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ana Blues #7 – 쿠바, 바라데로

 

바라데로의 거리 풍경

 

 

가족, 그리고 Yasmani

 

‘준! 아침 먹어야지. 어서 일어나렴’

 

페드로의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두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내 옆엔 어제 함께한 페드로Jr.와 그의 친구들이 나란히 누워 꿈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거실로 나가니 산드라가 가벼운 아침 식사를 차리고 있었다.

 

쿠바에서는 가벼운 아침 식사로 밀가루 빵에 햄의 일종인 하몽(일반적인 하몬과는 약간 다른 비주얼)을 곁들여 먹곤 한다

 

‘준! 잘 잤니? ‘
‘네, 엄마. 좋은 아침이예요! (Buenos dias!)
‘어서 아침 먹으렴. 이따 페드로의 형제들이 올 거야’

 

프랭크는 언제 일어났는지 산책까지 마치고 테라스에서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 식사하고 있는데 페드로가 내게 다가왔다.

 

‘준, 우리 가족과 하루를 지내보니까 어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뻐요. 맘 같아서는 며칠 더 머물고 싶은걸요.’
‘우리 가족이 된지 하루 만에 가려고 했어? 걱정하지마. 얼마든지 있어도 좋으니 천천히 가도 된단다.’

 

페드로는 나의 마음을 알아챈 듯 선뜻 먼저 며칠을 더 있자고 제안했다. 사실 그랬다. 나는 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무엇보다 바라데로에서 이들과 함께하는 생활이 어떤 여정보다도 행복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페드로의 제안에 감사의 인사를 하며 그럼 며칠 더 있겠다고 대답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지금 페드로가 사는 집은 본인 소유의 집이 아니었다. 1년에 단 한 번, 휴가를 위해 렌트한 아파트였다. 그의 가족은 아바나에 거주하고 있다.

 

‘준, 그때 왜 많은 사람 중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던 거니?’
‘이유는 하나였어요. 그때 두 분이 쿠바에서 본 미소 중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게 전부예요.’

 

페드로는 나를 말없이 꼭 껴안아주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페드로Jr.은 즉석에서 내게 ‘Yasmani’라는 쿠바식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쿠바에서 페드로 가족의 성을 포함해 ‘야스마니 갈라 메사’ 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가족-쿠바-바라데로

페드로의 형제들과 그 가족들로 북적거리는 거실.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거실은 어느새 페드로의 형제 가족들로 북적북적했다. 페드로는 나를 ‘한국에서 온 아들’이라며 일일이 형제들에게 소개해주었다. 그들 역시 페드로처럼 나를 동생이자 조카로 받아들여 주었다. 페드로의 조카인 마이클이 자신의 가족도 이 근처에 아파트를 렌트했다며 우리를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신나는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모두가 각자의 방법으로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나와 프랭크는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마이클이 머무는 집에 도착하니 집 앞 입구부터 파티 음악이 둥둥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이스박스 안에는 맥주가 빼곡하게 있었고, 그 사이에는 살얼음이 채워져 더운 날씨에도 냉기를 뿜고 있었다. 마이클은 음식이 한가득 차려져 있는 부엌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마이클의 호의 덕분에 맛있는 음식과 맥주를 먹고 마시며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사실 쿠바에서 상류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일상은 쿠바의 일반적인 생활양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씨는 그런 배경과 상관없이 늘 넉넉했다.

 

가족-쿠바-바라데로

저녁이 되면 온 가족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자리에 모여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나누곤 한다

 

마이클이 주최한 파티가 모두 끝나고 페드로의 집으로 돌아가니 벌써 늦은 저녁이었다. 거실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 가족이 모여서 럼과 빵을 간단히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함께하고 자신의 하루에 있었던 일을 나누고, 다같이 주사위 놀이를 한다. 그렇게 웃으며 하루의 마무리를 함께하는 쿠바사람들은 보고 있으니, 문득 한국사회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휘몰아치듯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네 가정은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모습을 쿠바에서 본 것 같다.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보내다

 

다시 또, 하루가 밝았다. 아침부터 페드로는 온 가족을 서둘러 깨우기 시작했다.

 

‘오늘은 미국에서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오는 날이야. 대청소를 해야 하니 모두 도와주렴’

 

페드로는 마치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던 가족이 오는 것처럼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로 일어났다. 빗자루를 집어 들고 집 안 구석구석을 쓸기 시작했다. 청소가 끝나자 곧 근사한 음식 준비가 시작됐다.

 

‘아빠. 오늘 어떤 친구가 오는데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는 거죠?’
‘음.. 그 친구는 30년 전에 혼자서 미국으로 건너갔어. 열심히 일해서 이제는 성공한 친구지’
‘그럼 얼마 만에 친구를 만나는 거죠?’
‘10년도 넘었어. 멀리서 오는 친구를 위해 우리도 정성을 다해야겠지?’

