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 해 일주#1,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 – 멕시코, 이슬라 홀보쉬

이슬라 홀보쉬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바야돌리드(Valladolid)에서 새벽 두 시 삼십 분 버스를 타고 치킬라(Chiquila)라는 작은 항구 마을까지 간 뒤,  다시 페리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목적지가 ‘카리브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기다리고 기다리던 카리브 해에 거의 도착했다. 우리는 ‘카리브 해 일주’의 출발점을 카리브 해의 최고의 관광지 ‘칸쿤(Cancun)’이 아닌 멕시코 만의 끝자락, 카리브 해가 시작 될락 말락 하는 곳에 있는 작은 섬 이슬라 홀보쉬(Isla Holbox)로 정했다.

 

뜨겁고 강렬한 태양을 힘껏 밀어 올리는 부지런한 새벽의 바다, 야간 이동에 지쳐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나와 만난 오후의 푸르른 바다, 해를 넉넉하게 품은 일몰의 바다 그리고 천 개 만 개의 눈을 깜빡이는 한 밤의 바다까지. 매 순간 눈앞에선 황홀한 풍경이 펼쳐졌다

 

아는 사람만 찾아간다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 홀보쉬. 바닷가에는 좋은 곳이라면 귀신같이 알고 찾아오는 미국인 중년 부부들과 유럽 배낭족 청년들 몇몇 말고는 낚시하는 새와 섬사람들뿐이다. 조용한 바다를 마주하며 홀보쉬의 첫날을 보냈다.

 

 

홀보쉬의 바다를 만끽하는 신나는 청춘

 

홀보쉬 섬은 100m를 뛰어가도 바닷물의 높이가 무릎까지 밖에 오지 않는다. 어린아이들도 안전하게 물놀이를 할 수 있다

 

다음날, 우리는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정오가 다 되어서야 해변으로 나갔다. 어제보다는 바람이 불어 물결이 거칠다. 우리는 물이 빠진 홀보쉬 해안의 하얀 모래사장이 보고 싶었다. 반드시 일찍 일어나리라 그렇게 몇 번을 다짐하고 잠들었건만, 밤샘 이동이 꽤 힘들었나 보다.

비수기여서도 그렇지만, 아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휴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넓은 해안선에 앉아 손가락으로 콕콕 찍으며 한 명, 두 명 셀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홀보쉬는 보석 같은 섬이다.

 

조용한 바다를 배경으로 진정성 넘치는 웨딩사진을 촬영했다

 

우리는 삼각대를 세워놓고 웨딩 사진을 찍었다. 결혼 전, 손가락 오글거리는 스튜디오 웨딩촬영 미션을 완수할 자신이 결단코 없었던 부부는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코스를 과감히 생략했다. 대신 결혼을 기념하는 무언가는 해야겠다 싶어서 생각해 낸 것이 두 가지였다. 하나는 1년에 한 번은 꼭 사진을 찍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여행하면서 항상 커플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그래서 없는 기술이지만 아름다운 장소를 발견하면 이렇게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너무 열심히 찍었는지 산 지 두 달 만에 삼각대의 목이 부러지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나중에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는 이렇게 진정성 넘치는 웨딩사진을 촬영했단다’라며 보여줄 생각이다.

 

우리는 아직 신나는 청춘이다

 

마누라는 이슬라 무헤레스(Isla Mujueres)에 가면 스노클링도 해야 하고 심해 박물관도 가야 한다며 무릎까지밖에 오지 않는 바다에서 수영 연습을 하고, 신랑은 저녁거리 구한다고 고운 모래 속에 두 손을 푹푹 쑤셔 넣으며 소라를 찾는다. 그러다가 슈퍼맨 보여주겠다며 파도에 열심히 배치기 하는 신랑, 나도 슈퍼 우먼 하겠다고 날다가 날치가 돼버린 마누라. 애 낳기 전엔 다 애라더니 서른이 다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신나는 청춘이다.

 

호텔의 선베드 부럽지 않은 DIY 그늘막

 

한바탕 물놀이를 마친 뒤 호텔 앞에 있는 선베드 옆에서 일광욕하며 잠시 쉬었다. 선베드를 이용하려면 해변에 있는 호텔에서 묵어야 했다. 숙박비가 하룻밤에 10~15만 원 정도로, 홀보쉬에서 하루 정도는 선베드의 호사를 누릴까 고민했지만, 우리는 그 돈으로 낚시 투어를 가는 거로 결론지었다. 선베드 대신 우산과 수건으로 그늘을 만들고 나름의 일광욕을 즐겼다. 저기 선베드에 누워있는 사람이나 우리 부부나, 따사로운 태양을 공평하게 누리고 있으니 부러울 게 없었다.

 

막 잡은 문어와 랍스터. 싱싱한 해산물을 값싸게 즐길 수 있는 건 홀보쉬의 또 다른 자랑이다

 

점심이 늦어져 식당을 찾아다니다가 다시 해안가로 나오게 되었는데, 마침 어부들이 낚시를 끝내고 고운 모래 위에 배를 정박시킨다. 눈이 반짝반짝해진 우리 부부가 그들에게 달려가니 문어와 랍스타가 보였다. ‘이거 팝니까?’라며 물어보니 그렇단다. 우리는 흥정 할 것도 없이 갓 잡아 올 린 문어 한 마리와 살이 터져 나오는 신선한 랍스타 한 마리를 100페소(8,000원 정도)에 샀다.

