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zian, Morocco – 모로코

 

 

제마엘프나의-한방차-할아버지

제마엘프나 광장의 한방차 할아버지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아인트호벤(Eindhoven)에서 모로코의 페스(Fez)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4시간쯤 하늘을 날았다. 오래전 스페인 알헤시라스(Algeciras)에서 배를 타고 탕헤르(Tangier)로 들어가려 했으나 한 달 만에 유럽을 반 바퀴 돌고 나니 시간이 부족해서 모로코(Morocco)는 기약 없이 다음으로 미뤘다. 11년간 나의 마음속에 막연히 자리하고 있던 모로코에 드디어 도착했다. 여러 중동 국가를 여행하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 거침이 없던 내게도 ‘아프리카’는 생소했고 설렘 사이로 모락모락 올라오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공항 밖으로 나왔다.

“헬로 레이디, 택시? 택시? 메디나? 올드 메디나?” 순식간에 스무 명이 넘는 택시 기사들이 나를 둘러싼다. 얼마냐 묻는 내게 황당한 금액을 제시하는 아저씨들과 짧은 아랍어로 흥정을 시작한다. 석양이 저물 무렵에 시작해서 2/3 가격에 협상을 마치고 나니 주변이 어두워졌다. 흙먼지로 자욱한 공항 주차장을 지나니 적어도 20살은 되어 보이는 매우 클래식한 벤츠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고 차에 올라탄 후 문을 닫으려는데 손잡이가 나무판자였다. 한 시간 남짓을 달려 신시가지를 지나 ‘페스’의 올드시티로 입성했고 미로처럼 어지러운 메디나(Medina, 중동 국가에서는 보통 오래된 도시를 뜻함) 안에서 숙소 찾을 걱정이 한 가득 이었는데 동양인을 발견하고 골목에서 부리나케 뛰쳐나온 꼬마가 리야드(Riad, 모로코의 전통가옥(Dar)을 현대식으로 개조한 숙소)의 이름만 보고 나를 이끌었다.

 

리야드-내부

리야드 내부

 

육중한 문을 밀고 들어가니 투박하게 흙벽으로 둘러싸인 외부와는 달리 하늘을 볼 수 있는 작은 정원과 이슬람식 타일로 화려하게 장식된 벽이 조명을 받아 더 신비롭게 다가온다. 천일야화의 배경을 떠올리는 것도 잠시, 난방시설이 없는 리야드에서 1월의 아프리카는 너무 추웠다. 덜덜 떨고 있는 나를 위해 모로칸식 웰컴 티(Tea)와 우리나라 깨강정처럼 생긴 전통 쿠키 몇 개가 준비되어 나왔다.

 

리야드의-민트티와-쿠키

리야드의 민트티와 쿠키

 

사실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이집트 카이로의 민트 티는 아주 진하게 우린 홍차에 민트 잎 몇 개를 띄운 게 전부였고 이마저도 바흐리야(Bahariya) 사막으로 달려가던 중 어느 황무지 휴게소에서 한잔 들이켰기에 별 감흥은 없었다. 당시 캔커피에 빠져있던 나에게 사모바르(Samovar, 러시아 가정에서 사용하는 주전자로, 보일러 원리로 물을 끓이며 러시아뿐만 아니라 터키를 비롯한 중동 국가에서도 많이 사용함)로 장시간 우려낸 홍차의 타닌은 혀를 거칠게 감쌌고 흐릿한 민트향은 절로 설탕을 불렀다. 이집트의 민트 티만 알던 내게 모로칸식 민트 티는 부드럽고 달콤하고 향긋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형식을 갖춰 정갈하게 은쟁반에 올린 티포트와 티잔에 담겨 나오는 모습은 나의 여행책 표지 사진 그대로였고 녹차를 베이스로 우리고 신선한 민트 잎을 가득 담아 정성껏 우려낸 모로칸 민트 티는 얼어있던 나를 포근하게 녹여줬다. 이날의 아타이(Atai, 모로코에서는 민트 티를 아타이라 부름)가 모로코 여행 내내 마셨던 아타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마 수줍은 미소로 티세트를 내밀던 주인아저씨의 환대가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로칸식-아침식사

모로칸식 아침식사

 