 

페드로의 40년 지기 친구인 에두아르도, 마이애미에 오게 되면 언제든 연락하라며 손수 연락처까지 적어주었다

 

페드로는 마치 성탄절 선물을 기다리는 소년처럼 들떠 보였다. 몇 시간이 지나자 기다렸던 초인종이 울렸다. 페드로의 40년 지기 친구인 에두아르도의 가족이 도착했다. 그들은 눈물겨운 상봉에 감격했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바라데로의 길거리 풍경. 작은 유원지가 있었다

 

에두아르도를 환영하는 늦은 점심이 끝나고 우리는 모두 바라데로의 아름다운 바다에 뛰어들기로 했다. 온 가족이 각자의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손에는 맥주를 한 병씩 든 채, 카리브 해의 보물 같은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가족-쿠바-바라데로

카리브 해의 보물인 바라데로의 해변. 이 아름다운 광경이 매일 펼쳐지는 아름다운 집에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나흘 동안 함께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헤엄쳤다.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세상 가장 아름다운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맥주병을 부딪치던 그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이 됐다.

 

 

깊어가는 바라데로의 마지막 밤

 

집에 돌아와 보니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부엌에 들어가니 산드라가 한국에서도 먹기 힘든 진귀한 재료들로 한 상을 차리고 있었다.

 

‘준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

 

산드라가 한쪽 눈으로 윙크하며 말했다. 그렇다. 오늘은 페드로 가족과 함께한지 4일째 되는 날이자 페드로의 가족과 함께하는 마지막 밤이었다.

 

산드라는 내일 떠나는 나를 위해 잊을 수 없는 파티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모두 야스마니의 멋진 여행을 위하여 살룻(Salud)!’
(살룻 : 쿠바의 가장 대표적인 건배사. ‘당신의 건강을 위하여’ 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많은 감정이 뒤섞인 잔이었다. 그리고는 가족 모두가 나의 여행을 응원하며 한 마디씩 건넸다. 그들의 진심이 담긴 따뜻한 격려를 듣고 있으니 지난 나흘 동안의 일들이 떠올랐다. 버스터미널에서 페드로 부부와 우연히 만났던 일부터 이들과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 모든 순간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바라데로에서의 마지막 밤은 깊어갔다.

새벽 무렵이 되어 잠들려고 하는데 페드로가 나를 조심스럽게 불러냈다.

 

‘준, 내일 아침 6시까지 터미널에 가야 하는 거 알지? 내가 바래다줄 테니 늦지 않게 준비해. 두고 가는 물건은 없는지 꼭 체크하고’

 

페드로는 나를 다시 한번 안아주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새벽 5시 10분, 알람이 귓전을 때린다. 나는 그 소리에 벌떡 일어나 떠날 채비를 했다. 문을 열고 나와 보니 페드로가 부엌에서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아빠, 뭐하고 계세요?;
‘시엔푸에고스까지는 멀어서 가는 길에 배고플 거야. 간단한 샌드위치를 만들었으니 가면서 먹도록 해’

 

나는 그 말에 코끝이 찡해졌다. 더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아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가 눈물을 감추었다. 페드로의 집에서 나의 흔적들을 주섬주섬 담았다. 짐을 다 챙긴 후 페드로와 함께 터미널로 출발했다.

 

나를 꼭 배웅하겠다던 페드로Jr는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예매한 표를 받아 들고, 우리는 대합실에 앉아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준, 언제 어디서나 우리 가족이 너를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나중에 다시 아바나에 돌아오거든 꼭 나를 찾아와. 그때까지 너의 안전한 여행을 위해 기도할게.’
‘네. 쿠바에서 아빠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고, 잊을 수 없는 일이에요 다시 아바나에 돌아가거든 꼭 찾아뵐게요. 건강하세요!’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떠나는 나를 위해 샌드위치를 싸고 있던 페드로, 그의 선한 미소와 무조건적인 사랑 덕에 쿠바가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다. 시엔푸에고스로 향하는 버스표를 들고 환하게 웃는 우리 부자

 

못다 한 아쉬움을 나누고 있는 그 순간,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눈치도 없게 도착했다. 정말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나누어야 할 때가 왔다. 나는 페드로에게 안겨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정말 보고 싶을 거라고, 잊지 않을 거라고’. 페드로는 그렇게 말하는 나의 등을 말없이 두드려 주며 미소를 지었다.

출발을 알리는 버스기사의 외침에 나는 버스에 올라야 했다. 버스는 진한 추억이 묻어있는 바라데로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도 페드로는 여전히 따뜻한 미소를 짓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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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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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하는 모든 곳에서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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