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은 아프리카 여행을 마무리하는 단계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출국 예정이었다. 그래서 함께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다. 이집트에 도착한 지 1주일 만에 하는 이동이다. 알렉산드리아까지는 기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이등석임에도 상당히 깨끗하고 편안했다. 우리는 3시간 만에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해 지중해 바다가 있는(숙소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웰컴 투 이집트’, 예상치 못했던 그들의 친절
이집트 여행을 하면서 ‘쿠푸왕의 피라미드’와 함께 또 하나의 실패 사례로 기억될 곳이 있는데, 바로 이 도서관이다. 알렉산드리아에서도 나름 유명한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갔다. 그런데 여기서도 관광객은 차별요금이 적용됐다. 현지인은 2파운드였으나 관광객은 무려 70파운드.
여기서 생각이 짧았던 게, 이 엄청난 거금을 주고 티켓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옆에 일본인은 단돈 5파운드에 티겟을 구입을 했는데 말이다. 이들에게는 학생증이 있었다. 아무튼, 너무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치르고 들어갔지만, 그냥 좀 독특한 도서관일 뿐이었다. 아까운 70파운드.
사실 난 이집트에 대해 좋은 이야기보다 안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은 바 있다. 그래서 이집트 여행은 험난을 넘어 최악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가끔 삐끼가 괴롭히기는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너무 친절했다. 항상 웃으며 “이집트에 온 것을 환영해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 덕분에 여행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다니엘도 같은 반응이었다. 이집트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너무 많이 들어 단단히 각오하고 왔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친근해 깜짝 놀랐다고.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받았다.
알렉산드리아는 볼거리가 많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의 관심 때문인지 나쁘지 않았다. 물론 먼저 접근하는 이집트인 중에서 순수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관광지에서는…
멀리 카이트베이 요새(Citadel of Qaitbay)가 보이고, 바다로 점프하는 소년이 참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멀리서 보면 이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인데 사실 주변은 쓰레기로 넘쳐난다.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이집트 사람들은 쓰레기 더미를 밟으며 걷고,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바다에서 낚시를 한다. 심지어 지하철 내에 있는 창문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봤다. 내 기준으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걷던 도중 커다란 모스크가 보여 들어갔다. 다니엘은 여자라서 정문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거대한 규모의 샹들리에와 높은 천장은 언제나 멋진 모스크의 상징과도 같다. 내부를 둘러보던 중 모스크 내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편하게 주무시고 계시던 어느 할아버지를 보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모스크는 딱딱할 것만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의외로 그 안에서 쉬거나 자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카이트베이 요새는 다음날 가보기로 하고 우리는 천천히 왔던 길을 돌아갔다.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사진을 꼭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저기서 사진 찍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심지어는 우리를 끌고 가게 안에 있는 사람의 사진을 찍어 보라고 했다. 그들도 웃고, 우리도 웃었다.
그래도 가볼 만한 곳, 카이트베이
다음날에도 역시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비싼 곳이었지만 그래 봐야 우리나라 돈으로 1,500원 수준. 레바논과 사이프러스의 고물가를 거친 나는 이집트의 저렴한 물가에 그저 행복했다.
원래는 트램을 타려고 했으나 무슨 이유인지 트램이 다니지도 않았고 역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걸어서 어제 왔던 길을 따라 다시 갔다. 지중해 바다가 보이는 길을 따라 걸었다. 사진을 찍어 달라는(어쩌면 부탁이 아닌 명령처럼 느껴지는) 가족을 만났다.
카이트베이 요새 앞에 도착했다. 많지는 않지만 이곳 주변에는 몇 명의 관광객이 보였다. 입장료 30파운드를 내고 들어갔다. 도서관을 70파운드나 내고 들어갔기에 뭐든 입장료만 보면 민감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카이트베이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돈 내고 들어가도 될 만한 유일한 볼거리 같았다.
성 내부를 둘러보면서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사람과 인사를 하거나 사진도 같이 찍었다. 그중에서 우리를 계속 쫓아왔던 아이 3명이 있었는데,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헤어지는데, 뭐가 그리 좋은지 웃으며 뛰던 도중 한 여자아이가 넘어졌다. 그런데 울지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물고는 눈물 몇 방울만 흘렸다. 정말 아파 보였는데.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가 어우러져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기분만이다. 날씨는 무지하게 더웠다.
알렉산드리아에 왔으니 모처럼 해산물을 먹었다. 사실 배낭여행자에게 해산물은 매우 비싼 음식이었지만 다니엘에게 마지막 날이었고, 또 한 번쯤은 먹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크게 망설이진 않았다. 식당 바로 앞에 있는 진열대에서 해산물을 고르면 요리를 해줬다. 이름 모를 커다란 생선과 오징어 그리고 새우를 주문했다. 그런데 정말 맛있게 먹은 뒤 화장실에 다녀오니 다니엘이 계산을 해버렸다.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가끔은 여행자를 위해 자기가 내고 싶다며 말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말과 사람, 차와 트램이 뒤엉켜 있었다. 마차의 방해로 트램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굿바이, 다니엘!
숙소에 들어와 쉬다가 저녁이 되어서 다시 나왔다. 이제는 동네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알렉산드리아에서도 길을 건널 때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차가 오건 말건 일단 건너야 한다.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고민하다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러다 발견한 어느 한 식당은 분위기도 음식도 괜찮아 보였다. 여기서도 사람들이 사진을 찍자고 난리였다.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여러 가지 음식을 주문했는데 다니엘은 무척 맛있게 먹었지만 나한테는 그저 그랬다.
11개월 전에 만난 게 인연이 돼서 카이로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카타르를 거쳐 미국으로 돌아가는 다니엘과는 달리 나는 카이로로 돌아갔다. 늘 그랬지만 난 다시 혼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