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달리는 크루즈 승무원 #1 – 멕시코, 엔세나다

 

나는 크루즈 승무원이 되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늦깎이 청년이, 크루즈 승무원이 되었다. 보통 승무원이라고 하면 Flight Attendant를 떠올리겠지만, 선박 객실 승무원 즉, Crew 혹은 Ship’s company라고 불리는 직업을 가진 한 대한민국 청년의 이야기다.

한국의 항공기 승무원들은 예쁘거나 잘생겨야 하고 또 나이까지 어려야 한다. 그들과는 정반대에 있는 내가 크루즈 승무원이 되었다. 입사 때도 그랬지만 크루즈에서 일을 시작한 첫날까지도 ‘과연 내가 이곳에서 일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반복했다. 2013년 11월에 입사한 뒤 다음 해 3월, 나는 드디어 L.A에서 Sapphire Princess 호에 승선하게 된다.

 

같이 입사한 동기들. 남아공에서 온 윈스턴과 매튜. 신입사원으로 들어와서 배에서 처음 내린 곳은 멕시코의 엔세나다(Ensenada)였다

 

사실 배에서 일을 시작한 뒤로는 실무에서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걱정이고 뭐고 다 뒷전이 되었다. 막 회사에 들어갔을 당시 Sapphire Princess는 창립이래  최초로 아시아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크루즈는 중국 상하이로 이동하기 위해 내부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이었다. 신입사원이라 크루즈 생활에 적응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밤샘 작업까지 더해지니 나를 비롯한 승무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런 중에 가까스로 배에서 내렸던 첫 번째 날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쓰레기통 마저 알록달록한 엔세나다. 생전 처음 와보는 이곳의 모든 것이 새로웠다.  점심 먹으러 돌아다니는 중에 한 식당에서 만난 이국적인 풍경에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땅에 신난 동기들. 페루에서 온 데니스, 영국에서 온 빅토리아, 일본의 에리코, 그리고 중국의 앰버

 

바쁜 일로 지친 승무원들에게 이처럼 달콤한 휴식은 없다. 라파엘(멕시코), 벨린다(중국), 아나(우크라이나), 유페이(중국), 걸슈윈(남아공)

 

동료들과 노는 것도 좋았지만 술자리는 잠시였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면 언제 다시 돌아오겠냐는 생각에 이들을 뒤로 한 채 거리 구경을 나갔다. 물론 그때는 이곳을 주야장천 오게 될 거란 걸 전혀 몰랐다.

 

한바탕 관광객들이 몰렸다가 조용해진 기념품가게. 손님들의 시선을 끄는 게 쉽지 않다. 알록달록한 멕시코의 기타와 우쿨렐레도 있었는데, 제대로 된 연주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엔세나다는 사실, 그 지역의 특색이 강한 곳이라기 보단 관광객들에게 특화 되어있는 상업도시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특히 Main Street.는 쇼핑과 먹거리의 거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시내에서 외곽으로 조금만 나오면 보이는 주거지역. 좀 더 위로 가보고 싶었지만, 언덕위에 있기도 했고, 당시에는 관광지가 아닌 곳을 혼자가기가 꺼려져서 그러지 못했다

 

엔세나다에는 기념품 가게가 아니면 볼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다.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조형물 정도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 뿐이다

 

혼자 시내 구경을 마치고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 동기들과 합류했다. 출항까지는 아직 3시간이나 남았지만, 술도 마셨겠다, 서둘러 배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보통 근무 전까지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는 게 승무원들의 루트라고 한다. 배가 출항하기 시작하면 마음 놓고 푹 쉴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밟은 땅이 아쉬웠다. 하지만 우리는 승무원이다. 다시 일을 하러 가야 한다는 투철한 직업의식과 함께 다음을 기약하며 엔세나다를 빠져 나왔다.

 

Calypso Cove라는 면세점 가게에서 나를 처음 가르치고 알려준 라파엘. 사실 처음에는  믿음이 가는 인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같이 생활 하면서 라파엘은 정말 착하고 성실한 친구였다. 크루즈를 타면서 수많은 동료들을 만났지만, 다시 한 번 같이 일해보고 싶은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다

 

크루즈에서 처음 일하면 누구나 찍는다는 인증샷 (사실 유페이 뒤로 보이는 배는 우리 배가 아니다). 승선하기 전의 미녀(?) 삼총사. 아직까지는 신났다

 

꼭 돌아가야만 하는가… 크루즈 승무원들은 배를 감옥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사진을 찍고, 돈도 벌겠다는 나름의 거대(?)한 꿈을 가지고 입사했으나 크루즈 생활 초기에는 마치 군대에 재 입대한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게 어렵고 힘들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리 엄살이 심했는지 모르겠다. 뭐 그런 생각을 나 혼자 했던 건 아니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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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스와 기름 두 방울

잭스와 기름 두 방울

개봉동 서울 촌놈이 호주를 횡단했고 미국 33개 주를 운전했으며, 태평양도 건넜다. 지금까지 32개국을 품에 담았다.

"The secret of happiness is to see all the marvels of the world, and never forget the drops of oil in the spoon." -The Alchemist-

* 인스타 : instagram.com/jax_dou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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