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417일차, 믿을 건 사람 밖에 없었던 수단 (2) – 수단, 하르툼&메로위

 

#1에 이어서…

 

하르툼을 활보하는 다섯 명의 한국인

 

휴게소라는 이름이 무색했던 휴게소. 모래바람과 쓰레기가 가득하다

 

한참을 달려 휴게소에 도착했다. 사실 말이 휴게소지 허름해 보이는 건물 몇 개가 전부인 곳이다. 게다가 모래바람까지 심하게 불어 눈을 뜨기도 힘들었다. 수단은 어디를 가나 쓰레기 천지다. 마치 이집트와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린다.

 

하르툼에 도착했다

 

황량했던 휴게소를 지나 드디어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 도착했다. 버스는 중심지가 아닌 상당히 먼 곳에서 내려줬다.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택시 기사가 접근했고, 그는 나에게 50파운드를 제시했지만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고작 4km 정도 떨어진 곳이라 걸어서 가도 충분했다. 낯선 외국인을 발견한 수단인들은 나에게 악수를 청하고 미소를 보냈다. 여행자에게 호의적인 사람들 덕분에 손을 몇 번이나 흔들었는지 모른다.

 

겉으로만 그럴싸해 보이던 숙소. 이곳에서 반가운 친구들을 만났다

 

수단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그럴싸한 숙소에 묵게 됐다. 물론 들어가 보니 외관만 그랬다. 내부는 아무렇게나 방치된 상태였고, 화장실은 언제 청소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런데도 가격은 9천 원 정도 했다. 터무니없이 비쌌다.

이곳에서도 만남은 이어졌다. 이집트 룩소르에서부터 만났던 자전거 여행자인 형근이와 진화는 도착하기 전날 하르툼에 있는 것을 알게 돼 만날 것을 알았지만 다른 한국인 여행자가 있을 줄은 몰랐다. 다른 곳도 아니고 수단에서. 한수와 민아는 유럽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다가 지금은 배낭을 메고 여행하고 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근사한 곳에서 음료수를 마시며(술이 없으니) 한참 동안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뭔가 신났다.

 

 

무사히 에티오피아 비자를 GET!

 

다음날에는 에티오피아 비자를 받으러 곧장 대사관으로 갔다. 에티오피아는 아디스아바바 공항으로 입국하면 도착 비자를 받을 수 있지만 육로로 입국하는 나는 미리 비자를 받아야 했다. 다행스럽게 에티오피아 비자는 당일에 받을 수 있었다. 비자 기간은 1개월짜리를 받으려다가 혹시 몰라서 3개월짜리로 받았다.

 

사진을 찍어 달라는 아이들은 정작 카메라를 들이대자 부끄러워했다. 수단에서는 인터넷 사용이 어렵다. 당연히 싸구려 숙소에서 와이파이가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길거리에는 종종 와이파이가 되는 지점이 있어서 인터넷은 항상 그곳에서 쓰곤 했다

 

점심으로 먹은 풀. 맛은 확실하다. 뚝뚝을 점령한 하르툼의 5인

 

점심은 다같이 우르르 몰려가 풀을 먹었다. 음식 색깔도 그렇고 빵을 찍어 먹다 보면 지저분해지는 게 별로지만 맛은 좋았다.  하르툼에 있다고 해서 딱히 뭘 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수단에서 관광지라고 할 만한 곳은 없었으니까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늘어져 있다가 저녁에는 시내로 나가자며 뚝뚝을 잡아탔다. 무려 5명이 한꺼번에.

 

한국인 5명은 하르툼 시내를 활보하고 다녔다.거리 곳곳에는 커다란 구멍이 많아 조심해야 했다

 

우리는 시내를 걸었다. 어두워진 시내는 사람은 많았지만 무척 한가했다. 돈다발을 들고 있는 사람과 환전을 하고 어디가 정확히 시내인지 몰라 계속 걸어 다녔다. 실제로 우리가 걸어 다닌 곳은 시내가 맞았지만 뭔가 우리가 상상하던 그런 도심의 모습은 아니었다.

 

너무 배고파서 무작정 들어갔던 햄버거 가게. 우연히 들어간 곳 치고는 정말 괜찮았다. 햄버거도 무척 크고, 맛있고, 결정적으로 매우 쌌다. 과일 주스도 고작해야 3파운드(약 500원)밖에 하지 않았다. 가게 앞에 비치된 생수는 누구라도 마실 수 있는데 이집트라면 모를까 수단에서는 한두 번 마셔보기만 했다

 

다음날 한수와 민아는 에티오피아로 떠났고, 그다음 날은 형근과 진화가 자전거를 타고 떠났다. 나도 떠나고 싶었지만 수단에서 한 두 군데 정도 여행을 이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메로이 피라미드(Pyramids of Meroe). 피라미드를 보러 떠난 것까지는 좋았다. 단 한 가지, 수단에는 비슷한 지명이 많다는 것을 빼고…

 

 

‘나의 여행은 왜 이런가?’