미로 같은 메디나를 동서남북으로 정신없이 걸어 다닌 페스의 2박 3일간 여정은 시간이 멈춘 고대의 도시에서 길 잃은 시간여행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집트 카이로(Cairo)와 시리아 다마스쿠스(Damascus)의 메디나도 매력적이었지만 과거의 모습을 온전히 더 잘 간직하고 있는 페스의 메디나는 동네 구석구석의 숨은 명소를 찾는 보물찾기 같은 기분을 여행자에게 선물한다. 여행자를 위한 지도에 표시된 오래된 종교 대학과 긴 역사를 가진 여러 모스크들을 찾다가 골목 언저리에서 커다란 짐을 힘겹게 옮기는 당나귀를 만나는 것은 이곳이 그저 과거에 묻힌 도시가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인 삶의 현장이란 사실을 일깨워준다. 미로를 헤매다가 지치면 카페를 찾아 잠시 쉬며 파란 하늘 아래 모스크의 미나렛(Minaret, 모스크 옆에 세워진 뾰족한 탑)과 메디나의 흙벽이 정겹게 어우러진 도시의 전경을 감상하는 것도 모로코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카페-클락-민트티

카페 클락에서 마신 민트티

 

나는 모로코 배낭 여행자들의 아지트라는 카페 클락(Clock)을 찾았다. 메디나 관광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블루게이트에서 5분 정도 걸어 내려와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 보면 클락의 간판이 보인다. 여행 비수기에 방문했기에 옥상의 테라스 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360도의 전경을 보며 민트 티를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약간의 빗방울로 어두웠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아잔(Adhan, 하루 5번의 기도 시간을 알리기 위해 이슬람 사원에서 낭송하는 일종의 노래)을 들으며 붉은 노을이 물드는 하늘을 배경으로 본 쿠투비아(Kotubia) 첨탑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 머문다.

자, 이제 마라케시(Marrakech)로 떠날 차례다. 페스에서 8시에 출발하는 야간 버스를 타고 열 시간쯤 달리면 마라케시에 도착이다. 이틀 안에 마라케시 시내를 정복하고 삼일 간의 사하라 투어를 계획했던 내게 모로칸 친구는 마라케시만 일주일 봐도 부족할 것이라며 나를 말렸다. 그리하여 나는 온전히 5일간을 마라케시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다.

 

제마엘프나-광장의-전경

제마엘프나 광장의 전경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를 유럽의 모나코(Monaco)와 헷갈려 하지만 아프리카와 유럽 대륙의 서로 다른 문화와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오묘하게 섞여 있고,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함께 평화롭게 사는 모로코 왕국은 이국적인 오색 빛깔의 실과 화려한 문양의 수로 장식된 카펫 같은 국가이다. 그중 궁극의 매력을 보여주며 천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는 도시가 바로 마라케시이고 모두의 눈을 사로잡는 곳이 바로 24시간 쉴 새 없이 역동하는 제마엘프나(Jemaa El-fna) 광장이다. 낮에는 넓은 광장에 좌판을 깔고 모로코의 특산품 아르간 오일(Argan Oil)과 비누를 팔거나 가죽이나 은으로 만든 수공예품을 흥정하기도 하고 원숭이나 뱀을 끌고 나와 관광객을 상대로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한다. 뉘엿뉘엿 해가 지려 하면 어디선가 아저씨 풍물패가 나타나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모로칸 전통 리듬에 춤을 추며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1) 카펫 상점
2) 한낮의 제마엘프나 광장

 

저녁 5시부터 광장의 푸드코트들이 고기나 해산물을 구우며 여행객들의 입맛을 유혹하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향신료 냄새와 연기가 올라오며 야시장의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다. 모로코의 전통 타진(Tajin) 요리에서 사프란으로 노랗게 물든 쿠스쿠스(Couscous), 갓 잡은 오징어와 생선튀김, 모로코 빵 안에 감자와 달걀, 치즈, 약간의 커민(Cumin) 파우더를 채운 샌드위치까지 소박한 맛집 투어를 경험하기 충분한 메뉴들이다.

 

1) 제마엘프나 광장의 야경
2) 올리브 상점
3) 유난히 인기가 많던 한방차 할아버지

 

물론 이 야시장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이 모로코 사람들의 티 사랑이다. 이곳에서는 민트 티가 아닌 특별한 한방차를 즐겨보자. 10가지 약재와 향신료를 블렌딩해 팔팔 끓여 설탕을 한 스푼 넣고 휙휙 저은 차가 한잔에 2 디람(Dh, 1 디람≒130원)이다. 한 모금 마시면 진한 단맛이 올라오고 뒤이어 생강의 매운맛에 혀가 놀랄 때쯤 시나몬 향이 코를 자극한다. 이 한방차를 파는 집이 몇 군데 있는데 집집이 재료의 블렌딩 레시피가 달라 현지인들마다 즐겨 찾는 집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시는 할아버지의 가게에 유난히 긴 줄이 서 있었고 나도 그중 한 명이 되었다. 무언가 만들어서 사람들의 입맛을 끌기 위해서는 역시 시간과 노력이 담긴 차별화된 레시피가 필요할 것 같다. 내가 볶는 커피 역시 그러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제마엘프나의-견과류-상점

