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467일차(2), 자전거로 누비는 야생의 땅 – 케냐, 나이바샤

 

도시를 벗어나 야생을 걷다

 

캠핑장 바로 앞에는 호수가 있는데 아주 가끔 하마가 등장했다. 쉴 새 없이 풀 뜯어 먹는 하마를 보니 정말 신기했다. 여기가 정말 야생이구나, 싶었다

 

드디어 나이로비를 탈출해 2시간 정도 떨어진 나이바샤(Naivasha)로 이동했다. 근처에 국립공원이 있어 동물을 쉽게 볼 수 있고, 여가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시기가 크리스마스여서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대부분 인도계 사람들이었다. 마사이 마라(Masai Mara) 사파리를 다녀온 레나와 함께 캠핑장에 도착했는데, 이상하게도 별로 말이 없었다. 뭔가 나에게 화가 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다. 확실히 일본인과 친해지기는 쉬워도 친구가 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은근히 잘 맞았던 벨기에인 스텝. 이 친구의 동행은 헬스게이트까지 이어졌다

 

캠핑장에서 터키와 케냐에서 만났던 한국인과 재회했지만 저녁도 같이 못 먹고 헤어졌다. 혼자 맥주라도 마시려고 캠핑장의 바에 가서 벨기에인 스텝을 만났다. 그저 인사를 하다가 몇 마디를 주고받았을 뿐인데 대화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고 수다는 3시간 동안 이어졌다.

 

마침 걷기에 좋은 날씨였다. 역시 동물이 많은 곳이라 표지판부터 달랐다

 

다음날 레나는 혼자 헬스게이트 국립공원(Hell’s Gate National Park)으로 간다며 헤어졌다. 난 스텝과 함께 이 주변을 걸으며 여행하기로 했다. 캠핑장을 나오기 직전에 중국인 여행자 첸을 만나 셋이 걷기 시작했다. 복잡한 나이로비에 있다가 한적한 이곳을 걸으니 기분이 새로웠다. 날씨는 살짝 더웠지만 걷기에는 괜찮은 날씨였다. 무엇보다 의외로 셋의 궁합이 괜찮았는지 우리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걷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도로 위를 건너는 품바들. 국립공원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동물은 쉽게 볼 수 있는데, 꼭 동물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언제 쇠똥구리를 본 적이 있던가

 

드디어 줄무늬와 뿔이 있는 녀석들을 만났다. 아주 멀리서부터 우리 냄새를 맡고는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을 실제로 보니 정말 신기했다. 우리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우리에게 품바로  친숙한 검은 멧돼지도 길을 건넌다. 그러고 보니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에서 티몬과 품바가 부른 노래가 ‘하쿠나 마타타’로, 케냐에서 사용하는 스와힐리어다. 실제로 케냐에 있으면서 자주 듣기도 했다. 물론 나이로비에서는 전혀 하쿠나 마타타를 외칠 수 없었지만. 아무튼 자연에 있는 내가 걱정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얼룩말도 눈앞에서 지나간다

 

계속 봐도 신기했던 얼룩말, 사진을 몇 번이고 찍었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즐겼다.

 

길을 걷다 만난 작은 마을.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어느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쓰레기와 먼지로 가득해 마냥 평화롭다고 하긴 무리가 있었다. 일단 점심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캠핑장에서부터 마을까지 거리를 따져 보니 충분히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캠핑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은 꽤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비가 조금씩 오는데다가 마타투(Matatu, 미니버스)도 자주 지나다니지 않았다. 나는 일단 걸으면서 지나가는 차를 히치하이킹 하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우리가 걷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 2대가 등장했다. 우리가 차를 향해 손을 들으니 바로 멈췄다. 차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지만 웨건형 차라 트렁크 쪽에 숨겨진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히치하이킹에서 만난 사람들. 알고보니 우리와 같은 캠핑장에서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피셔맨 캠핑장((Fisherman’s Camp)에서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 한 명은 베이징에서 지냈던 경험이 있어 중국어를 할 수 있었는데, 첸과 아주 자연스레 대화하는 것을 보아 중국어가 능숙한 것 같았다. 차에 타고 있던 모두가 웃으면서 놀라워했다.