 

면에 말아 먹고, 칼로 잘라 뜯어 먹고, 남은 건 총총 썰어문어 랍스타 죽을 만들기 위해 얼려 놓았다.  ‘내일은 코코넛 나무에서 코코넛 따서 랍스타를 삶아 먹어야지!’ 라며 한없이 행복해하는 해산물 애호가들

 

담아갈 비닐을 준비하지 못해서 한 손에는 문어, 한 손에는 랍스타를 들고 호스텔로 복귀했다. 그리고는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요리인 ‘문어 랍스타 라면’을 끓였다. 맛은 예술, 양도 GOOD! 게다가 가격까지 퍼펙트한 오늘의 요리를 먹으며 위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감탄사를 연발하는 부부.

 

우리는 그렇게 이슬라 홀보쉬에 발목을 잡혔다

 

어제 ‘하루 더 있자’ 해놓고 오늘 또 ‘하루 더 있자’ 한다. 우리는 결국은 주일 오후 호스텔 옆 베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월요일 아침에 칸쿤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레알 카리브 해’가 코앞이건만, 아름다운 멕시코 만의 작은 섬인 이슬라 홀보쉬가 우리 부부의 발목을 이렇게 잡는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홀보쉬의 바다

 

아침 10시의 홀보쉬 해변은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배를 타고 바다낚시를 하기 위해 해변으로 나왔는데, 파도가 제법 높았다. 10시에 출발하려고 했지만, 우리 말고도 멕시코인 가족 세 명과 함께 낚시를 떠나기 위해 2시간을 기다렸다. 12시가 됐지만 파도는 여전히 높았다. 높은 파도에 겁먹은 과달라하라(Guadalajara)의 모녀는 결국 바다낚시를 취소하고 말았다. 그 덕분에 우리 역시 낚시와 배 위에서 즐기는 신선한 세비체 만찬을 포기해야 했다.

 

골프카 렌트비는 한 시간에 150페소였으나  넉살 좋은 마누라의 애교로 두 시간에 230페소로  빌릴 수 있었다. 골프카 덕분에 뜨거운 해가 중천에 뜬 한낮의 이슬라 홀보쉬의 구석구석을 누빈다

 

Lo ciento! 하며 사과하는 낚싯배 주인 토니에게 No hay problema! no te preocupe! 괜찮아, 아무 문제 없어! 하고 쿨하게 돌아 나와 골프카를 렌트했다. 골프카는 이슬라 홀보쉬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이다. 호스텔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달리니 집을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휴가를 누리는 커다란 이구아나들과 오랜만에 바람을 만나 카이트 서핑(Kite surfing)을 즐기는 청년들이 있다. 해변에는 개들이 뛰어놀고 있었는데,  서양개라고 일광욕을 좀 아는 눈치였다.

 

파도 한 점 없이 물결만 일렁이던 푼타 코코

 

홀보쉬에서 별 보기에 가장 좋은 포인트라는 푼타 코코(Punta Coco)로 달려간다. 이슬라 홀보쉬의 서쪽 끝까지 달려가야 나오는 푼타 코코. 아무리 걸어도 수심이 발목까지 밖에 오지 않는 바다는 파도 한 자락을 허락하지 않는다. 태어나 이렇게 고요하고 반짝이는 바다는 처음 만난다. 진흙같이 고운 모랫바닥엔 얕은 물가에서 물고기를 사냥하던 긴 다리의 새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홀보쉬의 푼타 코코에는 노부부와 우리들의 소곤거리는 말소리, 저 멀리서 수영하는 한 중년 라티노의 물살 소리만 나지막이 들려온다.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는 일몰을 몇 초간 넋 놓고 바라보다가 ‘칸쿤 가면 내 이름 써줘!’ 라고 하나뿐인 처제의 부탁이 생각나 열심히 처제 이름을 쓰는 일등 형부

 

골프카를 반납한 뒤 신랑이 좋아하는 페스카도 프리토(Pescado fritom, 생선 튀김)를 먹으러 미리 봐둔 해산물 집으로 갔다.  맛있는 생선요리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부부의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 하루 종일 색을 바꾸던 홀보쉬의 바다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분홍빛으로 물든다.

 

페스카도 프리토

 

홀보쉬는 바다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명성 높은 카리브 해의 칸쿤도 아니고 멕시코만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작은 섬 이슬라 홀보쉬.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너무도 아름다운 바다를 가진 곳이다. 아니 홀보쉬에서 아름다운 게 어디 바다뿐일까? 일곱 시면 흑암이 되어 버리는 섬마을 하늘을 총총히 수놓는 별 무리, 섬을 닮은 파스텔 톤으로 옷 입은 집과 가게들, 아직은 사람들에게 집을 빼앗기지 않고 열심히 날며 사는 새들까지…

 

‘이 섬도 조만간 더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겠지? 그 전에 이 모습을 담고 가서 너무 좋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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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수와 신애

찬수와 신애

비싼 웨딩드레스, 메이크업, 오글거리는 스튜디오 웨딩사진 촬영과 맞바꾸며 6개월간 중남미로 떠났던 배낭 신혼여행.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동행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앞으로의 60년을 어떻게 함께 해야할 지를 나누었습니다.

* 블로그 : pinkcham.blog.me
찬수와 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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