿠바의 선선한 저녁 바람에 바스락 거렸다. 낙원 그 자체였다.

 

이 풍경을 내게 보여주고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를 사랑하고 자랑하고 싶어 하는 소년들의 순수한 마음씨는 정말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내가 충분히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기다려줬다. 하지만 눈앞의 이 풍경은 사진을 찍기보다는 두 눈으로만 가득 담고 싶게 만들었다. 결국 카메라를 가방 안에 도로 넣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봤다.

이런저런 많은 생각과 지금까지 스쳐 간 여행의 인연들에 대해 생각하다 감정이 벅차올랐다. 뒤엉킨 생각이 정리될 때쯤 자리를 일어났고, 다시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서 카사가 있는 동네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아이들은 나를 데려다주고는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기뻐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모습처럼 까르르 웃더니 각자의 집으로 도망치듯 뛰어갔다.

 

시엔푸에고스의 저녁 풍경. 해가 저물 즈음해서 말레콘(방파제)은 더위를 피해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로 가득하다(쿠바에서 흔치 않게 유료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K-POP을 사랑하는 소녀들을 만났다.  

 

 

작은 사진 한 장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은

 

81이라는 글자가 써진 생일 케이크

 

다음날, 아침부터 거실에서는 큰 소리가 났다. 깨서 거실로 나가보니 카사 주인인 움베르토와 그의 부인이 한쪽에선 청소를, 한쪽에선 요리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움베르토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오늘이 우리 어머니의 81번째 생신이야. 그래서 가족들을 초대해 생일 파티를 열기로 했어. 준 너도 점심에 시간 괜찮으면 우리와 함께 놀자!’
‘나야 무조건 OK!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움베르토!’

 

잠시 후 방에서 씻고 나오니  어느 새 각지에서 도착한 움베르토 가족들이 북적북적했다.  진귀한 술들과 음식들로 풍성하게 마련돼 있었다.

 

여사님과 그녀의 딸, 며느리들

 

쿠바의 전통 음악과 최신 라틴 음악에 맞춰 모두가 즐겁게 춤을 추면서 여사님의 81번째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쿠바의 생일 파티문화는 한국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쿠바 특유의 흥이 더해지니 더 즐거운 분위기였다.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들은 나에게 멋진 미소를 선물했다

 

파티가 끝날 무렵, 나는 다시 쿠바 사람들에게 사진을 선물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길에서 만난 몇몇 가족에게 사진을 선물했더니 그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이 프로젝트 하기를 잘했구나, 보람을 느꼈다. 여러 사람의 사진을 찍다 보니 무언가 빠트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시엔푸에고스에서 많은 사람의 사진을 찍었지만, 아직 마이클에게 사진을 선물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곧장 마이클의 피자 가게로 향했다. 마이클은 여전히 뜨거운 화덕 앞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마이클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사진을 찍어 줄 테니 어머니를 모셔오라고 했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어머니를 모셔왔다. 나는 두 모자에게 셔터를 들이밀어 사진을 선물했다.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고 아이처럼 기뻐하던 마이클은 사진을 가장 잘 보이는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뿌듯해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사진을 받아 든 마이클은 진심으로 내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러면서 줄게 피자 밖에 없다며 이거라도 먹고 가라고 나를 붙잡았다. 나는 배가 부르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한사코 먹고 가라는 그의 말에 결국 피자를 받아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피자는 역시나 맛있었다. 한국에서 온갖 토핑과 소스가 가득한 고급 피자를 먹었을 때도 못 느껴본 맛이었다. 마이클은 나를 위한 ‘스페셜 피자’라며 흐뭇하고 미소 지었다. 그런 마이클이 너무 고마웠다. 내일이면 더 이상 그의 피자를 먹을 수 없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슬프기 시작했다. 피자를 먹은 뒤에 내일 트리니다드(Trinidad)로 떠나기 전에 꼭 들리겠노라 말하고 카사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 날  트리나다드로 가기 위해 짐을 챙겨들고  움베르토와 그의 아내에게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움베르토는 나의 건승을 빌어줬다. 나의 친구 마이클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피자가게로 향했다. 가게에 도착해 인사를 건네는데, 마이클은 피자를 싸던 종이에 빠르게 뭔가를 적어 내밀었다.

 

‘내 이메일 주소야! 네가 쿠바에 다시 오는 날 너와 꼭 맥주를 마시고 싶어. 우린 분명 다시 보게 될 거야. 언제든 연락해줘 기다릴게!’

 

마이클은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때 마이클의 어머니도 내게 뭔가를 건넸다. 주먹보다 더 큰 망고였다. ‘건강하거라. 좋은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렴’ 이 말을 남기시고는 안으로 들어가셨다. 짧은 말 한마디에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마이클의 어머니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주신 망고. 거짓 하나 보태지 않고 내가 먹은 모든 망고 중에 가장 달콤했다

 

내가 떠난다는 말을 듣고 모여든 피자가게 직원들과 마이클의 친구들이 배웅해주었다. 그들과 일일이 악수와 포옹을 하며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시엔푸에고스에서도 많은 사람과 친구가 되었고 그들 삶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고 내가 꿈꾸던 여행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과연 이 꿈은 어디까지 향할 수 있을까, 나는 새로운 땅 트리니다드로 향해 발걸음을 힘차게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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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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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하는 모든 곳에서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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