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ana Blues #2 – 쿠바, 아바나

이제는 아바나를 떠나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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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키나 카사는 국회의사당이었던 카피톨리오(Capitolio) 가까이에 있다 

 

어느덧 아바나에서 머무른 지 4일째, 이제는 떠나야만 했다. 공항에서 사라졌던 가방을 다시 찾을 때까지 나를 정말 친동생, 친아들처럼 아끼고 챙겨주던 한국인 여행자들과의 헤어짐이 너무 아쉬웠지만 더는 일정을 지체할 수 없었다. 아니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나의 여행’을 하기 위해선, 억지로라도 떠나야 했다.

사실 나에겐 거창한 계획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지도를 펼치고 어디를 가볼까 궁리했다. 유니온 데 레이스(Union de Reyes), 시엔푸에고스(Cienfuegos) 같은 도시가 눈에 들어왔고, 그곳까지 히치하이크로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가방에서 마커를 꺼내 조악한 실력으로 히치하이크 피켓을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가유키씨는 배꼽을 잡고 웃으며 ‘웃긴 녀석’이라고 박장대소했다. 그는 멋쩍게 웃고 있는 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피켓을 들고 폼 좀 잡아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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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에 급조했던 히치하이크 피켓. 자세히 보면 태극기의 건곤감리를 반대로 그렸다. 잘못을 깨달았을 때 내게 남은 종이가 더는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피켓과 가방을 짊어지고 정들었던 인연들과의 아쉬움을 뒤로하며 다시 나를 어지러운 쿠바의 한복판에 던졌다.

쿠바 내에서 가장 차량이 많이 회전한다는 말레콘(Malecon)을 따라서 걷다가 그 길 한가운데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기로 했다. 차량과 차량이 뒤엉키는 길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준비해온 피켓을 머리위로 들고 이상한 동작들을 취하며 지나가는 차량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이봐 당신. 피켓 좀 보자. 뭐라고 쓴 거야?’

‘유니온 데 레이스나 시엔푸에고스까지 좀 태워줄 수 있나요?’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박장대소를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는 쿠바야. 유럽이 아니라고, 정신 차려 Chino!’

 

그는 검은 매연을 뿜으며 쏜살같이 사라졌다.

기운이 쭉 빠졌다. 그래도 겨우 이제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것뿐인데,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더 힘을 내서 적극적으로 피켓을 흔들기 시작했다. 때로는 괴상한 춤을 추기도 하고, 피켓을 위아래로 들어 올리면서, 다시 한 번 그들의 시선을 모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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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키나 카사를 오고 갈 때마다 피식거리게 했던 8431번 버스. 물론 고속버스터미널은 가지 않는다. 그밖에 4212번 버스도 있다. 한동안 못 볼 풍경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뿐이었다

 

살인적인 카리브 해의 뙤약볕 아래서 사투를 시작한지 30분쯤이 흘렀을 쯤, 다시 한 번 내 앞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다시 못 올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차에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좀 도와줄 수 있나요?’

‘흠.. 유니온 데 레이스라고? 문제없지’

‘와! 고마워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정말이지 뛸 듯이 기뻤다.

 

‘그래서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데? 당신 혹시 핸드폰 있어?’

‘네. 핸드폰은 있는데, 왜요?’

‘목적지까지 태워줄 테니까, 나한테 핸드폰을 좀 줘야겠어’

 

어처구니가 없었다. 설마 했는데 다시 한 번 나를 시험 들게 하는 그의 태도에 나는 짜증이 나는 짜증이 났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럴 순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내게 중지를 들어 보이며 쌩하고 사라졌다. 그제야 ‘여기는 유럽이 아니야’라는 말의 뜻을 조금 실감하기 시작했다.

 

 

간절하게 몸부림 치던 나에게 그가 다가왔다

 

한참을 그러다가 지쳐버린 나는 잠깐 방파제에 몸을 기댔다. 내 곁을 유유히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번쩍번쩍 윤이 나는 시티투어 버스가 각기 다른 색의 눈동자를 가진 이들을 이곳저곳으로 태워 나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울적한 기분이 들었으나 마음을 굳게 다잡고 다시 한 번 간절한 몸부림을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방파제 밖에서 수영을 하고 있던 새까만 피부의 한 청년이 내게 저벅저벅 다가왔다.

 

“안녕? 나는 마이클이야. 아까부터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히치하이킹크를 하려는 가봐?”

“아, 반가워! 그런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왜?”

“사실 아바나에서 돈 없는 이방인이 대접받는 건 거의 불가능해. 히치하이크는 물론이고”

“나도 알고 있어. 하하하. 그런데 어쩌겠어. 나는 돈이 정말 없거든. 하지만 오늘은 어떻게 해서라도 아바나를 떠나야만 해”

“음… 유니온 데 레이스가 여행하기에 썩 좋은 루트는 아니야. 만약 시엔푸에고스를 간다면 최대한 싸게 갈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그는 자신을 따라오라며 손짓했고, 나는 사기꾼 할아버지에 이어서 다시 한 번 신원미상의 남자를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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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같은 쿠바여행에서 기꺼이 단비가 되어준 친구 마이클, 48일의 쿠바여행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해준 보석 같은 친구였다

 

마이클은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제 친구가 시엔푸에고스에 가려고 합니다. 도와주세요. 가난한 친구입니다.”

 

마이클은 마치 자기 일처럼,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적극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나의 처지를 설명했다. 마이클의 이야기를 전해 사람들은 나의 도전 아닌 도전에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이방인을 240km나 떨어진 곳까지 데려다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 나 같아도 ‘별 미친놈이 다 있다’며 손가락질하고 갔을 게 분명하다. 누구를 욕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마이클은 한숨을 내쉬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음… 사실 이건 너무 무모하고 어려운 도전이야. 나는 될 수 있으면 당신에게 도움을 주고 싶고, 또 쿠바에도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데, 상황이 좋지 않네”

“알고 있어 마이클. 당신은 충분히 노력했어. 그래도 덕분에 앞으로 여행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이 생긴 것 같아. 정말 고마워”

 

그의 호의가 충분히 고맙긴 했지만, 본격적인 여행은 고사하고 아바나를 떠나는 것부터 막막해진 나는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마이클은 한 가지를 제안했다.

 

“당신이 계획한 도시는 아니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어. 마탄사스(Matanzas)라는 도시인데, 여기서 100km 떨어져 있지만  1CUC로 이동할 수 있어.”

 

충분히 구미가 당길만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많이 힘든 시간이 될 거야, 분명 많이 불편할거고. 심지어 내가 원망스러워질 수도 있어. 싸게 갈 수 있는 게 전부니까. 그래도 원한다면 알려줄게.

“그렇다면 알려줘. 마탄사스는 오늘 처음 들었지만, 뭔가 느낌이 좋아! 그래. 오늘 목적지는 마탄사스다!”

“너 혹시 쿠바 기차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어?”

“응? 뭐라고? 기차라고…?”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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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위에서 확인한 세 도시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편집자 주)

 

지난 여행기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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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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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하는 모든 곳에서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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