제마엘프나의 견과류 상점

 

할아버지의 한방차에 잠시 피로를 녹이고 이제 본격적으로 수크(Sough) 탐험을 시작해 본다. 베르베르(Berber)족 아저씨가 손수 만든 가죽신을 구경하고 다양한 디자인과 크기, 반짝이는 빛깔의 티포트, 티잔, 은쟁반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하고 하늘거리는 기하학적 패턴과 색깔들로 물든 스카프들이 다시 관광객들의 눈을 끈다. 어느 식당에서든 빠지지 않고 김치처럼 등장하는 절인 올리브를 파는 가게와 온갖 견과류와 말린 과일을 파는 가게는 역시 현지인들로 붐빈다. 미식가들의 천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향신료 가게마다 산처럼 쌓아놓은 요리 향신료와 앰버(Amber), 머스크(Musk), 라벤더(Lavender) 등의 돌처럼 생긴 모로칸 고체 향수, 베르베르족의 신기한 미용용품 등을 진열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나 역시 우연히 한 향신료 가게에 들어가 자신을 베르베르 출신이라며 나에게 “베르베르 굿 프라이스(Good price)”로 주겠다는 소년의 말에 나 역시 “마지안(Mazian, 모로코 구어체에서 좋다(good)의 의미로 쓰임)”을 외치며 이것저것 물건을 샀다. 형과 함께 이 가게를 운영한다는 17살의 소년은 아직은 제마엘프나 광장 상인들과는 다른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고 물건을 팔기보다는 나의 끊임없는 질문공세에 동양인을 신기하게 보며 친절히 설명해줬다. 장사보다는 수다에 즐거워하는 그에게 모로칸 티 만드는 방법을 물어봤고 집에서 종종 차를 준비한다는 그는 능숙하게 그만의 티 우리는 법을 알려줬다. 소년의 레시피를 간단히 적어보면,

1. 티포트에 녹차 잎 한 스푼을 넣고 티잔 한잔 정도 되는 분량의 끓인 물을 넣고 2분 정도 가만히 둔다.
2. 우려진 티를 잔에 다시 옮겨 놓고 티잔의 2잔 정도에 해당하는 물을 다시 티포트에 붓는다. 서너 번 이상 티포트를 흔들며 차 잎에 있는 이물질을 씻어낸 후 이 물은 버리고 재사용하지 않는다.
3. 처음 우려 준비해둔 찻물을 다시 티포트에 넣고 다시 끓인 물을 티포트에 가득 찰 때까지 더 부어준다.
4. 신선한 민트 잎을 취향껏 티포트에 넣고 향이 충분히 우러날 때까지 우린 후 민트 티를 즐긴다.
중국의 녹차 잎을 주로 쓰고 설탕은 티포트에 직접 넣거나 티잔에 차를 옮긴 후 첨가한다고 한다.

이렇듯 처음 만나는 시장 상인들과도 신나게 수다를 떨 수 있을 만큼 모로코 사람들은 손님을 맞이하고 대접하는 것을 즐긴다.

 

바디-궁전

바디 궁전

 

제마엘프나 광장을 둘러싸고 곳곳에 펼쳐져 있는 바디 궁전(Badi palace), 바히아 궁전(Bahia palace), 사디안 묘지(Sadian tombs), 마드라사 유세프(Madresa Yossef) 등의 관광지를 돌아보는 내게 모로코 사람들은 도움을 청하고 길을 물을 때마다 기꺼이 손을 내밀어줬다. 비록 자신이 길을 모를지라도 다른 사람을 붙잡거나 지인에게 전화까지 해가며 나의 행선지를 찾아주려 노력했고 길에서 오렌지나 오징어 튀김을 살 때도 지나가던 아저씨가 영어로 의사소통을 도와줬다.

 

마라케시-쿠투비아-모스크

마라케시 쿠투비아 모스크

 

사막의 신기루처럼 순식간에 지나간 일주일의 모로코 여행에서 나의 피로를 풀어주던 모로칸 민트 티에서 항상 신과 함께하기에 더욱 유쾌하고 긍정적인 모로코 사람들의 삶의 여유로움을 볼 수 있었고 손님을 진심으로 환대하는 따스함도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제마엘프나 광장의 카페테라스에 앉아 향긋한 민트 티와 달콤한 대추야자(Dates)를 즐기고 싶다. 신이 허락한다면 다시 가볼 수 있으리라. 인샬라(Insha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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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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