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467일차(1),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었던 도시 – 케냐, 나이로비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무수히 많은 국경을 넘어봤지만 모얄레(Moyale)처럼 잠시도 머무르기 싫었던 곳도 드물었다

 

점심을 같이 먹자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짐을 챙겨 토모와 도나가 있는 호텔로 갔다. 그러나 이 친구들은 이어폰을 꽂은 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점심도 안 먹겠다고 했다. 많은 여행자를 만나봤지만 이렇게 친근하지 않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밖에 나가 콜라를 사 먹었는데, 어김없이 “니하오”라는 인사말이 들렸다. 1년 넘게 여행하면서 중국인이냐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지만 아프리카에 온 이후, 특히 에티오피아 이후에는 참지 않았다.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고 말하자, 그는 아시아인은 다 똑같지 않냐며 반문했다. 어이가 없어서 내가 만약 피부색만 보고 너에게 수단 사람이라고 하면 어떤 기분이겠냐고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말하자 그제야 뭔가 깨달았는지 미안하다 했다. 사실 이것은 가난도, 무지의 탓도 아니다. 적어도 중동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이들은 궁금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놀리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버스는 2시에 출발했지만 무려 16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에 다음 날 아침이나 돼서야 도착하게 된다

 

오후 2시에 출발하는 스타 버스(Star Bus)를 탔다. 아무래도 아프리카에서 3대 위험한 도시로 유명한 나이로비(Nairobi)(나머지는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와 나이지리아의 라고스(Lagos))라 밤에 도착하는 것은 좋지 않아 보여서다.

물론 내가 있는 곳보다는 동쪽이 테러가 자주 일어나는 위험지역이지만 북쪽도 소말리아와 그리 멀지 않아서인지 경비가 엄청 삼엄했다. 무수히 많은 체크포인트에서는 총을 들고 있는 군인이 일일이 신분증을 검사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매시간마다 멈추고 여권을 검사하는 건 여행자의 피로를 더했다. 졸다가 불이 켜지면 여권을 내밀고, 또 조금 달린다 싶으면 체크포인트에서 멈췄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생각만큼 도로 사정이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랄까. 반 이상은 비포장도로라 먼지를 계속 마셨지만…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었던 나이로비

 

고층건물이 즐비한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 최대 도시다웠다. 이집트 카이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도로를 건넌다. 신호등은 의미가 없다

 

나이로비에는 오전 6시에 도착했다. 버스가 멈춘 곳에는 오물로 가득했다. 원래대로라면 택시를 타고 시티 센터로 가야 했으나 버스에서 만난 남수단 사람의 도움으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는 굉장히 독특했다. 맨 앞에 있는 대형 스크린과 스피커에서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여기가 클럽인가, 버스인가. 새벽부터 쿵작쿵작 음악을 들으며 시내로 향했다.

과연 나이로비는 대도시였다. 거대한 빌딩과 무수히 많은 사람, 거기에 지독한 교통체증과 소음은 덤이다. 동아프리카(케냐,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 탄자니아)의 최대 도시다웠다. 하지만 나름 아프리카에서 유명한 도시라고는 해도, 모든 게 느렸다. 이제는 한국 음식보다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이 그리워졌다.

나이로비 중심부에는 힐튼 호텔이 있는데 여행자가 자주 찾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물론 배낭여행자가 여길 묵을 리가 없고, 교통의 중심지라 이 주변에서 마타투(케냐에서는 일명 봉고차를 마타투라고 부른다)를 타거나 근처에 있는 기념품 가게를 가기 위해서다. 또한 바로 옆에 있는 KCB은행 본점에서 달러를 인출할 수 있다. 아프리카 여행을 하다 보면 유로보단 달러가 필요할 때가 많은데, 여기서 아주 쉽게 인출할 수 있어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고장 난 렌즈를 고치기 위해 수리점까지 찾아갔지만, 수리비는 터무니없이 비쌌다

 

나이로비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장 난 렌즈를 고치는 것이었다. 소니 수리점을 찾아가서 렌즈와 카메라를 맡기고는 며칠 기다렸다. 나름 대도시라 기대를 했는데 며칠 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들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수리비가 무려 100만 원이나 나온 것이다. 이게 말이 되냐고 되물었지만 직원 자신도 수리비를 보고 놀랐다고 했다. 6일이나 기다렸는데 결과가 무척 실망스러웠다. 설상가상으로 나이로비에서는 소니 DSLR도 렌즈도 구할 수 없었다. 결국 방법은 한국에서 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또 원치 않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나이로비 생활이 이어졌다.

 

마타투를 타고 돌아가는 도중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사라를 만났다. 어떻게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먼저 한국어로 대화를 시도하려 했다. 물론 이제 3개월 공부해서 기본적인 대화밖에 할 수 없었고, 주로 우리는 영어로 이야기했다. 한국 음식도 몇 번 먹어봤다고 했는데 떡볶이는 너무 매웠단다

 

나이로비 시내는 낮이나 밤이나 엄청 시끄럽다. 새벽 5시부터 왜 그렇게 경적을 울려대고 소리를 지르는지 알 수가 없다

 

나이로비는 굉장히 복잡했는데도 불구하고 적응하니 나름 지낼만했다. 한식당도 있다고 들었지만 역시 가격 때문에 한 번도 안 가봤다. 대신 한국 라면은 쉽게 구할 수 있어 몇 번 사다 먹었다. 내가 있는 동안 케냐 독립기념일이 있었다. 독립기념일이 있기 며칠 전부터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졌고(어찌나 비가 많이 오던지 숙소에 물이 샜다), 독립기념일 전날에는 정전이 되더니 무려 24시간 동안 전기를 쓸 수 없었다. 여기가 케냐의 수도가 맞나 싶었다.