 

버스 → 시장 → 버스 → 버스 → 노숙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갔으나 여기서는 메로이로 갈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중에 이틀 뒤에는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어떤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다른 곳으로 갔다. 그것도 멀리, 하르툼 시내를 벗어나 아주 멀리까지 갔다.

내가 도착한 곳에는 커다란 시장이 있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곳 사람들이 배낭을 메고 걷는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미 난 오래 걷느라, 그리고 사람들에게 계속 물어도 같은 대답을 듣지 못해 짜증이 가득했던 상황이었다. 심지어 여기서도 또 다시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고,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버스에 다시 올라타야 했다. 게다가 내릴 때는 내 배낭에 대한 비용을 내라고 하니, 결국 나는 화를 냈다. 수단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3시간 동안 계속 길이 엇나감에 화가 솟구쳐서 나는 아무한테나 신경질을 부렸다.

끝내 버스를 탔지만 그 버스는 내가 가려는 메로이(Meroe)가 아닌 메로위(Merowe)로 간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되었다. 휴게소에서도, 버스에서도 메로위는 내가 가려는 곳이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다들 맞다고, 괜찮다고 했다. 심지어 내가 아랍어로 쓰여 있는 지도를 보여줬는데도 말이다. 결국 나는 예상대로 이상한 곳에서 내리고 말았다. 어처구니없었다. 다행히 내 사정을 들은 어떤 버스 아저씨가 공짜로 메로위로 가기 전의 갈림길까지 태워줬다.

 

대체 내 여행은 왜 이런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답답하고 짜증나도 밥은 먹어야 한다

 

대체 내 여행은 왜 이런가 싶은 마음이 들다가 온종일 쫄쫄 굶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밥부터 먹으러 움직였다. 다행히 식당이 보여 풀과 팔라펠로 허기를 채웠다.

 

사람 때문에 울고 사람 때문에 웃었다

 

문제는 잠자리였다. 이곳은 체크포인트라 군인인지 경찰인지 모를 사람이 있었다. 그중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에게 텐트를 쳐도 되냐고 물어보니 선뜻 자기 옆자리에서 자라고 했다. 아무리 사람들 때문에 짜증 나는 하루였어도 결국 사람으로 위로받는 곳이 바로 이곳, 수단이다. 나는 텐트를 대충 쳐놓고 카페와 슈퍼 앞에 있는 사람들과 제대로 통하지도 않는 말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정말 피곤했는지 나는 텐트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추위와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나에게 텐트를 치라고 했던 할아버지는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사진을 찍고 나니 할아버지는 뭔가 흡족해 했다. 그러더니 추위에 벌벌 떠는 나에게 차이를 마시자고 했다. 차이를 다 마시고 가격을 물어보니 할아버지는 손을 내젓는다. 본인이 내겠다는 의미였다.

 

 

결국 우리는 만나고 말았다

 

앗바라흐 시내. 너무 멀리 돌아왔다. 바로 메로이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텐트와 침낭을 정리한 후 체크포인트에서 출발하는 밴을 타고 앗바라흐(Atbarah) 방향으로 이동했다. 분명 도로는 있는데 지나다니는 차는 별로 없었다. 앗바라흐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메로이행 버스를 탔다.

 

저 멀리 보이는 메로이 피라미드. 이틀간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로 걷기만 해 무척 피곤했다

 

메로이 피라미드는 분명 유명한 관광지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피라미드는 허허벌판에 있었다. 근처에는 마을도, 그 무엇도 없었고 심지어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내리는 사람은 창밖으로 피라미드가 보이자 지금 내려야 한다고 소리 지른 나뿐이었다. 나는 허허벌판에 내려 멀리 피라미드의 형체가 보이는 곳을 향해 걸었다.

