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세계여행 #1, 그랜드 캐니언의 관문, 앤틸로프 캐니언으로 – 미국, 애리조나

 

 

 

끝없이 펼쳐지는 경이로운 풍경 그리고 지루한 운전

 

라스베가스 일정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을 보러 가기로 한다. 그 다음 도시는 플래그스태프(Flagstaff). 그랜드 캐니언 남쪽, 사우스 림(South Rim)의 아래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그랜드 캐니언만 보기는 아쉬웠다. 우리는 숙소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앤틸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도 보기로 했다.

원래 세웠던 계획은 10월 4일 그랜드 캐니언, 10월 5일 앤틸로프 캐니언을 보는 거였다. 하지만 아내가 ‘어차피 지나가는 길이라면 앤틸로프 캐니언을 보고 그 다음날에 온전히 그랜드 캐니언을 보자’고 한다. ‘역시 똑똑하군!’. 그래서 앤틸로프 캐니언을 먼저 보러 간다. 가는 길은 간단했다. 그랜드 캐니언 노스 림(North Rim)을 지나 페이지 시티(Page City)까지 가면 된다.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게 개고생의 시작일 줄은… 결국 다시 라스베이거스까지 간 걸 생각하면 그랜드 캐니언을 한 바퀴 다 돌아버린 셈이었다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 생전 처음보는 사막과  솟아오른 바위산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대단했다

 

아침 9시에 출발했다. 네바다를 벗어나 애리조나로 가는 길은 감탄의 연속이었다. 사막은 생전 처음 보는 땅이라 신기했고,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은 경이로웠다. 솟아오른 지층과 바위산은 넋을 나가게 했다. 사막에서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것도 신기했다. 첩첩산중 한반도에서만 30년을 살아온 나는, 어디를 가려면 당연히 고속도로에서 터널 30개쯤은 지나야만 하는 줄 알았고, 코너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크루즈 컨트롤은 왜 쓰나 했다. 그런데 여기 도로는 무조건 일직선, ‘터널이 뭐예요?’였다.

나중에 동영상으로 올릴 거라 일단 길 사진만(나만 재밌는) 몇 장 올리면 위와 같다. 운전만 하느라 몇 장 못 찍었고, 그나마 저 사진도 옆에서 자던 아내를 깨워 겨우 찍은 것.

문제는 좋은 것도 한두 시간이지, 4시간째 사막을 달리니 적당히 내리쬐는 햇볕에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사고 나겠다 싶어서 우리는 휴게소에서 잠시 잠을 청한다. 아내는 오는 내내 옆에서 잤는데 신기하게 나랑 또 잠들었다. 랑녀의 수면량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한번 이야기하겠다. 사실 글을 쓰는 지금도 뒤에서 자고 있다.

 

어? 이게 뭐야?

 

잠깐 누웠나 했는데 1시간이 지났다. 어! 앤틸로프 캐니언 투어에 가려면 늦어도 4시까지는 가야 하는데 벌써 2시! 1시간 30분 정도만 죽어라 달리면 마지막 투어에는 참가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에 다시 사막을 달리는데, 어? 저게 뭐지? 사이드미러에 왠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다.

찢어진 눈이며 약간 동양인 비하인가… 하면서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아내는 인종차별이라며 굉장히 속상해했다. 안 그래도 어제 카메라 많이 들고 다닌다며 사람들한테 조롱당한 거에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그림 테러까지 당하니 조금은 겁이 났다. 다들 드러내지만 않지 속으로는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갈 길이 멀 기에 서둘러 달렸다. 중간에 기름이 떨어져 주유소에 내려서 기름을 주유하는데 ‘뭐야 시간이 왜 이래?’. 분명 2시 반이었는데 왜 3시 반이지? 주유소 옆에 있던 여성에게 물어보니 여기는 유타 주라서 시간이 1시간 빠르단다. ‘그럼 우리 4시까지 투어 가야 하는데 갑자기 3시 반이 된 거야?’

허탈함이 몰려왔다. 시간 계산을 나름 해서 왔다고 생각했는데 시간대가 다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 진짜 여기 넓긴 넓구나. 조금 전까지 2시 반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유타주는 조금 더 석양이 진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간신히 세이프!