 

한 사람당  두 마리씩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점심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배가 고팠다. 우리는 민물 생선을 파는 시장으로 가서 물고기 6마리를 샀다. 물고기를 사면 손질까지 해서 담아주는데, 이걸 들고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가면 약간의 돈을 받고 요리를 해준다.

 

역시 캠핑엔 모닥불이다

 

캠핑장으로 돌아온 우리는 모닥불을 피우며 술을 마셨다. 내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스텝은 선물이라며 보드카를 샀고 우리는 콜라와 섞어서 홀짝홀짝 마셨다. 옆에는 인도인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엄청나게 취한 상태로 와서는 허무맹랑한 말을 했다. 나보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10번도 넘게 묻기도 하고, 자기가 광저우에 가봤다며 사진을 보여주려는데 너무 취해서 무슨 버튼을 눌러야 할지도 몰랐다. 기껏 보여준 사진에는 이집트 피라미드가 있어 빵 터지기도 했다. 확실히 케냐에 사는 인도인들은 부자인 것 같긴 했다(대부분 케냐인은 싸구려 중국제 휴대폰을 쓰는 데 반해 이 친구는 최신 폰을 갖고 있었다). 다만 흑인들에 대한 감정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그는 우리에게 절대 흑인을 믿지 말라고 했다. 엄청나게 취한 이 인도인을 더 믿기 힘들어 보였지만.

 

 

자전거로 누비는 야생의 땅

 

사파리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다만 우리가 자전거를 타던 날이 일요일이라 유난히 차를 타고 둘러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차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를 가득 마셔야 했다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버펄로 무리도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헬스게이트 국립공원에 가기로 했다.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어젯밤에 보드카를 엄청나게 마신 탓에 나와 스텝은 몸이 상당히 무거웠고, 준비가 끝나서 이동하려니 내 자전거에 문제가 생겼다. 게다가 가방을 두고 오는 등의 작은 실수와 쇼핑까지 하느라 11시에 출발하려던 계획이 2시쯤으로 늦춰졌다.

어렵게 출발해 드디어 도착한 헬스게이트. 하지만 컨디션은 계속 바닥이어서 입구만 왔는데도 나와 스텝은 숨을 헐떡였다. 헬스게이트에서는 적잖은 돈을 써야 했다. 입장료가 30달러, 공원 내 캠핑으로 20달러, 자전거까지 들어가느라 250실링도 내야 했다. 물론 다른 사파리에 비하면 아주 저렴한 편이긴 했지만 우리는 입구에서부터 비싸다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막상 입구를 지나서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을 때는 시원한 바람과 멋진 경치에 감탄했다.

 

손발이 척척 맞았던 우리

 

나이바샤에는 캠핑장이 여러 군데 있는데 당연하게도 모두 산 위에 있다. 우리는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 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인도계 가족 여행자가 캠핑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텐트를 친 후 주변에서 나무를 모아 불을 피웠다. 사실 헬스게이트 국립공원이 즐거웠던 이유는 동물을 볼 수 있어서라기 보다 죽이 잘 맞는 친구들과 함께 있어서다. 우리는 손발이 척척 맞았다. 첸은 나무를 구해오고, 스텝은 불을 피우고, 나는 라면을 끓였다. 옆에 있던 가족 여행팀에게 숟가락과 포크를 빌려줬더니 감자튀김과 스테이크로 돌아와 풍성한 저녁 식사를 즐겼다. 저녁을 먹은 우리는 모닥불에 앉아 깊어가는 밤하늘을 바라봤다. 쏟아질 것 같은 별을 기대했지만 보름달이 떠서 별은 많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피넛버터의 뚜껑을 열여서 먹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빵으로 식사를 때우고는 뒷정리를 했다. 남은 음식을 쓰레기를 모아둔 구덩이에 버렸는데 잽싸게 내려온 원숭이가 내가 버린 것을 바로 가지고 갔다. 약간의 빵과 피넛버터 냄새에 끌렸나 보다.