 

아이들이 타고 다니는 낙타는 굉장히 컸다. 사람이 낙타를 오르고 내리는 모습은 처음 봤는데 아이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낙타를 툭툭 치면 낙타는 무릎을 꿇었다. 뜨거운 사막에 홀로 있는 당나귀가 안쓰러웠다

 

피라미드로 가는 도중 흙으로 만든 집이 있어 숙소인 줄 알았는데 그냥 아무 것도 아니었다. 거기 있던 사람에게 텐트를 치고 자도 되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나는 일단 이곳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피라미드를 다녀오겠다고 길을 나섰다. 그때 멀리서 낙타를 타고 온 아이 두 명이 낙타를 타라고 끈임 없이 제안했다. 공짜란다. 아이들은 수십 번이나 공짜라고 얘기했지만 난 타지 않았다. 낙타를 타는데 공짜라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아닌 수단에서 피라미드라니. 물론 기대를 하고 갔던 것은 아니었다. 피라미드는 정말 사막에 있어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졌다. 정말 더웠다. 수단은 온통 사막이지만 여기를 걸으니 진짜 사막에 온 것 같았다. 배가 고팠고, 목도 말랐다. 열기에 데워진 뜨거운 물도 다 마셨다

 

아무리 봐도 여행자는 찾아올 것 같지 않은 이곳이지만 엄연히 관광지라서 입장료를 내야 했다. 50파운드라는 거금을 내야 했는데 내가 순간 망설이자 관리인은 30파운드로 깎아줬다. 사실 30파운드도 적지 않은 돈이라 망설였지만 여기까지 이틀간 힘들게 왔던 것을 생각하면 안 들어갈 수 없었다.

 

피라미드 내부에는 희미하게 상형문자가 남아있었지만 온전한 모양의 피라미드는 거의 없었다. 옆에서는 그런 피라미드를 복원하려는 작업도 이뤄지고 있었다. 이미 복원이 끝난 것도 여럿 있었는데 그 결과가 매우 실망스럽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가 한해 몇 명이나 될까 궁금해진다

 

당연히 이집트에 있는 피라미드와 비교하는 건 무리다. 규모도 매우 작을 뿐더러, 보존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하다. 신비감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꽤 괜찮았다. 그 위대한 건축물이라고 여겨졌던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실망했던 나로서는 의외였다. 문명의 발상지라고 불리는 이집트와는 달리 아무 것도 없는 사막에 피라미드가 있다는 게 흥미로웠던 것 같다.

 

 

마사와의 재회 그리고 탈출

 

허허벌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히치하이킹 뿐이었다

 

피라미드를 뒤로 하고 흙집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아주 약간이지만 영어를 할 줄 알았다)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냐고 물어보니 없단다. 대체 이 사람과 가족들은 다른 곳도 아니고 사막 한 가운데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늦은 시간이라 하루 정도 자고 가려고 했지만 그러기엔 배가 너무 고팠다. 바로 하르툼이든 어디든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도로까지 나가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내 앞으로 큰 트럭이 몇 차례 지나가고 작은 버스가 멈췄다. 일반 차량이 아니라 버스였지만 굶주린 나는 한시라도 빨리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이 버스를 타고 한참을 이동하다 하르툼행 버스로 갈아탔다. 물론 중간에 탔어도 돈은 내야 했다.

 

고마운 사람들

 

하르툼까지는 정말 멀었다. 지루한 시간이었다. 한참을 달려 저녁 8시 반쯤에야 하르툼에 도착했다. 어느새 해는 졌고 날은 어두워졌다. 게다가 휴대폰 배터리도 없어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택시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불러 난감했다. 그때 뒤에서 영어로 나에게 상황을 묻던 할아버지가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잠시 후에 할아버지의 아들이 차를 끌고 왔고, 나를 태우고는 공항 근처까지 갔다. 사실 나는 택시를 쉽게 탈 수 있는 적당한 곳까지만 가면 된다고 말했는데, 그들은 내가 가려는 목적지까지 태워줬다. 정말 고맙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한 뒤 헤어졌다.

 

며칠 만에 마사와 다시 만났다.  우리는 저녁을 먹은 뒤 거리에서 차이를 마셨다

 

그리고는 전에 묵었던 유스호스텔로 갔다. 마침 정전 때문에 어두웠는데, 낯익은 사람이 나를 반겼다. 이집트에서 나와 8일간 같이 여행한 일본인 마사였다. 마사는 이미 저녁을 먹었지만 같이 나가자고 내가 꼬셨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거리에서 차이를 같이 마셨다. 다음날 에티오피아로 간다는 마사에게 나도 갈 거라고 말했다. 피라미드를 보러 갔던 게 너무 피곤해서인지 카사라(Kassala)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저 더럽고, 비싸고, 볼거리 없는 이곳을 떠나 새로운 나라로 이동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당시에는 분명 그랬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이렇게라도 여행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친절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수단에서 믿을 건 사람 뿐이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김동범님께 있습니다. 텍스트와 이미지 등 콘텐츠의 무단 사용 또는 도용 시 저작권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콘텐츠 사용은 해당 작가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