 

코끼리를 보러 가자고 꼬셔서 따라온 일본인 요시오카, 료와 함께 구경했다. 코끼리가 우유를 먹으려고 멀리서 뛰어오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나이로비에서 일주일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다가 ‘아프지 마 도토 도토 잠보~♬’로 유명한 코끼리를 보러 갔다. 무한도전에서는 굉장히 먼 곳처럼 보였는데 나이로비 내, 그것도 시티센터에서 버스 타고 불과 20분 만에 갈 수 있는 데이비드 쉘드릭(The David Sheldrick Wildlife Trust)이라는 곳이었다. 다만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딱 1시간으로 개방시간이 정해져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코끼리를 바라보는데 뭔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우유를 다 먹은 코끼리들은 울타리 안에서 나뭇가지를 씹으며 어슬렁거리는데 이때 사람들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어린 코끼리를 직접 만질 수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딱 1시간뿐이었지만 입장료도 500실링으로 매우 저렴한 편이었고, 나이로비 내에 있어 멀지 않아 무척 괜찮았다. 다만 누가 도토인지, 누가 잠보인지는 모르겠다. 도토에게 너 유명해졌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만족스러웠던 웨스트게이트 쇼핑몰. 나중에 알았지만 2013년 무장괴한이 총기를 난사했던 참사현장이란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내가 나이로비에서 2주간 지내는 동안 일본인 친구 레나가 에티오피아 남부 여행을 마치고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통장에 돈이 별로 없었지만 일단 100달러를 뽑아서 줬다. 여행자에게 큰돈을 아무런 조건 없이 빌려줬기에 나도 빨리 갚고 싶었다.

이미 나이로비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되어버린 내가 여기저기를 안내했다. 난 주로 인터넷을 하러 웨스트게이트(Westgate) 쇼핑몰을 자주 갔다. 분위기도 근사한 데다가 전기를 쓸 수 있는 자리가 많고, 무엇보다도 인터넷이 정말 빨랐다. 레나도 엄청 만족했다.

다만 저녁에 돌아갈 때 마타투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밖에서 창문을 열고 내 휴대폰을 채가려고 한 사건이 있었다. 나이로비는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저녁에는 시내로 진입하는 게 한나절이다. 계속 멈춰있기 마련인데 밖에서 문을 열고 훔치는 도둑이 있을 줄이야. 다행히 내 휴대폰을 훔쳐가는데 실패했지만 모든 승객이 깜짝 놀랐다. 나는 이상하게 괜찮았는데 레나는 엄청나게 겁을 먹었다.

 

 

아프리카 최대 슬럼가, 키베라

 

우리 가이드 역시 ‘킹스 오브 키베라’라는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몇 명의 아이들을 만났는데 전부 나이로비 길거리에서 생활하다가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키베라 역시 열악한 건 마찬가지지만 여기서 공부를 하면서 꿈을 키워가고 있다

 

렌즈는 아직 못 받았지만 가만히만 있을 수 없어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슬럼 키베라(Kibera)를 가봤다. 흔히 슬럼(빈민촌)이라고 하면 위험할 것이라고 상상하는데 여기는 그런 곳은 아니다. 오히려 친근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대개 키베라를 여행한다고 하면 가이드를 끼고 가게 되는데 이는 키베라가 워낙 넓은 지역이라 구석진 곳을 혼자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이드 역시 이 지역에서 봉사하는 사람이거나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사람이라 우리가 내는 가이드비가 적은 돈이라도 그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

 

키베라의 수도와 화장실. 이곳의 열악한 환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키베라가 얼마나 열악한지는 수도 시설만 봐도 알 수 있다. 5실링(우리나라 돈으로 약 50원)이 없으면 깨끗한 물을 쓸 수 없다. 이 물도 그다지 깨끗한 편이 아니라 꼭 끓여 마셔야 한다고 한다. 만약 돈이 없으면 샤워도, 빨래도 할 수 없다. 키베라 주변에 흐르는 작은 개울에서 빨래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곳은 차라리 빨래하지 않는 게 나을 정도로 더럽다.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이 몰려 지내는 슬럼가에서 화장실은 무조건 공용이다. 어느 지역은 공용 화장실도 없어 이제 만들고 있다고 하니 이곳 사정이 어떤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아주 조금 다를 뿐

 

아이들만큼은 정말 밝아 보였다

 

좁은 골목 사이로 쓰레기가 가득하다. 어느 골목을 가도 작은 개울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쓰레기가 반쯤 묻혀 있어 악취가 난다. 아주 잠깐 쓰레기 위를 걷고, 악취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는데 이들은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상상하기 힘들다.

이곳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정확한 인구도 파악되지 않는다. 누구는 50~60만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약 100만 이상으로 보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슬럼이다.

 

푸르고 아름다운 하늘 아래 쓰레기로 가득하고 황토색으로 물든 키베라가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배낭여행자가 잠시 이곳을 걷고 사진 찍지만 이곳을 동정할 여유 따윈 없다. 그저 잠시만이라도 이해할 수만 있다면,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조금은 값진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힘들게 받은 새로운 렌즈는 안타깝게도 결과물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이로비에서 지낸 지 3주 만에 새로운 렌즈를 받았다. 사실 렌즈를 받는 과정에서 엄청 짜증이 났었다. 배송비와 세금으로 렌즈 가격의 절반 이상을 지불한 데다, 배송과정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아무튼, 렌즈를 새로 받기까지 엄청난 돈과 시간을 낭비해야 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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