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ana Blues #3 – 쿠바, 아바나-마탄사스

안녕, 고마운 마이클

 

“응? 뭐라고? 기차라고…?”
“그래. 기차 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마이클의 입에서 나온 기차라는 단어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쿠바 여행정보를 수집했을 때 기차를 타고 쿠바를 여행했다는 포스팅을 본 적도 없었거니와, 현지에서 들었던 정보에 의하면 아마 우주에서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기차 중에서도 쿠바 기차만큼 속 터지는 교통수단이 없다고 했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당연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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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노쇠한 기차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멈춰버리는 일이 잦다. 굳이 타겠다면 마음을 비우고 타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돈은 없고 시간만 많았던 여행자가 선택할 방법은 없었다. 두려움이고 뭐고 정답은 이미 나왔다. 이제 그만 순순히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기에, 배부른 소리는 그만두기로 했다.

마이클은 선뜻 여기서 12km나 떨어진 기차역까지 나를 데려다주겠다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폭염 속을 걸은 지 1시간 정도 지나자 온몸은 땀으로 젖어버렸고 목구멍은 온통 말라버려서 타는 듯했다. 나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쿠바라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불판 위에서 서서히 익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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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보면 살인적인 7월의 쿠바 날씨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친구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몸도, 마음도 지친 나는 마이클에게 5분만 쉬었다 가자고 했다.

 

“응. 그래. 잠깐 쉬지 뭐.”

 

나는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두 개의 배낭을 내팽개치고 나무그늘에 등을 기댔다. 등 뒤로 뜨듯한 바람이 스쳐 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쉬고 있었는데, 잠깐 사라졌던 마이클이 환하게 웃으며 두 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나타났다.

 

“이건 과야바(영어로는 Guava) 잼이 들어간 빵이야. 뭐라도 먹어야 힘을 내지”

 

잠깐 사라졌다 싶더니 저 멀리 있는 빵 장수에게 달려가 사 온 거다. 그는 해맑게 웃으며 과야바 빵을 내밀었다. 고작 빵 4개였지만, 한눈에도 행색이 남루해 보였던 그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을 것이다. 마이클의 고마운 마음씨 덕에 나는 다시 한 번 힘을 낼 수 있었다. 빵을 먹은 뒤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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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역 매표소

 

우리는 먼 길을 걷고 배까지 탄 후에야 카사블랑카(Casa Blanca)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이클의 도움으로 20분 뒤에 마탄사스로 기차가 출발한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마이클을 끌어안고 진심으로 고맙다며 거듭 인사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낯선 이방인에게 최선의 친절을 보여줬던 그는 할 일을 다 했다며 나의 여행에 건투를 빌어주었다.

그렇게 돌아서는 마이클을 나는 도저히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떠나려는 마이클에게 나는 맥주를 대접하고 싶었다. 그를 잠깐 붙들어 두고 주변을 살피니 다행히 근처 가판대에서 차가운 맥주를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기차표 가격의 4배를 주고 맥주 2캔을 샀다. 얼음장같이 차가웠던 맥주를 둘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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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쿠바에 다시 가게 된다면 여전히 말레콘에서 헤엄치고 있을 그를 찾아 그때처럼 차가운 맥주를 나누고 싶다

 

맥주를 마신 뒤 나와 마이클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작별 인사를 했다. 마이클은 내가 기차에 올라타서 출발할 때까지 창밖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 

 

우렁찬 굉음을 내면서 요동치던 기차가 드디어 철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긴장이 풀리면서 졸음이 밀려왔고 자연스럽게 눈이 감겼다. 얼마간 눈을 붙이다가 기분이 이상해서 깼다. 주위를 둘러보니 눈이 왕방울만 한 꼬맹이가 내 옆에 딱 붙어서 나를 이리저리 뜯어보며 웃고 있었다.