 

특별한 경험이긴 했지만 자전거를 타는 일이 결코 편하진 않았다

 

역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은 얼룩말이었다.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게 바로 기린이었는데 멀리서 짠하고 나타났다.

 

자유롭게 뛰노는 동물처럼 내 몸도 가벼우면 좋겠건만 몸은 더 무거웠다. 편하게 자전거를 타는 것도 아니었고, 무거운 배낭까지 메고 있어 어깨가 정말 아팠다. 이틀간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니 헬스게이트 국립공원의 규모가 정말 작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뭔가 근사할 것 같았던 ‘버펄로 서킷’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곳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자전거를 끌고 힘겹게 이동하는 도중 멀리서 커다란 기린이 보였다. 이번에는 매우 가까이 갈 수 있어 기린과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버펄로 서킷으로 향하는 길은 경사가 심했다. 어떤 곳은 자전거를 끌고 가도 힘들 정도로 가팔랐다. 버펄로 서킷에 도착한 우리는 다시 급경사를 맞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자전거를 끌고 계속 올라갔다. 최소한 버팔로가 가득한 그런 곳은 아닐 거라 예상했지만 이런 도로일 줄은 전혀 몰랐다. 한참을 올라갔다가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니 또 급경사가 보였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어온 것 같았다. 지도를 보니 정말 우리는 이상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 국립공원 내에 있지만 주변에는 온통 지열 발전소만 보였다. 마침 여기서 일하는 중국인에게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여기는 발전소만 있는 곳으로 다른 출구는 없단다.

 

결국 왔던 길을 돌아서 가야했다

 

결국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경사가 워낙 심해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것만으로도 무서웠다. 한참을 돌아 사파리로 돌아온 우리는 출구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4주 만에 도착한 소포를 받아들고 우간다로…

 

우리는 너무 피곤했다. 그늘에서 쉬기만 했다

 

마을에서 점심을 먹은 뒤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뒤라 며칠 전과는 다르게 한적했다. 마침 캐빈에 자리가 있어서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체크인했다. 1,000실링이나 들었지만 텐트 치고 야영하는 게 700실링이었으니 가격 차이는 별로 없었다. 나는 캐빈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빨래를 했다. 다들 피곤했는지 각자 그늘진 곳에서 쉬기만 했다.

원래 계획으론 다음 날 나이바샤를 떠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 우리는 이날 떠나지 못할 것을 직감했다. 다들 피로가 덜 풀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하루만 더 있기로 했다. 각자 갈 길은 달랐지만 일단 나쿠루(Nakuru)까지는 같이 갈 생각이었다.

 

4주 만에 도착한 택배를 찾기 위해 나이로비로 향했다

 

그런데 그날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4주 전에 보낸 EMS 택배가 나이로비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온라인에서 택배의 행방이 확인되지 않아서 받는 걸 포기한 상태였다. 나이바샤에서 우간다로 바로 갈 생각을 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이바샤는 나이로비에서 불과 2시간 거리였다. 택배를 굳이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첸은 나와 함께 나이로비로 가기로 했고, 스텝은 탄자니아로 갈 예정이라 헤어졌다.

 

드디어 받았다

 

2시간 뒤 나이로비에 도착해 드디어 택배를 받았다. 거의 포기한 상태였는데 다행히 내 손에 들어왔다. 4주 만에 받다니 정말 오래 걸리긴 했다.

나와 첸은 나이로비에서 우간다(Uganda)의 수도 캄팔라(Kampala)까지 가는 버스를 예약하기 위해 시내를 돌아다녔다. 가장 좋다고 하는 모던 코스트(Morden Coast) 버스는 좌석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지만 워낙 많은 버스 회사가 있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오후 8시에 출발하는 팬더(Panther) 버스의 표를 구했다. 물론 다른 아프리카가 그렇듯 실제로는 9시가 넘어서 출발했지만.

 

복잡한 거리는 아프리카 어딜 가나 비슷했다

 

버스를 탄 지 16시간이 지난 후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 도착했다. 당연하지만 같은 아프리카라도 우간다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복잡해 보이는 거리만 조금 비슷해 보였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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