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ana Blues #1 – 쿠바, 아바나

 

쿠바 공항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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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공항의 한 부류인 ‘못 찾은 사람’

 

“그래서, 지금 제 가방이 어디 있다는 건데요?”

“나도 몰라요, 찾아봐 줄 테니까 주소나 적고 가세요. 빨리”

 

어이가 없었다. 19시간 비행을 이겨내고, 2시간이 넘도록 느려터진 수화물 벨트를 멍청하게 노려본 결과가 겨우 이건가 싶었다. 호세마르티 공항(José Martí International Airport) 수화물 벨트 앞에선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수화물을 ‘찾은 사람’과 ‘못 찾은 사람’.

기초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던 공항직원은 이런 일이 무슨 대수냐는 듯 오히려 나를 쏘아붙였다. 하긴, 이곳에서 뭐 내 가방을 쉽게 찾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진 않았지만 조금 당황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공항. 실랑이를 마치고 나왔을 땐 모두 떠나간 뒤였다

 

행방불명된 수화물로 실랑이하다 보니 어느덧 새벽 1시가 지나고 있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던 수많은 관광객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떠나버린 뒤라, 조금은 한적하고 쓸쓸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심지어 쿠바에서 악명 높기로 유명한 택시 호객꾼들마저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 기운이 쭉 빠졌다. 생각보다 늦어진 일정에 나는 처음 만나는 택시기사와 어떻게든 가격협상에 성공해야만 했다.

 

“카피톨리오(Capitolio)까지 얼마인가요?”

“이 시간이면 30CUC은 받아야지. 어서 타 금방 데려다줄게”

 

내 생각과 크게 달랐던 택시비용은 짜증과 피로마저 가시게 할 만큼 어이가 없었다.

 

“아저씨 저 지금 가방도 없어졌고, 가진 돈이 별로 없거든요. 좀 깎아주세요”

“얼마를 원하는데?”

“15CUC요”

 

택시기사는 당돌한 내 흥정법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장난하는 거지? 15CUC에 가는 택시는 전혀 없어”

“그래요. 그럼 수고하세요”

 

쿨하게 돌아서는 내가 당황스러웠던지 택시기사는 급하게 내 팔을 붙잡았다.

 

“아니, 아니 잠깐, 잠깐만! 그럼 18CUC으로 하자. 15CUC는 기름 값도 안 나온다구!”

 

내가 못 이기는 척 수락하니 그제야 택시기사는 싱글벙글 웃음을 보였다. 휘파람을 불며 내 짐을 친히 트렁크에 실어주었다. 카리브 해 특유의 끈적거리는, 습윤한 밤공기를 가로질러 달리다 보니 어느새 카피톨리오에 도착했다.

 

 

나는 울고,  그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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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밤거리 풍경

 

 

‘쿵쿵쿵’

 

“문 좀 열어주세요, 호아키나 아주머니!”

 

터무니없이 늦은 시간이란 건 알았지만, 낭패였다. 유일하게 주소를 알고 있던 호아끼나 까사는 나의 애타는 부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라 대답 없는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그렇게 30분쯤을 현관 앞에서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놀랍게도 현관문으로 덩치가 건장한 사내가 눈을 비비며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입에서 뒤이어 나오는 말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남는 침대가 없어. 다른 곳을 알아봐”

 

그는 너무나도 단호하게 현관을 쿵 닫고 들어갔다. 믿을 수 없었다. 분명히 한국에서 정보를 찾았을 때는 호아키나 카사에 방이 없으면 카사에서 다른 숙소를 중개해준다고 했다. 그 말만 철석같이 믿고 개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왔건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방이 없다는데 더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날이 밝아 올 때까지 죽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대안을 고민하던 중 얼핏 이름만 들어봤던 ‘요반나 카사(Casa Ihovanna)’를 찾아보기로 마음을 굳게 먹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할아버지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할아버지께 달려가 간절한 눈빛으로 ‘돈데 에스따 요반나 까사’ 라고 말하자, 할아버지께서는 굉장히 잘 알고 있다는 제스쳐를 취하며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생각지 못한 호의에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이름도 모르고 말도 통하지 않던 할아버지의 뒷모습에만 의지한 채 적막한 기운이 감도는 아바나의 골목골목을 걷고 계속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할아버지께서는 한 숙소 앞에 도착하자 여기가 요반나 까사라며 초인종을 눌러 숙소주인을 불러내었다. 오밤중에 일어난 건장한 흑인 아주머니는 표정에서부터 짜증이 느껴졌다.

 

“1박에 40CUC야”

 

그 순간 ‘아차! 내가 당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쿠바여행 블로그에서 보았던 요반나 카사의 1박 가격은 분명 10CUC였다. 우리 돈으로 만 원 내외였는데 4배나 넘는 가격을 부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알고 보니 요반나 카사인줄 철석같이 믿고 따라온 그곳은 전혀 관계도 없는 고가의 숙소였을 뿐만 아니라 이 할아버지와 모종의 거래를 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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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그 거짓말쟁이 할아버지. 셀카를 찍을 때까지만 해도 내게 둘도 없는 은인이었다. 혹시나 아바나에서 그를 본다면 피하기를

 

 

속으로 분하고 짜증이 마구 솟구쳤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정중하게 나의 처지를 설명하면서 가격을 조금만 깎아달라고 부탁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주머니는 ‘이 시간에 이 가격을 어떻게 깎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 더는 다른 숙소를 찾아다닐 수가 없었기에, 나도 오기가 생겨 그 말에 물러서지 않고 계속 깎아달라고 했다.

결국 몇 분간의 실랑이 끝에 35CUC로 합의를 보기로 했고, 겨우 방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내게 이 시련을 안겨준 거짓말쟁이 할아버지였다.

 

“I help you. Money Money Tip!”

 

그는 팁을 줄 때까지 여기서 떠나지 않겠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분명 나를 이곳에 데려다주고 부엌에서 숙소 주인과 돈을 주고받는 걸 보았건만, 그 이상으로 내게 팁을 요구하는 뻔뻔함에 치가 떨렸다. 하지만 더 이상 실랑이할 힘도 없었다. 완전히 지쳐버린 상태여서 빨리 팁을 주고 보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모든 것이 공부 한번 제대로 안 하고 무모하게 떠나려고만 했던 내 탓이었다. 그런 나에게 내려진 벌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것을 체념했다.

그에게 팁을 주기 위해 지갑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아뿔싸! 지갑 안에는 10CUC권 지폐 2장뿐이었다. 보통 쿠바 사람들에게 팁을 주는 경우 1CUC 정도다. 1CUC는 우리 돈으로 천 원 정도로 작은 돈 같지만 쿠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큰돈이다. 여러 정보를 검색하면서 그 이상의 팁은 주지 않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접했던 터라, 나 역시 그 정도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필 갖고 있던 돈이 10CUC 지폐라니, 쿠바 여행 첫날부터 여행경비에 막대한 타격을 입게 생겼다.

지갑을 한번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나를 쳐다보면서 웃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며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에 10CUC 지폐를 쥐여주고 얼른 돌아가라고 했다.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남의 속도 모르고 싱글벙글 웃으며 돌아갔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세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지만, 내일 날이 밝자마자 호아키나 카사(Casa de Joaquina)에 찾아가 반드시 방을 구해야만 했기에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했다. 나는 얼른 샤워를 마치고 자리에 누웠다. 그냥 자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오늘 하루 벌어진 일들을 기억해야만 할 것 같아 일기장에 펜으로 꾹꾹 찍어 눌렀다.

 

그렇게 다사다난하고 강렬했던 쿠바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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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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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하는 모든 곳에서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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