 

왕방울만 한 눈을 가진 꼬맹이, 헬레나와 비안나. 비안나는 기차 안에서 나의 첫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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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목적 중 하나였던 ‘사진 선물하기’.  헬레나 가족을 찍었다

 

꼬맹이뿐만 아니라 기차에 있는 모든 승객의 눈초리가 나를 향해 있었다. 그때부터 승객들이 돌아가면서 내게 질문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쿠바에는 여행 중인 거야?”
“어디서 왔어?”
“기차는 왜 탔어?”
“밥은 먹었어?”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

 

안 그래도 동양인 여행자를 찾아보기 힘든 쿠바인데, 기차에서 동양인 여행자를 보게 되었으니 그 관심이 지대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고 설명하면 호의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사람들과 기분 좋은 대화가 이어졌다. 역시 외국 땅에선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절감했다.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던 쿠바의 기차

 

쿠바의 기차는 명성 그대로 내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했다. 차장 마음대로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시스템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차장은 ‘비가 와서 못 간다’, ‘벼락을 맞을 수도 있어서 갈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댔지만, 전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또 기차에는 전등과 화장실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망가져서 닫히지 않는 창문, 딱딱해서 엉덩이가 배기는 철제 의자까지 모든 것이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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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탄사스까지는 9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에 가는 중간에는 정차역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도 한다

 

덥고 습한 공기 속에서 4시간이 흘렀다. 나는 갈증이 미친 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참고 참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앞에 앉아있던 아주머니에게 혹시 물을 가지고 있다면 한 모금만 줄 수 있냐고 간청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주머니는 물을 ‘조금’ 가지고 있었다. 너무 목이 말랐지만 예의상 정말 목젖을 스칠 정도로만 물을 마시고는 아주머니께 돌려드렸다. 하지만 이내 갈증은 도지고 말았다.

 

‘아… 조금만 더 마실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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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 아니 생명수

 

예의고 뭐고, 기회가 왔을 때 더 마시지 않은 걸 뼈저리게 후회하며 눈을 감았다. 자고 일어나면 이 고통도 지나가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누군가 나의 어깨를 툭툭 치는 게 느껴졌다. 눈을 뜨니 한 소년이 자기 아빠가 전해주라 했다면서 물통을 건네주는 게 아닌가. 무려 ‘얼린 생수’였다. 소년은 내 손을 물을 쥐여주고는 쪼르르 도망치듯 사라졌다.

아저씨가 준 시원한 물 한 통에 나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나눠마셨다. 나는 아저씨에게 찾아가 감사의 표시로 사탕 두 알을 내밀었다. 아저씨는 따듯한 미소와 함께 엄지를 추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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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란도 아저씨가 적어준 주소와 연락처

 

기차 안에서 친해진 사람 중에 ‘올란도’라는 이름을 가진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아바나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였는데, 영어를 유창하게 잘했다. 심신이 지쳐있던 나는 처음 만난 올란도 아저씨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일단 마탄사스로 가긴 가는데, 잘 곳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서 걱정이네요. 겁도 나구요.”
“이해해. 나도 너만 했을 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같은 고민을 했었지. 하지만 준형. 넌 그걸 알아야 해.”
“네?”
“혹시라도 여행이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생긴다면 주저 내게 연락해. 그리고 내가 아니더라도 착한 쿠바 사람들이 언제든 너에게 도움을 줄 거야.”

 

그는 종이에 자신의 연락처와 주소를 적어주었고, 기차 안의 승객들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주기를 청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헬레나 아주머니와 로드리게즈 아저씨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감사의 표시로 그들 한 명 한 명과 악수와 포옹을 나눴다.

 

마탄사스로 가는 열차

 

많은 사람의 축복과 기도 그리고 응원 속에서 3시간을 더 달렸다. 나는 아바나를 떠난 지 장장 9시간 만에 어둠이 짙게 깔린 밤, 미지의 도시 마탄사스에 도착했다.

 

지난 여행기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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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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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하는 모든 곳에서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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