 

그럼 투어는 못 가는 건가… 하고 그럼 그냥 숙소나 가자… 하는 생각으로 구글맵의 경로를 다시 설정하니 어차피 페이지 시티를 지나 플래그 스태프로 가야 한다. 그럼 이왕 온 거 혹시 투어가 없는지 가보기나 하자, 라고 페이지 시티에 도착하니 여기는 다시 애리조나 타임이네? 하고 보니 우리가 유타주에서 애리조나주로 다시 넘어와 있었다. 아! 투어 시간에 맞춰왔구나! 하고 부랴부랴 투어를 신청한다. 이때가 오후 4시. 중간에 한 시간 잔 거 생각하면 6시간을 운전했다. 아… 피곤해

 

 

어둠 속의 앤틸로프 캐니언

 

이런 트럭에 실려 가는데 완전 무섭고 춥다. 사막인데도 오후가 되니까 날이 쌀쌀해져서 감기 걸리는 줄 알았다. 이 트럭을 타고 20분 정도 달려가면 앤틸로프 캐니언에 도착한다

 

시내에 투어 업체가 꽤 많이 있다. 앤틸로프 캐니언은 위쪽(Upper)과 아래쪽(Lower) 캐니언으로 나뉘는데 우리는 조금 더 코스가 길고 아름답다는 Lower에 가고 싶었으나 거기는 시간이 좀 늦어 Upper로 신청한다. 그래도 보고 싶은 거 겨우 잡은 게 어디야 하고 투어를 간다.

 

앤틸로프 캐니언으로 가는 길

 

Upper 코스의 장점은 12시쯤에 햇살이 협곡 안으로 들어오면서 기가 막힌 광경이 펼쳐진다는 거다. 다만 투어 시간이 아주 짧다는 게 단점. 게다가 오후 4시 30분에 진행되는 마지막 투어는 거의 사기라고 해도 될 만큼 어두워서 캐니언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래서 사진도 다 망했다. 그나마 건진 거 몇 장 올려봅니다.

 

‘눈 감았다 병익아’-‘눈 감았다고 병익아’-‘병익아 제발 눈 좀 떠라’-‘일어 났니 병익이?’, 가이드 양반 이걸 사진이라고 찍어 준 거요?

 

길이는 짧은데 가이드 아저씨가 멈춰 서서 이건 무슨 모양이다, 이건 무슨 모양이다, 하는데 끼워 맞추기 같아서 별로였다.

 

This is Dragon Eye(이것은 용의 눈깔입니다),  This is Arizona sunrise(이것은 애리조나 일출입니다), This is Taj Mahal(이건 타지마할 모양입니다)

 

아저씨는 자꾸 사진을 찍으라며 사진 폭력을 강요했고 아내의 카메라를 자꾸 가져가 사진을 찍어준다 했다. 우리는 투어가 짧아서 이렇게 시간을 끄는구나 싶었다. 나는 그저 순수하게 앤틸로프 캐니언을 보고 싶었던 건뿐인데… 그럼 뭐하러 투어를 신청했냐?,는 분들에게, 앤틸로프는 투어가 아니면 개인으로는 못 들어간답니다.

아, 우리가 너무 늦게 왔구나 싶었는데 놀라운 건 우리 다음 시간 투어도 있다는 거다. 분명 그들의 투어는 신촌에서 하던 ‘어둠 속의 대화’ 전시회 수준이리라. 여하튼 우리는 그렇게 짧은 투어를 마쳤다.

 

투어가 짧아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6시간 운전한 보람은 있었다

 

페이지 시티에서 저녁을 먹었다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6시간 운전의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인종차별 따윈 기억도 안 나!(하지만 이것은 인종차별의 서막이었다) 페이지 시티에서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플래그스태프를 검색하니 9시 좀 넘어서 도착한단다. 숙소 호스트인 Dan이 9시까지 올 수 있냐고 묻는데, 일단 가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부랴부랴 차를 모르는데, 운전하는 내내 정말 도로에 아무것도 없다. 가로등 하나도, 불 들어오는 마을도 없다.

낮에 봤던 사막 한가운데를 똑같이 달리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니 문득 겁이 난다. 낮에는 8,90마일까지 달렸는데 길이 안 보이니 60마일로 엉금엉금 기어서 가다 보니 도착시간이 더 늦어졌다. Dan에게 늦는다고 말해야 하는데 핸드폰도 터지지 않아 연락도 잘 안되니 미칠 지경이다.

여하튼 그렇게 9시 반에 도착한 Dan의 집은 우리가 다닌 Airbnb 숙소 중에 가장 좋았다. 이제는 잠을 자야지. 그리고 내일의 그랜드 캐니언을 준비해야지.
(랑녀의 글이 재밌다고 생각하신 여러분! 그랜드 캐니언도 제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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